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왜 나를 들뜨게 하고 설레이게 하고 기다리게 만들까? 무엇이 여행의 달콤한 상상을 만들게 할까? 86미터의 높이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는 히가시 시이야 폭포 아래서 나는 왜 시도 때도 없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8월의 무더위를 가로 지르듯 힘차게 떨어지는 폭포수는 자연의 거대한 힘과 그 앞에 선 사람들의 한없이 작은 모습을 겹쳐서 보여주고 있었다.
자연 앞에 더욱 겸손해지고 함께 사는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 새로운 경험을 통해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뭔가 또다른 신나는 삶에 도전을 하는. 그래서 사람들은, 나는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조카 소연이와 함께 한 일본여행의 둘쨋 날, 히가시 시이야 폭포 앞에서 나는 여행이 가르쳐준, 아니 자연이 주는 물음 앞에서 겸손하게 마음을 모을 수가 있었다.
일본여행 둘쨋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어제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후쿠오카행 배를 타고 밤새 달려 하카다 항에 새벽에 도착했으니 사실은 일본여행 첫날인 셈이다. 후쿠오카 하카다 항은 부산보다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 커다란 항구도시였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닷내음이 훅하니 밀려왔다. 정박해 있는 항구, 곳곳에 쌓여있는 컨테이너 박스들을 보면서 항구를 통해 국가간의 크고 작은 교류가 이어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객터미널 청사 안에서 나오자 마자 주차장 한곳에 정차중인 전용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조금의 시간도 지체없이 시내로 들어갔다. 한국과는 달리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선역시 왼쪽 차선으로 달렸다. 영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만 세계의 다른 나라와 달리 왼쪽 차선으로 운전한다. 그래도 반갑다. 왼쪽 차선으로 달리는 것은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
첫날은 후쿠오카의 근미래도시공원인 하카다 카넬시티와 규수의 다자이후 천만궁, 벳푸온천을 구경했다. 일본은 그야말로 ‘신사의 도시’라고 불릴만큼 많은 신들의 사당 ‘신사’가 있다고 했다. 가이드는 일본문화의 뿌리가 한국임을 여러차례 강조하면서 한국의 우수성을 강조했지만 어쩐지 내게는 공허하게 들릴 뿐이었다.
하카다 카넬시티는 그다지 볼거리가 많지 않은 곳이었다. 10시 정각에 쇼핑몰 중간에 있는 분수대에서 벌어지는 1분간의 분수쇼를 구경하고 규슈에 있는 다자이후 천만궁으로 옮겨갔다. 여행지답게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 일본땅 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에 정차되어 있는 대형버스 위에는 모두다 한글로 가이드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다자이후 역시 미치자네 신사궁이 있었다. 유적과 공원 곳곳에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30분간의 자유시간에 나와 소연이는 Kushu국립박물관을 찾아 길을 옮겼다. 박물관은 입구에서 10여분 거리에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무슨 무슨 특별전이라고 적혀있는 곳에서는 어김없이 입장료를 받았다. 시간에 쫒겨 1층 어린이 체험관에서만 구경을 하고 서둘러서 약속장소로 갔다.
