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어둠의 존재
단서 1.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오대양(주) 구내식당 천장에서 32구의 시체가 발견된다.
수사 결과, 오대양 대표 박 씨는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였다.
그리곤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교의 교주로 행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 씨는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시설에 수용하였다.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린 뒤였다.
단서 2.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이 모 목사가 휴거를 내세우며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다.
당시 사회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1991년에 중동지역 걸프전이 있었다.
길거리에선 휴거나 적그리스도 등에 대한 사이비 교회 전단이 돌아다녔다.
거기에다가 노스트라다무스의 1999년 세상 멸망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단서 3.
요한계시록에 다음과 같은 예언이 있었다.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666이니라.’
* * *
‘월월!’
초승달이 뜬 겨울밤이었다.
이곳은 지리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산골이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곧 집 주위는 정적만 흘렀다.
7살 먹은 최림의 가족은 단잠에 빠져있었다.
최림은 다락방, 부모님은 1층 거실에서 잠들어 있었다.
“오줌 마려….”
최림은 소변이 마려워 눈을 떴다.
그런데 그때 문이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응? 누구지?’
건장한 사내 그림자 셋이 현관문으로 들어왔다.
희미한 달빛이 거실 안을 비추고 있었다.
‘헉.’
깜짝 놀란 최림은 이불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스윽.
사내 중 한 명이 엄마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잠결에 이상한 느낌이 든 엄마가 사내를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다.
“뭐요? 뭡니까!”
엄마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조용, 조용히 해! ”
놈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 소리에 아빠도 깼다.
“누구요?”
아빠는 용감했다.
괴한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아빠는 손으로 칼끝을 잡았다.
그런데 이건 무모한 행동이었다.
나머지 두 명이 달려들어 아빠를 무차별 폭행했다.
퍽! 퍽!
“아악.”
“그만둬요!”
이어 말리던 엄마까지도 놈들에게 폭행당했다.
그때 어둠 속에서 칼이 빛났다.
푸욱.
칼날이 아빠를 찔렀다.
“억.”
“여보!”
칼날이 다시 번뜩였다.
이번에는 엄마의 몸에 칼날이 박혔다.
푹.
“악!”
최림이 보는 앞에서 놈들은 부모님을 죽이고 있었다.
칼을 든 놈은 한번이 아니라 수십 차례 번갈아 가며 부모님을 찔렀다.
‘엄마, 아빠….’
하지만 두려움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입을 틀어막을 뿐이었다.
그런데 순간, 최림의 눈에 이상한 게 보였다.
칼을 찌르는 놈 뒤에 시커먼 물체가 있었다.
끈적한 느낌의 타액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을 조종하며 살인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안돼!’
최림은 완전히 몸이 얼어붙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최림은 사람을 조종하고 있는 그 존재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유난히 붉은 머리에 여우 같은 얼굴이었다.
이내 부모님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후, 놈들은 부모님의 이마에 뭔가를 새겼다.
기호인지 글인지 잘 몰랐지만,
후에 최림은 알게 되었다.
그건 숫자, ‘666’이었다.
부모님을 찔렀던 놈이 다른 사내들에게 명령했다.
“거실과 안방을 샅샅이 살펴봐. 남은 놈이 또 있는지”
놈이 두목인 것 같았다.
할짝.
놈은 칼끝에 묻은 피를 핥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하필이면 다락방에 있는 최림과 눈이 마주쳤다.
섬뜩한 눈빛이었다.
최림은 얼른 뒤로 물러섰다.
놈이 자신마저 죽이러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림은 손을 더듬어 닥치는 대로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다.
마침 연필을 깎던 커터칼이 잡혔다.
거실에서 놈들의 대화가 들렸다.
“어디가?”
“위에 누군가 있어.”
그 몇 초가 몇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최림은 커터칼을 손에 꽉 쥐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최림은 제법 용감했다.
저벅, 저벅 ….
잠시 후 다락방 앞에 놈이 서 있었다.
“아직 꼬마구나. 그런데 어쩌지? 넌 유일한 목격자야.”
놈은 비열하게 웃었다.
이번에는 놈을 조종하던 그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놈은 손을 뻗어 최림을 잡으려 했다.
동시에 최림은 있는 힘을 다해 커터칼로 놈의 손목을 그었다.
촤악.
“아악! 이 어린 놈의 새끼가!”
피가 뚝뚝 흐르는 손목을 부여잡은 놈은 화가 치밀었다.
최림은 벌떡 일어나 뒷걸음쳤다.
