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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로의 초대: 레위기의 쉽고 재미있는 접근
할렐루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구약의 율법서 모세 5경 중에서 레위기를 많은 분들과 같이 배우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풍성한 계절에 큰 은혜를 베푸사 여러 편의 레위기에 대한 글을 올리게 하시고 이렇게 또 이미 잘 정리해 놓은 글을 함께 나누며 같이 레위기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게 해 주심을 또 감사드립니다. 레위기를 잘 배우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이해하게 하시고 이를 통해서 불의로 반연한 이 세상을 빛의 자녀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샬롬! 속히 레위기의 율법이 이 땅에서 실천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나 앞서나 우선 잘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기에 같이 이렇게 잘 배우고 있습니다. 이미 레위기에 대한 개요로 부터 정리 자료까지 글을 올려놓았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레위기 제사의 중심인 성막에 대해서 그리고 성막과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펴보고 레위기 제사의 영적 의미를 또 보며 그리고 7대 절기에 대해서 차례로 살펴봅니다. 모두가 다른 분들의 글을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정리를 할 정도로 아직은 실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잘 정리를 해 놓은 다른 분의 글을 그대로 옮겨서 배웁니다. 함께 보시면서 레위기에 더욱더 가까이 가시기 바랍니다.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세마포 기둥
마당 문
번제단
물두멍
성전덮게
성소와 지성소 성소기둥 성소기둥
성소 내부
떡상
분향단
*성막과 예수 그리스도*
A. 성막의 의미
성막은 모세가 출애굽한 후 시내산에서 받았다. 그 후 여러차례의 변화가 있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시내산에 올라가 40일 금식기도를 하던 중 율법과 성막의 설계도를 받았다(출 25장).
출애굽 2년째 되는 유대력 1월 1일에 10개월의 공사로 성막이 완공되었고, 봉헌하게 된다. 성막이 봉헌되던 날 구름기둥이 떠 올랐고 그날 밤 불기둥이 이스라엘 진영을 덮었다(민 9:15). 그리고 50일이 지난 2월 20일 성막을 덮었던 구름이 떠 올랐다. 성막은 레위지파의 봉사로 옮겨진다.
성경에는 성막에 대해 50장이 기록되어 있다. 출애굽기에 13장, 레위기에 18장, 민수기에 13장, 신명기에 2장, 히브리서에 4장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면 성막은 어떤 곳인가?
1. 하나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곳이다(출 25:8).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성막을 지으라고 말씀하신다.
2.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곳이다(출25:22). 하나님께서 죄인된 우리와 만나주시고 자신을 보여 주시는 곳이 성막이다. 그러므로 성전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여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은 하나님을 본 것이다(요 1:18, 14:19).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이다(레 1:1).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부르시고 말씀하시는 곳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부르시고 만나시고, 말씀하여 주신다.
4. 하나님께서 죄인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시는 곳이다(레 1:4). 하나님께서는 죄를 대신한 제물을 통해 죄인을 받아주시고 용서하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신다. 구원과 속죄의 은총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다(엡2:8,9).
그러므로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형적으로 나타내는 모형이요 그림자이다. 성막은 가장 세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한다. 성막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사역, 그리고 죽으심과 대속, 부활을 보여준다.
B. 성막의 명칭
1. 장막(출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양식과 그 기구의 양식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신 말씀처럼 장막은 ‘오텔’이라는 텐트의 뜻으로 130회 정도 기록되어 있다. 유목민의 텐트의 뜻을 가진 장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마 27:51, 요 2:21).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된 우리 몸이 장막이다(고후 5:1, 벧후 1:13, 사 38:12).
2. 성막(출 26:30)
원어 ‘미쉬칸’은 거처라는 뜻이다. 성막은 장막의 내부 명칭이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신성하고 거룩한 곳, 곧 성소의 의미로 100회 정도 기록되어 있다.
3. 회막(출 29:42)
회막은 하나님이 백성들과 만나는 곳이며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고전 6:19)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야 한다. 성전된 우리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4. 증거막(민 1:53)
하나님은 증거막에서 율법과 계명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되심을 친히 나타내 보이셨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수 있고 증거할 수 있다. 12지파가 증거막을 중심으로 모여 장막을 치고 살았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모이고 흩어져야 한다(요일 2:7-11).
