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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13권
22.5. 후보연(後報緣)
『바사론(婆娑論 : 毘婆沙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백정 [屠兒]이 있었다.
일곱 생 동안 백정노릇을 해왔으나 세 갈래 악한 세계에 떨어진 일이 없었고 그리하여 연간 세계와 천상을 왔다갔다 하였다.
이것은 일곱 생 이전에 일찍이 벽지불(辟支佛)에게 한 끼의 음식을 보시한 복의 힘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일곱 생(生) 동안 악한 세계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일곱 생 동안을 내려오면서 도살의 업을 하였던 죄업 때문에 과거 일곱 생 동안 이미 차례로 그 죄를 받아서 벗어난 길이 없었으니, 그것은 모두 선과 악이 다 그러한 것이다.”
[이것은 후보(後報)에 해당한다.]
또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사리불(舍利弗)이 제 아무리 총명하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하여 일체지(一切智)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지혜에 비유하면 마치 어린아이와 같기 때 문이다.”
『아바단나경(阿婆檀那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기환(祇桓) 정사에 머물고 계셨을 때였다. 어느날 저녁 무렵 경행(經行)을 하고 계셨는데 사리불도 부처님을 따라 경행을 하고 있었다.
이 때 매에게 쫓기는 비둘기가 있었다. 그 비둘기는 부처님 곁으로 날아와서 앉았다. 부처님께서 경행하시며 그 비둘기를 지나치실 때 그림자가 비둘기의 위를 덮자 비둘기는 편안해졌고 매에게 쫓기던 무섭고 두려운 마음도 곧 없어졌다. 그리하여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나 뒤에 따르던 사리불의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었을 때, 그 비둘기는 갑자기 소리를 내면서 처음처럼 두려워하고 무서워했다.
사리불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과 저의 몸에는 모두 세 가지 독[三毒 : 貪ㆍ瞋ㆍ癡]이 없건만 무슨 까닭에 부처님의 그림자가 비둘기를 덮었을 때에는 비둘기는 곧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다가
제 그림자가 비둘기의 위를 덮자 비둘기는 갑자기 소리를 내어 예전처럼 두려워 떨었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아직 세 가지 독의 습기(習氣)가 다 없어지지 않았으니, 그 때문에 네 그림자가 덮었을 때에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지 않은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비둘기의 전생 인연을 관찰해 보아라. 몇 생 동안 비둘기의 몸으로 있었느냐?’
사리불이 즉시 숙명지삼매(宿命智三昧)에 들어가서 이 비둘기에 대해 관찰해 보았다.
그는 비둘기가 된 이후로 팔만 대겁(大劫)이 지나도록 항상 비둘기의 몸이 되었던 것은 볼 수 있었으나 그 이전을 볼 수가 없었다.
사리불이 삼매로부터 일어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이 비둘기가 팔만 대겁 동안 늘 비둘기의 몸이 되었던 것은 알 수 있으나 그 이전은 더 이상 알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만일 그 과거 세상을 다 알 수 없다면 시험 삼아 미래 세계를 관해 보아라. 이 비둘기는 언제쯤이나 그 몸을 해탈할 수 있겠느냐?’
사리불이 즉시 삼매에 들어가서 관해 보니 앞으로 팔만 대겁이 지나도록 역시 비둘기의 몸을 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나 그 이후는 더 이상 알 수가 없었다.
‘이 비둘기가 언제쯤 그 몸을 해탈할지 모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이 비둘기는 모든 성문(聖聞)이나 벽지불(辟支佛)이 알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있느니라.
항하(恒河)강 모래알만큼 많은 대겁 동안 항상 비둘기의 몸으로 있다가 그의 죄업이 다하면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 뒤에도 다섯 갈래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그 뒤에 사람이 되면 그렇게 오백 생을 지나서야 비로소 이근(利根)을 얻게 될 것이다.
그 때 어떤 부처님은 무량(無量) 아승기(阿僧祇) 중생을 제도하고 나서 무여열반(無餘涅槃)에 드신 뒤에 남기신 법이 세상에 존재할 때에 이 사람은 다섯 가지 계율을 지키는 우바새(優婆塞)가 되어 비구로부터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는 말을 듣고는 그 때 처음으로 마음에 서원을 내어
〈부디 부처님을 만나게 하여지이다〉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한 뒤에 삼 아승기겁을 지내는 동안 여섯 가지 바라밀을 행하여 십지(十地)를 원만하게 갖추고 부처가 되었을 때에 한량없이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리라. 그리고 나서 열반(涅槃)에 들 것이니라.’
