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웃음(Le Rire: Essai sur la signification du comique, 1900)(RI)
벩송, 김진성, 종로서적, 1983, pp.51-90(P. 132) 참조 – 아래 원문 쪽수이다.
II 상황의 희극성과 말의 희극성
1. 상황의 희극성
2. 말의 희극성
제1장은 사물의 형태 또는 인간의 태도 그리고 행동의 계속 속에서 잘려진 단면이 인성의 유연성과 연속성을 지니지 못하고, 뻣뻣함과 고정됨으로 인해 불조리와 대상의 왜곡을 드러낼 때, 웃음거리라는 것이다. 이 웃음거리는 희곡(la comedie)에서 보다 일상 생활의 단면에서 인성이 없는 물질화되어서 사람들을 웃게 하는 것이다. 벩송의 주제는 사람은 웃게 하는(faire rire) 동물이라는 측면에서 웃음거리를 만들 줄 안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회관계를 원활하게 하면서, 과거의 고착이나 일상의 우직한 반복에 대해 교정하려는 것이다. 벩송은 이런 것을 연극의 소재로 만들어 희극을 만드는 절차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제1장이 잘려진 단면, 또는 형태의 조각, 움직임의 한 측면이라 점에서 고찰했다.
제2장에서는 상황과 말씀이 주제이다. 먼저 상황에서, 사물들 사이의 관계, 행동들 사이의 연관, 계열들 사이의 상호간섭 등에서, 다시 말하면 관계들의 사이에서, 뒤의 것이 앞의 계열들을 반복하되 왜곡된 고착이라든지, 연결에서 순행으로 진행해야 할 것을 역행한다든지, 상호 연관에서 일반적 또는 인식적 관계와 전혀 엉뚱한 연결이 이루어질 때, 웃음 거리라는 것이다. 말씀이나 말의 실행에서는 상황보다 훨씬더 많은 경우들 변형들 변이들이 있다. 말이 몸보다 더 풍부한 상황을 조합하고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언어는 상황이나 실제와 연관 없이도 언어놀이를 상징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말의 놀이에서 웃음거리는 말하는 자 또는 말하는 대상이 대상되는 자(상황)에서 웃음거리를 넘어서, 아리러니, 재치, 유머 등이 있을 수 있다. 벩송은 이것들의 구별이 확연하지 않다고 보면서도 이것들을 통해 웃게 하는 도는 웃음을 자아내는 절차를 만들어서 희극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말투, 재담, 말놀이 등에서 희극적인 것은 겉면은 사물화 기계화 일지라도 안면에는 인격적이고 인간적인 면과 대립 또는 반대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표면에서 표상으로 반복, 거꾸로, 상호간섭이 자동성, 방심이라고 하더라도 심층의 삶을 연상하여야 하는데도, 심층과 단절이 일어나는 경우에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1장의 단면 또는 조각과는 달리, 제2장에서 상황과 말에서는 연결과 연관이 있으며, 이는 표면과 심층의 인성적 연결이 있다는 점이다. 이 인성적 측면을 성격의 웃음거리라 하고 제3장에서 다룰 것이다. (51SMD)
# §2. Le comique de situation et le comique de mot
제2장 상황의 웃음거리와 단어의 웃음거리(Le comique de situation et le comique de mot 51-100)
§2.1. [Le comique de situation 51-78]
우리는 형태와 태도, 그리고 운동 일반에 있어서 웃음거리(le comique)를 연구했다. 이제 우리는 행위들(les actions)과 상황들(les situations)에서 웃음거리를 규명해류야만 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웃음거리는 나날의 생활 속에서 얼마든지 쉽게 만날 수 있다. (51)
우리들의 가장 오래된 추억에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 어린 시절에 우리를 즐겁게 했던 놀이 속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 [등의 이야기 속에] 유치한 요소들이 있음을 너무나도 자주 무시해왔다. (51)
그리고 성년(成年)에서 가장 감미로운 충족감은 되살아나는 어린 시절의 감정, 즉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과거가 더욱 간헐적으로 전해주는 향기로운 미풍일지 누가 아는가? .. 그것은 어린이에게서 놀이의 즐거움(le plaisir)과 어른에게서 동일한 즐거움 사이에는 연속성의 중단(solution de continuité)이 있을 수 없다. (51-52)
우리가 통속희극 일반의 상황을 정의할 법칙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삶의 착각(l’illusion)과 기계적 배치에 관한 분명한 감각(la sensation)을, (서로 서로 개입하듯이) 동시에 우리에게 주는, 작동들(d’actes)과 사건들(d’énénements)의 모든 배열은 웃음거리이다. (53) - [기계적 배치(un agnecement mécanique)와 작동들과 사건의 배열(tout arrangement d’actes et d’énénements); 들뢰즈/가타리의 소수자 문학에서 배치와 배열을 이야기하는 것은 벩송과 같은 방식이다. 카프카의 배치는 고전희극의 배치에 따르면 관료제의 웃음거리에 닮았다. 몰리에르가 봉건귀족을 웃기게 만들고 절대국가가 들어서듯이, 카프카가 관료제를 웃게 만들고 난 뒤 카프카는 몰랐지만 제국(나찌)가 등장하는 것도 유사하지 않을까? (51QMF)]
§2.1.-1 디아블로(Le diable à ressort) 53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에 상자 속에서 튀어나오는 악마를 가지고 놀았다. .. 이 유희(le genre d’amusement).. (53)
이것은 두 가지 완고한 고집들(deux obstinations) 간의 싸움에서 성립하는데, .. 생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는 생쥐를 매번 용수철처럼 도망치게 내버려두고는 한발로 정확하게 잡아내곤 하는데, 이것은 똑같은 종류의 유희(un amusement)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53)
그러면 연극으로(au théatre) 넘어가 보자. 기뇰(Guignol)의 연극으로부터 시작해보자. .. 한 대 맞고 나자빠진 경찰관이 또 일어나고, 또 막대기가 날아들고 나자빠지고 .. 용수철의 단일 리듬(le rythmes uniforme du ressort)을 행하는 경찰관. (53)
이제 오히려 도덕적[성격의] 용수철을 상상해 보자. 한 사람이 어떤 생각(l’idée)을 말하면 다른 사람이 이를 억누르고, 다시 말을 끄집어내고, 말투의 흐름(un flot de paroles) 이 멈추고 다시 이어지고... 그러면 이러한 광경(cette vision)은 더 이상 기뇰이 아니라 진짜 희극(une vraie comédie)을 대하게 된다. (54)
많은 웃음거리(희극적) 장면은 결국 이 단수한 형태로 귀결된다. [몰리에르의] 강제 결혼(Le Mariage forcé, 1664), 스가나렐(Sganarelle)과 빵크라스(Pancrace) 사이의 장면, ... 자기 말을 듣게 하려는 스가나렐의 의도(l’idée) 대 진실한 기계와 같은 철학자의 고집(l’obstination) 사이 .. [계속되는 가운데] 스가나렐이 [다시 또 다시] 떠벌리는 빵그라스를 집안에 감금하는데 성공했을 때(실은 상자라고 말하고 싶다).. (54) [관객은 디아블(Le diable à ressort)효과를 본다.]
상상병 환자(Le Malade imaginaire, 1673)에서도 똑같은 장면이 나온다. 모욕당한 의술은 의사 쀠르공(M. Purgon)의 입을 통하여, 아르강(Argan)에게 그가 걸릴 수 있는 모든 병명들을 주어 섬기며 화풀이 한다. (54-55)
당겨졌다가 늦추어지고 그리고 다시 당겨지는 용수철의 이미지, ... 우리는 고전적 희극의 일정한 수법들 중의 하나(un des procédés, 절차)인 반복(la répétition)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55)
연극에서 말의 반복((la répétition d’un mot)에 대하여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어디서 오는가? .. 말의 반복은 그 자체로 우스운 것이 아니다. 말의 반복은 그것이 정신적인(moraux) 요소들이 들어있는 어떤 특정한 놀이(un certain jeu particulier)를 완전히 물질적 놀이(un jeu tour matériel)의 상징 자체로 상징하기 때문에, 우리를 웃게 만든다. (55)
말의 희극적 반복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항목들이 현전하고 있는데, 하나는 용수철처럼 풀어지는 억눌린 감정(un sentiment), 다른 하나는 이 감정을 다시 억압하는 것을 즐기는 의도(une idée)이다. (56) [생명적 파토스 대 기계적(형식적) 로고스, 로고스의 억지 지배에는 웃음거리가 있다. // 예전 노트: 스트레스 해소 – 이건 틀린 것 같고, 권력의 지배와 동일시하는 마름의 즐거움, 즉 (상층 권력에 기대어) 약자를 괴롭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삶는 일베 또는 마초 같은 이들로 보인다.]
