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송창우
볕살이 좋은 창가에 앉았다. 굴절되지 않은 빛줄기가 가슴속까지 스며든다. 말랑한 공기는 움츠린 마음과 지친 몸뚱이를 허물어 놓는다. 열어둔 사무실 문틈 사이로 따스한 바람이 한몫 거들며 눈꺼풀을 주저앉힌다. 몽환적 십이월 한낮, 어머니 품속 같은 볕내가 풋잠을 불러온다.
아홉 살 무렵이었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어머니 자리는 비어 있었다. 어머니는 첫닭이 울기 전에 새벽시장으로 나갔다. 영문도 몰랐던 어린 나로서는 덜컥 겁이 났었다. 점심때가 지나면 온다는 아버지의 말에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신작로로 달려갔다. 어머니의 부재는 늘 안타까움이었다.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었을까. 나뭇가지를 꺾고 돌멩이를 차며 심통을 부렸다. 그러다 어머니가 보이면 한달음으로 품에 안겨 울먹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던 눈길이 꿈결인양 아른거린다.
인기척에 실눈을 떴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문 앞에서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옆집 아동양육시설에 있는 학생들이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싱글벙글 환한 모습이다. 더부룩하지 않은 머리에 말끔한 옷차림으로 보아 한 달에 한 번 하는 외식 날인 듯하다. 보지 않아도 중국집에서 자장면 한 그릇을 순식간에 비웠을 것이다. 시설을 벗어나서인지 뱃속이 든든해서인지 표정이 낙낙해 보인다. 자장면 한 그릇에 저렇게 만족해할 수 있는 순박한 아이들, 티 없이 맑은 녀석들이지만 한 움큼의 아픔을 새겼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다. 한 부모를 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고아인 아이도 있다. 어쩔 수 없는 처지가 이들을 시설로 오게 했다.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거나 부모의 형편이 나아져 이곳을 떠나기도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다. 기다림에 익숙한 아이들도 부모와 재회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을까. 더딘 시간의 흐름에 하루하루 지쳐가는 말 못할 속은 어떨지. 아직 어려서 홀로 선택할 수 없는 형편이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해야 하는 삶이다.
아이들 뒤에 한 아이가 물끄러미 섰다. 등을 반쯤 돌리고 숙인 고개 탓인지 어정쩡하다. 눈 맞추고 재잘거리는 또래들과 다르게 혼자 딴청을 피운다.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고 친구들이 등을 떠밀어도 요지부동이다. 머뭇거리는 행동이 나와 어떤 불편함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기억을 더듬어 봐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쓱해하는 아이에게 품을 내어주며 쳐다보니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두어 달 전에 중국집에서 만난 녀석이다. 그제야 들어오길 왜 망설였는지 알 것 같았다.
토요일이었다. 청소년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센터에 다니는 고려인 학생 여럿이 낭송 대회에 참가하는 날이라 격려차 마련한 자리였다. 한글이 모국어가 아닌 이들은 언어장벽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조금 다른 외모로 따돌림도 있었고 어눌한 말투 때문에 새 친구를 사귈 기회는 쉽지 않았다. 알아듣지도 받아 적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배움에 대한 남모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쏟은 노력이 헛되지 않아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좌절하지 않고 낯선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있는 대견함에 축하가 쏟아졌다.
그때였다. 건너편 자리에서 한 아이와 밥을 먹던 중년 남자의 날 선 소리가 들렸다. 그는 뭇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제되지 않은 말을 쉼 없이 뱉어냈다. 무엇이 그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듣다 보니 우리를 향한 힐난이었다. 생김새가 이국적인 고려인 학생들이다 보니 자신의 아이와 처지가 비슷하다 여겨서인지 센터의 아이들을 내세워 단체를 홍보하는 사람들로 오해를 한 것이었다. 알아듣도록 이야기해도 막무가내였다. 큰 소동으로 번질까 염려되었던지 주인이 그를 진정시키고 나서야 소란은 마무리되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것은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짓던 옅은 미소는 잠시뿐, 불안한 눈길만 가득 찼다.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이끌려 나가는 아이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다.
아들을 시설에 맡긴 아버지였다. 서너 달에 한 번 면회를 오면 식당에서 만난다고 했다. 아버지의 눈에 아들이 기죽고 쓸쓸해 보였을까. 생이별로 안쓰럽게 생활하는 것이 자신의 탓이라 자책했을 것이다.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옹색함이 비굴하게 느껴져 누군가에게 항변하듯 봉사자들을 원망했는지 모른다. 그도 사람이다 보니 한계점에 다다라 통제력을 잃은 모양이다. 한 가정을 지탱해 주던 튼튼한 뼈대에 금이 가며 무게중심을 잃은 탓은 아닐까. “형편이 나아지면 데리러 오마.”라는 약속만 믿었을 아이 앞에서 어른들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쌓이는 것들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마음에 쌓이는 것은 가엽다. 빠른 세월이 그렇고, 사그라드는 그리움이 그렇고, 자라는 원망이 그렇다. 혈육과 생이별하고 자신을 지켜주던 어른이 사라지는 경우를 숱하게 경험한다.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불안감,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존재라 느껴질 때 불쑥 솟아나는 두려움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만다. 사춘기 아이들에게는 치명적이어서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기도 한다.
자란 환경은 주름을 만든다. 성장기일수록 깊고 굵게 파여 지울 수 없는 흔적이 된다. 누구나 겪는 상황이라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시설의 아이들에게는 긴 고통의 시간이다. 어른이 되기까지 혼자 감내하기란 어렵고 힘이 든다. 시설을 나와서는 불공평과 맞서는 일이 일상이다. 세상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발버둥 쳐야 하고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 이겨내서 당당하게 맞서기를 바라지만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잠재의식이다. 눈 녹듯 응어리가 풀리어 생채기도 아무길 바랄뿐이다.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막막하다. 결핍이 늘어날수록 상대적 박탈감도 커져 담을 쌓고 침묵이 일상화되어 버린다. 현재의 고통보다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밀물처럼 몰려와도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버텨내야 한다. 하지만 바람막이 될 언덕 하나쯤 있다면 상처에 새살이 돋아 흉터를 끌어안고 살아갈 힘도 생긴다. 아픔을 알기에 극복할 자신감을 키울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 마음 바닥에는 꾸밈없는 순박함도 있고, 소외를 이겨낼 나름의 강인함도 지녔다. 컴컴했던 시간을 치유할 수 있도록 애정의 눈길로 바라봐주면, 그들도 통증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갈 꿈 하나 피우지 않을까.
아이가 사라진 골목에 나무 한 그루가 섰다. 애처롭게 매달린 나풋나풋한 잎이 그 아이의 뒷모습 같다. 아이들이 마음살 앓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라 믿으며 뒷모습을 사랑스럽게 다듬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