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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어천서각공방 원문보기 글쓴이: 우광성
1.4.6. 충청도 湖西
강원도의 큰 줄기가 오대산의 주봉이 되고, 방향을 바꾸어 속리산에 이르러 여러 갈래로
갈라진 것이 충청도의 경락이 된다. 동쪽으로는 경상도와 큰 고개를 사이에 두고 경계를
나누며, 남쪽으로는 호남지방과 인접해 있고, 서쪽은 망망한 바다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경기도와 접해 있다. 직산稷山부터 은진恩津까지 대로의 동쪽 지역에는 산간 지대의 고
을이 많고, 그 서쪽 지역에는 평야 지대의 고을이 많다. 전체적으로 산과 들이 섞여 있고,
산천이 맑고 수려하며 밝게 툭 트여 있다. 이곳 출신 사람들은 문예가 있고 재주가 있는
사람이 많으니 대대로 양반 고을이었다. 흙의 성질은 비옥하고 단단하며, 물맛은 평이하
고 담박하다. 경기 지역에 비해 절기가5 일 빠르다.
충청도는 백성들의 습속이 근면하면서도 화사하여서, 사치하는 사람과 검소한 사람들이
절반씩이다. 농사에 힘쓰고 근본을 중시하면서도, 놀고먹는 무리가 많다. 물산이 풍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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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두주: 고려조에 세 곳의 방어지가 있었으므로, 그것으로 지명을 삼았다.】
85) 【두주: 삼방三防과 철령鐵嶺 두 곳은 흙과 돌이 구비되어 있어서, 만일 그 지형에 따라 건축한다면 경비도 지나치게 많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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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장시場市가 성황을 이루므로 장사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면서도 양반의 거족들이 고
을마다 있으므로, 명분이 대단히 분명하고 문화가 빛난다.
명색名色과 명분名分을 따지는 것이 어릴 적부터 풍속이 되어서, 입방아 찧는 폐단이 다
른 도에 비해 더 심하다. 문예를 숭상하고 무예를 숭상치 않으므로, 무예의 기술이 크게
모자란다. 경화京華에서 흘러 나와 떠돌다가 정착한 집은 본토 사족들이 사치를 숭상하
였으므로 여기에 익숙해져, 소박하고 야한 풍속이 없어서 외모를 꾸민다. 사람을 응접하
는 풍조가 다른 도보다 낫고, 여항閭巷의 소민小民86)들도 세족世族들 사이의 논의와 평론
에 점차 물들어 있으며, 여러 색목色目의 양반 벌족들이나 높고 낮은 관리들도 유세가들
과 인연을 맺고 있는 자들이 많아서, 청탁하여 향임鄕任 자리를 다툰다. 각 당파에 속한
문벌과 지위 고하를 막론한 관리들이 세력 있는 자에게 연줄을 대고 앞 다투어 자리를 청
탁하려는 일이 많다.
마을의 부녀들은 방적에 힘쓰며, 면·뽕·마·모시를 모두 재배한다. 속리산 근방의 4~5
개의 고을은 산골짜기 가까이에 있으므로 백성들의 습속은 매우 순박하다. 산과 들을 막
론하고 매년 7월 15일에 농가農家의 남녀는 술과 찬을 차려놓고 모여서 노니, 이것을 호
미씻이[세서연洗鋤宴]87)라고 한다. 4개의 고을은 충청도의 귀퉁이에 있고, 강원도와 서
로 접해 있으며, 또 산골짜기 고을이다. 그곳 백성들의 습속은 호속湖俗의 화려하고 사치
스러움에 물들지 않으니 강원도와 대단히 비슷하다.
충청도 농업農業은 산간 지대와 평야 지대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밭이 적고 논이 많아
서 벼농사에만 힘쓴다. 올벼만 파종하고, 그 밖의 벼는 모내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판은
여러 번 갈고 거름을 준 뒤에 모내기하고, 모내기하기 전에 논을 두세 번 번경反耕88)하고
거름을 준 뒤에 옮겨 심는다. 동부 지방의 산간 지대에서는 거름이 없으면 풀을 베어 논에
펴고 모내기하며, 뿌리가 내린 뒤에 서너 차례 김을 맨다. 따라서 토질이 비옥해질 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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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소민小民: 민은 국의 입장에서는 대민과 소민으로 구성되며, 대민은 양반을, 소민은 상민을 각각 가리킨다.