그 때 사리불이 부처님을 향하여 참회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새 한 마리에 대해서도 그 본말(本末)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모든 인연에 대한 것이겠습니까?
저는 이제서야 부처님의 지혜가 이러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지혜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가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지언정 어려워하지 않겠나이다.’”
22.6. 정보연(定報緣)
『불설의족경(佛說義足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범지(梵志)에게 말씀하셨다.
‘세상에는 다섯 가지 일이 있는데 그것은 피할 수도 없고 또한 벗어날 수도 없느니라.
어떤 것들이 그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장차 소모되어 점점 줄어드는 법이요,
둘째는 장차 잃고 버리게 되는 법이며,
셋째는 장차 병들거나 야위게 되는 법이요,
넷째는 장차 늙고 썩어지는 법이며,
다섯째는 장차 죽어가는 법이니라.
이 다섯 가지 법이 있는 한 아무리 줄어들거나 소모되지 않게 하려고 애써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니라.’”
또 『볼설사불가득경(佛說四不可得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비구와 모든 보살들과 함께 이른 아침에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舍衞城)에 들어가서 분위(分衞 : 乞食)하실 때 사부 대중들이 다 따르고 있었고 온갖 하늘ㆍ용신(龍神)들도 각각 향과 꽃을 싸가지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위에서 따라가고 있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도안(道眼)으로 보니 같은 산업(產業)으로 살아가는 형제 네 사람이 산업을 버리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산 속에 들어가 살면서 다섯 가지 신통을 얻어 모두 다 선인(仙人)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들은 숙명[宿對]이 다가오면 목숨이 끝나리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모두 그렇게 마치는 것을 피하고자 하여 각각의 생각을 말하였다.
‘우리들의 신족(神足)으로는 날아서 마음껏 다녀도 이르는 곳마다 걸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도리어 비상(非常 : 無常)에 잡혀 신명(身命)을 잃을 위기에 닥쳐 있다.
우리는 마땅히 방편을 써서라도 환란(患難)을 면하게 해야지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그 때 한 사람은 곧바로 공중으로 높이 솟아올라 스스로 제 몸을 감추고 이렇게 말하였다.
‘무상(無常)의 적이라 한들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겠는가?’
또 한 사람은 곧 시장으로 들어가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복잡한 곳에 섞여 있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넓고 크기가 한량없는 이런 곳에서 목숨을 피하고 있으니 무상의 적이라 한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느 누구 한 사람을 잡아가겠지 굳이 나를 찾아 내겠는가?’
또 한 사람은 곧 물러나서 큰 바다에 들어가서 삼백삼십육만 리쯤 되는, 아래로는 밑바닥까지 이르지 않고 위로는 물 밖에 이르지 않는 그런 곳 중간쯤에 있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무상의 적이라 한들 어찌 나를 찾을 수 있으리.’
한 사람은 곧 사람이 없는 조용하고 깊은 산에 들어가서 그 산을 둘로 쪼개 그 안에 들어간 뒤에 도로 합해지게 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무상의 적이라 한들 어찌 내가 있는 곳을 알겠는가?’
그 때 네 사람은 각각 목숨을 피하려고 하였으나 마침내는 벗어나지 못하였으니,
허공에 숨어 있던 사람은 곧바로 땅에 떨어지되 마치 잘 익은 과일이 떨어지는 것과 같았으며,
산 속에 숨어 있던 사람은 그 산 속에서 죽어 결국은 새와 짐승의 밥이 되었고,
큰 바다 속에 들어간 이는 곧 그 때 일찍 죽어 고기와 자라의 먹이가 되었으며,
시장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마쳤다.
이에 세존께서 이와 같은 일들을 보시고서 말씀하셨다.
‘이 네 사람은 어둡고 어리석어 숙명의 적을 버리려고 하였으나 세 가지 독을 제거하지 못하고 다함이 없는 지혜인 삼달(三達)에 이르지 못하였다.
옛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누가 이 환란을 면할 수 있겠느냐?’
