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을 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진정한 디지털 화폐, 기존 금융제도를 송두리째 뒤집어 엎을 혁신적인 교환수단, 분산 컴퓨팅의 난제를 해결한 역작 등 비트코인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비트코인이 단순한 가상화폐가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열어젖힌 오픈소스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무슨 가능성을 열었다는 얘기인지, 아직 낯설기만 하다. 이럴 때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비트코인 기술을 응용한 다양한 실험 사례를 살펴보자. 이 실험은 비트코인과 비슷한 가상화폐 형태를 띄어 ‘대안화폐(Alternative Coin; Altcoin)’라고 불린다. 그렇다고 모두가 돈을 목적으로 한 실험은 아니다. 가상화폐라는 형태를 빌린 실험 면면을 살펴보면 비트코인 기술이 가진 잠재력의 진가를 한층 더 구체적으로 깨달을 수 있다. 경제 실험 1. 지방 정부가 만든 지역화폐, ‘헐코인’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 대도시는 주변 지역에서 만들어진 부를 한층 손쉽게 빨아들인다. 대전에 KTX가 놓이면 서울 사람이 대전에 가기보다 대전 사람이 서울에 가서 저녁을 사먹는다는 뜻이다. 이런 쏠림 현상을 해결하려고 나온 것이 ‘지역화폐’다. 말 그대로 해당 지역에서만 쓸 수 있는 돈이다. 대전에는 품앗이 전통을 계승한 ‘한밭레츠’라는 지역화폐가 쓰이고 있다. 치과 의사 ㄱ씨가 환자를 돌보고 한밭레츠를 받으면, 이를 대전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ㄴ씨에게 건네고 저녁 찬거리를 사는 식이다. 쓸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다보니 자연스레지역 안에서 돈이 돌 수밖에 없다. 헐코인 로고. 지역화폐가 활발히 쓰이면 지역 내 경제 순환구조를 다시 세울 수 있다. 문제는 지역화폐를 유지하는 비용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위조 불가능한 실물화폐를 만들거나 전자 금융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데, 작은 지역 조직이 하기엔 녹록치 않은 일이다. 이를 간단히 해결할 묘책이 비트코인 기술이다. 비트코인은 비트코인을 쓰면서 이득을 보는 사용자가 시스템 유지 부담을 나눠 지기 때문에 지역 조직은 큰 부담 없이도 안전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영국 요크셔주 킹스턴어폰헐(Hull)시 의회는 지난 3월7일 가상화폐 ‘헐코인(Hullcoin)’을 만들었다. 지방정부가 비트코인 파생 가상화폐를 만든 첫 번째 사례다. 헐시의회는 헐코인을 만든 이유가 중앙정부의 복지 지출 축소로 고통받는 헐시 시민의 생활고를 개선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헐시는 가상화폐 ‘페더코인’을 만든 개발팀의 힘을 빌려 헐코인을 시스템을 구축했다. 경제 실험 2. 무능한 정부 대신 국민이 직접 돈 만든다, ‘오로라코인’정부와 은행이 나라 살림을 망치자 국민이 직접 돈을 만들어낸 사례도 있다. 아이슬란드 국가 가상화폐 ‘오로라코인(Auroracoin)’이다. 아이슬란드는 부패한 정부 관료와 금융관료 때문에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물가가 폭등해 정부가 보증하고 만든 돈은 나날이 가치가 떨어진다. 아이슬란드는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금융 시스템이 붕괴했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일반 국민이 외화를 사지 못하게 법으로 못박았다. 국민이 아이슬란드 돈을 내던지고 달러 같은 안전 자산을 사들이면 국가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정부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국민이 고통받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 격분한 아이슬란드 기업가 발데르 오딘슨은 “돈을 만들고 관리하는 권력을 정치인에게서 빼앗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오딘슨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기 위해 택한 방법은 국민이 직접 쓸 가상화폐, 오로라코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발데르 오딘슨은 오로라코인 전체 발행량 가운데 절반을 미리 만들어두고 3월25일부터 아이슬란드 국민에게 조금씩 나눠주고 있다. 오로라코인을 손에 넣은 아이슬란드 국민이 스스로 이를 사용할 생태계를 일궈나가는 것이 오딘슨의 노림수였다. 