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사무국장
스스로를 불우하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몸져누웠다. 아버지와 5형제. 엄마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컸다. 우울했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점심시간. 다른 아이들이 점심을 먹을 때 아무도 없는 도서관을 찾았다. 점점 책에 빠졌다. 오늘 읽은 곳을 살짝 접어두고 다음 날 점심시간을 기다렸다 도서관을 찾는 일이 반복됐다. 우울함은 시나브로 설렘으로 바뀌었다. 도서관은 보물지도였다. 이제 이 지도를 들고 사람들과 함께 보물을 찾고 싶다.
남양주시 조안면 복지회관 2층에 자리 잡은 씨앗도서관. 찬바람이 닿는 코끝에서 상쾌함마저 느껴지는 1월 어느 날, 이 도서관의 책임자 이양희님을 만났다.
감수성 예민하던 청소년기,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도서관은 ‘절친’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만의 비밀스런 감정을 갖고 시를 외워서 친구와 대화”하던 그녀는 “나는 도서관에 빚을 지고 있고, 때가 되면 꼭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되뇌며 살았다. 이제 그 빚을 갚고 있다.
10여 년 전 귀농을 고민하던 그는 우선 도시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을 뒤로 하고 남양주 행을 택했다. 덕소에 살다 3~4년 전 송촌리로 이사를 하면서 씨앗도서관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처음엔 ‘산나물과 야생화’라는 프로그램의 수강생으로, 다음엔 인문학 동아리 반장으로, 도서관 운영위원으로, 급기야 도서관장을 맡았다. 씨앗도서관은 그녀를 만나면서 살이 올랐고, 그녀는 씨앗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도서관에게 애인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그는 도서관을 바라보는 시각, 운영하는 방식부터 색다르다. 좋은 책을 준비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건 기본.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람이 이루어지게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고, 이를 위한 최선의 노력과 정성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이런 독특한 지향 때문인지 초기 2명에 불과했던 도서관 운영위원이 10명을 넘어섰고, 처음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원봉사로 이어진다.
작년 가을 ‘무박2일 책읽기’ 프로그램 때 참가자의 나이 제한을 없애면서 불거졌던 작은 소음을 멋지게 해결한 것도 이 관장님이 사람을 향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는지 알게 해준 사건이다. 이전 무박2일은 주로 초등 고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했는데 나이 제한이 없어지자 어린 아이들, 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들이 다수 참가를 한 것. 도서관이 조용하지 못한 것은 불문가지.
일부러 이 행사 참가를 위해 서울에서 온 한 부부는 참다못해 항의를 하고 돌아가려 했는데, 관장님이 이들을 붙잡고 즉석으로 ‘무박2일 책읽기, 이렇게 진행해요’ 정도의 제목으로 요약할 수 있는 와인파티 토론회를 연 것. 이 파티는 말이 토론이지 서로 사는 얘기 하면서 일종의 ‘힐링캠프’가 되었다.
“아이들 때문에 도서관에 오지 못하는 엄마들이 아이들과 책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어서 기획한 건데 그게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을 줬다”면서도 “하지만 그 누구도 상심한 채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즉석 힐링캠프가 해피엔딩으로 끝난 건 당연지사.
직업이 직업(사실 씨앗도서관장은 돈 한 푼 지급되지 않는 자원봉사 자리로 사전적 의미의 직업은 아니다.)이니 만큼 ‘책 읽지 않는 한국’의 문제점에 대해 물었다.
“인터넷, 핸드폰 등 인스턴트식 활자문화와 블랙홀 같은 입시 교육이 책 읽는 기회 자체를 빼앗고 있다”며 “물질문명을 중심으로 선진화를 생각할 게 아니라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게 어떤 건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라고 꼬집었다.
팔당생명살림의 오랜 조합원이기도 한 그녀는 “협동조합은 상품에 대한 신뢰, 노동에 대한 신뢰 등 신뢰 자체가 가장 큰 힘”이라며 “느티나무의료사협도 두터운 신뢰를 쌓아서 의사와 환자가 서로 믿을 수 있는 ‘본연의 관계’로 되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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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집니다.
2월 3일 조안 마을 모임때 도서관에 가려고 합니다. 기대 만땅 ^*^ !!!!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