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제6권
4.6. 번뇌심소의 양상(1)
그러면 번뇌심소의 양상은 어떠한가?123)
게송(『삼십송』의 제12)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번뇌심소는 탐(貪)ㆍ진(瞋)ㆍ치(癡)ㆍ만(慢)ㆍ의(疑)ㆍ악견(惡見)이다.124)
논하여 말한다.
이 탐 등 여섯 가지는 체성이 근본번뇌에 포함되기 때문에 번뇌심소라고 이름한다.
[탐(貪)심소]
무엇을 ‘탐(貪)심소’125)라고 하는가?
윤회하는 삶[有]과 그 원인[有具]에 대해서 탐착함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무탐(無貪)심소를 장애하여 고통을 일으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애착의 세력에 의해 5취온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진(瞋)심소]
무엇을 ‘진(瞋)심소’126)라고 하는가?
고통[苦]과 그 원인[苦俱]에 대해서 미워하고 성내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무진(無瞋)심소를 장애하여 불안과 악행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진(瞋)심소는 반드시 몸과 마음을 매우 괴롭혀서 모든 악업을 일으키게 하는 불선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치(癡)심소]
무엇을 ‘치(癡)심소’127)라고 하는가?
모든 본질과 현상에 대해서 미혹하고 어두운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무치(無癡)심소를 장애하고 모든 잡염법의 의지처가 됨을 업으로 삼는다.
무명에 의해서 의(疑)ㆍ삿된 정(定)ㆍ탐(貪) 등의 번뇌와 수번뇌 업을 일으켜서 능히 다음 생의 잡염법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만(慢)심소]
무엇을 ‘만(慢)심소’128)라고 하는가?
자기를 믿어 남에 대해서 높이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불만(不慢)을 장애하여 고통을 일으킴을 업으로 삼는다.
만심소가 있는 사람은 덕ㆍ덕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마음이 겸손하지 않다. 그리하여 생사에 윤회하는 일이 끝이 없고 모든 고통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 만(慢)을 구분하면 일곱 가지129) 또는 아홉 가지130)가 있다.
세 가지 품류와 자아ㆍ덕의 다섯 곳에서 생겨난다.131)
일체가 모두 견도ㆍ수도에서 단멸되는 것에 통한다.
성스러운 지위에서도 아만이 현행할 수 있다.
만(慢)의 종류도 이에 근거해서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이 역시 과실이 없다.
[의(疑)심소]
무엇을 ‘의(疑)심소’132)라고 하는가?
모든 진리[諦]와 논리[理]에 대해서 결정을 미루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불의(不疑)의 선품을 장애함을 업으로 삼는다.
결정을 미루는 곳에서는 선(善)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33)
이 의심소는 혜(慧)심소를 자체로 한다.
결정을 미루어서 간택하는 것을 의심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접두어 비(毘, vi)가 혜[末底, mati]를 돕는 것이 의심의 뜻이기 때문이다.
혜[末底]와 반야는 뜻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134)
다음과 같은 견해가 있다.135)
이 의(疑)심소는 별도로 자체가 있다. 혜(慧)심소를 결정하지 않게 하므로 곧 혜(慧)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가사지론』에서 여섯 가지 번뇌심소를 설명하는 중에서
“악견(惡見)은 세속유(世俗有)이다. 곧 혜(慧)심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실유이다. 별도로 체성이 있기 때문이다”136)라고 한다.
접두어 비(毘, vi) 혜[末底, mati]를 도우므로 혜(慧)를 고집하여 의(疑)심소라고 말하면, 접두어 비(毘, vi)가 지혜[若南, jna]를 돕기 때문에 지혜를 식(識, vijna)이라고 해야 한다.137) 계(界:性)는 돕는 힘에 의해 뜻이 문득 바뀐다. 따라서 이 의심소는 혜(慧)를 자체로 삼지 않는다.
[악견(惡見)심소]
무엇이 ‘악견(惡見)심소’138)인가?
모든 진리와 논리에 대해서 뒤바뀌게 추측하고 헤아리는 잡염의 혜를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바른 견해를 장애하여 고통을 초래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악견은 고통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123)
다음에 여섯 가지 번뇌심소에 관하여 해설한다.
124)
번뇌심소 여섯 가지를 밝힌다. 모든 번뇌의 근간인 근본번뇌를 일으키는 심소이다.