오로라코인은 지난 3월4일 한때 가격이 치솟아 시가총액이 8천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 값이 빠르게 내려가 8월17일 현재 시세는 0.05달러도 안 된다. 그마저도 계속 내려가는 추세다. 오로라코인의 가격 변동만으로 보면 발데르 오딘슨의 실험은 실패로 돌아간 듯 보인다. 오로라코인을 얻은 아이슬란드 국민은 이를 활용해 정부 손아귀 밖에 새로운 경제권을 일구기보다는 바로 팔아치워 적은 돈이라도 얻길 선호했다. 하지만 오로라코인이 남긴 함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비트코인 기술을 응용해 새로운 실험을 벌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오로라코인 로고. 경제 실험 3. 소액 결제 유리한 가상화폐 활용해 SNS에 팁 문화를 꽃피운다, ‘레드코인’‘레드코인(Reddcoin)’은 가상화폐 자체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화폐다. 가상화폐가 아직 낯선 사람들이 가상화폐를 접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레드코인은 팁 문화를 활용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레딧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좋은 정보를 봤다면, 레드코인으로 글쓴이에게 팁을 전한다. 레드코인을 처음 건네받은 사람은 레드코인 웹사이트에 접속해 자신이 레드코인을 활용해 진짜 물건을 사거나 다른 사람에게 팁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식으로 계속 인지도를 높여 나가 인터넷의 공식 ‘좋아요’ 단추가 되는 게 레드코인 개발진의 궁극적인 목표다. 인터넷을 아우르는 팁 경제권을 형성하겠다는 게 이들의 야심찬 발상이다. 레드코인을 이용해 트위터 사용자에게 팁을 건네는 모습. 사회 실험 1. 태양 에너지 보급에 힘을 보탠다, 솔라코인‘솔라코인(Solarcoin)’은 태양 에너지 발전을 장려하는 일종의 인센티브다. 솔라코인 커뮤니티에 참여해 태양 에너지 발전에 힘을 보탠 사람에게는 솔라코인을 주는 식이다. 발전기에 달린 계량기를 보고 활동가가 전기 생산량을 확인하면 이를 솔라코인재단에 알린다. 전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재단은 태양 에너지로 전기를 만든 사람에게 미리 만들어둔 솔라코인을 나눠준다. 전기 1메가와트시(MWh)를 생산하면 1솔라코인을 준다. 태양 에너지로 전기를 만드는 사람들끼리 통용하는 가상화폐를 나눠줌으로써 전기 생산 비용을 일부 지원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활성화되면 재생 가능 에너지를 만드는 사업에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솔라코인이 태양 발전에 가상화폐를 나눠주는 원리. 솔라코인재단은 화석 연료 대신 태양 에너지로 전기 1메가와트시를 생산할 경우 탄소 680kg을 내뿜지 않아 지구 온도를 1.8도 낮추는 효과를 거둔다고 설명한다. 사회 실험 2. 대안 인터넷 주소 시스템을 일군다, ‘네임코인’‘네임코인(Namecoin)’은 대안 인터넷 주소(도메인) 시스템이자 여기서 쓰는 가상화폐다. 네임코인 로고. 모든 인터넷 주소는 단 한 곳이 관리한다. 비영리기관인 '국제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다. ‘.com’, ‘.net’ 등으로 끝나는 최상위 인터넷 주소를 만들고 거래하려면 ICANN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ICANN은 인터넷 주소 시스템을 검열하기도 한다. ‘대마초.com’ 같은 주소를 만들지 못하게 미리 손쓰는 것이다. 네임코인은 이런 중앙집중적인 인터넷 주소 관리 시스템에 반대한다. 그래서 ICANN 손아귀 밖에 새 인터넷 주소를 만들었다. 네임코인이 만든 인터넷 주소는 ‘.bit’로 끝난다. 중앙집중적 관리 시스템 없이도 인터넷 주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네임코인은 비트코인 기술을 빌려왔다. 비트코인이 거래장부를 사용자 네트워크에 배포해 P2P 방식으로 관리하듯, 네임코인은 사용자 네트워크 상에서 인터넷 주소를 등록하고 거래한다. 네임코인으로 인터넷 주소를 등록하고 거래하는 일은 모두 익명으로 이뤄진다. 위키리크스는 이런 네임코인의 장점을 높이 사 2011년 6월 네임코인 지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인터넷 주소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컴퓨터 자원을 빌려준 사용자는 보답으로 네임코인을 받는다. 비트코인과 같다. 이때 받은 네임코인은 ‘.bit’ 인터넷 주소를 사거나 등록할 때 쓴다. 네임코인 시스템에 기여한 사람이 그 시스템 속에서 이득을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 주소를 등록할 때 반드시 네임코인을 내야하기 때문에 함부로 인터넷 주소를 선점하기도 어렵다. 발행2014.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