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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기 스크랩 금남정맥-6 (배티재~백령고개)
靑 鹿 추천 0 조회 23 09.08.04 01: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끝없는 도전~금남정맥 여섯번째 발걸음

[배티재~백령고개 2004년 2월25일 수요일]

 **Virgin Islands .... Cusco**

날씨

흐림 (금산 낮 최고기온 영상11도)

동행

R선배, L선배, L형, 상준,

거리

도상(13.2Km) 실제거리(만보계측정치 14.1Km . 23,099걸음)

시간

보행 4시간 02분 + 휴식, 식사 1시간 24분 = 총 5시간 26분

경비

대전역~서부TM(택시) 4,000 + 서부TM~대둔산(버스) 11,500 + 마전~대전(좌석버스) 6,500 + 뒷풀이 62,000 + 도시락 및 간식. 기타 38,000 = 122,000원

주 요 구 간 산 행 기 록

(배티재~돌메기고개~인대산~622.7m봉~백령고개)

주요경유지점

시각

기사

배티재

10:08~13

도착~준바~시작

592m봉 갈림봉

10:54~11:02

휴식(3,760걸음)

파란 그물망 인삼밭

11:29

돌메기고개 (635지방도)

11:37~47

휴식(3,859걸음)

시멘트길 고갯마루

11:58

오항동 안부

12:14

억새공터

12:27

첫 헬기장

12:35

인대산(661.8m)

12:49~13:32

중식(4,987걸음)

헬기장

13:48

622.7m봉

14:11~19

휴식(3,770걸음)

473m봉

14:56~15:11

휴식(3,950걸음)

능선분기봉

15:26

백령고개

15:39

산행 끝(2,773걸음)


☞배티재까지의 교통정보
1) 대전고속터미날 앞 또는 대전역은 대한통운 건너편, 서대전역하차시는 계룡병원 건너편에서 공히 841입석버스로 서부TM~에서 하차
2) 대전역에서 택시로 서부TM까지는 약3,500원정도
3) 서부TM~진산.대둔산 버스시각
07:45 09:30 11:30 13:20 15:30 18:20

4) 대전서부터미널 전화번호(T.042-584-1616 자동안내씨스템)

@@ 배티재는 버스가 정차하지 않음

☞백령고개~금산, 대전까지의 교통정보
1) 백령고개~진산, 또는 금산까지 택시이용 (15,000~20,000원)
※진산택시(1대뿐)손덕열기사 (HP : 011-428-9098))
2) 진산~대전간 버스 이용

3)금산에서 각방면 버스(대전은 5분에 1대)
☞대둔산주차장~서부TM까지의 교통정보(1시간소요)

1) 대둔산터미널에서 16:20 19:15

2) 진산택시 1대(011-428-9098)

3) 배티재는 버스가 정차하지 않으나 기사에게 사전 부탁하면 대부분 세워줌


배티재까지의 스케치

"무리가 않을까?"라며 우려했던 대둔산구간을 무사히 마치기는 하였지만 완치상태는 아니기에 그 뒤 단골 한의원에서 침을 두번맞아서인지 다리상태는 매우 좋아졌다.

아직도 종아리에 힘이 가해지면 조금 통증이 오기는 하지만 오늘 구간은 비교적 짧으면서도 고도차도 심하지 않아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근무여건등을 고려하니 배티재에서 피암목재까지 어차피 한번에 마칠 수 없는 구간이므로 불가불 두번에 나누어 진행해야 하는데 차량회수. 대중교통을 고려하며 산행거리의 균분을 모색하였으나 뾰족한 묘책이 서지 않는다.

다음의 제7구간이 조금은 긴 거리라고는 하지만 결국 오늘 산행은 백령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기로 하기로 하고 대전에서 배티재까지는 서부터미널에서 09:30분발 버스. 그리고 귀로는 백령고개도착시간에 맞춰 진산택시 또는 금산택시를 호출해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일기예보는 옅은 황사에 구름많음에 바람도 다소 강할 것이라고는 하지만 비올 확율이 30%정도라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R, L선배 그리고 상준아우를 태운 택시가 서대전 육교밑에 정차하고 트렁크에 재빨리 배낭을 싣고 서부터미널에 도착하니 09:15분이다.

승차권을 사며 버스시각표를 바라보니 슬며시 미소가 흐른다.

"저 시각표를 찍고 줌을 해제하지 않아 5구간의 사진을 가이아님한테서 빌려왔지?..."

"PC에 저장한 사진을 확인할 때 그토록 황당 허무하게 만든 그 순간도 시일이 지나니 벌써 미소로 바뀌다니.."

대둔산행 버스는 배티재에서 정차하지 않기 때문에 대둔산주차장부터 배티재까지는 잰걸음으로 걷더라도 15분이상은 족히 걸어야 한다.