87) 호미씻이: 음력 7월경에 농가農家에서 날을 잡아 하루를 즐기며 노는 일. 이때쯤에는 밭매기와 논매기가 거의 끝나, 호미가 필
요 없게 되어 씻어 둔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88) 번경反耕: 논이나 밭을 여러 차례 갈아 뒤집거나, 논이나 밭을 번갈아 바꾸어 경작하는 것을 말한다. 가뭄이 심할 경우 논의 물
이 부족하면, 논을 번경하여 밭작물을 경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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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사람들이 근면한 결과, 수확량이 경기도의2 배나 된다.
충청도 동부 지방에서는 관개하는 수가 많고, 서부 지방은 물이 풍부해서 도랑을 열어 물
을 끄는 것이 풍속이 되었다. 낭떠러지와 절벽에도 올라 흙을 밀어내고 물을 끌어댔다. 밭
에는 보리·콩·팥·기장·조·사탕수수·귀리·율무를 심는다. 서부 지방의 평야 지
대에 있는 고을들에서는 보리·콩·팥만을 심고, 동부 지방에서는 목면과 참깨를 심는
경우도 많다. 밭은 두 번 갈고2 ~3차례 김매기하며, 목화밭은 5~6차례 김매기한다.
땅이 협소하고 사람이 많으므로 농사는 광작이 없고, 농사에 힘쓰는 일에 전념하여 지력
을 얻는다. 논에서 종자 1말로 수확하는 양이 2~3섬에 이른다. 수확하는 양이 비록 많지
만 토지세가 자못 무거워, 역에 응하기 어렵다. 산골짜기 지대의 고을만이 부賦가 가벼운
데, 땅이 비옥하지 않아서 화전도 많다. 산간 지대에서는 밭에 겨릿소를 써서 경작하였고,
평야 지대의 고을에서는 밭과 논에 겨릿소나 호릿소를 쓴다.
충청도 바닷가의 여러 고을들에서는 고기잡이와 소금구이에 종사하여 이익을 낸다. 내포
內浦 지방의 각 고을에서는 모시풀을 많이 심는데, 그 중에서 임천林泉과 한산韓山이 제
일이다. 동부 지방의 각 고을에서는 삼을 심고 양잠이 많다. 청산靑山·보은報恩 등의 읍
은 대추만을 업으로 삼았다. 서부 지방에는 홍시가 많고 또 올감[조홍早紅]도 있다. 그 밖
에 호도胡桃·배·밤 등 각종 과일이 도내에 섞여 있고, 담배·닥·옻은 토질이 마땅한
곳에서 재배한다. 산간 지대에는 양봉·산용·목피가 많아서 모두 살림살이에 도움이 된
다. 또 소를 키우는 일이 많으며, 살진 소는 내포內浦에서 나온 것이 많다. 땅이 경기와 호
남 사이에 있어서 수로와 육로의 요충지다. 의식衣食이 풍요롭고 온갖 물산이 모두 모여
있으며, 팔도의 상인들과 판매하는 물건들이 폭주하여 사족이 거주할 만한 곳으로 국내
에서 가장 유명하다.
충청도의 산천은 비록 산간이긴 하지만 깊고 가파른 산이 없고, 평야이긴 해도 광막한 평
야가 없다. 샘이 깊고 흙이 비옥하며 수재와 한재를 입는 일이 적어 인민이 많다. 또 경기
도와 경계를 접하고 있어 수로와 육로가 모두 편리하므로, 서울에서 대대로 이어오는 큰
집안들이 이곳에 향장鄕庄과 분산墳山을 두고 차지하고 있으니, 시골의 가난하고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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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버틸 수가 없다. 간악한 백성들과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세
력 있는 사람들에 투탁하여 군보軍保89)를 면할 것을 도모하므로, 군정들은 극히 힘들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고, 궁한 사람들은 서너 가지 역을 겸하였다.
