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양/이건청
아버지의 등 뒤에 벼랑이 보인다.
아니, 아버지는 안보이고 벼랑만 보인다.
요즘엔 선연히 보인다.
옛날 나는 아버지가 산인 줄 알았다.
차령산맥이나 낭림산맥인 줄 알았다.
장대한 능선은 모두가 아버지인 줄만 알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푸른 이끼를 스쳐간 그 산의 물이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는 것이라고.
수평선에 해가 뜨고 하늘도 열리는 것이라고.
그때 나는 뒷짐지고 아버지 뒤를 따라 갔었다.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밟아야 할 비탈들을 앞장서 가시면서
당신 몸으로 끌어안아 들이고 있는 걸 몰랐다.
아들의 비탈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까마득한 벼랑으로 쫓기고 계신 걸 나는 몰랐었다.
나 이제 늙은 짐승되어 힘겨운 벼랑에 서서 뒤돌아보니
뒷짐 지고 내 뒤를 따르는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인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쫓기고 쫓겨 까마득한 벼랑으로 접어드는
내 뒤에 또 한 마리 산양이 보인다.
겨우겨우 벼랑 하나 발 딛고 선 내 뒤를 따르는
초식 동물 한 마리가 보인다.
설봉공화국/유승우
< 雪峯共和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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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한 복판
利川의 설봉공화국
億劫의 설봉산이
병풍처럼 드리우고
智慧의 설봉호가
수정처럼 빛나는 곳
이제는 새롭게 태어난
市民의 설봉공화국
정성과 땀방울이 모여
피워 낸 안식처
풀 한포기 돌멩이마다
사랑이 깃들었네
시민이 함께 만드는
심포니 설봉공화국
계절마다 번갈아
축제가 열리고
이른 새벽부터 화합의
길이 열리는 곳
희망이 넘실대는
未來의 설봉공화국
우리의 따듯한
가슴으로 세계를 품자
福河의 물길이
大海에 이르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