기사와 커피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배티재에서 잠시 정차해 줄 것을 부탁할 속셈으로 버스 밖에서 서성이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28분을 넘어가고 있다.

"다음 수단을 강구해 보자"

황급히 대합실로 갈려가 담배 한갑을 사가지고 나오는데 그제서야 차에 오르는 기사의 모습이 보인다.

시내를 벗어나기 전, 신호대기 중에 기사에게 담배를 건네며 배티재에서 30초만 정차해 줄 것을 당부하니 흔쾌히 승낙해준다.

복수와 진산을 지나 구불구불 오르던 버스가 배티재에 정차하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깨 재빨리 버스에서 내린다.(10:08)

행락철이 아닌 대둔산 휴게소는 차량 한대 보이지 않아 썰렁하기만 하고 때 맞춰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바람이 제법 세차게 볼을 스치지만 차겁게 느낄 수 없음은 이미 봄은 가깝게 다가섰음이리라.

도로를 횡단하여 배티재 전적비 앞에서 산행준비를 마친다.

 

배티재~592m봉 분기봉(도상:2.0km 실제:2.3km 만보계:3,760보)

전적비 뒷편의 절개면을 바라보자 우측으로 2장의 표지기가 보인다. (10:13)

▼전적비의 뒷편 우측의 절개면으로

 

▼오대산갈림봉에서 배티재까지의 정맥

 

절개면을 따라 오르는 길의 좌측으로 시멘트수로가 비스듬히 내려오고 가파른 절개면 위에 올라서면 넓은 길이 나온다.

다 ?은 통나무계단은 간신히 그 형체를 유지하고 산행시작 5분만에 약간의 공터가 있는 첫 봉우리에 올라서자 대둔산과 천등산 일대 그리고 정맥분기봉에서 오대산으로 이어가는 산줄기의 흐름이 한 눈에 관찰된다.(10:18)

▼첫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대둔산 전경과

▼천등산

 

곧 잘 가꿔진 묘지 1기를 지나고 SK텔레콤 대둔산 기지국의 철탑을 지나며 좌측에는 왼쪽 바로 아래에 진산휴양림 가는 길이 보인다.

SK텔레콤 대둔산 기지국을 지나 5m가량 진행하면 바로 눈 앞에 작은 봉우리와 몰탱크가 보이지만 정맥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꺾어 진행해야 한다.

산책로처럼 넓은 길이 이어지다 사거리 안부에 도착하니 좌측으로는 임도와 맞닿은 듯 하고 우측에 기동이나 재실부락으로 가는 듯한  제법 뚜렷한 사면길이 서서히 비탈면을 따라 산아래를 향하고 있으며 우리가 가야할 길은 직진이다.(10:26)

왼쪽 아래로 임도로 보이는 넓은 길이 정맥마루금의 바로 밑에서 평행선을 그으며 따라가고 이후 임도와 통하는 길을 몇 번 만나지만 직진의 마루금만 따라가면 된다.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고(10:29)

약 4분가량 가파른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허름한 묘지 1기가 있는 공터가 올라서고 비로소 쟈켓을 벗어 배낭에 걸친 다음 가뿐 숨을 몰아쉬는 길이 3~4분가량 더 이어진다.

가파른 오르막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완만한 능선이 나타나지만 곧 우측의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가게 된다.(10:38)

이어지는 완만한 봉우리에서 길은 왼쪽으로 꺾어 지는데 몇 일전 메마른 대지를 촉촉히 적셔준 단비로 산의 어디에도 눈의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부드러운 산길은 새 생명을 싹틔우도록 힘을 불어넣고 있으니 나 또한 덩달아 새 기운을 얻는 느낌이다.

연달아 작은 봉우리 두 개를 넘어가지만 양쪽의 비탈면은 여전히 가파른 모습을 이루고 있어 능선은 도욱 두드러진 모습을 갖추게 한다.

벌목의 흔적과 정상부 바로 아래를 둘글게 둘러친 파란색 그물망, 그리고 나즈막히 석축을 둘러친 봉우리를 오르며 "왜 저런 모양을 만들어 놓았을까?"라는 의문을 품고 그믈망을 넘어가니 592m봉이 갈리는 분기봉(565m)이다.(10:54 3,760걸음)

 

592m봉분기봉~돌메기고개(도상:2.3km 실제:2.4km 만보계:3,859)

정상부를 새롭게 꾸미려는 작업이 진행붕인 듯 하지만 그래도 맨 땅을 드러낸 모습은 반갑지 않고 Y자형으로 갈려진 두갈레 길은 양쪽 모두 뚜렷한 모습을 보이며 조망은 매우 좋아 보인다.