[따르뛰프(Tartuffe ou l'Imposteur, 1664)에서] 도린(Dorine, 마리안의 하녀)가 오르공(Orgon, 마리안의 아버지)에게 그의 아내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오르공은 따르뛰프(Tartuffe)의 건강에 대해 [반복해서] 묻기 위해 그녀의 말을 끊임없이 가로 막는다... “그리고 따르뛰프 씨는 요?”라고 변함없이 되풀이되는 물음... 엘미르(Elmire, 오르공의 부인)은 병에 관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용수철처럼 밀어내는데 재미있어 한다. (56)
[스카팽의 간계(Les Fourberies de Scapin, 1671)에서 스까뺑(Scapin)이 늙은 제롱뜨(Geronte)에게 .. 이야기 (56)
[수전노(L'Avare ou l'École du mensonge, 1668)에서], 발레르(Valère, amant d'Elise)가 아르빠공(Harpagon, 고리대금업자, 엘리즈 아버지)에게 딸을 그녀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시키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도 나온다. “지참금 한 푼도 쥐어 보내지 않을 거야!”아르파공의 인색은 이렇게 상대의 말을 계속 끊는다. ..자동적으로 되풀이되는 이 말 뒤에서, 우리는 고정관념에 의해 형성된 완전히 반복하는 기계장치를 엿보게 된자. (56)
때때로 이 기계주의를 감지하기가 더욱 곤란한[불편한] 경우가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웃음거리 이론에 대해 새로운 난점에 접한다. (56-57) [나로서는 웃음거리 이전에 이해조차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단어도 어렵고, 상황도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인간 혐오자 또는 사랑에 빠진 우울증 환자(Le Misanthrope ou l'Atrabilaire amoureux, 1666)에서] 오롱뜨(Oronte, courtisan épris de Célimène)가 알세스뜨(Alceste, le Misanthrope, amoureux de Célimène)에게 자기 시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을 때 알세스뜨가 고집불통으로 “나는 그런 말을 한 게 아냐!” .. 알세스뜨의 경우 두 사람.. 하나는 곧이곧대로 털어놓기로 맹세한 염세가 .. 다른 하나는 결정적인 순간에 뒤로 물러나는 그저 착한 사람이다. .. 한 알세스뜨는 불쑥 사실을 내뱉고 싶어하고 다른 알세스뜨는 그가 모든 걸 말하려고 하는 순간에 그의 입을 틀어막는다. .. 결국 연극에서 반복의 기계장치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57-58)
어떤 사람이 “그 종류의 모든 사람들과 정면으로 대립한다[강력하게 비판한다]”고 당연하게 생각한 것을 그가 실제로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웃음거리가 아니며, 그것은 삶의 것이며, 최상의 것이다. (59) [그래 그게(대립하는 것도 또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것) 어렵다는 것이다. 그 대립이 웃음거리가 아니라 생명이 자기 생성일 수 있다. ]
만일 두 감정이 서로 대립된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서로 보완하고 함께 나란히 발전하고, 혼합된 영혼의 상태를 창조한다면, 결국 삶의 복합적인 인상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우리에게 주는 화해 수단(modus vivendi 타협안)을 취하게 된다면, 두 감정의 투쟁은 웃음거리가 아니라, 심각한(sérieuse)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살아 움직이는 사람 속에서 이 두 감정이 융통성이 없이 굳어져(irréductibles et raides) 있다고 가정해보자. .. 기계적이 되었다고 해보자. (58) [추론을 깊이 들어가 보면 웃음거리라는 것이 솔직한 웃음거리일까? .. 진지한 추론이 웃음거리가 되기에는 멀리 있는 것 같다. ]
이 경우에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웃을 수 있는 대상 속에서 발견한 이미지, 즉 생명체에 깃든 기계적인 것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는 웃음거리를 가질 것이다. (59)
우리는 디아블로라는 첫째 이미지에 대해 충분히 고찰해서, 희극적 환타지(la fantaise comique)가 어떻게 조금씩 물질적 기계주의에서 도덕적 기계주의로 전환되는지를 보았다. (59)
§2.1.-2 꼭두각시 놀이(Le pentin à ficelles) 59.
희극의 장면에서 등장인물이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스스로 믿지만, 즉 주인공이 생명의 본질을 지니고 있으나, 어떤 측면에서는 그를 갖고 노는 다른 사람의 손아귀에서 장난감에 불과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수없이 많다. (59) [오승은(吳承恩, 1500-1582), 《서유기(西遊記)》중국 명대의 장편소설에서 손오공(孫悟空)은 부처님 손바닥에서 논다고 한다. - 저오능(猪悟能)[-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悟淨)]
[몰리에르 스까팽의 간계(Les Fourberies de Scapin, 1671)에서] 스까뺑에 의해 교묘히 농락당하는 제롱뜨(Geronte)와 아르강뜨(Argante) .. 스까뺑은 말하기를 “기계 장치(la machine)가 금방 눈에 띈다.” 또는 “하늘(le ciel)이 그들을 나의 그물들(mes filets) 안으로 인도한다.” .. 속임을 당하는 사람보다 속이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에, 관객은 사기꾼들(les fourbes)의 편에 선다. (59) [독일 유머들 중에 “사기당한 사기꾼” 있는데, 빵장수의 속임을 버터장수가 속인다.]
주인공이 반대되는 두 가지 결심 사이에서 왔다갔다하고 이 둘 중에 각각이 차례로 그의 마음에 끌 때가 있다. [라블레의 팡타그뤼엘(Pantagruel, 1532)에서] 빠뉘르쥬(Panurge)가 삐에르와 뽈에게 자기가 결혼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는 경우가 있다. ... 이 두 가지 반대되는 가능성을 의인화하는 데 유의한다는 사실을 주의하자. 왜냐하면 관객 대신에 적어도 배우가 끈을 잡아야하기 때문이다. (50) [이론대로 하기는 어려워서 .. ]
삶에 있어서 진지함은 우리의 자유로부터 유래한다. ... [감정들, 정열들, 숙고한 행동들, 우리자신의 것 등이 웃음거리가 되려면, 감추어진 실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유가 [꼭두각시의] 실의 놀이에 감추어져 있고, 지상에서 우리는 시인의 노래처럼 상상하면 된다. 시인의 노래, / ... 가련한 꼭두각시들 / 그 끈(le fil)은 필연(la Necéssité)의 손에 있나니. / (60)
§2.1.-3. 눈덩이(La boule de neige) 61
희극의 진행방식[절차]에 대한 우리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우리는 어린 시절의 회상(les réminiscences d’enfance)이 갖는 역할을 잘 이해하게 된다. (61)
예컨대 굴러가면서 점점 커지는 눈덩이를 들어보자. 우리는 이내 열 지어 늘어서 있는 납으로 된 군인 인형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가 첫째를 건드리면 둘째의 것을 쓰러뜨리고 .. 결국 모두가 쓰러지는 .. (61) [도미노 놀이인데, 평창 동계올림픽(2018)에서 점화의 과정에서도 도미노 방식이 행해진다. 그런데 웃음이 아니라 감탄이 쏟아진다. - 웃음을 웃게 하는 것이 기계적이라고 해서 웃음거리가 아니라 정교하고 기술적인 새로움은 찬사를 불러일으킨다. (51QMG)]
그것은 결과가 점점 확산되면서 퍼져나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은 원인(la cause)이 필연적인 과정을 통해 중대하고도 예기치 않은 결과(un résultat)에로 이른다는 생각이다. (61-62)
예를 들어 에삐날 총서(Série d’Epinal)를 펼쳐보면 한 방문객이 급하게 살롱에 뛰어든다. 그는 한 여인을 밀치고, 이 여인은 커피잔을 노신사에게 엎지르고, 이 노신사는 유리 창문으로 미끄러져서 유리 창문은 길거리에서 한껏 위엄을 갖추며 거니는 경관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62) [눈덩이 사례로서 우연의 연쇄인 셈인데... 1874년 <단편 소설>의 시대에도 웃음거리 일까?]