125)
탐(貪, rāga)심소는 ‘탐욕’, 즉 애착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 특히 윤회하는 삶과 그 원인인 5온 나아가 열반에 대해서까지 애착심을 일으킴으로써 고통을 자초한다.
126)
진(瞋, dveṣa)심소는 ‘성냄’, 즉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불쾌감의 심리이다. 고통과 그 원인에 대해 증오심을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몸과 마음을 열뇌하게 해서 갖가지 악업을 짓게 만든다.
127)
치(癡, moha, avidhya)심소는 ‘어리석음’, 즉 특히 현상계[事]와 그 본질[理]의 진리(연기ㆍ무아ㆍ중도 등)를 모르는 무명의 심리작용이다. 여기서 의(疑)ㆍ사견ㆍ탐(貪) 등 여러 번뇌들이 일어난다.
128)
만(慢, māna)심소는 ‘거만’, 즉 자신을 높이고 타인을 얕보며 나아가 덕 높은 성자에게도 자신을 낮추려 들지 않는 심리작용이다.
129)
일곱 가지 거만[七慢]은, 만(慢)ㆍ과만(過慢)ㆍ만과만(慢過慢)ㆍ아만(我慢)ㆍ증상만(增上慢)ㆍ비열만(卑劣慢)ㆍ사만(邪慢)이다. 만(慢)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 대해서 우월감을 갖고 잘난 척하는 것이다. 과만은 자신과 동등한 자격의 사람에 대하여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만과만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아만은 5취온을 나ㆍ나의 것으로 집착하여 교만하며, 여기서 자기 능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게 되는 것이다. 증상만은 자기를 가치 이상으로 보는 것이다. 비열만은 겸손하면서도 자만심을 갖는 것이다. 사만은 덕이 부족한 사람이 자신을 덕 높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삼보를 경시하는 것이다.
130)
아홉 가지 거만[九慢]은, ①아만(我慢), ②아등(我等), ③아열(我劣), ④유승아(有勝我), ⑤유등아(有等我), ⑥유열아(有劣我), ⑦무승아(無勝我), ⑧무등아(無等我), ⑨무열아(無劣我)이다. 이 9만의 자체[體]에서 7만의 만(慢)ㆍ과만(過慢)ㆍ비만(卑慢)을 낸다. 즉 ③⑤⑦이 만(慢)을, ①⑥⑧이 과만을, ②④⑨가 비만을 낸다.
131)
하품(下品)과 중품(中品)의 일분(一分)에서 만(慢)이, 중품과 상품의 일분에서 과만(過慢)이, 상품의 일분에서 만과만(慢過慢)이, 상품의 일분에서 비만(卑慢)이, 아처(我處)에서 아만(我慢)이, 덕처(德處)에서 증상만(增上慢)과 사만(邪慢)이 생겨난다.
132)
의(疑, vicikitsā)심소는 ‘의심’하는 작용, 특히 4성제 등의 진리를 의심하여 참으로 그러하다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심리이다. 불신(不信)이 아니라, 불설(佛說)을 신봉하지만 그 교설의 내용ㆍ중요성을 애써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얼버무려 둔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 진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강한 동기ㆍ선(善)심소가 생기될 수 없다.
133)
대승 이사(異師)의 견해이다.
134)
mati(末底)는 혜(慧)의 뜻이다. 이에 접두어 vi(毘)를 덧붙여 vimati로 하면 의심[疑]의 뜻이 된다. 그러므로 혜(慧, mati)와 반야(般若, praj)는 뜻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135)
호법의 정의이다.
136)
『유가사지론』 제55권(『고려대장경』 15, p.1003上:『대정장』 30, p.603上).
137)
jna(若南)는 지혜[智]의 뜻이다. 여기에 접두어 vi를 붙여서 vijna(毘若南)로 하면 식(識)의 뜻이 된다. 그러나 식의 자체가 곧 지혜는 아닌 것과 같이, 의(疑)심소의 자체가 곧 혜(慧)심소는 아니다.
138)
악견(惡見)심소는 그릇된 견해를 일으키는 심리작용이다. 특히 인습에 사로잡혀서, 4성제 등의 진리를 오해하고 인과법을 무시한다. 이것은 별경심소 중의 혜(慧) 심소의 일부분인 염오성이 작용된 것이다. 악견은 작용의 차이에 따라 유신견ㆍ변견ㆍ사견ㆍ견취견ㆍ계금취견의 다섯 종류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