❀7월-백중
❀백중의 어원
일반적으로 백중(百衆)은 음력 7월 보름에 드는 속절(俗節)이며, 백종(百種)·중원(中元), 또는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종(百種)은 이 무렵에 여러 가지 과실과 채소가 많이 나와 '백가지 곡식의 씨 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유래된 말이요, 중원(中元)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삼원(三元)의 하 나로서 음력 1월 1일을 원단(元旦)이라 하고, 이어 상원(上元), 중원(中元), 하원(下元)이 있게 되는데, ‘상원’은 정월 보름, ‘중원’은 7월 보름, ‘하원’은 10월 보름에 해당되며, 도교(道敎)에서는 이렇듯 세 차례의 원일(元日)에 천상선관(天上仙官)이 인간 세상에 숨어들어 개개인의 선악(善惡)을 기록해 간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또한 망혼일(亡魂日)이라 한 까닭은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음식·과일을 차려 놓고 천신(薦新)을 드린 데에서 비롯되었다.
입하(立夏)로부터 시작되는 여름은 '녀름 짓다'라는 옛말처럼 밭매기와 논매기 등 농사일이 한창인 계절이다. 그러나 '어정 7월, 동동 8월' 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농촌의 7월은 바쁜 농번기를 보낸 뒤이면서, 한편으로는 가을추수를 앞둔 달이어서 잠시 허리를 펼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백중'이라는 속절(俗節)을 두어 농사일을 멈추고, 천신의례 및 잔치와 놀이판을 벌여 노동의 지루함을 달래고 더위로 인해 쇠약해지는 건강을 회복하고자 했다.
❀백중의 유래
백중의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 후기에 간행 된《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불가의 스님들이 재를 올리고 불공을 드리는 큰 명절로 여긴다. 상고하면《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이르기를 중원일(中元日)은 승니, 도사, 속인들이 모두 분(盆)을 만들어 이것을 절에 바친다고 했다. 또 상고하면《우란분경(盂蘭盆經)》에 목련비구(木蓮比丘)가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갖추어 분 안에 넣어 갖고 시방대덕(十方大德)에 공양한다고 하였다. 지금 말한 백종일이 백과를 가리키는 것이다. 고려 때는 부처를 숭상하고 이 날이 오면 항상 우란분회(盂蘭盆會)를 베풀었다. 오늘날 불당에서 재를 올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기록에 의하면 백중의 유래는 불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우란분회를 열어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부처님께 공양하고, 조상의 영전에 바쳤다. 조선시대 때에는 억불숭유정책 으로 승려들만의 불교의식이 되고 말았다. 한편 제주도에는 백중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성기의《남국의 민속》(下)에 소개되고 있는 이 설화에 의하면 백중은 농신(農神)으로 상정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주도의 목동이 곡식과 가축을 지키려고 옥황상제의 명을 어겼는데, 이로 인해 노여움을 받아 스스로 자결하였다. 그 후 농민들이 그가 죽은 날인 음력 7월 14일을 백중일이라 하여 제사를 지내어 그의 영혼을 위로하였다." 이렇게 볼 때 백중은 본시 우리나라 고대의 농신제일(農神祭日)이었던 것이 삼국시대 이후 불교의 우란분회의 영향을 받아 그 원래의 의미가 상실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백중의 풍속
백중에는 여러 풍속이 전해 온다. 각 가정에서는 익은 과일을 따서 사당에 천신(薦新)을 올렸으며, 궁중에서는 종묘에 이른 벼를 베어 천신을 올리기도 하였다. 농가에서는 백중날 머슴들과 일꾼들에게 돈과 휴가를 주어 즐겁게 놀도록 하였다.
따라서 이 날이 되면 머슴들과 일꾼들은 특별히 장만한 아침상과 새 옷 및 돈을 받는데 이것을 '백중 돈 탄다.' 라고 하였다. 백중 돈을 탄 이들은 장터에 나가 물건을 사거나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이때 서는 장을 특별히 '백중장' 이라 하여 풍장이 울리고 씨름 등을 비롯한 갖가지 흥미 있는 오락과 구경거리가 있어서, 농사에 시달렸던 머슴이나 일꾼들은 마냥 즐길 수 있는 날이다. 지역에 따라 이 날 농신제(農神祭)와 더불어 집단 놀이가 행해지는데 이를 '백중놀이'라고 한다.
이 놀이는 농촌에서 힘겨운 세벌 논매기를 끝내고 여흥으로 여러 가지 놀이판을 벌여 온 데서 비롯된 것으로서 일종의 마을 잔치이다.