대둔산 방향은 말할 나위가 없고 우측의 592m봉과 정맥능선 밑으로 봄가리골 마을이 잘 내려다 보이며 구불구불 이어지는 635번 지방도, 정맥에서 좌측으로 분기한 국기봉(?) 그리고 굿수봉으로 생각되는 봉우리도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592m봉에서 바라본 천등산과

 

▼대둔산의 모습

  

▼635번 지방도와 봄가리골 마을, 인대산으로 이어지는 정맥

 

정맥은 좌측으로 90도 꺾어서 내려가야 하며 592m봉으로 가는 길은 우측인데 벌목과정에서 표지기도 함께 없어졌는지 표지기가 보이지 않는다.

주의깊게 주변을 살피니 좌측 길의 조금 밑으로 2~3장의 표지기가 보이지만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다.

쉽게 눈에 띌 위치에 표지기를 걸어주려고 두리번거리지만 적당한 장소가 없어 하는 수 없이 정맥 쪽의 조금 높아 보이는 나뭇가지를 잡아당겨 표지기를 걸어주고 정상부에서 바라보니 더욱 잘 보였다.

592m봉쪽으로 바람에 날리는 한 장의 표지기는 쉽사리 눈에 띄니 우측을 정맥길로 착각하기 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벌목한 나무들이 어지럽게 널려진 왼쪽으로 내려간다.(11:02)

바로 아주 넓은 길이 나타나고 1분가량 뒤, 우측의 벼랑위에 살포시 자리잡은 한 그루의 소나무가 잇어 다른 조망이 있을까 하며 가보지만 565m봉에서 바라본 조망에는 미치지 못한다.

거리 표시만 있는 말뚝거리표에 국기봉1,920m지점이라 적혀있고(11:06)

"У"자 모습의 갈림길이 나타나고 왼쪽의 비탈면쪽으로도 아주 뚜렷한 길이 비스듬히 올라가는 것은 조금 전에 거리표에 표시된 국기봉으로 가는 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직진의 마루금으로 오른다.(11:08)

봉우리에 오르니 다시 "Y"자형으로 갈라지고 왼쪽은 조금 전에 헤어진 사면길과 만나 국기봉으로 가는 길이 틀림없으리라 생각하며 가파른  오른쪽의 내리막을 내려간다.

완만한 오르내림을 이어가고 여전히 가파른 양쪽 비탈면에 눈길을 주며 걷던 길은 봉우리의 정점을 조금 남겨두고 우측의 사면길과 직진의 마루금 길이 나뉜다.(11:19)

직진으로 마루금을 넘으니 곧 우회로 만나 다시 편탄한 길을 이어간다.

봉분이 거의 허물어진 묘지를 지나고 약 1분뒤에는 키보다 조금 큰 바위가 길의 양 옆에서 버티고 있으니그 사이를 지나는 것은 마치 열린 대문사이로 자나는 듯 하다.(11:23)

측으로 제법 큰 바위가 듬성듬성 자리잡은 봉우리를 넘어(11:26)

십자로 안부에 내려서니 좌,우측으로도 넓은 길이 보이고 진행할 직진방향은 농로처럼 넓은 길을 따라가는 직진 방향으로 진행한다.

좌측으로 검은 천을 뒤짚어 쓴 인삼밭이 보이고 잠시 뒤, 파란 비닐 포장을 둘러친 인삼밭울타리가 있는 봉우리의 직전에서 우측의 사면길을 따라간다(봉우리를 넘어가도 2~3분 뒤 우회로와 만날 수 있다.) .(11:30)

제법 굵직한 소나무들이 보이고 왼쪽으로 또 인삼밭이 보이고 이어지는 봉우리를 우측으로 우회한다.(11:33)

우회로의 비탈면에 간벌한 흔적이 뚜렷하고 표지기는 한 장도 보이지 않는다.

▼산벚꽂 능선

 

사면길을 우회하여 돌아 나오면 능선을 따라 산벗꽃나무가 길게 이어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이곳을 산벗꽃 동산이라 부르고 간벌한 이유도 이 산벗꽃을 좀더 돋보이게 하기 위한 듯 하다.

▼산벚꽂 능선에서 바라보는 가야할 길과

▼635번도로에서 뒤돌아본 내려선 길

  

나무계단을 밟고 공터로 내려서고 좌측에 보이는 폐점한 가게의 들마루가 주인을 대신해 우리를 맞아준다.

(11:37 3,859걸음) 

돌메기고개~인대산(도상:3.0km 실제:3.1km 만보계:4,987보)

폐점한 상점의 들마루에 앉아 각자의 취향에 맞는 간식을 즐기고 바로 앞쪽의 도로를 건너 7~8m가량의 절개면을 올라 시멘트도로의 가드레일을 넘는다.(11:47)

산벗꽃 동산에서 건너다 보이던 시멘트길을 따라 2분가량 오르면 좌측의 산비탈 위로 묘지가 보이고 바른 정맥은 이 산을 넘어 가도록 되어있지만 시멘트 길을 따라도 정맥의 기본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참고해 곧장 시멘트 길을 따라간다.

