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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요함:작가와 심사표상 이름이 상이함
※.심사선정표 별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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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년 여름호 대지문학 신인상
시평/ 김형식
●. 수필 (1~2)
1. 친절 공화국/김종구
기행 수필의 맛을 본다. 어떤 틀에 박힌 내용의 나열이 아닌 문학적으로 잘 다듬어져 있다.
화자는 출장 중에 보았던 인간의 선한 본성을 잔잔하게 토해내고 있다.
세상을 향한 마음이 자꾸 메말라 간다고 느끼는 날들이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늘 어두운 이야기만 크게 들린다. 선한 마음은
대게 조용하기 때문일까? 누군가를 배려한 하루, 손해를 감수한 정직함. 이름 없이 건네진 호의 같은 것들은 대부분 소리 없이 지나간다. 친절은 좀처럼 뉴스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어쩌면 그런 조용한 마음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서울과 감제, 공주와 부여를 오 가는 길 위에서 그것을 배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충분하게 따뜻하다는 것을...
나는 친절 공화국 속에 살고 있다는 점점 커진다.
선을 모토로 한 김종구의 '친절 공화국'은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다룬 정비석(1911~1991)의 기행문 '山情無限'에 비견할만하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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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해 여름/ 이주영
교양형 전기문 수필을 읽고 있다.
여행 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시간의 흐름과 여정에 따라 기록한 글이다. 작가에게는 추억의 기록이 되고 독자에게는 여행의 안내, 경험을 전달하고 있다.
꿈 많던 여고 3학년 시절 부모님 허락을 득하고 수학선생님 인솔하에 남이섬으로 ㅣ박 2일 여행을 떠난다.
그날 밤 만큼은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밤하늘도 우정 깊어진 소녀들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새벽녘, 목금악기를 연주하듯 정겹게 찾아온 빗줄기는 아침 식사 후 무섭도록 거센 폭우로 변했다. 숙소 밖은 잠깐 사이에 흙탕물로 덮어져 갔다....
고운 우정 속에 꿈을 심고 폭우 속에 갇혀 허기지고 불안했던 시간을 음악과 웃음으로 보듬었던 여름,
열여섯 살 소녀가 마주한 그해 남이섬의 기억은 오십 년이 지난 오늘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언제나 어렸을 적 추억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산문의 벽을 허물고 운문의 문을 열었으면 좋겠다
단테와 소녀 베아트리체의 만남을 떠올려 본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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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14)
1. 강병일
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얘기하는가'보다는 '어떻게 얘기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시는 공백의 언어로 독자를 유혹한다. 시는 정보의 과소 공급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언술이다.
살아있는 시를 쓰기 위해서 시어는 추상적인 언어보다는 '구체적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강병일 선생의 시 '생명을 구한 빵'속으로 들어간다.
고난의 산행길에 먼저 지나간 이들이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하여 남겨둔 빵이
생명을 구한다
세상은 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이 진리를 온갖 새들도 재잘거리고 있는 것이다.
사유가 깊은 시다.
갈고닦아 우리 문단의 거목으로 우뚝 서길 바란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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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강병태
시는 사상의 꽃이고 사상은 시의 열매다. 시는 인간 문화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꽃이다. 만일 시가 없다면 수많은 신전과 사원도 없을 것이고 모든 예술의 축제도 없을 것이다.
시는 향기이고, 시는 인간의 미래다.
강병태 시인은 등단 시 '세상에 시가 없다'에서 이 세상에 시가 있어야 할 이유를 말하고 있다.
시는 언어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것'의 발견으로부터 출발한다.
시는 생략함으로써 유혹한다. 시는 정보의 과소 공급을 통해서 오히려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언술이다.
민들레 씨 하늘을 날듯 좋은 글 많이 남겨 사랑받기 바란다.
뿌리가 깊은 나무가 숲을 견인할 것이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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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고순애
고순애 시인의 시 '북촌을 가다'와 '껍데기' 2편을 들어다 보며
역설적인 촌평으로 시인의 우수성과 가능성에 접근해 본다.
시가 보편을 추구하면 일반적으로 추상이란 곳에 떨어진다. 추상은 시의 지옥이 될 수 있다. 간혹 시가 어떤 보편을 확고히 성취했다 하더라도 구체성과 특수성의 힘이 실리지 않으면 무기력한 추상을 벗지 못하게 된다.
상상에 의한 의미의 확장은 기반이 '사실적 관찰'에서 출발된 것이어야 하지만
시는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좁게는 작품차원에서, 넓게는 역사의 큰 맥락에서 전체성을 지향하고 완결성을 향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는 고순애선생의 시 '북촌을 가다'와 ' 껍데기' 대한 역설적인 이야기로 시인으로서의 새 출발에 붉은 카펫 깔아 드린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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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영순
詩聖 괴테(Goethe)는 일찍이
'창작이란 자기를 해방시켜 주는 일이라' 했다.
시인은 시 '인생의 종점'에서 시인의 걸어온 생을 잔잔한 호흡으로 펼쳐가며 자아를 해방시켜나가고 있다.
먼 길을 돌아/긴 여행을 마치고/
뒤돌아본다//기쁨은 꽃처럼 피었다가/바람에 흩어지고/
슬픔은 돌처럼 남아/가슴 한켠을 지키고 있다//허공에 문을 두드리듯/지나온 모든 것에/여기 잠시 멈춰 서서/나를 뒤돌아본다//
이별이라 하기에는/아직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니/보이지 않는 길 위로/새벽을 맞이하련다
시는 청춘이기에 아름답다.
시인의 감성이 꽃향기처럼
피어오른다.
자신의 영감을 자기의 언어로 말하는 시인은 최고급 시인이다.
시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있다.
시는 침묵이 길러낸 글이다.
등단의 새 출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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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김영호
시 '감자전'에서 시인은
감자바위라 어쩔 수가 없다//고속도로 휴게소에서/찐 통감자를 사 먹어야/여행이 완성된다//
"긍휼히 여기는 아내에게 복이 있으라."/힘내서 기도한다
'민족이 부를 노래'에서
통일 대한민국이/세계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노래 부릅시다.