[라신(Racine, 1639-1699)의 소송광들(Les Plaideurs, 1668)에서 쉬까노(Chicaneau)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자. 소송은 톱니처럼 다른 소송에 맞물려 이어져 나가, 마지막에 가서 건초더미를 놓고 일어난 소송이 원고의 재산의 태반을 잃게 하는 과정이 점점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라신은 법률용어를 점점 촘촘히 늘어놓음으로써 점증하는 가속화의 느낌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62)
똑 같은 각색이 동키호테의 몇몇 장면에서도 나온다. 예컨대 여인숙의 장면에서 상황이 기묘하게 연결돼 노새 몰이꾼이 산초를 후려치고, 산초는 마리또른(Maritorne)을 때리고, 그리고 그녀에게 여인숙 주인이 넘어지는 것 등이다. (62)
마지막으로 현대의 통속 희극으로 넘어가 보자. ..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린이의 놀이와 유사하다. 그것은 언제나 불어나는 눈덩이의 결과(l’effet de la boule de naige)인 것이다. (62)
기계적 결합의 특성은 일반적으로 거꾸로 되돌아 올(réversible)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는 구주희(九柱戱 les quilles)놀이에서 던져진 공이 굴러가면서 기둥들을 모두 쓰러뜨리는 것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 (63)
수많은 통속희극에서 이러한 착상을 소재로 하고 있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이태리 밀짚모자를 말이 먹어버렸다. (64)
이러한 탐색의 오딧세이적 모험은 라비슈의 다른 유명한 희극에도 등장한다. 막이 오르면 매일 하는 카드놀이를 즐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의 노총각과 노처녀가 나온다. (64)
똑 같은 순환적 귀결, 출발점에로 똑같이 되돌아감(retour)이 보다 최근의 작품에도 나온다.
이러한 종류의 희극이 얼마나 강도 있고 보편적인가를 고려한다면 그것이 왜 몇몇 철학자의 상상력을 자극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 사실 스펜서(Spencer)의 의견이 그러한 것처럼 보인다. 그에 의하면 웃음은 잡자기 허망함에 부딪히는 노력의 표시이다. 칸트(Kant) 역시 같은 말을 이미했다. “웃음은 뜻밖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변화되는 기대에서 유래한다.”
원인과 결과 사이에 불균형(la disproportion)은 웃음을 자아내는 직접적 원천(la source directe du rire)이다. .. 이러한 불균형이 일련의 원인과 결과의 배후에서 우리로 하여금 마치 투명유리를 통해 보듯 지각할 수 있게 하는 특수한 기계적 배열(l’arrangement mécanique)이라고 말하고 싶다. (65) [심리학적으로 또 형이상학적으로 영혼과 신체의 비대칭은 웃음거리를 생산할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되기(형성)도 있을 수 있다. 후자는 문화와 공동체에서 빗금으로 벗어나는 탈주선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기계적 배열을 보고서 웃는가? 한 개인이나 한 단체의 일이 어느 순간에 톱니바퀴 장치가 용수철, 그리고 실에 조종되는 놀이처럼 보일 때 기이한 것은 의심할 바 없다. 그러나 이 이상함의 특정한 성격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것일까? 왜 그것이 희극적일까? ... 완고한 기계주의(le mecanisme raide) .. 그리고 삶에 대한 방심(la distraction)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66) 생명활동보다 기계 활동으로 치우칠 때, 즉 운동에서 상향보다 하향일 때...]
웃음거리(le comique)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사물과 유사해지려는 인격의 한 측면이며, 또한 아주 독특한 방식의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단순하고 순수한 기계주의, 자동주의, 한 마디로 삶이 없는(sans la vie) 운동을 모방하는 인간사의 양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웃음거리는 무매개적 교정을 요청하는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불완전함(une imperfection)을 표현한다. 웃음(le rire)은 이 교정자체이다. 웃음은 인간이나 사건에 있어서 어떤 특정한 방심을 강조하고 제지하는 일정한 사회적 몸짓(un certain geste social)이다. (66-67)
그러나 웃음 자체는 우리의 고찰을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도록 요구한다. ...연극[le théâtre comique]은 생명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형태들에 기계주의가 삽입되도록 사건들을 꾸민다고 이미 말했다. (67)
생명(la vie)은 우리에게 시간에서 일정한 진화, 그리고 공간에서 일정한 복잡성으로 나타난다. 시간의 차원에서 보면, 생명은 끊임없이 성장하는 존재의 연속적 과정이다. 이 말의 뜻은 생명은 결코 뒤로 되돌아가지 않으며(ne revient jamais), 반복하지 않는다(ne se répète jamais)는 것이다. 공간의 관점에서 보면, 공존하는 여러 요소들을 드러내는데 이 요소들은 너무나도 상호 연대적(intimement solidaire)이며 오직 서로서로를 위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요소들의 어느 것도 동시에 상이한 생명체에 소속될 수 없기 때문이다. (67-68) [벩송에서 생명에 대한 문제의식은 여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EC 구상할 때 1900년 멘델의 유전법칙을 재발견한 코렌스(Carl Erich Correns, 1864-1933), 체르마크(Erich Tschermak, 1871–1962), 드 브리스(Hugo de Vries, 1848-1935)의 영향이라 한다. 그런데 벩송은 자연 즉 생명에 관한 관심이 원천일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각 생명체(chaque être vivant)는 다른 생명체와 결코 중복될 수 없는 닫힌 체계의 현상인 것이다. 양상의 연속적 변화(changement continu d'aspect), 현상의 불가역성(irréversibilité), 그 자신에 폐쇄적인 계기의 완전한 개체성(individualité), 이런 것들이 생명체를 단순히 기계적인 것으로부터 구분하는 외적인 특성들이다(68).