세족世族과 마을 사람들은 태반이 놀고먹는 사람들이었고, 수령이 일단 폐단을 바로잡고
자 한다면 쌓인 폐단이 사방에서 일어나서 끝내 낭패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옛날 그대로
고수하는 일이 많아 폐단을 고칠 날이 없었다. 환곡還穀과 전부田賦는 사족들 때문에 폐
단이 생겼다. 팔도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지만, 고을의 갖가지 폐단도 팔도에서 가장 심
하다. 고을의 수령은 마땅히 겸손과 공평함으로 자기를 규율하고, 정직함과 공적인 것을
우선시하여 뇌물도 통하지 않게 하고 간활함도 부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런 뒤라야 호
족들을 누르고 정교를 제대로 베풀 수 있을 것이다.
충청도의 관액과 형세를 논한다면 죽령竹嶺·조령鳥嶺·화녕化寧·추풍秋風이 산의 등
과 배를 이루며 경상도와 경계를 이룬다. 옛날부터 방어하는 정책은 오히려 지리의 요점
을 다하지 않음이 있다.
충주忠州는 조령과 죽령 두 큰 고개의 사이에 있다. 인물이 도내에서 제일이다. 설치한 진
영은 비록 미리 대비하고자 하는 뜻에서 나왔으나, 내 의견을 말하자면 길을 가로막는 것
은 하나의 진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본 고을에 방어영을 설치하여 영장營將
의 일을 겸행하게 하고, 절제사를 두어 전담하게 해야 사변이 일어났을 때 그곳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 화녕化寧은 병영과 서로 거리가 멀지 않으니 상주와 표리를 이루어 응접하
고, 추풍령은 병영과 약간 멀다.
병영 밖에서 변란이 있으면 병영兵營은 힘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저 황간黃磵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해야 잔약한 고을이 병영 아래에 끼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급한 일을 당하
고서 그때가서 제도를 바꾸려 하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만일 황간黃磵·영동永同을
합하여 하나의 현縣을 만든 뒤에 겸진兼鎭으로 두어 절제사節制使90)의 권한을 부여한다
면, 위급한 때를 대비할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주洪州는 호우湖右의 큰 읍으로, 요
충지이기도 하니 마땅히 방영을 설치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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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군보軍保: 조선조 때 정병正兵을 돕기 위하여 둔 조정助丁. 원래는 병역兵役을 면제받는 대신에 현역병의 농작農作에 노동력
을 제공하도록 하였으나, 후에 군대의 비용으로 쓰기 위하여 역役을 면해주고 그 대가로 삼베나 무명 따위를 받아들였다.
90) 절제사節制使: 조선 시대에, 절도사가 관할하던 거진巨鎭에 둔 정삼품 벼슬. 정식 이름은 병마절제사 또는 수군절제사로, 부윤
府尹이 겸하였다.
공경
1.4.7. 경상도 嶺南
오대산五臺山의 곧은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가다가 멎는 곳에 동래부가 있다. 그리고 오
대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주봉우리가 속리산이 되고, 그것이 남쪽으로 뻗어 바다에 이
르러서야 끝나니, 그곳이 호남과 영남의 경계를 이룬다. 경상도의 경락은 모두 여기서 나
누어져 맥을 이어간다.
동쪽으로는 끝없는 바다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큰바다에 접해 있으며, 일본의 마도馬
島와 서로 마주하고 있다. 서쪽은 충청도와 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큰 고개를 경계로 삼으
며 북쪽은 강원도와 접해 있다. 낙동강이 경상도의 중간을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데, 이것
을 기준으로 좌우도를 나눈다.