시인의 결기를 보고 있다.
이성으로 신앙의 존재를 증명하는 중세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를 모셔본다. 인간은 신에 의해 이성이 파악할 수 없는 어떤 목적을 향해 질서 지어졌다. 신학과 철학은 서로 구별되지만 어떤 대립도 있을 수 없다. 신학과 시 역시 그렇다.
만인의 사랑을 받는 시인으로 우뚝 서시길 바란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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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김인철
시인은 언어의 창조주이며,
시는 언어의 사원이다. 언어의 사원에서 시인은 모든 기적을 다 연출해 낼 수가 있다.
사진 속 우리/딸과 아내의 미소/
아들과 며느리의 온기/아이들의 천진함/작은 손으로 서로를 잡은 마음//그 한 장 속에 담긴 삶의 빛깔은/그 무엇보다 깊고 투명해/
세상의 바람 불어와도/우리 집 사랑은 늘 고요하다//가족이기에 가능한 이 행복/그 감사함 안고 오늘/서로의 손을 꼭 잡는'다
했다. 수작이다.
學은 배워 채우는 것이요.
詩는 닦아 비우는 일이다.
잡초 뽑고 닦아 비우는 사원에
씨앗 묻고 가꾸고
거두고 나누는 시인의 출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인으로서의 새 출발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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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정임
노자의 도덕경을 모셨왔다.
도덕경의 가르침은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무위자연(無爲自然), ‘말로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도(道)를 자연의 흐름에 맡기고
'겸손과 유연함으로 삶을 이끈다’는 가르침으로 요약된다.
시 '거울 속에 나'는 물같이 사는 법을
'산들바람'에서는
무위자연의 삶을 보여 주고 있다.
놀랍다.
축적된 삶의 지혜가 놀랍다.
잘 익은 과일의 향기를 맡고 있다.
탁월한 시로 무위자연의 숨소리
들려주시기 바란다.
기대된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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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박종암
시인의 세계는 상상력의 세계다, 그가 펼쳐 보이는 세계는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환상적이다.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로 우리들을 인도하며 활짝 핀 꽃과도 같은 아름다움을 가져다준다.
박종암 선생의 등단 시 한 편 옮겨 놓는다 '하루가 시가 되어간다'?
책방 한켠, 북카페 창가/낡은 신문 위에서/나는 시 만나/낯선 한 줄이/내 하루를 붙잡는다//마음이 닿은 문장은/사진으로 남겨/다시 불러 앉힌다//모르는 말 하나에도/
시인의 숨결이 스며있어/나는 조용히 느끼며 간다//노트에 옮겨 적으며/흩어지던 생각들이/문장처럼 줄을 서고/손끝에서 내 하루가 시가 되어 간다//고른 몇 편의 온기를/지인들에게 건네니/
짧은 문장 하나가/누군가의 밤 밝혀 주길 바라며//시 읽는 일은/
그렇다/혼자가 아니었다/
한 줄 건네는 순간/우리는 이미/
함께 있다
만나보기 쉽지 않은 수작이다.
시인은 언어에 도취되기 위하여 시를 쓰지 않고, 그 언어에 도취된 안일을 깨우기 위해 시를 쓴다.
시는 당신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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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이신자
시인은 53선 지식을 찾아 구도에 나서는 선재동자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선지식을 모시고 있다.
특히 시인은 선지식을 잘 만나야 한다.
시인은 꽃을 가져오는 사람이고, 철학자는 사상을 가져오는 사람이다.
쇼펜하우어는 시와 철학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사상은 시의 씨앗이고, 시는 사상의 꽃이다.
시인은 얼굴이 없다. 시가 얼굴이다. 시인은 죽지 않는다.
심사에 오른 시 '봄아이' '나눔' '발바닥 감사 ' 정겹고 깊이가 있다.
더욱 갈고닦아 큰 그릇으로 세상을 담아내기 바란다.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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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재윤
먼저 등단을 축하드리며
이재윤 시인의
시[4월의 나], 와 [외할매]에 주목한다.
푸시킨은 일찍이 시인에게 주는 글에서 '시인이여! 민중의 사랑에 연연하지 마라. 열광하는 칭송은 한순간의 술렁임일 뿐이니 그대, 의연하고 침착해야 한다. 그대는 황제, 고독하게 살아라.' 했다.
시인은 고독하고 겸손한 황제다.
이재윤 시인은 숨이 깊은 시인이다.
축하드린다.
등단의 들뜬 마음에
초심 잊지 말고 더욱 발전하는 모습 보여 주시기 바란다.
흙에서 보석을 일구어 내듯 갈고닦아 문단에 큰 족적 남기는 모습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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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재화
우리 삶의 들어다 보면 모든 게 계절의 훈수다.
봄이 오면 온몸으로 봄을 느끼고 여름이 오면 여름을 느끼고 계절을 느끼면서 순리대로 살아간다
시인은 시 ' 매미'에서
너를 보면 여름이 보인다/여름을 알리는 나팔수니까//너를 보면 사랑이 보인다/짝을 위해/열정의 세레나데를 부르니까//너를 보면 간절함이 보인다/며칠 살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니까//
너를 보면 신비로움이 보인다/또 다른 너를 남기고/새로운 네가 태어나니까//그런 너를 보니 내가 보인다/나를 닮은 붕어빵 남기기 위해/간절함으로 사랑을 구하고 있으니
시인은 시적 대상을 통해 자신을 보고 있다.
생태학적 사유와 통섭한다.
서정시에서의 중요한 키워드는 생태학적 사유다. 생태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세계의 관계성을 풀어낼 때 서정의 본질을 헤아릴 수 있다. 수상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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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현주
명시란 말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말과 침묵 사이에서 균형 잡힌 어떤 탱탱한 긴장을 선사한다.