5. 성소(출 25:8)
성막을 거룩하게 구별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성소이다. 성소는 거룩한 분이 거하시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다. 한정된 장소의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 성소이다(요 4:23,24).
C. 성막의 구조와 의미
1. 울타리(출 27:9-19)
성막은 밖에서 보면 울타리만 보입니다. 동,서에는 10개의 기둥, 그리고 남,북에는 20개의 기둥으로 그 넓이는 각각 광이 50, 100규빗이다. 60개의 기둥는 세마포로 둘러 쳐 있으며 높이는 2.5m정도이다. 그리고 기둥의 받침대는 남북이 40개, 서가 10개. 동은 문이 있으므로 3개이다.
1) 울타리가 있는 것은 밖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없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올 때 천국을 보게 된다(요 1:12, 계 3:20).
2) 놋으로 된 받침대는 하나님의 공의를 은으로 된 기둥은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위에 진리의 기둥으로 세워져야 한다(딤전 3:15). 그리고 은기름대와 은갈고리가 의미하듯 구원의 상징인 은과 사랑의 가름대(골 3:14), 연합을 의미하는 고리(엡 4:3)와 같이 교회는 구원과 사랑과 연합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야 한다.
3) 세마포는 성결을 의미하는 것이다. 성결한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성결한 삶으로 교회를 이루어야 한다(계 19:8).
4) 울타리 안에 거하는 자 곧 주안에 있는 성도는 하나님의 보호(노아의 방주, 계 11:1,2), 안전(시 91:10), 소유(사 43:1,2), 공급(요 15:7), 구별(요 10:7-9)의 은혜안에 사는 사람들이다.
2. 성막문(출 27:13-16)
성막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양의 문되신 예수 그리스도(요 10:7)를 예시하는 성막문의 의미는 무엇일까?
1) 오직 하나뿐인 문이다. 성막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동편에 오직 하나뿐이다.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행 4:12, 요 14:6). 요한복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가르켜 선한 목자, 생명의 떡, 빛, 길, 진리, 생명, 문이라 말씀하셨다.
2) 큰 문이다. 동쪽 50규빗 중 20규빗이 문이다. 이 문은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이다(롬 10:13-15). 이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멸망받지 않는다(요 3:16). 그러나 이 문은 자신이 믿음으로 열고 들어가야 한다. 자격이나 공로를 가지고 여는 문이 아니다. 그리고 이 문은 즉시 닫힌다. 부르심에 즉각 응답함으로 이 문에 들어가서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하자(시 100편). 이 큰 문은 세계선교에 대한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한다(마 28:18-20).
3) 동쪽문이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다. 어둠과 슬픔과 절망의 밤이 제일 먼저 물러가는 곳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소망의 아침이 온다(시 92편). 그래서 유다 지파를 동편에 세워 오실 유다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창 49:10).
4) 이 문은 4색의 천으로 만들어졌다. 생명의 색인 청색은 생명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왕권의 색인 자색은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피색인 홍색은 대속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고 성결의 색인 백색은 성결의 영으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3. 번제단(출 27:1-8)
번제단은 성막문을 열면 처음있는 성구이다. 단은 ‘미쯔바하’란 말로서 동물을 학살하다, 죽이다는 의미이다. 번제는 ‘오라’란 단어로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번제단은 동물을 죽여 올라간다, 곧 죄를 동물에게 대신하여 죽임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피가 없이는 사하심이 없듯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은혜를 받았다(히 9:11,12, 26-28).
1) 번제단은 조각목(아카시아나무)에 놋을 입혀서 만들었다. 광야에서 불뱀으로 심판받은 백성이 장대에 메달린 놋뱀(구리뱀)을 볼 때 구원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와같이 예수께서 나무에 친히 달려 죽으심으로 다시는 피의 제사로 대속받을 필요가 없어졌다(히 7:27).
2) 번제단의 크기는 5규빗의 정방형에 높이는 3규빗이다. 5는 구원의 수이며 3은 하나님의 수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어린양의 화목제물이 되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만이 우리의 죄를 완전히 해결하신 구주이다. 이 번제단은 성소안의 모든 성구들을 담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구이다.
3) 번제단은 네모퉁이가 뿔로 되어 있다. 이 뿔은 능력의 상징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나타낸다. 이 뿔은 사방 곧 세계 만민을 구원하시려는(시 18:2)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난다. 이 뿔은 생명의 상징이다. 이 뿔을 붙잡는 자는 사죄의 은총을 받는다(왕상 1:5).