경상도의 각 고을들은 산과 들이 서로 섞여 있다. 우도[서부 지방]는 사이사이 평야 지대
고을들이 많지만, 넓지는 않다. 낮은 산과 작은 강이 서로 섞여 둘러싸고 있다. 경상도 전
체를 통틀어 산천이 모두 웅대하게 쌓여 있어서, 산은 중후하고 물의 흐름은 넓고 깊다.
이곳 출신 중에는 깊고 중후한 사람이 많아서, 신라와 고려로부터 국조國朝(조선)에 이르
기까지 능력 있는 인재와 큰 그릇들이 모두 영남 출신이다. 토질은 풍부하고 비옥하며 굳
다. 물맛은 맑고 담박하다. 절후는 경기도에 비해 거의1 0여 일 정도 앞선다.
경상도는 백성들의 습속이 질박하고 검소하며, 부지런하고 중후하여 실질에 힘쓰며, 화
려하며 사치하는 경향이 적다. 농사와 산업에 힘쓰는 것을 급선무로 삼는다. 상도上道는
풍속이 근면하고 검소하지만, 하도下道는 호남과 유사한 점이 있다. 옛날부터 명분을 지
키는 데에 대단히 분명하여, 비록 촌부라 하더라도 선현을 존숭할 줄 알아서, 모두들 퇴계
退溪91)를 노선생老 先生이라고 일컫는다. 그 외에도 명현들이 거처하던 곳을 모 선생某先
生의 유허遺墟라고 일컫는다. 나무꾼이나 목부들조차 관작이 높다고 모두 사족이라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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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호이다. 이황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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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대사당大祠堂의 자손만이 진짜 양반兩班이라고 늘 말한다. 이른바 대사당이란 이
름난 선현先賢에게 제사 지내는 곳을 가리킨다. 사족士族 중에서 유업儒業을 하는 자들
은 모두 무엇보다 먼저 가산家産을 경영하는 데 힘쓰고, 그런 다음 문예를 닦으니, 가업만
을 보존하고 과거나 벼슬에 급급하지 않을 수 있다.
경상도의 풍속은, 어떤 집안에 이름난 현저한 조상이 있을 경우, 비록 누세토록 집안이 기
울어 벼슬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 집안사람을 쉽게 모욕할 수 없다. 그리고 혼례에 드는 여
러 물건들은 도내道內의 가장 훌륭한 집안의 물건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으로
한다. 과거에 급제한 뒤에는 청관淸官과 현직顯職 할 것 없이 청탁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
긴다. 이것은 참으로 다른 도에는 없는 아름다운 풍속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막론하
고 남자는 바깥에서 일을 하고, 여자는 안에서 일을 한다. 놀고 게으른 습속이 전혀 없다.
그런데 이것은 좌상도左上道에서 그러한 것이고, 우하도右下道에서는 그렇지 않다.
사족士族이 관정官庭과 장시場市에 직접 들어가는 것을 다른 도에서는 모두 수치로 여기
지만, 경상도의 사족들은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대개 그들은 말하기를, “어쩔
수 없이 시비가 있게 되면, 사사롭게 다투어 시비를 가리다가 분규에 이를 것이 아니라,
차라리 조가朝家가 명한 관리에게 곧장 요청하여 한 마디로 판결 받는 편이 낫다.”고 말하
기도 하고, “일을 맡을 노복도 없고, 아들과 조카에게 시켜서 수고도 끼치기 어렵다면, 부
모님이 살아계실 때 봉양하는 일과 장례, 제사를 받드는 데 필요한 물자들을, 어찌 구차하
게 다른 사람을 대신하게 하겠는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도 질박하고 실질적이며,
충성되고 두터운 풍속에서 나온 것이다. 비록 조그마한 일이라도 폐단이 일어나는 단서
가 될 수 있다고 여겨서, 이름이 조적朝籍에 올라 있는 사람들조차 관직이 없다면 조령을
넘지 않으니, 이것도 청탁의 혐의를 피한 것이다.