뒤에는 창문이 있었다.
여차하면 최림은 이곳으로 뛰어내릴 셈이었다.
“이리 와!”
하지만 최림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놈은 전광석화처럼 날쌘 몸놀림으로 최림을 낚아챘다.
그리고는 어린 최림에게 무차별적인 폭행을 가했다.
퍼억! 퍽. 퍽!
“큭.”
이 와중에서도 최림은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놈의 팔을 입으로 깨무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반항했다.
결국, 놈은 칼을 높이 들었다.
번쩍
달빛이 비친 칼에서 빛이 났다.
‘마지막이구나.’
눈앞에서 부모님이 죽어갔는데, 복수는커녕 자신마저 죽는 게 안타까웠다.
“잘 가거라. 꼬마야.”
그때 창문이 갑자기 열렸다.
덜컥.
빛과 같은 속도로 무언가 쑥, 하고 들어왔다.
‘와장창’
최림이 눈을 떴을 땐, 놈은 저만치에 나가떨어져 있었다.
놈의 앞엔 초로의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바닥에서 겨우 일어난 놈을 사정없이 팼다.
퍽퍽퍽!
그러자 놈의 몸에서 기괴한 그 존재가 튀어나왔다.
“그만해! 한때 동종업자끼리 이래도 되는 거야?”
최림은 사람의 몸에서 그 존재가 튀어나오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빨리 꺼져! 마침 지나가는 길이니, 오늘은 이 정도만 하지.”
“좋다. 나 역시 앞으로는 네놈의 무례를 용납하지 않겠다.”
그놈은 재차 남자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그만 철수! 빨리 나가자.”
범인들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이 풀린 최림은 그대로 꼬꾸라졌다.
저벅저벅.
범인들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최림은 그대로 고꾸라졌다.
털썩.
최림의 의식이 희미해졌다.
병원이었다.
최림은 일주일 후에 비로소 깨어났다.
침대 앞엔 외삼촌이 서 있었다.
최림은 혈육을 보자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어린 것이 험한 꼴을 봤다.”
외삼촌은 최림은 꼭 껴안았다.
“엄마, 아빤?”
“고이 장례를 치렀어. 두 분 다 좋은 곳으로 가셨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최림은 그날 일이 하나도 잊히지 않았다.
번뜩이는 칼, 무시무시한 공포 그리고 악인들의 잔혹한 범행 등 ….
“우리 복실이는?”
“죽었어.”
복실이는 최림이 가장 아끼는 강아지였다.
어릴 때 아빠와 함께 멧돼지 사냥할 때면 항상 데리고 갔던 친구였다.
“그놈들이 그랬지?”
“응.”
최림은 이를 악물었다.
부모님과 복실이를 앗아간 그놈들을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최림은 자신을 도와준 초로의 남자가 떠올랐다.
“그 아저씨는 어떻게 되었어?”
“응? 누구?”
외삼촌은 최림의 말에 멀뚱멀뚱 눈알만 굴렸다.
“날 도와주었던 그분 말이야.”
그런데도 외삼촌은 정말 모른다는 둥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분은 도대체 누구지?’
최림은 언젠가 꼭 그 사람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최림은 퇴원했다.
갈 곳이 없으므로 근처에 사는 외할머니댁으로 가야 했다.
외할머니와 외삼촌의 살뜰한 보살핌이 있었다.
하지만 최림은 그때부터 말이 없는 아이로 변해버렸다.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최림은 골방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않았다.
어두운 방에서 늘 아빠, 엄마 생각으로 울기만 했다.
봄이 되자 최림은 읍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반 배정이 끝나고 교실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 재잖아.”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저 애만 살았을까?”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재는 귀신이 붙었다잖아. 그래서 살아남았다고.”
최림은 몇몇 아이들이 그때 그 사건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무런 내색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옆에 몹시 예쁜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안녕? 난 수애야. 넌?”
알 것 같았다.
그 사건이 있기 전, 엄마랑 읍내 방앗간에 갔을 때 이 아이를 보았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이 기억이 났다.
‘저 여자아이가 방앗간 주인 딸이야. 참 곱고 예쁘지? 아버지가 이 일대 천석꾼이거든. 그러니 참 곱게 컸어.’
최림은 아무런 대꾸 없이 자리에 가만 앉았다.
“애! 네 이름을 물었잖아. 근데 왜 말이 없어?”
양 머리를 곱게 땋은 수애가 눈을 반짝이며 최림을 쳐다보았다.
최림이 한마디 했다.
“넌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 이상하게 안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