부처님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비록 몸을 감추어 허공에 숨고
큰 바닷 속에 잘 살고 있으며
가령 온갖 산 속에 들어가서
스스로 그 몸을 감추려고 하는 등
죽지 않는 곳을 구하려고 애썼으나
일찍이 안정(安定)을 얻을 수가 없었나니
그런 까닭에 정진(精進)하고 배워야 하리.
이 몸이 없어져야 비로소 편안하게 되리.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는 네 가지 일이 있으니 그것은 얻을 수 없는 일이니라.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나이가 어려서 얼굴색이 곱고 빛나며 머리털은 검고 이는 희며 형체와 모습에 광택(光澤)이 있고 기력이 단단하고 강한 것이며,
행보(行步)와 온갖 동작, 그리고 출입(出入)이 자재로운 것이요,
수레에 오르거나 말을 타고 다니면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숭배하여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 아침에 갑자기 늙어지면 머리는 희어지고 이도 빠지며 얼굴은 주름살이 생기고 피부도 늘어나며,
몸은 무거워서 지팡이를 의지해야 하고 기운이 적어져서 신음하며 항상 젊은 채로 늙어지지 않으려고 해도 끝끝내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니라.
둘째는 신체는 강건(强健)하고 골수는 강하고 튼튼하며 걸음걸이는 짝할 만한 사람이 없고 음식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며, 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여 세상에 비할 데 없다고 말하며,
활을 당기고 화살을 손으로 뽑으며 온갖 무기를 잡고서 위협하고 해칠 때는 곡직(曲直)을 살펴보지 않고 꾸짖고 나무라는 말이 입 안에 가득하고 호걸스럽고 강하다고 말하면서 스스로 헤아리되
〈나는 쇠퇴하거나 소모되지 않는다〉고 하다가
갑자기 질병에 걸리면 평상에 엎드린 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으며,
몸이 아프기는 마치 매를 맞은 것 같고
귀ㆍ코ㆍ입ㆍ눈으로 는 소리ㆍ냄새ㆍ좋은 맛ㆍ섬세하고 매끄러운 감촉을 느끼지 못하며,
앉고 서는 데 남의 힘을 빌려야 하고 더러운 물이 저절로 흘러 나오니,
몸이 그 위에 누워 온갖 걱정을 하는 것이란 비유하기조차 어렵다.
설사 이런 일들을 면하여 항상 편안하게 병이 없기를 바라지만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셋째는 오래 살기를 구하여 끝없이 많은 세상을 살고 싶어하지만 병을 얻어 죽느니라.
목숨은 이미 너무도 짧건만 만세(萬歲)를 염려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수명은 짧고 근심만 많느니라.
덧없는 것임을 살피지 못하고 다섯 가지 하고 싶은 욕망을 제 마음대로 하며,
마음과 뜻을 방일(放逸)하게 하여 살생ㆍ도둑질ㆍ음행ㆍ이간질하는 말ㆍ악한 말ㆍ거짓말ㆍ꾸며대는 말ㆍ탐냄ㆍ질투ㆍ삿된 견해를 저지른다.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고 스승과 친구에게 순종하지 않으며,
존장(尊長)을 업신여기고 반역(反逆)과 무도(無道)한 짓으로 호걸스럽고 부유하기를 희망하여 오래도록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거룩한 도를 헐뜯고 비방하는 등 간사하기 비할 데 없으며,
천기(天氣)를 들이마시고 혼자 걸으며 세상의 영화만을 사모하고 하늘과 땅의 안팎이 생긴 까닭을 알지 못하며,
네 가지 요소[四大]가 인연에 의하여 합해져 이룩된 몸이 마치 요술장이[幻師]와 같음을 분별하지 못한다.
예전과 오늘이 생긴 세상을 깨닫지 못하고 창도(倡導)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느 곳으로부터 생겨났는지 죽으면 어느 곳으로 돌아가는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마음은 하늘과 땅에 두고 이것은 내 것이라고 말한다.
비상(非常 : 無常)이 앞에 이르면 바람에 불리는 구름과 같나니,
오래 살기를 바라지만 목숨을 홀연히 마침으로써 자재(自在)할 수 없다.
비록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마침내 얻은 수가 없는 것이니라.