하도下道에서는 매년 2월 10일 이전에 영동靈童이라고 부르며, 집집마다 찬을 설치하
여 치재致齋92)하고 기도하는 습속이 있다. 치재할 때에는 친족과 이웃이라도 왕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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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치재致齋: 제사가 있기 전에 행하는 재계齋戒의 하나이다. 재계에는 산재散齋와 치재致齋가 있다. 산재는 치재 전 며칠 동안
슬픈 일을 묻거나 듣지 않고, 즐기는 일을 하지 않으며, 행동과 마음을 근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치재는 산재 뒤 제사 날 전까지
오로지 제사의 일에만 마음을 쓰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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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러 사는 것을 허락지 않고 지극히 정성을 다한다. 대개 세속에서 영동靈童은 본토
사람인 영동이 죽어서 농사의 신이 된 것으로 믿는데, 따라서 대단한 경이로움을 드러
내며 차린 음식을 흠향하고, 곡물을 쬐어 말릴 때에 닭과 개, 새와 짐승이 혹시 그것을
밟거나 쪼면 그 자리에서 죽인다. 사람도 혹시 치재하여 음식을 차릴 때에 정성을 다하
여 깨끗이 하지 않으면, 재화災禍가 생겨서 일 년 내내 병이 든다고 여긴다. 연전에 집집
마다 치재할 때라서 암행어사가 투숙할 곳이 없어 가는 곳마다 낭패를 보자, 이 때문에
금법禁法을 두어 기도를 금지했다. 그러자 그 해 가을에 큰 흉년이 들었고, 이 곳 사람들
은 영동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 뒤 민간에서는 몰래 제사를
지냈다.
경상도의 농업農業은 밭과 논이 각각 절반씩이다. 하도下道[남부 지방]에는 논이 많다.
밭에는 보리·콩·팥·기장·조·목화·삼·메밀을 심는다. 이 도의 동북 지방에서는
조를 심는 경우가 많은데, 모를 심은 뒤에 모 사이의 흙을 호릿소로 살짝 갈아 일구어서
조의 뿌리를 북돋아 주며 콩도 심는다. 논에서 올벼는 파종播種하고 늦벼는 모내기한다.
올벼는 3~4차례 김을 맨다. 모내기할 곳은 모내기 전에 여러 차례 뒤집어 갈고, 풀을 베어
다가 두텁게 뿌린 뒤에 다시 경작하고 모내기한다. 그리고 모내기할 때에 모판도 이와 같
이 한다. 모내기한 뒤에 2~3차례 김을 맨다.
밭작물도 2~3차례 김을 맨다. 목화밭은 종자를 심자마자 즉각 호미질하고, 꽃이 피고 과
窠를 맺은 뒤까지 모두 10차례쯤 호미질한다. 이렇게 하면 수확량이 배나 많게 된다. 논과
밭을 가리지 않고 거름을 사용한다. 농사에 근면하고 관개에도 근면하여, 수로가 통하기
어려운 곳에는 나무와 돌을 쌓고 흙으로 채워 도랑을 열어 물을 끌어 온다.
논에 보리를 심었다가 보리를 벤 뒤에는 물을 끌어다가 모내기를 한다. 서남 지방의 강 연
안 고을들은 물 가까운 곳에 봄보리와 가을보리를 심는다. 경상도에서 농작에 힘을 쓰고
수확하는 곡식의 양은 충청도와 대략 같다. 백성들은 습속이 순박하고 놀고먹는 것에 마
음 쓰지 않고 농사에만 힘쓰니, 충청도 지방과 큰 차이가 없다. 밭을 겨릿소로 경작하고,
하도下道에서는 간간이 호릿소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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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는 농업 이외에 베·무명·양잠·담배·감나무·닥나무를 업으로 삼는다. 전국
에서 곶감이 가장 많이 나며, 온갖 과일이 다 있다. 석류石榴·유자·비파는 남부 지방의
강 연안 고을의 토질에 적합하고, 그 토산물 중에서 유자나무와 비파나무는 서남 지방의
해변에 많이 있으며, 대나무 밭도 남부 지방에 많다. 황포黃布는 단지 동북 지방 2~3읍에
서만 생산될 뿐이다.
