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청구
계절이 바뀌었다. 새 순이 돋고 꽃이 피는가 싶더니 어느새 작은 열매가 보인다. 매실, 자두, 복숭아, 참다, 보리수다. 포도와 대추, 감나무는 싹이 움튼다.
새벽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겨우 먼지가 날리지 않을 정도 인지라 긴 가뭄에 감질나는 모양새다. 두레박으로 내리붓듯 굵고 시원스럽게 내린적인 언제였던가. 아침 식사 전이다. 아내가 창고 건물 뒷 쪽 공간에 화단 만들기 작업을 재촉하는 눈총을 쏘아댄다.
시골 집을 구입한 직후부터 잡초와 생활 쓰레기들이 나뒹굴어 어수선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공간을 화단으로 만든다. 비는 그치지 않고 내린다. 지푸라기와 흙이 쓸려 내려갈 만큼 한번쯤 내렸으면 하는 조급함을 준다. 저녁 무렵 근처 건재상을 찾아 갔다. 차를 몰아 화단 경계용으로 쓸 시멘트 벽돌 백 장을 구입했다. 승용차 짐 칸에 옮겨 놓으니 자동차 바퀴 자국이 크게 남는다. 벽돌을 한 장 한 장 내려 놓고 화단 작업을 준비한다.
노끈으로 도로 입구부터 집 모퉁이까지 경계를 두었다. 경계선을 따라 벽돌을 세로로 비스듬히 세워서 창고를 따라 연결 시켰다. 생각과 달리 직선으로 계획된 경계석은 배가 나오고 등허리가 구부러진 뱀이 느릿느릿 기어가는 모양새다. 경계석 정리를 끝내고 텃밭에서 미리 담아 온 흙으로 공간을 채웠다. 예상보다 많은 양의 흙이 필요했다. 길 통로에 바닥 흙이 도움이 되었다. 흙을 채워 넣는 순서는 먼저 드러난 작은 돌과 나뭇잎을 깔았다. 그 위에 흙을 한 삽 한 삽 퍼 올렸다. 왠 걸 바닥 흙이 보는 것과 달리 질 좋은 흙이다. 이곳이 예전에 밭으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보인다. 퇴비를 넣고 다시 흙으로 쌓아 올린다. 폭이 오십 센티미터 정도다. 전체 길이는 이십 미터는 넘는다.
예정된 화단을 완성하는데 구입한 벽돌이 모자랐다. 추가로 가져 온 벽돌은 두 번 째 화단을 만들어 간다. 처음의 경험치를 살려 이번에는 직선이다. 나날이 좋아지는게 아니라 오전 오후가 다르다. 화단 흙을 고루 고루 추스린다. 깊이는 이십 센티부터 두 뼘이 더 되는 곳도 있다. 어떤 작물을 심더라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무슨 씨앗, 어떤 모종이 좋을까? 자라나는 식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동네 어머니들이 길을 지나다 꾸며 놓은 화단을 보면서 ‘참 잘 만들었다. 아재가 부지런해서 새 자리가 만들어졌네’ 한다. 지나가는 말일지라도 고맙다. 시골 지역에 낯선 이들이 들어 와 이웃이라는 이유로 정을 보태어 준다. 덕분에 물동이를 얹어놓은 듯 허리에 느껴지던 통증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토질은 모래 성분이 많다. 적절한 식물은 뭘까? 혼자 생각으로 우선 땅콩이 제격으로 보인다. 이랑을 지어 놓았다. 땅콩 꼬투리째 한 구멍씩 넣는다. 마지막 과정이다. 그의 지청구 끝에 아담한 화단 텃밭이 만들어졌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신이 계획한 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마무리 되는가? 큰 계획이나 작은 것 둘 다 소중하지 않는 것은 없다. 계획대로 완성되어 가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본 받고 싶다. 계획의 완성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보람을 준다. 지청구에 이은 또 다른 꿈을 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