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여요전쟁 두 번째 이야기 ---- 서희의 담판외교
여요전쟁(麗遼戰爭) 또는 고려-거란 전쟁(高麗-契丹戰爭)은
993년 (성종 12년)부터 1019년(현종 10년)에 이르기까지
2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요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을 가리킨다.
아들아, 이어서 제1차 여요전쟁 두 번째 이야기를 해보자.
안융진 전투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고 당황하고 곤란한 상황에 처한 요의 사령관 소손녕
일단 후퇴했지만 다시 대군을 장비하고
소손녕은 "고려는 항복하라" 협박하며,한편으론 "요에 사신을 보내라" 통첩했다
서희와 소손녕 (드라마 천추태후 中)
그런데 그 험악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한 거란군 한가운데 그 누가 죽을 위험을 감수하고
가려고 하겠느냐. 왠만한 담력 가지고선 안될 일이지.
조정 대신들이 머뭇거리는 가운데 중군사 내사시랑 서희가 나서 사신이 되어 적진에
갈 것을 지원했고, 고려 성종은 감격하여 강가에 까지 전송나와 위로했단다.
여기서부터는 삼국지나 초한지 같은데서도 볼 수 있음직한 장면인데..
국서를 받들고 중군사 서희가 적진에 당도하니..소손녕이 높은 대에 앉아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고려 사신의 기를 죽이려 했지.
소손녕 자신은 대국의 장수이고, 서희는 소국의 신하이니 대 아래에서 꿇어앉아 예를
차리라 하니..
서희는 절을 하는 것은 신하가 임금에게 하는 것이고, 그대와 난 신하의 위치에 있는데
신하가 신하에게 절하는 법은 없다고 버텼지. 안되면 그냥 돌아간다는 결의까지 보이고.
일단, 소손녕은 자신이 청했고, 협상을 통해 뭐라도 얻어내야 할 입장이라 그의 입장을
철회했어. 그러면서 속으로는 상대인 서희에게 감탄하며 쉽지 않겠다 예감했을 거야.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또 소손녕이 선공을 했지.
'요는 옛 고구려 땅에서 일어났고, 고려는 옛 신라 땅에서 일어났는데..왜 고구려 땅을
넘보는가. 마땅히 잠식한 옛 고구려 땅을 넘겨라.
또 고려는 국경을 맞댄 요를 멀리하고 멀리 바다 건너 송을 섬기고 있으니 군사를 몰아
여기까지 온 것이다.'
듣고있던 서희는 소손녕의 의도를 알아차렸어.
요의 영토 요구는 사리를 따져 논박할 수 있는 것이고, 요의 양보를 받아 낼 수 있는 조건.
하지만 요가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은..요의 적국인 송과 고려의 관계를 끊게 하고,
요의 후방을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때 서희는 소손녕의 논리를 받아 넘겼지.
첫째, 진짜 고구려의 후예는 고려다. 그래서 나라 이름도 고려라 했고, 고구려 왕도였던
평양에 도읍해서 서경이라 했다. 오히려 귀국의 서울 동경도 그렇게 따지고 본다면
우리의 땅을 당신들이 점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아국과 귀국 사이에는 생여진(生女眞)이 점거하여 길을 막고 있어 바다로 통하는
것보다 더 험하고 어렵게 되어 있으니 여진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서 서희는 소손녕에게 한번 더 승부수를 던졌지. 이게 신의 한수였어.
고려와 요 사이의 여진을 몰아내어 성보(城堡)를 쌓고 길을 내어 서로 통하게 하면
어찌 조빙(朝聘)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어려운 말이 나오지? 바로 조빙.
임금을 찾아가서 알현하는 것을 조, 서로 사신을 보내어 교류하는 것을 빙이라 하지.
그러니까..요의 입장에서는 생각하기에 따라, 고려가 신하국으로 요 황제를 뵙기 위해
입조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이 되겠지.
물론 고려는 요와 관계개선해서 교류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고려도 왕이 밖에서 왕이라
부를지 몰라도 국내에선 엄연히 황제인데 입조같은건 전혀 생각도 안하겠지만 말이야.
소손녕은 이 서희의 제안을 받고 고민하다 요 성종에게 상주하여 알리고 답을 받았지.
요의 대군은 철군하여 돌아가고..곧 고려는 시중 박양유를 요에 사신을 보내 요 성종과
만나, 요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하지만 결론은 고려의 외교전 승리였단다.
아들아, 솔직히 말해서..소손녕이 뛰어난 장수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학문적 소양은 깊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자가 고려의 과거를 거치고
뛰어난 학문적 소양과 언변을 가진 문관 서희를 상대로 치열한 논리와 언변을 가지고
싸우는 외교전에서 칼도 아니고 말로 싸워 이긴다는게 사실상 무리가 아니었을까.
중군사 서희의 외교전을 살펴보면
양국이 다함께 얻은 것이라면 이 성공적인 회담 덕에 전쟁이 더 길어지고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사태를 막음으로써 피아간의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강동6주
요가 얻은 것은 송과 고려의 연결고리를 끊고, 고려의 조빙 약조를 받아 대국의
체면을 살린 명분이고
고려가 얻은 것은 나라의 위기를 넘기고, 덤으로 청천강에서 압록강에 이르는
땅을 우리의 것으로 확실히 인정받고, 여진을 몰아내는데 요의 협조 또는 최소한 중립을
보장받았다는 것이지.
그 결과로 얻은 압록강 이남의 땅 6개 고을을 강동육주(江東六州)라 한다.
고려는 한치의 땅도 잃지 않고 더 나아가 영토 추가 확보라는 실리를 얻었다.
장위공 서희 선생 표준영정
아들아, 제1차 여요전쟁을 마무리 짓는 이 담판의 성공요인은..
첫째는 중군사 서희의 용기, 뛰어난 논리와 언변 덕이고
둘째는 동북아의 고려, 요, 송, 여진의 역학관계를 잘 이해하고 전쟁의 상황을 통해
요의 약점과 요가 진정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한 서희의 통찰력,
셋째는 강하게 맞서 싸우기와 명분 세워주며 실리 챙기기를 시기 적절하게 그리고
능수능란하게 잘 구사한 순발력과 탁월한 협상전략,전술이었다.
무엇 하나 빛나지 않았던 것이 없는 완벽한 승리였다.
아들아, 그러나..고려와 요의 전쟁은 끝난게 아니었다.
대제국 요가 소국인 고려를 굴복시키려는 욕망을 포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의 결과로 나온..
고려가 얻은 강동육주라는 새로운 땅과 그 애매한 '조빙'이란 단어에 대한 고려와
요의 입장 차이는 새로운 전쟁의 불씨를 품고 있었던 것이란다.
-----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