역시 생각했던대로 좌측편에 작은 공터가 나오면서 마루금을 따라오는 산길이 제법 뚜렷한 모습으로 시멘트 길과 합쳐진다.

조금 뒤 시멘트길 우측으로 7~8기의 묘지군이 길게 자리잡았고 그 뒤로 산줄기가 이어진다.

직감적으로 저곳으로 오르는 것이 정확한 마루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행들은 이미 시멘트 길을 따라간 뒤라 그들과의 간격이 상당한 벌어져 있어 마루금길을 포기하고 시멘트 길을 따른다.(11:51)

벚나무(?) 묘목이 심어진 뒤로 가끔 새하얀 솜털이 돋아난 버들강아지와 좌측 아래로 채석장이 보이는 시멘트길을 따라 고갯마루의 정점부근에 오니 좌측으로 전주2개가 있고 그 뒤의 채석장쪽 산비탈을 돌아가는 넓은 비포장임도(?)가 있는데 쇠줄로 진입을 통제하였으며 좌측의 절개면 위쪽에 2~3장의 표지기가 보인다.

무었을 하는 채석장이기에 저토록 산을 초토화 하는지 궁금해 임도같은 길로 들어가 보지만 잡목에 가려 전체의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표지기를 보고 좌측으로 올라가던 일행3명이 길이 아주 형편없고 끊어지는 듯 하다며 되돌아 내려오고 그곳에서 약 30m가량을 지난 도로에서 R선배가 여기 길이 있다며 우리를 부른다.

고갯마루를 넘어서며 시멘트길이 좌측으로 휘여가는 지점의 좌측으로 소나무한그루가 비탈면에 서있고 솔가지에는 많은 표지기가 걸려있다.

우측에 있는 절개면에서 마루금을 거쳐 내려온 듯한 희미한 족적도 보인다.

되돌아 내려온 지점과 소나무의 중간 지점에 표지기를 걸어 다음 길을 소나무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오를 수 있도록 유도해주고 낮은은 절개지를 오른다.(11:58)

밑둥만 남아 까맣게 그을은 굵직한 나무도 띄엄띄엄 보이고 키보다 조금 큰 활엽수와 진달래들이 거치장스럽게 옷과 배낭을 잡아당기는 길은 예전에 산불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어느새 이토록 잡목이나 진달래가 무성하게 자생하고 있으니 놀라운 자연의 복원력을 실감하게 된다.

우측으로 오항동 마을이 좌측으로는 돌메기마을이 내려다 보여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는다.(12:07)

▼오항동마을

 

곧 오항동 안부(425m)에 내려서니 좌우측으로 희미한 길 흔적이 보이고 직진의 마루금을 따라간다.(12:14 635번 지방도에서 2,181걸음)

몇 걸음 더 가면  "У"자형태의 비스듬한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의 산마루를 오른다.

봉우리를 넘어가니 이번에는 조금 큰 바윗돌이 등로에 듬성듬성 박혀있는 봉우리를 지난다.(12:21)

별다른 특징이 없는 길을 따라 봉우리에 오르니 넓직한 공터와 그 우측 조금 밑에 묘지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점심을 먹자는 일행들에게 조금만 더 가면 인대산이니 그곳까지 가자며 그냥 지나친다.(12:27)

좌측으로 조금 휘어지면서 진행방향에는 우뚝솟은 인대산이 보이고  완만하게 내려가면 곧 잔디올 안부(555m)를 지나는데 왼쪽으로는 희미한 하산로가 보인다.(12:29)

약간 가파른 오르막이 나오고 왼쪽으로는 잔디올 마을과 그 뒤로는 돌메기 마을까지 보이며 오른쪽 깊은 계곡에 깊숙히 박힌 내일양 마을의 모습도 보인다.

넓은 헬기장에 오르니 보도블럭판에 505-2-4라는 숫자가 적혀 있고 대둔산과 천등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한껏 가슴을 벌리면서 반겨주고 있다.

헬기장의 왼쪽에도 청동마을로 이어가는 듯한 길이 있다고 하였는데 획인하지 않고 오른쪽의 뚜렷한 길을 따라간다.(12:35)

▼날씨만 좋았더라면

 

다음 봉우리의 정점 직전에서 마루금길과 좌측의 우회길이 잇는데 3명은 우회로 L형과 나는 마루금을 따르니 봉우리를 넘자마자 곧 바로 합류한다.

또 다시 헬기장을 지나고 바로 앞에는 삼각형 모양의 인대산이 버티고 있다.