넷째는 부모ㆍ형제와 집안 친척ㆍ친구ㆍ선지식ㆍ은애(恩愛)ㆍ영락(榮樂)ㆍ재물(財物)ㆍ부귀(富貴)ㆍ관작(官爵)ㆍ봉록(俸祿) 따위로 수레를 타고 유람하며,
처첩(妻妾)과 자식들에게 스스로 교만하고 방자하게 굴며, 음식을 마음대로 먹으며
아랑(兒郞)과 하인[業使]들이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림자만 보고도 달려와 아첨할 때면 뭇 사람들을 경멸(輕蔑)하고 자신과 짝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헤아리며,
종과 손님과 집에서 부리는 말을 꾸짖되 짐승과 축생처럼 대하며,
출입이 자재(自在)하여 시기와 법도가 없고 앞뒤를 살피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권속들과 부리는 하인의 무리를 향상 마음대로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혹 전생에 지은 업이 갑자기 이르게 되면 끓는 물에 녹는 눈과 같이 되느니라.
그러면 마음엔 곧 두려움이 생겨 환란에서 구제해 주기를 바라지만 어찌 원하는 대로 될 수 있겠는가?
아아, 목숨이 한 번 끊어지면 혼신(塊神)만 혼자 떠날 뿐, 부모ㆍ형제ㆍ처자ㆍ친족ㆍ친구ㆍ스승ㆍ은애하는 권속들이 다 스스로 혼자만 머물러 있고 관작ㆍ재물ㆍ종복들은 각기 흩어져서 별처럼 달아나나니,
죽지 않기를 구하고자 하나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천지(天地)가 성립된 이래로 이 괴로운 네 가지 어려운 환란을 면할 수 없나니,
이 네 가지 고통 때문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느니라.’
22.7. 부정연(不定緣)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정법(不定法)을 잘 안다는 것은 모든 법이 미처 생기기 전에는 분별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느니라.”
『불분별업경(佛分別業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몸으로 착한 업(業)을 실행하고 입으로 착한 업을 실행하며 뜻으로 착한 업을 행하지만,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지옥으로 떨어진다.
또 어떤 사람은 몸으로 악한 업을 실행하고 입으로는 악한 업을 실행하며 뜻으로 악한 업을 실행하지만,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치면 천상(天上)에 태어난다.’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무슨 까닭에 그러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선세(先世 : 전생)에 지었던 죄와 복의 인연이 이미 무루익어 있고 현재 세계의 죄와 복의 인연은 아직 무루익지 못했거나
혹은 목숨을 마치려 할 때에 임박하여 바른 소견과 삿된 소견과 착하고 악한 마음이 일어나서 목숨을 마치려는 마음에 드리울 때 그 마음의 힘이 크기 때문이니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말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출현한다.
어떤 것이 그 네 종류의 사람인가?
혹 어떤 사람은 먼저는 괴롭다가 나중엔 즐거우며,
혹 어떤 사람은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엔 괴로우며,
혹 어떤 사람은 먼저도 괴롭고 나중에도 괴로우며,
혹 어떤 사람은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즐겁다.
어떤 사람이 먼저는 괴롭다가 나중엔 즐거운 사람인가?
즉 어떤 사람은 비천(卑賤)한 집안에 태어나 의복과 음식이 충분하지 못했지만 삿된 소견이 없어서 옛날에 보시했던 공덕의 과보로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게 된다.
그렇지만 보시의 덕을 짓지 않았기에 항상 빈천(貧賤)함을 만나 옷과 음식이 없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참회하여 과거에 지었던 일들을 고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분(餘分)을 고루 남에게 나누어 준다.
그가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면 재물이 많고 보배가 넉넉하여 부족한 것이 전혀 없나니,
이런 사람을 먼저는 괴롭다가 나중엔 즐거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에는 괴로운 사람인가?
혹 어떤 사람은 호족(豪族)의 집안에 태어나서 옷과 음식이 충분하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항상 삿된 견해를 가지고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일으켜 그 견해와 함께 서로 호응하여 나중에는 지옥 중에 태어나게 된다.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가난하고 궁색한 집안에 태어나 의복과 음식이 충분치 못하니,
이러한 사람을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엔 괴롭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먼저도 괴롭고 나중에도 괴로운 사람인가?