바닷가 고을들은 고기잡이와 소금에서 이익이 매우 크고, 산간 고을들은 벌꿀·송이버
섯·지초芝草93)가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목면은 함경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거의 다 경작되고 씨를 뿌린다.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목화가 토질에 맞는다
고 하지만, 경상도만큼 잘 맞는 곳은 없다. 종이는 본디 삼남三南을 치지만, 그 중에서도
경상도와 전라도가 제일이다. 민가民家에서도 삼蔘을 업으로 하는 경우가 있으며, 자리
를 짜는 것도 생리로 삼는다.
대개 산세가 거칠고 험하기는 오대산五臺山까지이고, 그 다음부터는 지맥들이 빼어나되
도드라지지 않으며, 중후하되 탁하지 않다. 산도 깊숙하고 물은 맑고 깊다. 한 도의 물은
한곳에 모여 있고, 모든 산들과 두 개의 고개에서 합류合流하여 생긴 수구水口는 평평하
고 느리고 혼후하므로,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성격은 모두 중후하여 경박한 태도가 적어
모든 중론衆論과 공공의 장소에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경상도는 토질이 굳고 강하며, 두텁고 비옥하다. 그러므로 거름을 얼마나 쓰고 얼마나 부
지런히 일하느냐에 따라 수확량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모두 힘써 경작한다.
이곳에 거부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인심이 질박하고 솔직한 사람
이 많고 교활함이 적다. 선진先進과 장노長老들이 모두 함께 나아가서 새로 의견을 내어
중론이 되면, 어떤 수를 써도 되돌리기 어려워서 관과 민들도 매번 소통이 막히는 폐해가
많다. 대개 이 고장 사람들은 성향이 모두 같지만, 수령은 거의 모두 당색을 달리하는 사
람이므로, 정령이 시행될 때에 서로 의심하고 소통이 막혀서 점점 격렬해 진다. 사민士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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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지초芝草: 잇꽃, 모균류帽菌類에 속하는 버섯의 하나. 이는 상서로운 상징이라고 하여, 복초福草 또는 영지靈芝라고도 한다.
자초 지추 지치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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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마음속으로 수령이 관직을 빙자하여 자신들을 위엄을 앞세워 사감으로 대한다고 여
기고, 수령 쪽에서도 마음속으로 그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정사를 비난하기만 한다고
여기니, 무심히 일어난 우연한 일조차도 공평한 마음으로 서로 잘 헤아리지 못한다. 이것
은 참으로 치료하기 어려운 고질병이다.
우하도右下道는 모든 당색이 섞여 거주하니, 인심도 각자의 인연에 따라 달려가 붙는 것
을 능사로 여긴다. 그렇지만 좌상도左上道는 관리들이라도 인연에 따라 임명받으려 하지
않고, 혹시 이러한 습속이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그를 배척한다. 이속들 중에도 문필에 능
하여 과거에 급제한 사람들도 많다.
경상도는 토질이 비옥하고 풍속은 순박하며, 의식이 풍족하고 문물이 빛나고 무성하여
일용품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낙원이라 할 만하다. 이곳은 사대부나 농민이나 모두
마땅히 거주할 만하지만 서울과 거리가 너무 멀어, 조령 길은 하늘에 닿는다. 하늘이 닿는
남쪽 끝이 경상도가 되고 북으로는 서울로 오르는 길이다.
이곳은 토속이 굳고 막히는 수가 많으니, 이것이 병통이다. 관장은 마땅히 충성스러움과
자애로움으로 아랫사람의 마음과 통하는 것을 급선무로 삼아야지, 무조건 쳐내는 정치를
하지 말고 그들을 제나라와 노나라 사람처럼 대한 이후에야 관민이 서로 막히게 되는 폐
단이 없게 되고 백성들의 습속을 좋은 쪽으로 열어주는 방도가 될 것이다.