이날은 그해에 농사가 가장 잘 된 집의 머슴을 뽑아 소에 태워 마을을 돌며 하루를 즐기는데, 이를 '호미씻이'라 한다. 호미씻이는 지방에 따라서 초연(草宴), 풋굿, 머슴날, 장원례(壯元禮)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장원한 집의 머슴 얼굴에 검정 칠을 하고 도롱이를 입히고 머리에 삿갓을 씌워 우습게 꾸며서 지게나 사다리에 태우거나 아니면 황소 등에 태워 집집마다 돌아다닌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 그 집주인은 이들에게 술과 안주를 대접하니, 이날을 머슴 날이라고 하기도 한다.
마을어른들은 머슴이 노총각이나 홀아비면 마땅한 처녀나 과부를 골라 장가를 들여 주고 살림도 장만 해 주는데, 옛말에 '백중날 머슴 장가간다.' 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우란분절(盂蘭盆節)과 그 의미
정각스님 / 일산 원각사 주지
“백중(百衆)은 [우란분경(盂蘭盆經)]에 목련비구(目蓮比丘)가 시방대덕(十方大德)을 공양한 일에서 연유”한다 하였다.
“[우란분경]에 이르기를 목련비구가 7월 15일 백 가지의 맛있는 오미(五味), 백과(百果)를 갖추어 분(盆) 안에 넣어 갖고 시방대덕을 공양했다 한다”라 하여, ‘백종(百種)’이란 100가지의 과일 또는 음식에서 유래된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白衆, 百衆, 百終이란 또 다른 이름이 붙여진 것은 어떤 까닭인가?
음력 7월 15일은 백중일(白衆日)이며, 동시에 승가의 하안거가 끝나는 해제일이기도 하다. 90일 동안의 순숙한 공부를 마음에 안은 채 발걸음 가벼이 걸망을 싸는 날, 이날 승가에서는 자자(自恣)가 행해진다. 여기저기 흩어져 수행하던 많은 스님들이 한 곳에 모여, 의심이 있은 즉 스승께 사뢰고, 얻음이 있은 즉 대중에게 토로하는 절차가 행해지며, 이렇듯 대중[衆] 앞에서 자신의 견처(見處)를 토로(吐露), 고백[白]한다는 의미에서 백중(白衆)이란 말이 생겼고, 그 자자일에 ‘많은[百]’ ‘대중[衆]’이 모인다는 의미에서 백중(百衆)이란 말이 생겨져 나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백종(百終)이라 함은 90일(100일: 숫자의 완성적 의미를 지향하는 가운데 90일을 100일이라 통칭한다) 안거의 끝, 마지막 날을 의미하기도 하여 여기에서 용어의 순수 불교적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불설우란분경]의 모범에 따라 선망부모 및 현세의 부모를 위해 중승께 우란분을 공양하는 날, 목련존자의 효순에 의해 유래된 우란분절의 공양은 달리 효순공양(孝順供養)이라 불리운다. 또한 우란분절에는 효순공양과 함께 선망부모를 아귀의 고통에서 천도(薦度)하기 위한 천도재(薦度齋) 즉 우란분재(盂蘭盆齋)를 행한다.
여하튼 신도들은 이날 절을 찾아 현세와 과거 7세 부모들을 위한 천도재로서 우란분재를 올린다. 그리고 근래 1985년 민중불교연합이 주최한 ‘생명해방의 대축제’로서 우란분일은 효순(孝順)의 의미를 강조한 채 이후 잠실 불광사 및 1987년 이래 부천 석왕사에서 행해지고 있는 ‘백중맞이 경로대잔치’에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우란분일은 백중일이며, 우리 민족의 축제일이다. 밥[供養; 盆, 飯]이란 상징적 매체를 통하여 공간적으로는 공양 받는 승려[僧]와 공양하는 세속 사람들[俗]이 만나는 무형적 만남의 장소이며, 밥[飯]이란 매체를 통하여 시간적 과거의 조상과 현재의 후손들이 만나는 끈끈한 민족적 정서가 새겨든 마당이며, 밥이란 현세의 보시[供養]를 통하여 내세의 영혼을 천도하는, 영혼을 위한 해방의 질서가 되기도 한다.
우란분일은 백중일이며, 승가에서는 자자와 더불어 해제일이다. 해제란 무엇인가? 여름 한철 닦은 수려한 마음을, 풍족한 내면의 작용을 걸망[鉢囊] 가득 짊어진 채 초가을 싼타크로스(?)가 되어 중생들에게 행복을, 윤회의 질서 벗어나고자 하는 진리의 함성을 하나 하나 나누어 주는 행사, 그 행사의 시발점이다.
이렇듯 [불설우란분경]의 모범에 따라 선망부모 및 현세의 부모를 위해 중승께 우란분을 공양하는 날, 목련존자의 효순에 의해 유래된 우란분절의 공양은 달리 효순공양(孝順供養)이라 불리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