아주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고(12:44)

코가 땅에 닿을 듯 오르던 길의 우측에 가파른 내리막과 많은 표지기가 붙은 겅맥길을 확인 한 다음, 완만해진 직진의 암릉 길을 조금 더 따라가면 우측의 바위지대에 소나무가 있는 인대산정상(661.8m)에 도착한다.(12;49   635번 도로에서 4,987걸음)
 

인대산~622.7m봉(도상:2.1km 실제:2.2km 만보계:3,770보)

어느새 계절은 도시락을 그냥 먹는다 해도 그리 어설프지 않을 정도로 봄이 성큼 다가와 있고 산불의 위험을 피할 겸 오늘부터는 찌게를 끓이지 않고 도시락으로 해결하기로 하였다.
아직은 조금이나마 온기가 조금은 남아있는 도시락에 곁들여지는 반주는 오늘도 4홉소주 한병이 게눈 감추듯 사라진다.
식사를 하며 산행후 진산택시로 복수면의 한우고기집에서 뒷풀이를 한 다음 시내버스편으로 대전에 가기로 한다.
잡목에 가린 정상에서의 조망은 기대에 조금 미치지 않지만 잡목을 피해 기웃거리면 그런대로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조금만 더 가면 헬기장이 나오고 그 곳에서의 조망이 이곳보다 훨씬 좋다고 하였지만 옅은 황사까지 가세한 흐린 날씨는 "가봐야 그게 그거지....."라는 생각을 하게하면서 발목을 잡는다.
▼진행할 정맥은 부드러운 말잔등처럼 부드러운 선의 마술을 펼치다.

 
▼월봉산
 

▼황사에 흐릿한 모습의 진악산

  

보온을 위해 식사시 걸쳤던 쟈켓을 다시 배낭에 걸면서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함께 추스리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던 상준이 직진의 헬기장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슬며시 장난기가 발동한다.

"응 먼저 가 뒤따라 갈테니....."

머뭇거리는 우리의 모습에서 낌새가 이상한지 발걸음을 멈추며 머리 위의 표지기를 가리키는데 "이런... 왠 금남정맥의 글씨가....!"

"먼저 가라니까"

"아~~저 밑의 표지기가 많았던 곳이 맞지?"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인대산을 출발한다.(13:33)

인대산에서 정맥길로 들어가려면 올라왔던 길을 50m가량 다시 내려가 좌측(인대산을 거치지 않을 경우는 우측)의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야 한다.

 2~3분가량 곤두박질하듯 가파르게 내려가니 완만한 길로 바뀌고 다음 봉우리에서는 좌측으로 방향을 급격히 틀어 나가는데 직진방향으로도 희미한 길이 보인다.(13:44)

인대산이 이제는 좌측에서 배웅하듯 우리를 따라오고 평탄한 능선길을 따라가면 조금 전 인대산에서 보이던 헬기장을 지나게 된다.(13:48)

▼각도를 달리하며 바라본 인대산

 

 

갑자기 많아진 낙엽은 발목까지 차오르고 바스락거리는 발자국 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리면서 인대산에서 보여준 부드러운 선의 곡선 그대로 산길도 부드럽게 이어가니 마음마저 평안하게 만들지만 역시 비탈을 가파른 모습을 하고 있다.

Y자형의 갈림길을 만나지만 어느 곳을 택하든 곧 만나게 되며, 통나무를 뗏목을 엮듯 들마루모양을 한 쉼터가 등로의 좌측에 나타나자 L선배는 쉬어가라고 만든 곳이니 당연히 쉬어 가야한다며 잠시 자리에 앉아 눈을 껌빡거리고 있다.(13:54)

곧 등로 왼쪽 바로 아래에 묘지가 있고 조금 더 멀리 또 한기의 묘지도 보이며 1분뒤에 "У"자 모양의 갈림길을 만난다.(13:56)

좌측의 사면길도 뚜렷하지만 정맥은 직진의 산마루를 향해 서서히 고도를 높여 나가다 3분가량 가파르게 올라선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꺾여 완만한 길을 따른다.(14:02)

낙엽을 헤치며 가는 바스락거림이 경쾌한 행진곡처럼 들리고 조금 신경이 쓰였던 왼쪽 종아리부위의 통증은 하루종일 거의 느껴지지 못했으니 의아스러울 뿐이다.

봉우리를 넘어 우측으로 슬며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오른쪽아래로는 내일양 마을이 슬쩍 슬쩍 나무사이로 스쳐간다.(14:05)

622.7m봉에 올라서니 삼각점(304복구 건설부74.9)이 있고 비록 잡목에 가려 통쾌한 조망을 기대할 수 없지만 날씨만 좋다면 멀리 진악산과 선치봉쪽은 잘 조망할 수 있을 듯 하다.

▼진악산

 

▼선치봉과 선녀봉 능선

 

금남정맥을 시작한 후, 오늘은 가장 느긋한 스케쥴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는다.(14:11)

 

622.7m봉~백령고개(도상:3.9km 실제:4.1km 만보계:6,723보)

간식을 들면서 남은 시간을 체크하니 1시간 남짓이면 백령고개에 도착할 듯 하자.

