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관전기(觀戰記)
-강릉・평창의 동계올림픽을 말하다Ⅱ-
축복처럼 내렸던 영동의 눈
소치올림픽 개막을 하루 앞두고 연 아흐레 동안 내린 폭설을
겪으면서도 그때 강릉 사람들이 생각했던 건 눈 폭탄에 의한 위
기의식만은 아니었다. 4년 후 치러내야 할 중차대한 겨울축제를
떠올리며 지금 적설량의 반쯤은 문제가 없을 거란 안도감 때문인
지 기세를 더해가며 퍼붓는 눈에도 느긋한 심경이었다. 최장 최
고기록에 기상이변이란 보도가 연일 전파를 타면서 집을 떠난 가
솔들과 눈 피해를 걱정해주는 지기들의 연락이 연이어 왔다. 난
이들에게, 그리고 문우들께 반쯤 파묻힌 도심의 설경을 담아 ʻ지
금 강릉은 소치에 빙의(憑依)되어 폭설과 열애 중ʼ이라는 메일로
여유를 부렸다. 새파랬던 시절 가와바타야스나리의 소설을 읽으
며 내가 상상했었던 그 설국의 정경을 떠올리며 오히려 설레었다
고 함이 옳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검은 점 하나 없이 하얗게 묻힌 날, 눈길에 막혀 정월
대보름에 깨무는 부럼은 준비 못 했어도, 약식고명 대충 버무려
안치고 진종일 쏟아지는 눈을 내다보는 기분은 시쳇말로 짱이었
다. 엄청난 눈에 긴장했던 건 영동사람들보다 전국의 국민들이었
다는 역설적인 얘기가 이해될는지는 모르지만, 눈 없는 올림픽을
치를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앞섰던 강릉 사람들에겐 때맞춰 내려
주는 눈이 축복처럼, 선물처럼 분명 그러했으리라고 본다.
더구나 하얀 설국에 갇혀 소치올림픽을 지켜보는 시민의 관심
이 증폭했던 까닭은 온화한 기온에 비까지 내려 질척한 눈으로
저조한 기록이 속출한다는 전갈이 오면서부터였다. 개막 전 주술
<기획연재> 동계올림픽
298 강릉 가는 길
사를 불러 조직위원장이 기설제(祈雪祭)까지 지냈다는 풍문이며,
눈 부족을 대비하여 7개소의 저장고에 45만 톤의 눈을 비축했다
는 소식통을 접하면서 강릉사람들은 회심의 미소를 띠었다.
ʻ그래, 우린 문제없을 거야.ʼ라고…
괜찮아, 일어나렴!
소치올림픽을 지켜보면서 내가 특히 주시하고 있었던 종목은
알파인 대회전이었다. 스키교육의 메카라고 일컫는 학교에 발령
을 받아 정상을 지켜온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강박감에 노심초사
했던 난, 재임기간을 스키선수 뒷바라지에 공력을 들였다. 스키
장비를 잠깐 장착해본 전력이 고작이었던 내가 겨울 스포츠의 정
상을 점하고 있는 학교를 관장한다는 건 아예 생각해본 적도 그
럴 능력도 없었다. 하지만, 스키부 선수들에겐 이미 숙련된 체력
과 정신력으로 무장된 끼로 다져져 있었고, 경기력 향상을 위해,
승전고를 위해 그들을 배려하는데 주안점을 두는 학교경영으로
충분했다. 그러기에 대관령 산록에서 개최되는 전국동계체전에서
종합우승도 거뜬했다.
드디어 기다려온 소치 디데이의 날이 왔다. 카프가스 산맥에
조성된 설상 경기장은 아름다웠다. 결전을 맞은 선수와 관전하는
사람들이 슬로프 주변으로 도열해 있었다. ʻ우리도 저만큼은 붐비
겠지.ʼ 위안을 삼으며 마음을 진정시키는 중에 우리 선수의 경기
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대회전에서 코스 이탈로 실
격이라는 사인과 함께 선수 이름이 자막으로 나타나는 순간 난
소치올림픽 관전기(觀戰記) 299
경직했다. 결코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찰나에 일어나고 만 것이다.
