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달-2
장의순
솜사탕 같은 밤이 자꾸자꾸 몸에 들어붙어
연신 떼어내어 입에 넣는다
먹어도 먹어도 배 부르지 않고
기분도 좋아 손을 펴들어 정신을 모으니
방금 떼어먹은 솜사탕 같은 달이
창 너머로 살며시 찾아와서
하얗게 웃고 있었다
그는 한때 나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그때 나는 몽유병자처럼
밤마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100미터 쯤 떨어진 옹달샘에서
나는 그를 물동이에 퍼 담고
꼬불꼬불한 산동네 길을 춤을 추며 내려와서
커다란 드럼통에 쏟아 붓곤 했다
그와 나의 봄날밤은 싱그러웠다
그는 변함없이 밤마다 나를 찾아왔지만
어느날 나는 지붕 밑으로 숨어버렸다
내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가 밤마다 나를 찾는다는 사실까지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나는 이기주의자였다
내가 슬플 때나 외로울 때만 그를 찾았다
그럴 때도 그는 언제나 나를 반겨 주었다
오늘밤도 그는 옛날처럼 젊고 싱그럽다
지금 그는
내 눈가에 진 주름살도
그를 향한 미소의 무늬로 알고 있을게다. <200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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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순 시인
새벽 달-2
알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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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9 16:18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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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 오래된 시도 구경합니다.//
23전의 글입니다. 그때가 한참 시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 때 입니다. 추억의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