이미지 표현은 어떤 방법이든 구체적이어야 한다. 시어의 선택 방법으로서의 "애매성"은 몽롱하거나 모호한 표현을 말함이 아니고, 상황에 의한 의미 확장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표현이어야 한다.
시'냉이'와 ' 나이테'에서
시인의 출중한 역량을 보고 있다.
시는 일차적으로 창조적 배반과 전복이라는 큰 에너지를 요구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노래라 할지라도 그 노래가 전에 불린 노래의 변조에 지나지 않는다면 문학의 의미를 잃게 된다.
시를 짓는 사람은 언제나 '개념과 감각의 파괴'를 모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지문학 신인상 수상과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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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조종만
시는 내면적으로는 엄청
나게 큰 소리이면서 외면적으로는 이슬처럼 맑은 울림이 있어야 한다. 참된 시는 날카로운 외침이 아
니라,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둥근 소리'이어야 한다.
한없이 길고 긴 공명의 여운을 남긴 소리가 시다.
추상적인 구호는 시인의 구체적인 언술적 주장 없이, 더 이상의 선택이 있을 수 없을 정도의 절체절명한 구체적인 이미지를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큰 고민 없이 어떤 객관적이거나, 추상적이 "느낌"만으로 시를 채우면, 그 시는 이미 자체적인 진정성 결여라는 무겁고 큰 난제를 지고 시의 바다에 뛰어든 것에 다름 아니다.
시는 체험 속에서 '말 그 너머에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등단은 시인으로서의 첫 삽을
뜨는 일이다. 문전옥답에 씨 뿌리고 가꾸는 큰 머슴의 탄생 기대된다...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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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탁승호
시인은 '핸드폰이 사라진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로 어디든 닿을 수 있지만 그만큼 서로의 시간은 옅어지고 마음은 더 멀어져 간다. '아기 얼굴' 속에서 이제 우리는 빛보다 빠른 접속 속에 살며
세상밖이 아닌 나 자신의 깊은 세계로 잔잔히 돌아가고 싶다.
시속에서 세상을, 세상 속에서 자화상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다. 기대가 된다.
시인은 연금술사다
용광로 속에서 좋은 시가 태어난다
침향은 팥꽃나무과(Aquilaria 속) 수목이 상처·외상·균류 등 자극에 반응해 분비된 수지가 오랜 시간 응집·숙성되어 형성된 심재를 침향이라 한다.
침향은 향이 깊고 밀도가 높아 물에 가라앉으며. 향료 약제등 다양한 용도로 귀하게 대접받습니다.
시역시 세상 속에서 침향이 되어야 한다.
등단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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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문학 대상 작품/ 박명호
ㅡ.봄이 아름다운 이유/ 박명호
봄이 아름다운 이유는
세상이 처음처럼 말을 걸어오기 때문
긴 침묵 끝에
꽃 한 송이로 안부를 묻기 때문
얼어 있던 시간의 모서리가 풀리고
바람은 더 이상 밀어내지 않고
살며시 등을 떠민다
그 방향엔 언제나 빛이 있다
지친 나무는 아무 말 없이 잎을 달고
상처 난 가지 위로
연둣빛 용서를 올린다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봄이 아름다운 이유는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눈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눈물 자국 위에 꽃을 피워
다시 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은
환회보다 먼저 다가와
조용히 마음을 풀어준다
다시 믿어도 된다고
다시 사랑해도 된다고
ㅡ.歸天/박명호
나그네의 길 끝에서
나는 비로소 안식의 문을 연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새벽및처럼 가벼운 영혼으로 돌아간다
눈물은 강물이 되어 흘러가지만
그 끝은 늘 바다
넓고 푸른 품
사랑으로 가득한 하늘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歸天은 이별이 아니라 귀향이다.
저 하늘에 이는 바람 되어
그대의 어깨를 스치고
밤마다 별빛 되어
그대의 꿈을 지켜주리
그러니 슬퍼 말라
죽음은 닫힌 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의 시작일 뿐
영원한 빛의 고향에서
나는 다시 노래하리라
"나는 돌아가네,
사랑으로, 빛으로, 다시 삶으로",
ㅡ.아덴만의 여명/ 박명호
검은 바다 위에 밤은 오래 머물렀다
침묵보다 더 무거운 긴장 속에
숨을 죽인 파도들이
이름 없는 기도를 삼키고 있을 때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새벽은 이미 준비되고 있었다
아덴만 여명 작전
그 이름은 조용했으나
총성과 물보라 사이에서
누군가의 귀환을 밝히는 불빛이었다
차가운 철의 몸을 가진 함정 위에
따뜻한 심장들이 모여
한 줄기 길을 만들었다
ㅡ.매미 울음의 계절/ 박명호
짧은 생을 다 태워
하늘에 걸어둔 울음
그 처절한 맑음 속에서
여름은 더욱 선명해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끝까지 밀어 올린 목소리
그 한 번의 떨림으로
세상은 가득 차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뜨겁고
또 얼마나 덧없는지 배운다
●.신인문학상 수필 (등단작)
1.친절 공화국/ 김종구
세상을 향한 마음이 자꾸 메말라 간다고 느끼는 날들이 있다. 뉴스에서는 매일 누군가를 속이고, 밀어내고, 다두고, 상처 입히는 이야기들이 쉼 없이 흘러나온다.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더 각박해졌다고 말한다. 선의를 믿는 일조차 순진한 일처럼 여겨지는 세상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런 말을 아주 부정할 수만은 없다. 살다 보면 마음보다 계산이 앞서는 순간들을 너무 자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번 짧은 출장길에서는 세상이 아직 그렇게까지 차갑지는 않다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졌다. 마치 누군가가 조용히 내 곁에 와서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은 아직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것처
럼...