우리는 이러한 특성과 대척점에 있는 것을 살펴보자. 우리는 세 가지 절차(trois procédés) .. 반복(la répétition), 역전(l'inversion), 계열들의 상호간섭(l'interférence des séries)이다. (68) [변화에 대척점으로 반복, 불가역성에 역전, 개체성에 상호간섭이다. 개체성을 인격으로 바꾸면 인격의 자유를 의미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조금 전에 고찰한 장면들에서 이 절차들이 서로 다른 용량들(doses, 정량)로 혼합되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물며 그 장면들이 기계주의로 재생산하는 어린이 놀이들 속에서도 재발견할 수 있다. (68)
§2.1.2.-1. 반복(la répétition) 68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조금 전의 경우처럼 어떤 사람이 반복해서 말하는 단어나 문장이 아니라 몇 번이고 되풀이되어 삶의 변화하는 과정과 대조를 이루는 상황(une situation), 즉 형국들의 조합(une combinaison de circonstances, 사정들의 조합)이다. (68-69)
이런 것들은 연극에 등장하는 종류의 반복이다. 이 반복은 반복되는 장면이 보다 복잡할수록 그리고 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질수록 그 만큼 더 웃음거리들이 된다. (69)
현대의 통속희극(le vaudeville)은 이 절차[수법]을 모든 형식[형태]로서 구사한다. .. 실은 언제나 새로운 사정들 속에서 대칭적으로 상응하는 일련의 동일한 사건들 또는 에피소드들(mésaventures, 봉변들)을 재생하는 방식이다. (69)
몰리에르의 여러 작품들 역시 희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사건들의 동일한 구성(une même composition d'evenements)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아내들의 학교(L'École des femmes, 1662)는 세 번에 걸쳐 동일한 결과를 다시 끌어들여 반복시킬 뿐이다. .. 호라스(Horace, Amant d'Agnès et fils d'Oronte)는 아르놀프(Arnolphe: Alias M. de la Souche)에게 아녜스(Agnès, Jeune fille innocente, élevée par Arnolphe)의 후견인 ... (70)
남편들 학교(L'École des maris, 1661), 덤벙쟁이(L'Étourdi ou les Contretemps, 1655), 조르주 당댕 또는 쩔쩔매는 남편(George Dandin ou le Mari confondu, 1668)(3막극) .. (70)
때로는 같은 장면이 서로 다른 인물의 무리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다. ... [몰리에르의] 사랑의 원한(Le Dépit amoureux, 1656), 앙피트리옹(Amphitryon, 1668)도 마찬가지이다. (70) ,
베네딕스(Roderich Benedix, 1811–1873)의 재미있는 짧은 코메디 고집(Eigensinn, ??)에서는 사태가 반대이다. (70)
그러나 그들 사이에서 대칭적 상황이 벌어지는 인물들이야 어떠하든 간에 고전주의 희극과 현대 희극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듯이 보인다. .. 통속희극의 대부분에 있어서 작가는 관객의 정신에 직접 작용한다. .. 이와 반대로 몰리에르의 연극에 있어서는 반복을 자연스럽게 보이게끔 하는 것은 관중(le publique 공중)의 마음가짐(les dispositions)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마음가짐이다. (70-71)
만일 고전주의 예술이 결과로부터 원인 속에 주입했던 것 이상의 것을 끌어내려고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고전적(classique)라고 불릴만 하다. (71)
§2.1.2.-2. 역전(l'inversion, 거꾸로 당하기) 71.
이 둘째 절차는 첫째 것과 너무나도 많은 유비(d'analogie)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구체적 적용에 관해서는 강조하지 않고 이것을 정의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71)
라비슈(Labiche, 1815-1888)의 뻬리숑씨의 여행(Le Voyage de monsieur Perrichon 1860)에 나오는 인명구조 작업의 이중 장면이 그러한 종류에 속한다. (72)
그래서 우리는 재판관에게 설교하는 형사 피고인(le prévenu)이나, 부모를 깨우치려 드는 아이놈, 결국 “역전된 세계(le monde renversée)”라고 분류되는 것에 대해서 웃는다. (72)
자주 그물을 놓았다가 자기 스스로 그 그물에 걸려드는 등장인물을 우리는 본다. .. [또] 그런 것을 옛[중세의] 익살극(l'ancienne farce)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변호사 빠뜰랭(Pathelin)은 그의 손님에게 재판관을 속일 수 있는 계략을 일러 준다. (72)
근대 문학은 도둑맞은 도둑(le voleur volé)의 주제에 가지가지 변양들(d'autre variations)을 가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역할의 전도(une interversion), 그리고 상황(une situation)을 만들어 낸 사람에게 거꾸로 되돌아가는 상황이 있다. (72)
여기서 우리는, .. 법칙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어떤 희극적 장면이 몇 번이고 되풀이 된 후에, 이것은 “범주(catégori)” 또는 전범(modele)의 단계에 이르게 된다. .. 웃음거리의 전형(un type de comique)으로 .. “도둑맞은 도둑(le voleur volé)”는 이런 종류의 전형이다. (73) [도둑맞은 도둑, 사기당한 사기꾼 등은 거꾸로 당하기의 전형이다. 선량한 자를 골탕 먹이려다가 나쁜 맘씨가 당하는 경우이다. - 그런데 한나라 당의 김무성(무쫄)이 요강공주에게 당하는 것은, 작은 사기꾼이 더 큰 사기꾼에게 사기 당하는 형국일 것이다. 제국의 마름, 다단계의 중간책, 비트코인의 중계인, 다른 측면이기도 하지만, 유령주식의 패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하지 말라도 하는 자에게 “니가 그걸 원했잖아(Tu l’a voulu!)”라 한다. (51QMH)]
이러한 낭패(cette mésaventure)에 대한 가벼운 암시(une allusion) 또는 낭패를 환기시키는 한마디의 말로서 웃음거리로 만든다(rendre comique) “네가 그것을 원했잖아, 조르쥬 당댕(Tu l’a voulu, George Dandin.). (73)
§2.1.2.-3. 계열들의 상호간섭(l'interférence des séries) 73.
우리는 반복과 역전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했다. 우리는 계열들의 상호 간섭l'interférence des séries)에 도달한다. 이것은 공식을 분간해 내기 어려운 희극적 효과(l’effet comique)이다. .. 아마도 이 효과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른다: 어떤 상황은 그것이 동시에 절대적으로 독립된 사건들의 두 계열에 속하면서 또한 아주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때 항상 웃음거리이다. (73)
그러면 우리는 오해(le quiproque)를 떠올릴 것이다. ... 그리고 오해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l‘amusement, 오락) 속에서 우선 명백히 드러나는 것은 상반된 해석 사이를 오가는 우리의 정신적 왕복운동(ce balancement, 균형잡기)이다. .. 그러나 두 가지 충돌 속에서 .. 그러나 그들의 정의(la définition)는 모든 경에도 결코 들어맞지 않는다. (74)
결국 연극에서 오는 독립적인 계열들의 상호간섭이라고 하는 보다 일반적인 현상의 특수한 경우이며, 게다가 오해는 그 자체로서는 웃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계열들의 상호 간섭의 표시로서(comme signe)만이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74-75)
이 오해(le quiproque)에서 등장인물 각각은 오해와 관련 있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 삽입되고, 각각은 그 사건계열의 정확한 표상을 갖고, 그 사건들에 관하서 각각은 자기 말투와 작동들을 규제한다(régler). 사건 계열들의 각 계열은 인물들의 각각에 관심을 갖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전개된다. (75)
한 계열을 이루는 말투와 작동이 다른 계열과도 역시 알맞게 되는 그런 조건에서, 계열들은 어떤 순간에 서로 만나게 된다. 거기에 등장인물들의 오인(la meprise)이, 거기서 애매성(l’equivoque)가 나온다. (75)
실은 놀이(ce jeu)가 서로 모순되는 두 주장 사이에 우리 정신의 왕복(le va-et-vient)보다 훨씬 더 웃게 한다(fait rire). 그리고 우리를 웃게 하는 것은, 희극적 효과의 진실한 원천(source)을, 즉 독립적인 두 계열들의 상호 간섭을 우리 눈에 보여주기 때문이다. (75)
또한 이 이 오해(le quiproque)는 하나의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이것은 계열들의 상호간섭을 감각적이게 하는(아마도 가장 인공적(인위적)이게 하는 수단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유일한 수단이 아니다. (75-76)
[한 계열로서] 쉬용(Chillon) 성에 갇힌 보니바르(François Bonivard, 1493–1570)를 생각해보자. .. 스위스를 여행하다가 체포되어 투옥된 따르따랭(Tartarin)을 그려보자. 이제 따르따랭이 보나바르가 묶였던 바로 그 사슬에 채워져, 두 이야기가 한 순간에 일치하는 것처럼 해보자. .. 이것은 도데(Alphonse Daudet 1840-1897)의 환타지(fantasie, 공상)이 그려낸 가장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영웅-희극(héroï-comique) 류의 많은 사고들(incidents)이 이처럼 분해되어 질 수 있으리라. (76) [여기까지는 개인들의 계열상 서로 간섭되는 경우이다. 이제 집단들의 계열을 다룰 것이다.]