Y자형의 갈림길이 있는 622.7m봉의 우측에도 제법 뚜렸한 길과 두어장의 표지기도 보인다.

정맥은 좌측으로 내려가야 하며 많은 표지기가 있지만 정작 금남정맥을 알리는 글귀가 보이지 않아 표지기 한장을 걸어주고 왼쪽으로 내려간다.(14:19)

이어지는 봉우리에서는 우측으로 내려가야 하고 잡목사이를 비집고 내려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르다.(14:24)

2분 뒤 등로 좌측으로 잔디를 거의 찾을 수 없는 허름한 묘지 1기가 나오면서 평탄한 길로 바뀌고 능선을 가득 덮은 진달래 군락지는 개화기에 지나간다면 상당히 운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가파르게 내려간다.(14:29)

가파른 길이 끝나면 "? "자형 안부이고 우측에 희미한 소로가 보이니 그 쪽은 상개직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곧 2기의 묘지사이로 지나가니 또 한기의 묘지와 등로 우측에 빼곡히 들어찬 낙엽송 조림지지대가 잠시 나타난다.

이어진 봉우리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가파르게 내려가기 시작하지만 이번의 내리막은 싱겁게 끝이 난다.(14:35)

낙엽송 조림지를 잠시 따라가고

십자로 안부에 도착하니 우측으로 많은 표지기가 있고 계곡으로 하산하는 내리막이 나오며 예전에 산판길로 사용하였는지 길은 상당히 넓은 편이다.

잣나무 조림지를 지나 1기의 묘지를 지난다.(14:39)

평탄하면서도 넓은 길이 완만하게 고도를 높여 나가면 바윗길이 나타나고(14:50) 

이제부터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면 등로의 오르쪽으로 조금 치우친 곳에 소나무 한그루가 절벽위에 자라고 있는 473m봉의 바위조망대다.

쉬어가자는 말에 걸음을 멈칫하던 일행이 "저기도 쉬기 좋은 곳이 있다"라면서 그냥 지나치고 홀로 소나무 옆의 벼랑 끝에 서본다.(14:56  3,950걸음)

▼쉼터 바위

 

발아래의 깎아지른 절벽은 현기증를 일으킬 정도이며 멀리 하얗게 보이는 것은 충혼탑, 그리고 벼랑 아래로 깊숙히 곤두박질한 계곡에 하개직과 중개직마을이 다정스럽게 마주하고 있다.

▼하개직과 중개직 마을

 

1분도 내려가지 않아 절벽 위에 길이 20m가량의 넓직하고 길쭉하게 이어진 바위지대가 나오니 과연 쉬어가기에 안성마춤이라는 생각이 들고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간식을 들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12월 17일 첫번째 금남정맥을 마치고 돌아오며 시작된 L선배의 영양탕타령이 오늘도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그 순간 마전의 누렁이 하우스가 머리를 스치며 슬며시 떠오르는 묘안에 조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친구사이인 조선배가 먼저 전화해 줄테니 몇 분뒤에 주인과 직접 통화를 하라며 전화번호와 휴대폰 번호를 불러준다.

3~4분뒤 주인과 백령고개의 위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약 30분 뒤, 백령고개에서 만나기로 한다.

▼이어갈 정맥방향의 낮익은 이름들

 

▼백령고개로 향하는 마루금

 

이젠 L선배의 영양탕타령을 잠재웠고 택시비도 벌었으니 배낭을 들쳐멘다.(15:11)

바위조망대에서 슬며시 올라선 봉우리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면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간다.

가파른 오르막이 3~4분가량 이어지는 무명봉을 오르며 오늘도 따뜻한 마음을 가벼운 농담에 믹서한 전천후님의 격려전화가 울린다.

그런데 또 오르막을 오를 때 전화하는 전천후님의 심보는 놀부심보보다 더한가?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더구나 잊지않고 격려의 말 한마디 해준다는 것이 쉬우면서도 막상 행동에 옮기기가 쉽지는 않은데.....   

무명봉 정상이려니 하고 올랐으나 완만한 능선은 1분가량 조금 더 고도를 높여나가정맥길은 우측으로 가파르게 곤두박질치고 직진으로도 희미한 길이 보인다.(15:26)

완만해진 길이 이번에는 왼쪽으로 휘어지고 직진길에 또 희미한 길이 보이지만 정맥길이 워낙 뚜렸하여 조금만 주의하면 문제될 것은 없다.(15:28)

왼쪽으로 백령고개로 넘어가는 구불구불한 도로에 차량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포장도로 위에 넓은 비포장길(임도?)이 산중턱을 감싸 돈다.