전북 김제에서 이주민 관련 강의를 하고, 다음 날에는 충남 부여에서 선교전략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KTX를 타고 익산에 내린 뒤, 시간 관계상 택시를 타고 김제로
이동해야 했다. 피곤한 몸을 좌석에 기대고 창밖 풍경과 졸음을 번갈아 오가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눈을 떠보니 요금이 삼만 삼천 원 정도가 찍혀 있었다. 그
런데 택시 기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손님, 네비게이션 따라왔더니 길이 조금 돌아왔는지 요금이 좀 많이 나온 것 같네요."
그러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만 팔천 원만 받겠다고 했다. 내가 먼저 말한 것도 아니고,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네비게이션 탓을 하거나 교통 상황 때문이었다고 설명하며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의 몫을 덜어냈다. 그날 나는 요금이 아니라, 모른 척하지 않는 마음 하나를 건네받았다.
김제에서의 일정을 마친 뒤에는 공주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 날 지인을 만나 점심을 먹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식사를 마친 후에는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부여 회의 장소로 이동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지인은 유명한 맛집이 있다며 차를 몰았다. 산길을 돌고
강을 건너며 한참을 달렸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맛집이 꽤 먼 곳에 있구나.'
그런데 식사를 하던 중, 회의 시간에 늦을까 싶어 살그머니 오후 회의 장소를 검색해 보았다. 불과 몇백 미터 거리였다. 의아해서 물었더니 그는 그저 웃으며 맛집으로 왔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분명 내가 다음 목적지를 이야기했었고, 그는 내가 다시 이동하느라 고생하지 않도록 일부러 동선을 맞춘 것이 분명하다. 생색내지 않는 친절은 오래 남는다. 그제야 나는 지인이 굽이굽이 돌아왔을 길과 시간을 조용히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웃었다.
부여에서 회의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긴 회의를 마친 뒤 일행들과 사우나를 찾았다. 오랜만에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가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저녁 먹은 것이 체했나 싶어 급히 밖으로 나와서 카운티 직원에게 물었다.
'혹시 활명수 있나요?' 직원은 없다고 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키고 있었다. 잠시 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직원이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제가 편의점 가서 사다 드릴게요." 말릴 틈도 없었다. 그는 금세 밖으로 뛰어나갔고, 잠시 후
정말 활명수를 사 들고 돌아왔다.
가슴 한쪽이 뜨겁게 저려 왔다. 그 사람에게 나는 이름도 모르는 손님 중 하나였을뿐이다. 굳이 자기 시간을 써 가며 그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움직였다. 어쩌면 친절이라는 것은 거창한 선행이 아니라, 잠시 누군가의 불편을
자기 일처럼 여겨 주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다음 날 점심, 우리는 회의를 마치고 충청도 특유의 구수한 분위기가 묻어나는 식당에 들어갔다. 여럿이 함께하다 보니 메뉴를 이것저것 많이 주문하게 되었다. 주문을 받
던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손님, 이렇게 시키시면 저희야 좋죠. 그런데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인원에 맞게 메뉴를 다시 조화롭게 정리해 주었다. 더 많이 팔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손님이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마음이 먼저였던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런 마음을 느끼고 나니 음식 맛까지 더 좋아지는 것 같았다. 친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간의 온도를 바꾸는 힘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익보다 배
려를 먼저 내어놓는 마음. 어쩌면 그 맛이야말로 가장 깊은 별미인지도 모르겠다.
이들 동안의 출장길에서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될 마음들을 만났다. 택시 기사의 정직함, 지인의 말 없는 배려, 사우나 직원의 발걸음, 식당 직원
의 환한 웃음, 특별한 영웅담은 아니었다. 세상을 뒤흔들 거창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
러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들의 얼굴과 말투를 자꾸 떠올리게 되었다. 이상하 게도 그 친절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졌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는 늘 어두운 이야기만 크게 들린다. 선한 마음은 대개 조용하기 때문일까? 누군가를 배려한 하루, 손해를 감수한 정직함, 이름 없이 건네진 호의같은 것들은 대부분 소리 없이 지나간다. 친절은 좀처럼 뉴스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은 어쩌면 그런 조용한 마음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서울과 김제, 공주와 부여를 오가는 길 위에서 그것을 배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직 충분하게 따뜻하다는 것을....
그리고 사람은 결국 사람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을...
나는 친절 공화국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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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해 여름/이주영
여름방학 기간이었지만, 3학년은 등교를 계속하고 있었다.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고
싶었던 우리는 수학 선생님의 인솔 아래 1박 2일의 여행을 가기로 했다. 부모님들의 허락까지 받고 나니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다.
토요일 서울행 첫 고속버스에 몸을 실으며 여행은 시작되었다.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춘천행 기차 안, 비좁은 객차를 채운 왁자지껄한 소음은 되레 여행의 설렘을 부풀려 주었다. 가평역에 내려 무거운 짐을 들고 선착장까지 한 시간 남짓을 걸어갔다. 뙤약볕 아래 행군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더없는 즐거움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떠나기 위해 줄을 선 여행객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우리는 "분명, 내일 이 시간에 아쉬움을 안고 저 줄에 서 있을 거야"라는 확신에 찬 말을 하며 하선했다. 관리자는 오늘 밤에 우리 팀과 대학생 한 팀만 머문다는 관리자의 말을 듣고 숙소로 갔다.