벳푸로 가는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고 히가시 시이야 폭포로 갔다. 10여분쯤 산길을 걸어서 도착했는데 동쪽 시이야의 폭포라는 말뜻의 히가시 시이야 폭포는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86미터 위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는 자연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뛰어난 장관을 연출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그동안 내가 구경했던 가장 큰 폭포였던 제주도 천지연 폭포와 백두산 장백폭포에 이은 웅장하고 아름다운 폭포였다. 폭포구경을 마치고 바다와 벳푸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십자문전망대로 갔다. 바닷가를 둘러싸고 도시가 형성된 벳푸는 아름다운 해안도시였다. 그러나 벳푸는 해안도시라기보다는 유황온천으로 더 유명한 도시라고 했다. 마을을 품고 있는 산속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웬 밥지는 연기?라고 생각했더니만 연기가 오르는 곳이 모두 온천지라고 했다. 우리가 들러본 유노하나고야(유황가루 생산지)는 유황가루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유노하나고야에서 곧바로 지옥같이 생긴 온천지라고 해서 지옥가마솥이라는 이름이 붙은 온천지를 방문했다. 곳곳에서 땅밑에서부터 솟아나는 뜨거운 유황온천물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게다가 연기가 나는 곳에 담뱃연기를 쐴 경우 열배 스무 배의 연기가 퍼지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한쪽에는 족탕이 있어서 우리는 유황온천물에 삶은 계란을 하나씩 먹으면서 족욕을 했다. 한 5분쯤, 족욕을 마친 후 한잔 마실 때마다 10년씩 젊어진다는 유황온천물을 한잔씩 마셨다. 뜨껍고, 짭짤하고, 밋밋한... 10년씩 젊어진다고 하지 않으면 도저히 먹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 물을 나는 머리꽁지에 부었고 뜨거워 죽는 줄 알았다.^^
벳푸 지역은 유황온천으로 인한 특수를 단단히 누리고 있는 듯 했다. 가게 곳곳마다 피부병 완치, 무좀 특효, 아토피에 최고라는 한국말이 적혀있었다. 주인과 물건값을 흥정하는 이는 어김없이 한국사람들이었다. 물론 판매하는 사람들 역시 한국말을 능숙하게 하는 이들이었다. 후쿠오카와 벳푸는 한국사람이 먹여살린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듯싶었다. 피부병에 특효라는 달콤한 꼬심에 나도 순간 솔깃했지만 100g짜리 연고하나에 3~4만원씩이나 해서 그냥 포기해 버렸다. 내게는 피부병을 낫게하는 신활리 아저씨의 비밀스런 연고가 있지 않는가^^
가마솥 지옥을 구경하고 난 다음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벳푸시내의 백화점을 쇼핑했다. 물론 아이쇼핑에 그쳤지만. 한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기업 다이소와 비슷한 100엔숍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저녁을 먹은 후 벳푸의 카메노이 호텔에서 둘쨋 날의 밤을 보냈다. 호텔방이 여유가 있어서 4인실을 두명이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이런 호사스런 날도 있구나 싶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전용버스를 타고 아침안개로 유명한 Yufuin(由市)으로 향했다. Yufuin은 일본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 중의 하나라고 했다. 점점 몰락해가는 마을을 살리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대표를 뽑아 독일로 선진지 견학을 보내고 그곳의 경험들을 배워와 마을 자체를 고향의 향수가 남아있는 시골마을로 만들어서 오늘과 같은 유명한 관광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100년을 바라보고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30년 만에 효과가 나타난 곳이라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특히나 Yufuin 마을은 대형버스가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고 주차장도 최소화 시켜 마을 곳곳에 마차와 인력거가 다니게 했고 전국에 있는 폐가를 사들여서 이곳으로 옮겨 사람들의 향수 속에 남아있는 고향마을을 조성했다고 한다. 낡은 것을 부수고 보다 새롭고 크고 높게만 지으려는 현대인들의 삶에 반해 고향마을을 만들고 옛날 거리를 유지하며 보존하려 한 Yufuin 마을 사람들의 지혜와 노력이 새삼 고마울 따름이었다.