라비쉬(Labiche, 1815-1888)는 이런 절차[수법]를 모든 형태들에서 사용했다. .. 혼인잔치를 소재로 한 후에 ... (76)
그러나 [이 모든 경우에서] 우리는 서로 독립된 두 계열들을, 항상 부분적으로 일치를 항상 재발견한다. (77)
우리는 통속희극의 수법[절차]들에 대한 분석을 더 멀리 밀고 나가지 않을 것이다. 계열의 상호간섭, 역전, 반복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목적이 항상 동일하다는 것임을 안다. 그것은 우리가 생명[삶]의 기계화(une mécanisme de la vie)라고 불렀던 것이다. (77)
실재적 삶이 동일한 종류의 결과를 자연스럽게 산출한다는 정도에 비례해서, 결국 그 삶이 제 스스로를 망각하는 정도에 따라서 통속희극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삶[생명]을 끊임없이 주의해 보면, 생명은 변화하는 연속성(continuité variée), 불가역적 진보(progrès irréversible), 불가분의 단위(unité indivisée)일 것이기 때문이다. (77)‘ [생명에서 연속성(continuité variée)은 반복에 저항하여, 불가역적 진보(progrès irréversible)은 역전에 저항하여, 불가분의 단위(unité indivisée)는 상호간섭에 저항하여 제시된 것이다. 이것은 ’도덕과 종교의 두원천“에서 지성(고착된 도덕)이 저항에 대해 저항이 열린도덕이듯이, 자동화 또는 기계화에 대한 저항은 생명이다.(51능)]
사건들의 웃음거리는 사물들의 방심(une distraction)으로 정의될 수 있고, .. 마찬가지로 개인적 성격의 웃음거리는 인격의 어떤 근본적 방심들에 있고 .. (77-78)
성격의 희극(la comédie)는 생명 속에 근본적으로 다른 뿌리들을 내리고 있다. 이것은 특히 이 연구의 마지막 부분[제3장]에서 우리가 다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통속 희극의 웃음거리와 여러면에서 닮은 웃음거리의 일종, 즉 말[재담, 재치]의 웃음거리를 우선 분석해야 할 것이다. (78)
§2.2. [Le comique de mot 78-100]
- 제2장 2절 말의 웃음거리
말[재담]의 웃음거리를 위해 특별한 범주를 설정하는 데는 어쩌면 다소 인위적인 면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제까지 탐구한 웃음거리 효과들의 대부분은 이미 언어를 매개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언어에 의해 단순히 표현하는 웃음거리와 [둘]언어가 창조하는 웃음거리를 구별해야 한다. (78-79)
첫째 것은 다른 나라 말로 번역될 수 있다. 관념연합에 있어서 상이한 사회로 이전됨.. 둘째 것은 일반적으로 번역이 불가능하다. 이것의 웃음거리는 바로 문장(la phrase, 구절)의 구조나 말(des mots 단어)의 선택에 있기 때문이다. .. 이는 언어(language) 자체에 있어서 방심을 강조한다. 이 경우에 웃음거리가 된다. (78)
그 문구들은 단독으로 생겨나지 않으며, 우리가 그 문구들을 듣고 웃을 때, 동일한 경우[기회]에 [생산한] 그 문구들의 저자(leur auteur)에 대해서 웃을 수 있다. ... 왜냐하면 문구나 단어는 독립적인 희극적 힘(une force comique, 효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79) 게다가 웃음의 윈인인 사람이 언제나 말하는 사람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재치(le spirituel)와 익살(le comique) 사이에 중요한 구별이 있을 것이다. 어떤 말이 우리에게 그말을 하는 사람에 관해서 웃게 할 때 흔히 익살이라고 하고, 제3자나 우리 자신에 대해서 웃게 할 때 재치라고 하는 듯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어떤 말이 재치인지 익살인지 결정할 수 없으리라. (79-80)
우선 재치(le mot esprit)의 두 의미를, 하나는 넓은, 다른 하나는 좁은 의미로 구분하자. 그 단어(le mot)의 [첫]넓은 의미에서, 사람들은 생각하는(de penser) 어떤 극적인(dramatique) 방식을 재치(esprit)라고 부르는 듯하다. (80) [재치(le mot esprit)은 82쪽의 재담(le mot d'esprit)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재치있는 인민(Un peuple spirituel)은 또한 연극에 열중하는 인민이다. 탁월한 독자(le bon liseur)에게는 언제나 배우(un comedién)의 소질이 있는 것과 같이 재치있는 사람(l‘homme d'esprit)에게는 시인의 어떤 것이 있다. 나는 이런 대비를 의도적으로 한다. .. 그러나 연기를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온영혼과 온인격을 쏟는 배우(comedién)가 되어야 한다. (80)
그러므로 모든 시인은 자기가 원할 때면, 재치있는 사람(l‘homme d'esprit, 재치꾼, 재담꾼)으로서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 시인은 자기의 생각들(ses idées)이 “아무 이유 없이, 단지 즐기기 위하여(Pour rien, pour le plaisir)” 서로 서로 대화하도록 내버려 두면 될 것이다. (81)
그러나 재치가 일반적으로 사물을 연극의 상 아래서(sub specie theatri) 보는데 성립한다고 해도, 그것은 연극적 기교 중의 한 변양인 코메디에로 보다 특별히 행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우리는 이 단어가 갖고 있는 보다 [둘]좁은 의미를 얻게 되며, 이것이 웃음의 이론의 관점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것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재치(esprit)는 슬쩍 지나가면서 희극의 장면들(des scène de comédie)을 소묘해 내는 재능을 일컫는데, ... (81)
이러한 장면들의 배우들은 어떤가(누군가)? 재치꾼이 누구와 상대하는가?(avoir affaire à qui) 우선 재치꾼이 같이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 자신들인 경우가 있다. ... 또는 부재하는 인물인 경우가 있다. 이 경우에는 부재(不在)인이 말하고 재치꾼이 그에게(부재인)에게 대답하는 경우이다. .. 많은 경우에 재담꾼은 만인들, 즉 상식과 상대한다. 이 때 그는 세론을 역설로 바꿔놓거나, 상투적 문구를 활용하거나 인용구나 속담을 풍자적으로 개작한다. (81-82) [이병우가 검사 권력 앞에 약자라고 석방을 주장하면, 조윤선은 성녀 마리아이다. (81QMI)]
따라서 재담(le mot d'esprit)은 말하자면 우리가 이제 약학제조의 정식(la formule pharmaceutique)에게 부여할 수 있는 분석(une analyse)에 적합할 것이다. 자, 정식은 이러하다. 단어를 잡아라. 그 단어를 우선 상연된 장면으로 두텁게 하라, 그러고 나서 그 장면이 속할 웃음거리의 카테고리를 찾아라. 이리하여 당신은 재담을 보다 단순한 요소로 환원할 것이고, 그리고 당신은 완전한 설명을 가질 것이다. (RI 82)
이 방법을 고전주의 문학의 예에 적용해 보자.