나무 바닥으로 된 교실 같은 숙소에 짐을 풀었다. 방 한쪽 구석을 부엌 삼아 가져온 먹거리를 정리하고 섬 구경에 나섰다. 먼저, 섬 이름의 유래가 된 남이 장군 묘를 찾아간 후 다른 곳곳을 돌아보았다. 당시, 종합휴양지로 개발하던 초기 단계라 별다른
오락기구가 없음에도 깔깔거리는 우리의 웃음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무렵, 숙소로 돌아와 밥을 짓고 찌개를 끓였다. 구수한 냄새가 숙소 안팎으로 퍼지자, 우리는 여행지에 있음을 한층 더 실감했다. 밥상 없이 신문지와 보자기를 깔고 가져온 반찬들을 꺼내 놓으니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저녁 식사 후 캠프파이어를 하기 위해 모닥불을 피웠다. 불꽃은 어둠 속에서 춤을 추
듯 일렁이고, 휴대용 턴테이블에서는 엘피판이 돌아가며 'Can't help falling inlove' 가 감미롭게 흘러나왔다. 턴테이블과 엘피판은 엘비스프레슬리의 열렬한 팬인
친구가 보자기에 싸서 품에 안고 온 것이다. 선생님이 쳐주시던 기타 선율과 호흡에 따라 멜로디가 되는 하모니카 소리는 여름날의 멋진 화음이 되어갔다. 그렇게 익숙한 노래들이 끝나갈 즈음, 한 친구의 "신나는 노래 듣자"라는 제안에 다른 엘피판을 올려
놨다.
'Keep on running' 'One way ticket' 등 노래가 분위기를 바꾸었다. 흥겨운 리듬을 발등 위에 얹고 뭉그러진 발음으로 노랫말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노래라기보다는 소리를 지른 것이 적절한 표현 같았다. 그날 밤만큼은 우리만의 세상이었다. 밤하늘도 우정 깊어진 소녀들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새벽녘, 목금악기를 연주하듯 집겁게 찾아온 빗줄기는 아침 식사 후 무섭도록 거센 폭우로 변했다. 숙소 밖은 잠깐 사이에 흙탕물로 덮어져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과 우리는 하루 더 섬에 묶일 거라고는 예상조차 못 했다. 하지만 관리자가 와서 오늘은 비가 멎어도 폭우로 물이 불어나 내일 아침에나 배가 들어
온다고 일러주었다. 선생님께서는 결근을, 우리는 결석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어제의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전화기가 있는 관리소로 가는 길, 정수리에서 머리카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은, 여덟 소녀의 즐거움을 냉정하게 씻어내려 갔다. 시외전화 신청 후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연결이 되었다. 학교에는 아버지께서 연락을 취해주신다고 하셨다.
일단, 오늘 귀가 못함을 알리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남은 음식을 살펴보니 쌀 한
공기와 김치뿐이었다. 배가 들어오지 않아 물건 공급을 받지 못한 관리소 겸 매점인 매대에도 텅 빈 선반만 보였다. 남아있던 식료품은 어젯밤 대학생팀이 전부 구매하는 바람에 동이 났다고 한다. 관리자는 우리의 처지가 안타까운지 본인 먹거리인 마른국수를 꺼내 한 줌 나눠주었다. 하루 더 섬에 묶일 줄 모르고 야식과 아침을 푸짐하게 해 먹은 것도 후회되었다.
빗물이 빠지자 질퍽거리는 땅거죽도 드러났다. 식재료를 찾아 어둑해진 섬을 돌아다녔다. 흙 속에 반쯤 박혀 있는 감자 몇 알, 쇠어 버린 옥수수와 당근을 주워 왔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옥수수는 봉지에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전날 여행객들
이 놓고 간 듯하다. 관리자가 준 그 국수와 모든 재료를 함께 넣고 죽을 끓었다. 요즘 같으면 흙탕물에 잠겼던 쓰레기 같은 식재료는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만, 그때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러나, 처음 먹어보는 이상한 조합의 죽도 친구들과 함께하니 꿀맛이었다. 그래도 먹을 수 있는 사실에 감사했다. 주변이 모두 젖어 붙은 지필 수 없었지만, 턴테이블에 엘피판을 다시 올리고 노래를 부르며 폭우 속에 갇힌 어제의 내일을 다독였다. 눅눅한
밤공기가 보송해진다.
다음 날 아침, 남겨 놓았던 죽을 나눠 먹고 선착장으로 갔다. 섬을 향해 오는 배가 보이자, 우리는 첫날에 확신하였던 아쉬움과 달리 환호성을 질렀다. 감사와 걱정이 교차하는 귀갓길이었다.
당시 을지로에 있던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초췌해진 행색을 한 몸을 유신 고속버스에 실었다. 우리의 여행이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내일 일에 걱정이 되
면서도 서로 눈빛만 마주치면 웃음이 났다. 다음 날, 등교해서 수업 후 반성문을 써야했다. 인솔해 주신 선생님도 적잖이 난처해지셨지만 모두 잘 해결되었다.
고운 우정 속에 꿈을 심고, 폭우 속에 갇혀 허기지고 불안했던 시간을 음악과 웃음으로 보듬었던 여름. 열여섯 살 소녀가 마주한 그해 남이섬의 기억은 오십여 년이 지난 오늘도 나를 미소 짓게 한다. 언제나 어렸을 적 추억은 나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 시 신인상 등단작
1. 강병일 시 (2편)
ㅡ. 생명을 구한 빵
백두대간 마루금을
걸으면서
심신을 수양한다
초목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처절한 삶을 살아간다
물이 없는
정상에서도
모자람이 없는 듯 보인다
숨을 헐떡이면서
먹거리로 에너지를
연신 보충하면서 걷는다
정상에 이르자
먹거리가 고갈되어
걸어갈 힘조차 없었다
절망이다
어찌 하산할 것인지
눈앞이 캄캄하다
큰 나무 그늘이
잠시 휴식을
제공하였다
그늘 구석진 곳에는
먼저 지나간 이들이 흘린
빵이 나를 살렸다
다 먹지 않고
뒤에 오는 이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
온갖 새들이
함께 살아가는
진리를 터득함을 칭찬하듯 재잘거린다
ㅡ. 매미 울음
긴 어둠을 견디고 이겨서
껍데기를 벗고
힘차게 날아올라.