경상도의 관액과 형편을 논한다면, 동래부에서 육지 쪽으로 올라가면서 첫 번째 험한
지형으로는 밀양密陽의 작원鵲院94)을 꼽을 수 있다. 밀양 북쪽으로부터 도로 올라가면
죽령竹嶺·조령鳥嶺·화녕化寧·추풍秋風·팔량치八良峙이다. 대개 동래부가 육지
에 올라간 뒤부터 나뉘어 두 대로가 된다. 왼쪽은 울산의 병영이니 연해에 거처하고 있
으며, 오른쪽은 양산梁山에서부터 밀양密陽을 경유하여 대구로 접어드니, 이것이 직로
直路다.
작원鵲院은 원래부터 험한 곳이다. 왼쪽에는 큰 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절벽이 있으며, 행
렬이 어깨와 등이 서로 맞붙어 있을 정도로 한줄기 좁은 길만이 겨우 나 있을 뿐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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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작원鵲院: 현재 경남 밀양시 삼량진읍 검세리에 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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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같이 수십 리를 지나가면 비로소 평원에 이르러 읍치邑治에 도달한다. 경상좌도의 김
해金海와 창원昌原 등의 읍들은 마치 큰 길에 차가 폭주하듯이 밀양에 모두 모인다. 이것
으로 밀양읍이 경상감영의 외번外藩이고, 동래부와 통하는 목구멍이라는 것을 알 수 있
다. 읍 터가 번성하고 화려하며 백성들과 물산이 풍부하고 성대하니, 이 때문에 남쪽 지방
의 웅부雄府이지만 한만한 고을의 음직 자리[음과蔭窠]가 될 뿐이고, 지켜야 할 요충지로
삼으려는 원대한 계획은 없다. 이전 사람들이 본디 쌓아놓은 성들은 방치되어, 무너지더
라도 아무도 수선하지 않으니 이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옛날 임진왜란 때에 밀양의 수령 박진朴晉은 병사를 이끌고 작원鵲院을 차지하여 지키다
가, 왜적이 향도鄕導로 천대암天臺巖을 둘러싸고 나오자 박 공은 낭패가 되어 말을 달려
돌아가다가 액로扼路에서 인갑印匣을 떨어뜨려 잃어버렸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곳은 인
전애印轉崖로 일컬어지고 있다. 작원鵲院은 위쪽의 큰 산으로부터 가로로 뻗어 하늘에
접해 있고, 이른바 천대암天臺巖은 사방으로 뚫여 있고 평탄한 지형으로 둘러싸여 있으
며 동쪽은 위로 가고 서쪽은 아래로 내려가 생선꿰미처럼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왜적은
이곳을 경유하여 작원鵲院의 서쪽에서 나온 것이다.
일찍이 영조 조英祖朝에 영남 사람들은 성을 쌓아 방어하려는 뜻으로 상소하였다. 상께
서는 창원昌原 수령에게 형편을 세세히 살펴볼 것을 명령하셨다. 그런데 그 아래에 본토
세족世族의 선영先塋이 있었다. 그들은 쌓을 성城이 주맥主脈을 누를 것을 싫어하여, 창
원 수령에게 수원水源이 부족하다고 청하자, 수령은 성 쌓는 일을 그만두고 행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까지 영남의 유식자들은 이 일을 탄식하였다.
창원의 지세를 돌아보면 비록 큰 산의 절정 위에 있지만, 흙의 성질이 비옥하고 두터우며,
샘이 풍족하다. 바깥으로는 깎아지른 듯하고, 안은 평편하니 참으로 천혜의 산성山城을
지을 만한 자리이다. 지금 만일 이곳에 축성築城하여, 밀양 수령으로 방영防營을 삼게 하
고 문관과 무관을 교대로 임명하여 산성에 중영中營를 설치한다면, 남도 제일의 관방關
防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상주尙州는 조령鳥嶺, 화녕化寧의 아래에 걸쳐 있으니, 합하여
방영防營을 설치해야 한다. 【상세한 것은 관방조關防條를 참조하라.】
우하영의 천일록 --도읍의 건립 建都 중에서....
소통
첫댓글 우리고장에관해서도 언급이 계셧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