마담 세비네(Madame de Sévigné 1626–1696)가 환자인 자기 딸에게 쓰기를, “너의 어깨로 내가 아프다(j'ai mal à votre poitrine)”한 것, 이것이 바로 재담이다. “만일 우리 이론이 정확하다면, 우리가 단어에 기대어서, 단어를 크게 만들고 두껍게 하여, 그것이 희극 장면에 올려 진 것을 볼 것이다. (RI 82-83, 438)
몰리에르의 사랑이라는 의사(L'Amour médecin, 1665)에서 가짜의사 끌리땅드르(Clitandre, 뤼상드의 연인)는 스가나렐(Sganarelle)의 딸[뤼상드]을 진찰해달라는 부름을 받는다. 스가나렐에게 맥박을 진찰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 연후에, 아버지와 딸 사이에 당연하게 있어야 할 공감에 근거하여 주저없이 결론지었다. 즉 ‘당신의 딸이 환자다!’ 따라서 여기에 정신적인 것[재담]에서 웃음거리[희극으]로 실행된 이행이 있다. (RI 83 Oe 438)
희극적 환타지의 본질적 형태들 중의 하나는 .. 꼭두각시로 보이게끔 하는 것이며,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의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 딸과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공감을 물질화하도록(matérialiser) 이끌면서 작가가 여기서 암시하는 것은 바로 이 관념(cette idée)[희극적 환타지의 본질적 형태들]이 아니겠는가? (83) [딸과 아버지, 스가나렐(Sganarelle)과 뤼상드(Lucinde) 사이에 끈이 있는 것으로 암시란 희극적 환타지란 의미이다. (51QMI)]
우리는 이제 왜 재치(l’esprit)를 다루는 작가들 그 용어[재치]가 지칭하는 것들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복잡성을 지적하는데 그치고, 일반적으로 그것을 정의하는데 성공할 수 없었던가를 납득하게 된다. (83)
웃음거리(le comique)와 재치(le spirituel 재담) 사이에서 사람들은 이미 행해진 장면(uen scène faite)과 행할 장면의 덧없는 암시(la fugitive indication d’une scène à faire) 사이에서와 동일한 연관을 발견할 것이다. (84) [웃음거리는 장면의 물질성이 있는데 비해, 재담은 물질성보다 보이지 않는 암시같은 것, 문장으로 치면 문장과 문장사이에 있는 암시, 또는 문장 속에 표현되지 않았지만 실재성으로 현전에서 작동하는 의미 같은 것일 것이다. 이런 암시를 알아챈다는 것은 깊이 있는 연구자 또는 내공 있는 관련자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 할 것이다. 즉 재담은 지식인들의 지적 유희일 수도 있다. 단지 재담이 상층의 놀이가 아니라 심층의 생성과 생명의 창발에 끈을 닿아 있을 때, 그 재담은 인민과 더불어 확장될 것이다. (51QMI)]
바로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재치는 분석되어서 기화된 웃음거리처럼 나타날 것이다. .. 만일 어느 화학자가 실험실에서 어떤 실험 재료를 마음껏 쌓아 놓고는 공기 속에서 기체화되어 있는 재료[재치]의 극소량을 추출해서 연구하겠다고 한다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84)
그런데 재치[재담]과 웃음거리의 이러한 비교는 동시에 말의 웃음거리를 연구하기 위하여 따라야 할 방식(la marche)을 제시해 준다. 한편 희극적 말과 재치있는 말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다른 한편 재담은 비록 언어의 형태(la figure de langage)에 연결되어 있지만, 희극적 장면(une scène comique)에 대한 흐릿한 또는 분명한 이미지를 불러 일으킨다. (84) [여기서 우시개 말과 재담의 말 사이의 차이가 보인다. 전자는 언어 안에서 이다. “덩달이 시리즈”의 삶은 달걀을 보고, “삶[la vie]은 계란이다”. 이에 비해 불안감: “빨래줄에 걸린 게 내 부란감(불안감)”도 있다. / 나는 하이텔과 천리안 세대가 만든 “덩달이 씨리즈”(400쪽 정도)를 1995년에 받아보았을 때, 다음 세대는 한글세대가 한자공용세대를 능가할 것이라고 보았다. 1987년 한글세대 인민이, 한세대를 지나, 2017년에 요강녀를 감옥으로 강뚝남도 감옥으로 보냈다. 이제 저 어렵고 일제 잔재의 문자 세대에 젖어있는 디가우징 양승태(디가양)를, 인민은 서서히 즈려 밟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51QMI)
이리하여 우리는 단어[말]의 웃음거리의 다양한 형식들(les formes diverses du comique)과 재담의 가능한 변이[변양]들(les variétés possible de l’esprit)을 얻을 것이다. (85) [전자가 §2.2. -1.이고, 후자가 §2.2. -2.여야 하는데,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게 분류해야 한다.]
§2.2. -1. [(말에서) 웃음거리의 다양한 형태들(les formes diverses du comique)]
경직성이나 타성의 결과로, 하고 싶지 않은 말이나 행동을 무심결에 하는 것이 웃음거리의 주요한 원천 중의 하나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제1장의 주제]. 바로 그렇기 때문에 방심은 본질적으로 웃스운(risible) 것이다. .. 이미 이루어진 것(de tout fait), 기계적인 것을 보고 웃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 기성화된 정식들(des formules toutes faites)과 (상투적) 판박이의 구절들(des phrases stéréotypes)도...(85)
이로써 우리는 이러한 일반 규칙을 끌러낼 수 있으리라. 우리는 관용구의 틀에(dans un moule de phrase consacré) 부조리한 생각(une idée absurde)이 삽입되면 희극적인 말을 얻을 것이다. (85-86)
“이 검(ce sabre)은 내 생애에 가장 아름다운 날이다.”라고 프뤼돔(Prudhomme)은 말했다. 이 말이 불어로는 웃음거리임에 불구하고, 영어나 독일어로 옮겨 놓으면 단지 부조리(absurde 불합리)한 것이 되어 버린다. 그 이유는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날(le plus beau de ma vie)”은 관용구(les pharses toutes faites)이기 때문이다. ... 이 불합리성(l’absurdite)은 웃음거리의 원천이 아니다. (86)
.. 프리돔은 관용구(des phrases toutes faites)를 즐겨 쓰는 사람이다. (86) [고대 시인들은 관용구를 즐겨썼다. 호메로스의 문장에서 올림푸스 신들이나 영웅들의 앞 뒤로 붙는 수사를 보라.]
때로는 불합리성이 슬그머니 끼어들어 있는 진부한 문구(la phrase banale)는 눈치 채기가 좀 어렵다. “나는 식사 사이에는 일하고(travailler) 싶지 않다.” 섭생에 관한 격률(ce salutaire précepte d’hysiène, 위생적 건강규칙)이 없다면, - “식사 사이에는 먹지(manger) 않아야 한다.” - 이 말은 재매있지 않을 것이다. (86)
경우에 따라서는 효과가 복합적일 수 있다(se compliquer). 라비슈 작품 중에 “오직 신만이 자기 동족(son sembalble)을 죽일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 [분해해 보면] “인간의 삶을 주재하는 것은 신이다.” .. “사람이 자기 동족을 죽이는 것은 죄이다.” (86-87) [베이트슨(Gregory Bateson 1904-1980)의 이중구속을 생각하면, 재담보다는 억압구조가 더 많을 것 같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
위의 몇 가지 예는 웃음거리의 가장 중요한 형식들(des formes) 중의 하나가 언어의 평면위에 투사되고 단순화 되는가를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이제 보다 덜 일반적인 형식으로 넘어가보자. (87)
§2.2. -2. [재담의 가능한 변이[변양]들(les variétés possible de l’esprit)]
“어떤 사람의 정신적인 것(le moral)이 문제될 때, 우리의 주의가 그 사람의 신체성(le physique)으로 향하게 되면 웃게 마련이다.” 이것이 이 책 첫장에서 우리가 설정한 법칙이었다. 이것을 언어(au langage)에 적용해 보자. 대부분의 단어들은 본래적 의미로(au propre) 사용하느냐 또는 비유적 의미로(au figuré) 사용하느냐에 따라 신체적 의미(un sens physique)와 정신적 의미(un sens moral)를 갖는다. (87)
우리가 어떤 표현을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음에도 본래적(고유한) 의미로 알아들은 체 할 때 희극적 효과(un effet comique)를 얻는다. 또는 우리의 주의가 은유(une métaphore)의 물질성(la matérialité)에 집중될 때 표현된 생각은 웃음거리가 된다. (87-88)
“모든 예술들은 형제들이다.”라는 문장에서 “형제”라는 말은 예술들 사이 다소 깊은 닮음(une ressemblance)를 지적하기 위한 은유적으로(métaphoriquement) 쓰인다. .. 누가 “모든 예술들은 사촌간이다” .. 이 말은 가벼운 웃음거리 뉘앙스가 풍긴다. .. 프뤼돔이 한 말로 잘알려진 것은 “모든 예술들은 자매들이다”(88) [형제들이다, 자매들이다, 패러디가 아닌가? 웃음거리를 비유적으로 한 것인데 예술은 문법적으로 남성이니까? ]
“그는 정신을 뒤쫓아 달린다”[재치는 의미]고 누군가 잘난 체 하는 인물인 부플레(Stanislas Jean de Boufflers, 1738-1815)의 앞에서 말했다. 만일 부플레가 그 우쭐대는 친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면, “그는 정신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재담의 시초였다을 것이다 .. 부플레가 응답한 것은 “나는 정신에게 돈을 걸겠다”고 했다. (RI 88, 442) [후자가 재담이다. 영어로 유머라고 할 만하다.]