완만한 능선상에 묘지1기가 있고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한다.(15:32)

평탄한 능선이지만 진달래와 키작은 활엽수들이 뒤엉켜 요리조리 뒤틀며 진행하게 하지만 등로만큼은 그런대로 확실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다음 구간의 산줄기와 충혼탑이 보이고 우측으로 내려가기 시작하고(15:36)

짧은 절개면을 내려서면 우측에 모래함이 하나, 도로 건너편에는 완공되지 않은 팔각정자가 있는 백령고개(370m)에 도착하여 금남 6구간을 마친다.(15:39 2,773걸음)   

 

산행 후 스케치

아직 차량은 도착하지 않았기에 완공되지 않은 정자 밑에서 배낭을 벗어놓고 다음 들머리를 확인할 겸 충혼비를 향해 계단쪽으로 가니 계단옆에 육백고지전승탑과 백령성 안내문이 나란히 서 있다.

▼충혼비의 계단에서 바라본 백령고개

 

 

[육백고지전승탑 안내문]

위치 :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 산 1번지, 억평리 산 16-1번지

건립년월일 : 1991년 3월 25일

건립자 :  금산군수

모형 : 난공불락의 요새인 산을 상징하는 양쪽 구조물을 웅장하게 세우고 중앙에 영원히 펄럭이는 승리의 깃발을 당당하게 두 산과 한 개의 깃발 탑신은 하나로 커다란 조화를 이루어 민. 경. 군이 삼위일체가 되어 역사적 위업을 이루었다는 뜻을 전체적조형물에 표현하였으며 세 개의 탑신을 통한 통일감과 중앙 탑신의 세차례 굴곡은 변화와 고도의 긴장감을 형상화 하였음.

건립개요 : 6·25직후 5년간 공비 토벌작전으로 민·경·군의 호국용사들이 피흘리며 격전을 벌인 육백고지 기슭에 장렬히 전사한 276명에 대한 영령을 추모하고 이 전투에 참여하여 고귀한 승리의 위업을 이룩한 군민의 향토 방위정신 고취와 반공정신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자 전승탑과 충혼비 및 공적비를 건립함.

전과 : 적 사살 2,287명 생포 1,025명으로 금산 치안확보

피해 : 전사자 276명(민간인 72명, 경찰 184명, 군인20명)

 

[백(栢)령(嶺)성(城)]

기념물 제83호

소재지 : 금산군 남이면 억평리

백제시대에 돌로 쌓은 태뫼식 산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900m 이며 해발 500m의 산꼭대기에 돌려져 있다. 서쪽을 제외하고는 거의 허물어져 상태를 알 수 없지만 서쪽을 보면 바깥벽의 높이는 5.8~6.9m이고 안쪽 벽의 높이는 3m정도이며 성체의 너비는 4m에 이른다.

성내의 산봉우리에는 봉수대가 있어 진악산의 관앙불봉의 봉수대와 교신하였다.

이곳은 백제 영역인 금산 지방과 신라 영역인 영동·옥천 지방을 잇는 교통로로 군사적인 요충지였다.

성내에서 백제시대 토기편을 비롯하여 기와도 나오고 있어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1,834)에는 백자령으로 나오지만 대동여지도(1,861)에는 탄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충혼비뒤의 좌측으로 오르는 것이 다음 구간의 들머리

 

 

계단을 오르니 육백고지전승탑과 1993년 4월에 세운 충혼비. 그리고 육백고지참전공적비가 서 있다.

오른쪽 육백고지전승탑건립기에는 깨알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육백고지전승탑건립기에는

"여기 서암산(西岩山)은 충청남도 최남단에 위치하여 전라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잇는 해발 600m의 험준한 고지로써 6.25사변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현장으로 수많은 경찰관, 군인, 애국 청장년들이 호국 수호신으로 산화한 피로 얼룩진 격전지이다. 1,950년 9월 28일 수복과 아군의 진격에 ?겨 북녘으로 도망치던 남침 괴뢰군 패잔병 지방공산분자들이 이곳 600고지와 서쪽으로 700고지 800고지 느티골 대활골 피목리 고당리 싸리재 왕세봉 등에 진을치고 본거지로 불야성을 이루며 무기탄약까지 만들어 금산군 전지역과 논산 완주 진안 무주근등 지역까지 출몰하여 양민 대학살 식량과 가축약탈 민가방화 경찰관서 스격등 천인 공노할 만행을 일삼았다. 이곳을 요새로 준동하던 공비들은 소위 남조선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 휘하 45사단 총참모장 김병례가 지휘하는 백두산부대 압록강부대 청천강부대 한듬산부대 외팔이부대 나팔부대 호량병단 인민학교 인민병원 남로당 금산 논산 완주군당 각부대를 괴뢰군 대위 전광순외 거물급이 통솔하는 2만여명이 집결하여 인접 대둔산 운장산 지역과 멀리는 덕유산 지리산을 거점삼아 출몰하던 공비들까지 합동작전을 지휘하던 막강한 세력으로 국내치안을 교란했다.