혹 어떤 사람은 먼저는 빈천(貧賤)한 집안에 태어나 의복과 음식이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나 삿된 소견을 품고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와 서로 호응하여 나중엔 지옥에 태어나게 된다.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나더라도 지극히 빈천하여 의복과 음식이 충분하지 못하나니,
이러한 사람을 먼저도 괴롭고 나중에도 괴롭다고 말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즐거운 사람인가?
혹 어떤 사람은 먼저 부귀한 집안에 태어나서 재물도 많고 보배도 넉넉하다.
그런데도 삼존(三尊)을 공경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항상 보시를 실천하여 나중에 사람이나 천상에 태어나 항상 부귀를 누려 재보가 넉넉하게 되나니,
이런 사람을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즐겁다고 말하느니라.’
그 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중생은 먼저는 괴롭다가 나중엔 즐거우며,
혹 어떤 중생은 먼저는 즐겁다가 나중엔 괴로우며,
혹 어떤 중생은 먼저도 괴롭고 나중도 괴로우며,
혹 어떤 중생은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역시 즐겁다.
만약 사람의 수명이 백 살을 살 수 있는 세계에서 정녕 십십(十十 : 百歲)을 다 산다고 할 경우
혹 어떤 사람은 백 살을 사는 동안 온갖 공덕을 짓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백 살 동안 온갖 악한 법을 짓기도 한다.
그들은 또 다른 때에 혹 겨울 동안은 즐거움을 누리다가 여름 동안엔 괴롭기도 하고,
혹 어떤 사람은 젊을 때엔 복을 짓고 어른이 되었을 때엔 죄를 짓기도 한다.
그리하여 뒷 세상에 태어나면 젊을 때엔 복을 받다가 어른이 되었을 때엔 죄를 받는다.
또 젊을 때엔 죄를 짓고 어른이 되어서는 복을 지으면
다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 젊을 때엔 죄를 받고 어른이 되었을 때엔 즐거움을 누린다.
혹 젊을 때에도 죄를 짓고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적에도 죄를 지으면,
그 사람은 니중에 태어날 때 먼저도 괴롭고 나중에도 괴롭다.
또 어떤 이가 젊을 때에도 복을 짓고 어른이 되었을 때에도 또한 복을 지으면,
그 사람은 나중에 태어날 때에 먼저도 즐겁고 나중에도 또한 즐겁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세상에는 네 종류의 사람이 출현하느니라.
어떤 것이 그 네 종류인가?
혹 어떤 사람은 몸은 즐겁지만 마음은 즐겁지 않은 이도 있고,
혹 어떤 사람은 마음은 즐겁지만 몸은 즐겁지 않은 이도 있으며,
혹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이 다 즐거운 이도 있고,
혹 어떤 사람은 몸과 마음이 다 즐겁지 않은 이도 있다.
어떤 사람이 몸은 즐겁지만 마음은 즐겁지 않은 사람인가?
그는 복을 지은 범부(凡夫)로서 의복ㆍ음식ㆍ침구ㆍ의약 등 네 가지 일의 공양에 모자람이 없지만, 다만 세 갈래 악한 세계의 괴로움은 면하지 못하나니,
이것을 몸은 즐거우나 마음은 즐겁지 않다고 말하느니라.
어떤 사람을 마음은 즐거우나 몸은 즐겁지 못하다고 하는가?
이른바 아라한(阿羅漢)으로서 공덕을 짓지 않았으므로 네 가지 공양을 하는 가운데 스스로 이 공양물을 마련하지는 못하지만, 다만 세 갈래 악한 세계의 괴로움만은 면하나니,
이것을 마음은 즐거우나 몸은 즐겁지 못하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이 몸과 마음이 다 즐겁지 못한 사람인가?
이른바 범부(凡夫)로서 공덕을 짓지 않았으므로 네 가지 사물을 공양하지도 못하고 따라서 세 갈래 악한 세계의 괴로움도 면하지 못하나니,
이것을 몸과 마음이 다 즐겁지 못하다고 말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몸과 마음이 다 즐거운 사람인가?
이른바 공덕을 지은 아라한으로서 네 가지 일의 공양이 조금도 모자람이 없고 또한 세 갈래 악한 세계의 괴로움도 면하나니,
이것을 몸과 마음이 다 즐겁다고 말하느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