재치는 흔히 상대방의 생각을 연장해서 그가 자기 생각과 반대되는 것을 말한 결과가 되거나, 자신의 담론의 함정에 스스로 빠지게 되는 데서 성립한다. .. 우리는 거짓 착한이들(Les Faux Bonshommes, 1856)에 나오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대화를 상기해보자. “나의 친구여, 증권시장(la Bourse)은 위험한 놀이다. 사람들은 오늘(un jour)은 벌고 다음 날(le lendement)은 잃는다. - 그래요 그렇다면, 나는 매일 매일 오늘만(tous les deux jours, 이틀에 한번씩 만) 놀이할 거에요.” (RI 89, Oe 442-443) [= 요즘 내가 돌아서면 잊어버리거든! - 학생 왈, 그러면 돌아서지 말고 바로 가세요! 웃음거리(익살)의 좋은 예이다. / 아들이 둘이 있는 어머니가 하나는 비오는 날 우산장수이고 다른 하나는 마른 날 소금장수인데, 비가와도 걱정 맑아도 걱정한다. 그래서 거꾸로 비오는 날은 우산장수 아들을, 맑은 날은 소금장수 아들 생각하라고.]
그리고 같은 작품에서 두 금융업자(deux financiers)가 하는 기념비적 대화가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옳은 걸까? 왜냐하면 말일세, 결국 우리가 호주머니에서 돈을 우려내는 것은 이 불쌍한 주주들이거든: - 아니 그러면 자네는 어디에서 돈을 우려내길 바라나?”
상징이나 문양(un emblème)을 그것들의 물질성의 의미 쪽으로 확산 하면서 이 확산이 문양과 똑 같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때 우리는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효과(un effet amusant)를 얻는다. .. 오직 하나의 훈장만을 받았음에도 많은 메달로 뒤덮힌 제복을 입은 모나코 관리가 등장해서 .. “아시겠오, 그 메달을 룰렛(roullette) 놀이의 번호에 걸었더니 바로 그 번호가 맞아서 서른 여섯 개를 타게 된 거요” (89-90)
철면피들(Les Effrontés ou Le Fils du Giboyer(희극 5막, 산문. 1861)에 나오는 지브와이에의 추론도 유사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웨딩드레스에 오렌지 꽃을 단 마흔 살 신부에 과내 입방아를 찧고 있었다. “그녀도 오렌지 꽃을 달 권리가 있는 거라구.” 지브와이에가 대꾸한다. (90)
[말에서도] ... 세 가지 일반 명제들에 한정하자. “사건들의 계열”이 반복(répétition)에 의해서든지, 역전(inversion)에 의해서든지, 결국 상호간섭(l'interférence)에 의해서든지 웃음거리가 된다. .. 이제 말들의 계열(des séries de mot)에서도 보기로 하자. (RI 90, 443)
일련의 사건들[사건들의 계열]을. .. 되풀이하거나(répéter), ... 역전시키거나(intervertir), .. 서로 중복되게 섞으면(mêler).. 그러한 것은 웃음거리이다. (90)
이것이 사실상 우리가 명제들의 희극적 변형(la transformation comique des propositions)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세 가지 근본법칙(les trois lois fondamentales)인데, 이러한 것을 몇가 지 예로서 제시할 것이다. (91)
[세 가지 중 역전부터] .. 역전은 세 가지 중에서 가장 덜 흥미로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응용할 수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91)
라비슈의 한 희극에서 ... “당신은 왜 내 테라스(ma terrasse)로 담배 꽁초를 던지는 거요?” .. 대꾸 .. “왜 당신은 테라스를 내 담뱃재 아래 두었어요?“Pourquoi mettez-vous votre terrasse sous mes pipes?”” (91) [역전의 의미로서는 좀 생뚱맞지 않을까? - 전철에서 발을 밟힌 사람이 친구에게 “어, 내 발이 너의 발밑에 있네”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다음으로 상호간섭(뒤섞임)] 같은 문장에서 두 사유 체계의 상호 간섭은 유쾌한 효과를 내는 무궁무진한 원천(une source intarissable)이다. 이 충돌을 일으키는, 즉 같은 문구에 서로 겹치는 독립된 두 의미를 부여하는 수법은 다양하다. (91-92)
제일 대단치 않은 것으로 동음이의어(le calembour). .. 동음이의어로부터 우리는 느끼지 못한 정도로 완만하게 진실한 말놀이(le jeu de mots)로 이행한다. (92) [동음이의어: 눈물이 흐르는데, 눈에 눈이 들어가니 눈물이냐, 눈물이냐]
그러므로 한편 말놀이와 다른 한편 시적 은유 또는 교훈[육]적인 비교 사이에는 흔히 뉘앙스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반면에 교육적인 비교와 놀라운 이미지는, 생명의 평행적 두 형식처럼 파악된, 언어와 자연의 내밀한 일치를 우리에게 표명[표출]하는 것인데 비하여, 말의 놀이(재담)은 한 순간 자기(언어)의 본연의 임무를 잊고서, 언어 스스로가 사물들에 맞추지 않고서 사물들을 언어에 따르게 하려는, 언어의 어떤 자기 방임(laisser-aller)을 생각하게 한다. 따라서 말놀이(le jeu de mots)는 언어에 있어서 순간적인 방심(une distraction)을 드러내며, 바로 그 점에서 재미있는 것이다. (92) [언어가 사물과 관계없이 언어의 자기 규칙과 개념화에서 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역전과 상호간섭은 요컨대 진정한 말놀이(des jeux de mots)까지는 이르지 못한 재치놀이(des jeux d’esprit)일 뿐이다. 전환법(transpositopn)의 웃음거리가 보다 깊은 것이다. 전환법과 일상어의 관계는 사실상 반복과 희극의 관계와 같다. (92-93)
[셋째 전환(이전)의 반복] 우리는 반복이 고전적 희극의 좋은 절차(procédé 수법)이라고 이미 말했다. ... 만일 이러한 관념들이 어떤 장치에 의해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계속 지니고 있으면서 전혀 새로운 환경(un milieu nouveau)으로 이전[전환]되었다(se transporter)고 상상해 본다면, 달리 말하면 이 관념들을 전혀 다른 양식(un tout autre style)이나 전혀 다른 어조(un tout autre ton)로 표현하거나 이전시킨다면, 그 언어는 희극을 드러내고,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93)
일반 규칙이 나올 것이다. 어떤 관념의 자연스런 표현을 다른 어조(un autre ton)로 이전하여 놓으면 희극적 효과(une effet comique)를 얻어낼 것이다. (94)
전환법의 수단들은 수도 많고 다양하고, 언어는 어조에 있어서 풍부한 연속성을 표현하며, 웃음거리는 더 없이 싱거운 우스개(la bouffonnerie, 우스꽝스러움, [바보스러움])에서부터 유머(l’humour)와 아이러니(l’ironie)라는 고급적인 형태들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로 전개될 수 있다. (94) [유머를 익살, 아이러니를 빈정(비웃다)이라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극단적인 두 어조, 장중한 어조(le solennel)와 친밀한 어조(le familier)를 구별할 수 있으리라. 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단순한 전환법에 의해 대체적인 [허풍같은] 효과(les effet les plus gros)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희극적 환타지의 상반된 두 방향들이 나온다. (94)
장중한 어조를 친밀한 어조로 이전해보자. 희문(戲文, parodie)이 된다. .. 예를 들어 쟝 파울 리히터(Jean Paul Richter, 1763-1825)가 인용한 해돋이 .. “하늘은 마치 익어가는 바다 가재처럼 검은 색에서 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94) [나로서는 좋은 비유에 의한 표현으로 읽힌다. 장엄의 패러디(파로디)라기보다 바다가에 살지 않은 이가 가재구이를 먹어본 이후에 이런 비유의 소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바닷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일까? 내륙사람들에게 웃음거리일까?]