나뭇가지에 앉은
매미야
무엇이 서러워
그 높은 대추나무 꼭대기에서
힘차게 우는가
무엇이 서러워서…
대청마루에서 들리는
네 소리는
통곡의 울음이 아닌
사랑의 노래가 아닌가
긴 인고의 시간을 극복한
멋진 축가가 아닌가
너의 깊은 뜻도 모르면서
아름다운 노래를 울음이라 한다
2. 강병태 시 (2편)
ㅡ. 세상에 시가 없다면
시가 없어도
세상은 무심하게 잘만 돌아간다
백화점은 제시간에 문을 열고
영화관도 시간표대로 영화를 틀어댄다
그러나 시가 없다면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은
그저 나무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일 뿐
사랑을 잃은 여인의 마지막 편지가 되지 못한다
붉게 물든 저녁노을은
그저 빛의 산란 작용일 뿐
고향을 잃은 나그네의 노스탤지어가 될 수는 없다.
깊이 팬 어머니의 이마 주름은
그저 피부의 노화현상일 뿐
고단했던 삶의 훈장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시가 없는 세상의 모든 단어는
거대한 사전 속에만 존재하는 화석뿐이다
박제된 글자에는
사랑도, 연민도, 아픔도, 뜨거운 눈물도 없다
메마른 가슴에 따뜻한 훈풍을 불어넣는 일
그리하여 다시 세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
그것이 시가 있어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이다
ㅡ. 매미의 일생
땅속 이름에서
매미의 일생은 시작된다
몇 해인지 셀 수는 없어도
나무뿌리 숨결에 기대어
견뎌온 세월
간절히 기다렸던 여름
뜨거운 햇빛의 유혹에
마침내 어둠을 밀어내고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숱하게 벗었던 허물
마지막 틈 사이로
젖은 날개 펼치고
찬란한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지만 남은 생은 고작 한 달
견뎌온 모든 세월 아깝지 않도록
온몸으로 울음 쏟아내며
생명의 노래를 부른다
한 달 후
다시 흙 속에 묻혀도
세월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를 감싸 안아 준 나무의 품 안에서
또 다른 그가 자라기 때문이다
매미의 울음이 그친다고
여름이 가는 것은 아니다
그의 울음은 다른 여름에도
그 여름의 끝에서 시작되는
또 다른 여름에도
계속될 테니까
3. 고순애 시 (2편)
ㅡ. 북촌을 가다
북촌로 11길을 걷는다
좁은 골목길 양옆으로
처마와 처마끼리 눈썹을 붙이고
붉은 벽과 검은 기와지붕이 줄지어 서 있다
멀리 보이는
북악산 인왕산 궁궐
아름다운 풍광에 일찍이 문화가 꽃피던 곳
나라가 없을 때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만들어진 동네
북촌은 예쁜 카페 공방들이 즐비하고
외국 관광객들의 필수 여행 코스가 됐다
망각 속에 잊혀 가는
어두운 역사
여기에는 없고 거기에는 있는
맹사성 대감의 '불치하문'
ㅡ. 껍데기
한 생명을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자신은
껍데기로 화석이 되었습니다
수년 동안 품어왔던
꿈의 세계로 날아오르도록
자신의 몸을 찢어가며
온 힘을 다해 밀어낸 빈자리
지나가는 바람만이 그 의미를 알까
자식을 떠나지 못한 껍데기
나뭇등걸에 매달린 채
매앰매앰매앰매앰
울어대는 자식의 노래
빈 껍데기 공명음으로
자연의 섭리를 노래합니다
4. 김영순 시 (2편)
ㅡ. 인생의 종점에서
먼 길을 돌아
긴 여행을 마치고
뒤돌아본다
기쁨은 꽃처럼 피었다가
바람에 흩어지고
슬픔은 돌처럼 남아
가슴 한켠을 지키고 있다
허공에 문을 두드리듯
지나온 모든 것에
여기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뒤돌아본다
이별이라 하기에는
아직도 누군가를 그리워하니
보이지 않는 길 위로
새벽을 맞이하련다
ㅡ. 라일락 향기
보라색 향기가
공기중으로 번지면
그리던 첫사랑이 다가와 눈 맞춤한다
바람이 다녀간 자리에
향기로 돌아와
가슴 깊이 스며들고
그리움이 꽃이 된다면
한송이
또한 송이
조용히 피어나
마음의 창을 두드리며
다시 너를 부르리
5. 김영호 시 (2편)
ㅡ. 감자전
감자바위라
어쩔 수가 없다
감자가 들어간 음식은
모두 사랑한다
감자전, 감자옹심이, 감자붕생이, 감자떡, 통감자, 감자볶음, 감잣국,
자조림, 감자튀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찐 통감자를 사 먹어야
여행이 완성된다
아내는 남편이 안쓰러울 때
감자전을 부친다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가고
침샘이 하늘로 솟구친다
자원해서 감자를
강판에 득득득 갈기도 하고...
세 소댕이를 숨도 안 쉬고 모신다
"긍휼히 여기는 아내에게 복이 있으라."
