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論語)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있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것을 안다'는 뜻이다. 거창에 '온고지신'으로 새로운 길을 찾고 있는 곳이 있다. 옛 담장 그대로 한옥의 정취를 살리면서 현대식 편리함도 갖추어 한옥체험으로 유명한 '황산전통한옥마을'과 전통유기를 대물림하면서 세계적 유기명가를 꿈꾸는 '두부자 공방'. 우리 옛것의 아름다움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두 곳을 찾았다.
오기수 명예기자
'황산한옥마을' 한옥체험장으로 인기
황산마을은 1500년대 초 형성돼 1700년대 중반 황고(黃皐)신수이(愼守彝) 선생이 입향하면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덕유산 남쪽에 위치해 호음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어 마치 포효하는 호랑이가 개를 쫓는 형국이면서 거북 형상의 지형으로, 위에는 '부(富)'가 나고 아래에는 '귀(貴)'가 난다는 명당이다. 이런 때문일까? 장관, 국회의원, 고시합격자들이 수두룩하게 배출됐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600년 된 느티나무인 안정좌(案亭坐)나무가 반겨준다.
마을 중앙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호음천을 따라 마을로 올라간다. 옛 담장은 직선과 곡선이 조화롭다. 흙과 돌을 번갈아 채우며 쌓아올린 토석담으로 등록문화재 제259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지막한 담장은 현대의 단절됨과 달리 누구라도 드나듦을 허락하는 듯하다.
마을은 호음천을 중심으로 황산 1구와 2구로 나뉘는데 1구에는 전통한옥 70여 채가 자리하고 있다. 한옥마을 가운데 경남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다. 한옥들은 어느 집 할 것 없이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리돼 있다. 이는 한옥 개보수 지원사업을 통해 숙박시설로 현대화했기 때문이다.
마을의 대표적인 한옥스테이는 '원학고가(猿鶴古家)'다. '신씨고가'라고도 부른다. 한국관광공사 명품고택으로도 지정돼 있는데, 사랑채를 비롯한 총 9개 방에 50여 명이 묵을수 있는 규모다. 방안은 전통가구로 멋스럽게 꾸며져 있고 화장실과 샤워시설 등 현대식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여름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릴 때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인기숙박지이다. 이 외에도 17가구 정도가 한옥체험업을 하고 있다. 추운 겨울 따뜻한 구들장을 느껴보고 싶다면 오백년 멋이 깃든 한옥에서 한 번쯤 쉬어 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호음천 건너 황산 2구에는 60여 채가 있는데, 대부분 현대가옥들이다. 이곳은 좁은 골목길 담벼락에 벽화를 그려 넣었다. 2011년 한국미술협회에서 마을의 역사, 농촌 풍경을 다양하게 제작함으로써 황산전통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선물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거창군이 호음천정비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전선지중화사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 한층 더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한과' 명맥 유지에서 농가소득 효자로
황산 2구에서 위천면 당산으로 가는 마을 어귀에 황토로 지은 작은 집이 시끌벅적하다. 5평 남짓 방안에 10여명의 마을부녀회원들이 모여 전통한과를 만들고 있다. 큼직한 튀김을 조청에 묻히고 쌀튀밥을 묻혀낸다. 연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일하는 곳이 아니라 마치 동네사랑방에 온 듯하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한과는 일률적으로 공장에서 찍어내는 과자처럼 예쁜 모양은 아니다.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모양과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그 맛은 일품이다. 찹쌀을 찌고 떡을 만들어 튀기는 옛 방식을 그대로 거친다. 말 그대로 주문한 만큼만 생산하는 '맞춤형 슬로푸드'인 '황산전통한과'이다.
'황산전통한과'는 2011년 마을 부녀회에서 마을기업으로 처음 설립되어 6년째 운영하고 있다. 명절을 앞두고 한 달 정도 진행되는 이 한과 만들기 작업은 이제 마을 부녀회의 소통의 시간이 됐다. 50세부터 70세까지 세대간 유대감을 주고, 겨울철 비수기 농가 소득까지 올려주는 효자로 자리매김했다.
소규모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기업처럼 큰 물량과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겨울철 용돈으로 넉넉하다고 한다. 주 고객은 이 마을 출신 출향인들과 자녀들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제법 입소문이 나서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앞으로 아이들이 전통방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화하고 도시와 농촌간의 가교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세계 명장' 꿈꾸는 '두부자 공방'
'땅! 땅! 땅!' 망치질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어두운 작업장한 켠에서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가 있다. 바로 경남무형문화재 제14호 '징장' 이용구 선생의 아들이자 전수조교인 이경동(49) '두부자 공방' 대표가 주인공이다. 최고의 징 소리를 찾기 위해 오늘도 담금질을 하고 있다. "징 소리는 표준화된 음이 없기 때문에 오직 주인만 이 소리를 기억한다. 그 소리를 잡아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없다"고 말하는 이 대표. 그의 말에서 전통을 지켜가는 장인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거창읍 정장농공단지에 위치한 '두부자(父子) 공방'은 1985년 아버지와 아들 4명이 '오부자 공방'으로 시작했으나, 2008년 아버지와 막내아들 이경동씨 두 명이 운영하게 되면 서 '두부자 공방'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공방은 11명의 직원과 전시장, 체험장, 작업장을 갖추고 있 징과 꽹과리 등 악기는 물론 생활식기, 제기, 불기, 다기에 이르기까지 방짜유기를 만들고 있다. 90년대 초반에만 해도 90%는 징을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유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 유기제품을 90% 가까이 제작하고 있다. 체험장에서는 숯불을 피우는 풀무체험과 유기를 불에 달궈 망치질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두부자 공방'의 놋그릇 브랜드 '놋:이(Noshi)'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자하문로 '가지런히'에서 전시 판매되면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관심을 보여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수작업이 많이 필요하고 힘든 제작 과정 때문에 기술전수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요즘 이 대표는 수작업의 옛 방식에 기계화를 결합해 우리 전통 유기를 대중화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이 대표는 "유기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살균작용을 갖춘 그릇이다. 음식을 담는 단순 용기를 넘어 우리 문화를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며 "해외진출을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전통을 지키는 이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