기막힌 불운이었다.
ʻʻ괜찮아!ʼʼ
난 소리쳤고 눈물까지 글썽해졌다. 스키장에서 언 손을 잡아주
며 파이팅을 외쳤던 스키부의 차돌 같았던 막내 선수! 가파른 슬
로프를 내리달려 신기에 가까운 괴력을 보이며 2014올림픽을 겨
냥해 질주해온 스키 재원이었으니 자신의 실책에 대한 자괴감은
오죽할까. 출중한 경기력에 비해 소탈하고 말수가 적었던 P군을
생각하며 난 지금 4년 후의 평창올림픽을 점치고 있는 중이다.
다시 일어설 거라고… 반드시 다시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
이다.
소치올림픽을 관전하며 절절했던 감정은 우리 선수들에 대한
뜨거운 연민이기도 했다. 우월한 유전인자를 타고난 서구의 장신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과정을 거치며 고군분투했을
날들을 생각하니, 경기 결과를 떠나 71명 우리 선수들 모두가 위
대한 영웅이었다는 결론이 분명해졌다. 우린 메달 색깔을 따져서
도 안 되었고, 최선을 다했던 등외 선수와 뼈저린 실수로 끝까지
경기에 임하지 못했던 불운의 선수들에게 더 따뜻한 위로를 보내
야 했다. 동계올림픽 6회 연속 출전이란 진기록으로 철인의 의지
를 보여준 빙상경기의 중견선수, 금메달이 확연했음에도 어이없
는 오심과 심판 부정으로 은메달에 머물러야 했던 김연아 선수,
경기력이 다소 뒤지는 후배 선수들을 격려하며 결승선에 오기까
지 최상의 순발력을 이끌어냈던 추월경기 팀의 쾌거는 오로지 올
<기획연재> 동계올림픽
300 강릉 가는 길
림픽정신으로 최선을 다해준 도전 앞에서는 메달이 아니어도 좋
았고, 꼭 금메달이 아니라도 그들은 참으로 위대했다.
지금부턴 강릉・평창!
17일 간 70억 인구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겨울스포츠 축제가
막을 내린 건 2월 23일이었다. 개막에서부터 폐막까지 상상을 초
월한 경비를 쓰면서도, 석연찮은 심사 결과와 판정 시비를 놓고
양심 있는 세계의 스포츠인들이 ʻ수치, 사치, 소매치기 올림픽ʼ이
라 회자했던 소치올림픽이었다. 배턴을 넘겨받은 우리에게 던져
진 과제이며 시사점이기도 했다. 2007년 치열한 유치전으로 우리
와 대결하면서부터 온갖 루머를 뿌렸던 푸틴 대통령이 논란의 핵
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은 4년 후 바로 우리들 이야기로 이어
질 현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린 그처럼 많은 돈을 뿌릴
수도, 뿌려서도 안 되지만 진정한 올림픽정신을 구현하려는 지향
점이 확실해진지 오래다.
평창과 강릉의 동계올림픽에서 우리가 준비하고 추진해야 할
사안은 무엇이며, 빙상종목을 치르게 될 시민의식 재무장은 어떠
해야 하는지, 그리고, 대망의 겨울축제를 위해 획기적으로 변모
될 내 고장 강릉의 진면모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소주제별로
다루어질 ʻ2018동계올림픽 추진상황ʼ에서 그려볼 수 있기를 기대
한다. 우리 생애에 다시는 없을 강릉의 신명난 겨울축제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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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자 아동문학가, 수필가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월간「수필문학」등단.
한국산문작가협회.
한국수필가협회.
영동수필문학회.
E-mail: lmja1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