몇몇 철학자들에게 특히 알렉산더 벤(Alexandre Bain, (1818-1903).. 하락(la dégradation)[저하]에 의해서 생긴다. .. 웃을 수 있는 것이란 “이전에는 존경받던 것이 범용하고 천하게 보일 때” 생긴다. (95)
장중한 것에서 저속한 것으로(du solennel en trivial), 최상의 것에서 최악의 것으로(du meilleur en pire) 전환[이전]이 웃음거리이면, 그 역의 전화도 또한 더욱더 웃음거리이다. (95) [프로이트의 전이(tranfer)는 환자가 분석가에서서 아버지의 일부 또는 아버지 모습을 대입시켜 보는 착각을 의미한다. 심하면 분석가를 아버지를 넘어서 절대자로서 간주한다. 편집증에 이른다. - 인간은 분열자이다. 이를 자각할 때, 상호간섭의 웃음거리가 아니라 인격 대 인격을 대하게 될 것이다. (51SMD).]
우리는 이 전환을 또한 다른 전환에서도 발견한다. 우리는 대상들의 크기(grandeur)에 근거하거나 또는 그것들의 가치(valeur)에 근거하기에 따라 기본적 두 형식들을 구별한다. (95)
[크기에 관하여] 작은 사물들을 마치 큰 사물인 것처럼 말하는 것, 그것은 일반적으로 과장하는(exagérer) 것이다. ... 몇 작가들은 웃음거리를 과장(l’exagération)에 의해 정의하기도 하고, 다른 작가들은 하락(la dégradation)에 의해 정의하기도 한다. (95)
사람들은 허풍(la vantardise)에 관해서 종종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를 웃게 하는 것은 영웅적 희극(héroï-comique) 측면에서 이다. (96)
[가치에 관하여] 사물들의 물리적 크기가 아니라 그 가치를 낮은 것에서 높은 것으로 전환하는 것은 보다 인위적(artificielle) 인 것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더 세련된 것이다. ... 파렴치한 생각을 고상하게 표현하는 것, 수치스런(scabreuse) 상황, 천한 직업(un métier bas), 비열한 품성(une conduite vile) 등을 엄격한 존엄성(responsability)[영어]으로 묘사하는 것. 이러한 것은 일반적으로 웃음거리이다. ... 디킨즈(Dickens, 1812–1870)와 데커리Thackeray, 1811–1863) 그리고 영문학 일반에서 이에 관한 수많은 예를 발견할 수 있다. (96)
우리는 고골리(Nikolai Vasilievich Gogol, 1809–1852)의 한 희곡에서 고급관리가 그의 부하의 한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지적을 기억한다. “자네의 횡령은 자네 지위 정도의 관리로서는 너무 지나쳐.” (96)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 간격이 좁혀지면서 사람들은 대조(contraste)의 항들 사이가 점점 덜 거칠어지면, 희극적 전환의 효과는 점점 더 미묘해진다. (97)
이러한 대립들(ces oppositions)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실재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 있는 것과 있어야 할 것 사이에 아마도 있을 것이다. 전환이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때로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말하면서 마치 그것이 현재 있는 것이므로 믿는 체하는데, 아이러니(l'ironie)[비꼬기]는 거기에 있다[당위에서 현전으로]. 때로는 이와 반대로 현재 있는 것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하면서, 사물들이 마땅히 있어야만 하는 것인 양 가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종종 익살(humour)가 진행한다.(97)
비꼬기와 익살이 모두 풍자(satire)의 형식이지만, 비꼬기가 그 본성상 수사적인(oratoire) 반면에, 익살을 보다 과학적(scientifique)인 어떤 것이 있다. 비꼬기는 마땅히 있어야 하는 선(善)의 이념을 따라 점점 더 높이 상승할수록 강조된다. .. 익살은 악의 내부로 보다더 낮게 내려가면 갈수록 강조된다. (97)
쟝 파울[리히터(Jean Paul Richter, 1763-1825)]의 유머[익살]는 ..[앞의 해돋이 예] 익살의 우연적 특성이 아니라, 그 본질 자체이다. 익살의 작자(humoriste)는 과학자로 변장한 도덕가, ...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만을 가지고 해부하는 해부학자와도 같다. (97-98) [익살꾼 우스개꾼은 권력 또는 상층(권위)을 하강시키는 효과가 있다. 즉 권력이나 종교를 해부해보면 추악하고 더럽다고. 그런데 (소크라테스든, 낭만주의자들이든(루소포함), 아이러니든 낌새를 알아차린 철학들이든) 아이러니는 인민을 고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해야 하나? 어 내가 잘못 알았네 또는 내가 아직 몰랐었네 라는 느낌을 주려고 하니까. 결국 전자는 익명이고 후자는 인격인 것 같다. (51RKA)]
전환되는 용어의 간격을 더욱 좁힘으로써 우리는 희극적 전환(transposition comique)의 더욱 더 특수한 체계들(systèmes)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98)
예컨대 라비슈의 작품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의 글 중에 그가 받은 초대장을 암시하는 이와 같은 문구가 있다. “전월(前月) 3일 귀하의 호의(Votre amicale du 3 de l'écoulé)” 이 문장은 다음의 상용문구를 옮긴 것이다. “금월(今月) 3일 귀한(貴翰)(Votre honorée du 3 de courant)” ... (98)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런 것은 랍수스(말실수) 또는 실수행위에 속한다.] [당신의 귀한 편지([Votre honorée]라는 관용구인데, 당신의 친절한 편지(Votre amicale 호의)라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사람들은 거짓 착한이들(Les Faux Bonshommes, 1856)(4막극 코메디)과 브느와똥 가족(Famille Benoiton, 1865)(5막극 코메디, 산문)의 장면들을 상기할 것이다. 거기에서 결혼은 하나의 사무처럼 취급되고, 그리고 거기에서 감정의 문제들은 엄격히 상업적 용어서 제기된다. (RI 98)
[제2장 소결론]
여기서 우리는 언어의 특수성들(les particularités)이 다만 성격의 특수성을 나타내는 데 불과한 지점에 이르렀다. .. 상황 .. 언어 .. 이 둘은 결국 성격의 웃음거리(le comique de caractère) 속에서 사라진다. (98-99)
우리는 언어가 우리 생애에서 살아있는 어떤 것을 느낀다. 그리고 만일 이런 언어의 삶이 충만하고 완전하였다면, 만일 삶 속에서 굳어진 것이 어떠한 것도 없다면, 결국 만일 언어가 독립된 유기체들로서 잘라져 따로 떨어질 수 없이 완전히 통일된 유기체였다면, 이러한 언어는 웃음거리를 벗어나리라. 게다가 이 영혼은 마치 매우 조용한 물의 수면과 닮아서 마치 삶(생명)과 조화롭게 융합되고 통합된 영혼도 또한 웃음거리에서 벗어나리라. 그러나 몇 잎의 낙엽이 떠있지 않은 연못이 없듯이(pas d'étang), 습관이 자리 잡아 한 영혼을 그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하여 경직시키지 않는 인간 영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pas d'âme), .. 역전 또는 전환의 기계적 조작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또한 이미 만들어진(tout fait) 것을 제거할 만큼 충분히, 유연하고 생동적이며 완전하고 빈틈없는 말(pas de langue)도 없는 법이다. (RI 99, Oe 449)
굳음, 완전히 만들어진 것, 기계적인 것 등은 유연한 것, 연속적으로 변하는 것, 살아있는 것에 대립이며, 방심은 주의에 대립이며, 결국 자동주의는 자유로운 활동성의 대립이다. 자 이제, 요약하면, 웃음이 강조하고 교정하고자 원했던 것이 그 점이다. 우리는 웃음거리의 분석에서 우리가 참여했던 순간에 우리의 출발점을 밝힐 것을 이러한 생각(à cette idée, 관점)에게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의 길의 결정적인 모든 전환기들에서 이 생각(관점)이 빛났다는 것을 보았다. .. 이제 성격에 있어서 희극의 본질적 조건들이 무엇인가를 결정해보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예술의 진실한 본성(la vraie nature de l'art)와 함께 예술과 삶의 일반적 연관(la rapport général de l'art à la vie)도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RI 99-100, 449)
(19::31, 51RKB) (20:35, 51S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