Yufuin 마을을 구경한 다음 우리는 일정에는 없었지만 기사님의 추천으로 이께야마 수원지(池山)를 찾아갔다. 일본환경청이 지정한 일본의 유명약수 100선 중에 한곳인 이케야마 수원지는 이름만큼 맑고 깨끗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산속에서 흘러나온 카랑카랑한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뻗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물을 먹고 발을 담그고 한참이나 놀았다. 맛있고 시원한 물을 공짜로 실컷 먹은 대신에 소연이는 주머니에 있는 카메라를 물속에 빠뜨려 카메라를 고장내고 말았다. 카메라는 고장났을망정 정말로 시원하고 맛있는 물을 한잔 먹을 수 있어서 아주아주 기분이 좋았다. 이케야마 수원지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우리 일행 외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좋았다. 이께야마 수원지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찾아간 곳은 일본 최정상급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고 하는 야마나미 하이웨이를 타고 달려간 야마나미 목장이었다. 말과 소, 토끼, 칠면조 등 각종의 짐승들이 드넓은 초원에서 자유롭게 방목되고 있었다. 일본의 면적이 남한의 네배쯤 된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싶었다. 야마나미 목장에 이어 우리가 찾아간 곳은 아소연봉의 절경이 펼쳐지는 대관봉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냄비(?) 냄비지형의 대관봉에서 여섯 살 준서가 체해서 준서엄마 아빠가 당황하는 바람에 내가 사혈침으로 체기를 내려주느라 짧은시간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세계 최대급의 아소산 분화구였다. 일본사람들도 세계 최대, 일본 최정상 이런 말들을 즐겨하는 건지, 아니면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건지 알 수 없지만 가는 곳마다 최대, 최고라고 해서 조금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일본의 화산은 활화산, 휴화산, 사화산으로 나뉘어 구별했었는데 몇 년 전 사화산으로 여겼던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런 구별이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아소산 분화구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더구나 분화구에서 이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가스가 움직임으로 입구로의 접근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우리가 올라갈 즈음, 바람 때문에 구경할 수가 없을 거라고 했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구경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로프웨이를 타고 정상에 내려서 바라본 분화구는 거대한 온천같았다. 1000℃가 넘는다는 뜨거운 용암물로 인해 주변은 새까맣게 탔고 풀한포기 자랄 수 없는 죽음의 땅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황가루는 곳곳에서 팔려지고 있었다. 물론, 일본글씨보다 한글로 쓰여져 있는 곳이 훨씬 많았다. 한국사람들을 향한 집념의 판매욕이라고나할까.
아소산 분화구를 뒤로 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Kumamoto시였다. 다섯시, 구마모토 성 입장시간이 종료되기 바로 직전에 도착한 우리는 가까스로 입장할 수 있었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성들은 각자가 다르다. 성에 대해서 정확한 조사와 공부를 하지 않아서 비교자체가 가능하지 않지만 세 나라의 성을 구경한 느낌이 그렇다. 지형이나, 돌담의 형식, 곡선과 직선을 선택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로 다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화성은 참 아름답고 뛰어난 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구마모토 성에서 구경한 곳은 창건 당시부터 남아있는 유일한 망루인 우토 야구라와 혼마루 어전 그리고 천수각이었다. 망루와 어전등은 크고 높았지만 사실 그다지 구경할 것이 많지 않는 곳이었다. 어둠이 내리기 바로직전 우리는 구마모토 성에서 나와 저녁식사를 하러 이동했다.
3박 4일간의 여행이었지만 첫째날은 부산으로 이동하고 또 배를 열시간 가까이 타고 다음날 새벽에 도착했기에 오고 가고 한 이틀을 제외하면 이틀간의 여행이었다. 사정을 뻔히 알기에 그다지 많은 기대를 하지 않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의외로 이틀간의 여행이 알차게 진행되어서 좋았다. 특히나 기대하지 않았던 히가시 시이야 폭포와 이께야마 수원지, Yufuin 등은 단체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즐거운 여행이 되었다.
여행이 새로운 것을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즐겁게 함께 하는 것이라면 이번 여행은 일본의 문화라는 것을 만나고 느끼고 체험하며 일본음식을 먹고 즐기는 여행이 되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즐겁게 함께하는 여행이 되지 못했던 점에서는 많은 점들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내 스스로 다가서지 않으면 새로운 만남이란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을.... 참, 일본 음식이나 한국음식이나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생선초밥이나, 야채샐러드, 감자샐러드 등은 한국인 입맛에 맞게 한 것인지, 아니면 이 음식들이 이미 세계화 되어 있는 것들인지. 어쨌든 일본의 전통 음식이라고 하는 가이세끼 마저도 별로 특이한 맛을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