힘내서 기도한다
ㅡ. 민족이 부를 노래
우리의 소원 통일입니다
꿈에도 소원 통일입니다
통일의 노래 부릅시다
남북한 모든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드는 세상이 올 때까지
노래 부릅시다
남북한 천문학적인 군사비가
세계 선교비로 쓰여질 때까지
노래 부릅시다
남북한 100만 대군이
세계 선교사로 쓰임 받을 때까지
노래 부릅시다
통일 대한민국이
세계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노래 부릅시다
6. 김인철시 (2편)
ㅡ. 가족사진
설날 햇살 머금은 오후
따뜻한 집밥 한 그릇 나누고
손자들의 웃음 따라 걸음 옮겨,
가까운 골목 아이스크림 집에 모였다
달콤한 그 한 입 속에 녹아드는
우리의 이야기와 사랑
옆자리 여학생 손끝에 담긴 찰나
빛나는 얼굴들이 한 장에 스며들었다
사진 속 우리
딸과 아내의 미소
아들과 며느리의 온기
아이들의 천진함
작은 손으로 서로를 잡은 마음
그 한 장 속에 담긴 삶의 빛깔은
그 무엇보다 깊고 투명해
세상의 바람 불어와도
우리 집 사랑은 늘 고요하다
가족이기에 가능한 이 행복
그 감사함 안고 오늘
서로의 손을 꼭 잡는다
ㅡ. 매미들의 함성
한여름의 뙤약볕, 불타는 숲 사이로
매미들이 전쟁터의 전사처럼 울부짖는다
숨 막히는 열기에 찢기는 목소리마다
인간들이 외면한 진실을 깨우는 절망의 합성
끝없이 반복되는 그 탄식
마치 무리 지은 병사들의 전주곡
민중들의 피맺힌 분노가 숲을 삼키고
하늘 끝까지 번지던 그 울음은 신의 한숨이다
누군가 문을 열지 못한 채 잠긴 마음에
단 한 줄기 진실을 두드리는 박동
그리하여 매미들은 여름을 덮친 분노와 슬픔으로
인간의 가리운 무지를 저항하듯 노래한다
함성은 바람을 타고 온 땅끝까지 퍼져
우리 삶의 무거운 그림자를 흔들고
그 안에 묻힌 외침과 눈물이 빛이 되어
언젠가 깨어날 자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이다
7. 김정임시 (2편)
ㅡ. 거울 속에 나
세월의 흔적 속에
어느덧 이마에는 흰 백합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나 보다
거울 속 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먹물 머금은 붓은 흰 화선지가 아닌
너에 머리칼에 검은 파도를 남겼구나
이 길은
너만이 홀로 가는 길이 아닌
누구나 가는 길
어느 가수가 부른
'우린 늙어가는 게 아닌 익어간다'는
노래 가사처럼
오늘도 뜨거운 태양 아래
달콤한 복숭아처럼 익어 가련다
ㅡ. 산들바람
형형색색으로 아름다움을 뽐내던 봄
어느새 저만큼 가버린 걸까
그 찰나를 놓칠 세라 훅
밀고 들어온 여름
29도를 넘었다
아~
더워 소리가 삶의 입술을 타고
고무줄처럼 튕겨 나온다
무심한 듯 말없이
웅장하게 그늘막을
만들어주는 마을 입구 당상 나무
지친 나그네를 위한 빈 의자
넓은 마음처럼 둥그렇게
자리 잡은 돌덩이
부드러운 솜 방석보다도
더 따뜻한 사랑의 하모니
살며시 나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온몸을 감싸 품은 너
정녕 혼미한 상태의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너는 산들바람
8. 박종암 시 (2편)
ㅡ. 하루가 시가 되어간다
책방 한편, 북카페 창가
낡은 신문 위에서
나는 시 만나
낯선 한 줄이
내 하루를 붙잡는다
마음이 닿은 문장은
사진으로 남겨
다시 불러 앉힌다
모르는 말 하나에도
시인의 숨결이 스며있어
나는 조용히 느끼며 간다
노트에 옮겨 적으며
흩어지던 생각들이
문장처럼 줄을 서고
손끝에서 내 하루가 시가 되어 간다
고른 몇 편의 온기를
지인들에게 건네니
짧은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밤 밝혀 주길 바라며
시 읽는 일은
그렇다
혼자가 아니었다
한 줄 건네는 순간
우리는 이미
함께 있다
ㅡ. 황톳길을 걸으며
황톳길 옆
작은 구릉에는 키 큰 나무들
몸통 사이로 스며드는
여름날의 햇살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숲에 번진다
아스팔트를 밟는 때와
한 발짝 떼어 밟는
황톳길의 흙에서 느끼는
촉감은 많이 다르다
숲의 그늘과 바람이
더위를 식히고
맨발로 느끼는 흙의 부드럽고
차가운 기운은
어떤 청량제보다
깊게 몸속으로 스며든다
그때 알게 된다
황톳길 흙이
살아 있는 힘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는 것을...
9. 이신자 시 (3편)
ㅡ. 봄 아이
요즘
날씨 참 이상해요
하루가 왠지 짧아졌다고 난리법석인데
그나마 짧은 봄을 더 빨리 보내려
찾아온 것 같아 서운해집니다
요즘은
찾아드는 반가움보다
보내는 서운함에 마음 둠이 커집니다
요즈음은
바쁜 걸음 속에서
봄꽃 한 다발 품어 안지 못하고
그대로 보내려니 아쉬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ㅡ. 나눔
요즘 세상
서로 나누며 사는 것
쉽지 않다
돈으로 보다, 물질로 보다
사랑의 언어로
마음이 없으면 쉽지 않다
알게 모르게
얼마나 떨며 지내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는지
우리 모두 사랑의 불을 지펴보자
한 해의 끝을
따뜻한 시간으로 마무리해 보자
나도 행복하고
너도 기쁜 것은
나눔뿐이다
ㅡ. 발바닥 감사
엄마 품에
안겨
까꿍
섬마 섬마
걸음마 걸음마
비틀비틀
발발 떨며
첫 발작 떼자
할머니 엄마 고모 삼촌 언니 오빠
온 가족 손뼉 치며 웃음바다
그 발로
예까지 와 주었습니다
참 고마워요
80여 년 조용히 걸어와 준
그 수고...