이와같은 공포와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 향토방위와 치안확보를위하여 경찰 군인 향토청장년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9.28 수복과 동시 약 5년반동안 공비토벌작전을 감행 수백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였으며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경찰대 향토방위대 국군8사단 화랑부대 김화산부대등이 합동작전에서 금산경찰대와 향토방위대는 단연 선봉부대로 용전분투하여 적 사살 2,287명 생포 1,025명과 중화기 탄약 등 다수의 전리품을 노획하였고 아군에 포위된 잔비들은 병사, 아사, 동사, 귀순등으로 완전소탕하는 혁혁한 전과로 치안을 회복하여 자유와 평화를 되찾게 되었다.

6.25사변 휴전과 공비토벌 교전총성이 멎은지도 어언 36년이지난 오늘 그때의 격전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사실이 해를 거듭할 수록 잊혀져 감을 아타까이 생각하면서 조국수호의 제 후손들에게 애국충성정신의 산교육현장이 되도록 백제의 옛 성터인 백령성 기슭에 당시 참전 재향경우회 금산지회 회원들이 공적비를 세우면서 삼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비오며 하루속히 우리민족의 자주평화 민주적 조극통일의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한겨레 손을 모두어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 진리는 어디 갔느뇨

나라와 겨레를 지키려 불꽃피던 눈망울 눈망울들 

백령성 민주와 자유와 평화의 제단에

고귀한 생명은 탑으로 섰습니다.

뿌린 자욱마다 진달래 피어나고

새 아침 푸른 산줄기 태양이 솟는 염원으로

한 겨레 손을 모두어 우러르는 한 하늘!

 

1991년 9월28일

금산군수 000

김환식 글

박귀전 글씨          

 

동족상잔의 비극을 체험하게 하는 역사의 현장이며 향토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피가 묻어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깨알처럼 적힌 님들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짚어본다.

"이젠 이런 피의 역사가 다시는 없어야지....."

묵념으로 님들의 영혼을 잠시나마 달래드린다.

다음 정맥길은 육백고지 전승탐을 바라보며 백령성터로 오르는 좌측줄기에서 표지기가 세찬 바람에 펄럭거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발걸음을 돌린다. 

비라도 퍼부을 듯 잔뜩 찌푸린 하늘아래 원혼의 곡성인듯 세찬 바람이 고갯마루를 휩쓸며 지나가니 그렇지 않아도 가라앉은 마음을 더욱 숙연하게 만든다.

뿌옇게 어림되는 대둔산은 못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듯 하고 진악산과 그 옆의 마이산(금산)은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깨끗한 모습을 감추고 있다.

▼진악산은 희마한 모습으로

 

충혼비에서 내려왔으나 아직도 차량이 보이지 않는다.

"30분이면 충분히 올 수있는 거리인데....."

휴대폰을 꺼내니 이런 밧데리가 빠져있네.^^

밧데리 전원이 연결되기가 무섭게 우리는 벨소리.

육백고지고갯마루에 있는데 지금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위치에 대해 서로 뭐가 잘못?음을 직감하고 금산에서 올 경우 남이 휴양림을 거치지 않고 직진하여 진안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라고 하니 알았다고 한다.

그제야 주변에 육백고지 전승탑, 육백고지 전적비. 육백고지 등 비슷한 지명이 많아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들도 착각하기 쉽다는 것을 알게된다.

참아줬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이젠 관심 밖이고 10분가량 뒤 흰색 승용차가 정자쪽으로 들어온다.(16;00)

마전으로 가는 도중 지도상에 "돌멕이"라 표기된 마을의 표석에는 돌메기로 되어있음을 확인하고 마전의 탕집에 도착하니 16;30분 경이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산행을 마쳤고 501번좌석버스가 10분간격으로 다니는 안방같은 곳에서 뒷풀이를 하니 부담스러울 것이 없다.

전골2 소주6병에 식사까지....

이런 저런 얘기로 시간가는 즐 모르고 4~5잔가량에 졸음이 몰려온다.

부시럭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한참을 걸어가다 주머니를 뒤지니 담배가 없다.

담배가게 여주인의 성의없는 답변으로 중부대 앞까지 10여분을 걸어간다.

버스정류장을 20m 가량 남겼을까?

501번 버스가 막 우리곁을 지나치기에 재빨리 뛰어가 버스의 뒷부분을 손으로 때리지만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그냥 출발한다.

허망한 마음을 삭이며 다시 7~8분을 기다리니 좌석버스가 도착해 무조건 타고 보니 509번! 생소한 번호라 노선을 획인하니 집에서 멀지않은 코스다.(19:05)

또 다시 잠이 들고 L선배의 "서부농협이냐"라는 소리에 잠에서 깬다.

롯데 백화점 앞에서 L선배와 함께 택시로 집에오니 겨우 20시 3분전.

비록 날씨는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가장 여유로웠던 6구간은 이처럼 도랑치고 가재잡은 추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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