●10. 이재윤 시 (2편)
ㅡ. 4월의 나
여린 내 가슴에
꽃씨 하나 심었습니다
밤마다 울렁대는
아동거린 그 여인
연두색 봉오리로
다시 태어나라고
가냘픈 연보랏빛으로
활짝 웃음 짓고 피라고
햇살 여미는
양지쪽으로 가슴 열어
피어나는 봉오리 하나
정성스레 가꾸렵니다
ㅡ.외할매
지금도 보고 싶어
기다리고 계시겠지
외할매는
부모 없는 어린 나를
혼자서 애지중지 키우셨다
나만 보면 불쌍하다
통곡하시던 외할매
일평생
새벽 일찍
찬물로 목욕 재개 하시고
불쌍한 외손자
고등인물
돼 달라고
기도하신
외할매
삼베치마저고리
하얀 고무신 신고
술미고개
천년 소나무 아래
오두막집에서
사법고시
합격하고
돌아오던 날
외손자 배고플까 봐
씨감자 삶아 놓고
꿀밥에 묵 쑤어 장독 위에 덮어 놓고
굽이굽이 돌고 돌아
술미고개 바라보며
외손자 언제 오나
기다리던 외할매
시방도 술미고개 모퉁이에서
삼베옷 하얀 고무신 신고
기다리실 외할매
11 이재화 시 (2편)
ㅡ. 매미
너를 보면 여름이 보인다
여름을 알리는 나팔수니까
너를 보면 사랑이 보인다
짝을 위해
열정의 세레나데를 부르니까
너를 보면 간절함이 보인다
며칠 살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니까
너를 보면 신비로움이 보인다
또 다른 너를 남기고
새로운 네가 태어나니까
그런 너를 보니 내가 보인다
나를 닮은 붕어빵 남기기 위해
간절함으로 사랑을 구하고 있으니
ㅡ. 라면들의 수다
라면들이 수다가 한창이다
일명 꼬들파와 퍼진 파가
침을 튀기며 조잘댄다
입담 좋은 꼬들 파는
라면은 꼬들해야 제 맛이라고...
그러자
재잘거리기 좋아하는 퍼진 파는
부드러운 식감은 내가 최고라고 자랑이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새로 출시된 라면이
한 마디 한다
선배님들은
이제 추억의 맛으로나 남으세요.
12. 이현주 시 (2편)
ㅡ. 냉이
봄이 오는 길목
밭고랑 사이
잔설이 채 녹기도 전
언 땅을 비집고 돌아온 냉이가
흙먼지 묻어 검 푸릇한 얼굴로
자기를 유난히 좋아하시던
할머니 안부를 묻는다
흰 뿌리 실낱같이 뻗어 내려
겨우내 고인 대지의 단맛 다 담아왔으니
된장국 곱게 끓여
어서 갖다 드리라 재촉한다
봄 마중 나간 소녀의 눈가에
그렁그렁 그리움이 맺힐 때
산등성이 아지랑이 사이로
환하게 떠오르는 미소
울지 말라, 아가야
냉잇국 향기가 참으로 달다
ㅡ. 나이테
사람의 나이테는
눈가의 주름일까
흐릿한 눈동자일까
시커멓게 타들어 가다
심장 한가운데 박혀버린
검은 점일까
자기도 모르는 새
새살이 돋아
간지러워
자꾸만 웃는 얼굴일까
아니면
그저 잔잔한 미소일까
난 헤아리지 않으려 해
크고 작은 원들이
이미 말하고 있으니까
13. 조종만 시 (2편)
ㅡ. 묵밥
뙤약볕 한복판 시원한 묵밥에
가을을 말아먹는다
다람쥐의 단단한 겨울 약속이
찰진 세월 고운 가루 되어
눋지 않게 눌러 담은
어머니 속 타는 시간 끊여낸
탱탱한 묵사발 한 그릇
다람쥐처럼 두 손 모으고
밥상머리 옹기종기
둘러앉은 식구들
선풍기 날개 끝에 맴돌던 참기름 냄새
깨소금 같은 웃음 한 줌 섞어
탱글탱글한 묵을 말아 넘기면
목줄기 타고 흐르는 시원한 육수
도토리 꼭지처럼 까칠하던 내 마음에도
어느새 동글동글 구슬이 굴러간다
ㅡ. 깡통과 나
버려진 채
찌그러진 나의 얼굴
녹이 번진 옆구리에
세월도 함께 슬어 간다
남들은 속 빈 가슴이
가벼워서 실없다지만
나는 텅 빈 속이
이토록 시원하구나
발에 차여 덜커덩
길 위에서 처음 배우는 노래
온몸으로 구르며
배꼽 잡고 크게 웃는다
14. 탁승호
ㅡ. 핸드폰이 사라진 자리
핸드폰이 사라진 그 자리,
눈과 눈이 마주치면
그 맑은 심연 속에서
에메랄드빛 하늘이 열리고
흰 구름 한 점
두둥실 흘러가리라
손바닥만 한 작은 창을 닫으면
비로소
세상을 향한 넓은 창이 열리고
금빛 햇살과 오월의 푸른 향기가
싱그럽게 번져오리라
밥상에 둘러앉은 얼굴들,
서로의 말이 따뜻하게 오가며
마음의 빗장은 저절로 풀리고
사랑이 말보다 먼저
조용히 쌓여가리라
공중전화 유리 벽에 기대어
동전 몇 개로 이어지던 목소리,
짧고도 아쉬운 시간 끝에
못다 한 말들은 가슴 깊이 오래 남아
잔잔한 물결이 되리라
이른 아침 우체국으로 달려가
밤새 눌러쓴 마음 위에
정성스레 우표 하나 붙여 보내면
먼 고향과 그리운 이름 사이로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인연은 더욱 깊어지리라
이제 우리는
빛보다 빠른 접속 속에 살며
손가락 하나로
어디든 닿을 수 있지만
그만큼 서로의 시간은 옅어지고
마음은 더 멀어져 간다
ㅡ. 아기 얼굴
햇살 한 줌이
막 피어난 숨결 위에 내려앉아
세상이 처음처럼 웃는다
작은 미소에
사랑이 자라나고
걱정 시름이 녹아내린다
잠든 눈가에
꿈이 조용히 내려앉고
세상이 숨을 죽인다
오늘도
일주일에 하루쯤은
괴물스런 작은 기계 하나쯤 내려놓고
핸드폰 없는 세상에 머물고 싶다
도시의 길목에서
공원의 벤치에서
강가의 바람 앞에서
햇살을 손바닥에 얹고
스쳐 가는 계절을
한 편의 시처럼 받아 안으며
그때 비로소
세상 바깥이 아닌
나 자신의 깊은 세계로
잔잔히 돌아가고 싶다
ㅡㅡㅡㅡㅡㅡ
※.별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