4) 번제단에는 제물을 태우는 하나님의 불이 내린다. 불은 태우는 것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그리고 응답을 의미한다. 다른 불을 사용하면 죽는다(레 10:1,2). 하나님의 불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의 은혜를 입어(롬 8:1,2) 성소로 들어간다. 죄사함의 은혜없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죽음을 당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를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멀지만 용서받은 의인에게는 하나님과의 교제함이 있는 것이다. 죄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성령께서 증거해 주시는 곳이 번제단이다.
5) 번제단의 부속기구는 재를 담는 통, 부삽, 대야, 고기갈고리, 불 옮기는 그릇(화로)이다.
4. 물두멍(출 30:18-20)
물두멍은 세수통으로 번제단과 성소사이에 있다. 성소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물두멍에서 손을 씻고 들어 갔다.
1) 물두멍에 담긴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행실을 깨끗이하여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시 24:2,4; 119:9-11, 엡 5:26).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 말씀하셨다(마 5:8). 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해야 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마다 새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
2) 물두멍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번제단에서 속죄함을 받은 성도는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물두멍에서 성결한 삶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의 준비이다(롬 12:1,2).
3) 물두멍은 놋으로 만들었다. 놋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의미한다. 죄에 대해서는 철저한 회개를 해야 한다. 죄의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는 사람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5. 성소(출 26:1-30)
물두멍을 지나면 성소가 나옵니다. 이 성소는 두 개의 방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지성소가 있는 곳입니다. 성소는 조각목 널판으로 만들었다. 남과 북에 각 20개, 서쪽에 6개, 문이 있는 동쪽은 2개의 널판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2개씩의 은반침이 96개 사용되었다. 각 널판은 보이는 4개의 띠와 보이지 않는 1개의 띠로 되어 있다.
성소를 덮는 덮개는 4개이다. 성소 덮개 가장 안쪽 첫 번째는 총천연색실에 천사들을 수놓은 것이다. 두 번째는 세마포 덮개이며, 세 번째는 홍색 물들인 수양의 가죽 덮개이다. 마지막은 회색 새깔의 물개 가죽이다. 이 덮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질그릇속에 감추인 보화같은 교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된 성도의 모습이다(고후 6:8-10).
6. 등대(출 25:31-40, 37:17-24)
성소안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천장은 앙장이요, 앞의 휘장은 찬란한 수를 놓은 휘장이요, 사면은 정금으로 둘러 있다. 이 성소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등대가 있다. 등대는 생명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요 1:4, 5, 9; 12:46, 35-36).
1) 등대는 항상 켜 두어야 한다(레 24:2,3). 항상 우리 가운데 빛으로 오신 에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의 빛으로 살아야 한다. 성도는 왕같은 제사장이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나 언제나 불의한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빛을 발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등대의 불을 꺼뜨리는 제사장은 징계를 받는다. 성도가 빛된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곧 영적 죽음을 의미한다. 진리를 좇아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매일의 생활을 해야 한다(요 3:19-21).
2) 등대는 살구꽃 모양의 7줄기 촛대이다(출 25:37). 등대는 정금 1달란트를 쳐서 만들었다. 가운데 한 줄기가 있고 양편에 각각 세 줄기가 있다. 등잔은 살구꽃(아몬드) 형상이다. 불집게 불똥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었다.
3) 등대가 주는 빛된 생활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믿음의 생활이다. 풀무불울 통과하여 정금이 되듯이 고난을 이기는 생활이다.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사명자의 생활이다(마 5:14-16). 감람유로 등대의 빛을 발하듯 성령으로 사는 생활이다. 늘 꺼지지 않는 은혜의 생활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사는 생활이다. 살구꽃 형상의 등대는 가장 먼저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살구꽃과 같이 열매가 있는 생활이다. 일곱줄기의 등대의 완전함처럼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생활을 의미힌다. 늘 등대의 불을 확인하듯이 자신의 믿음을 돌아봐 주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야 한다.
7. 떡상(출 25:23-30, 레 24:5-9)
등대의 맞은편에는 떡상이 있다. 떡상은 가로 2규빗, 세로 1규빗, 높이가 1.5규빗으로 조각목을 금으로 싸서 만들었다. 그 위에 12덩이의 떡을 6개씩 두줄로 나란히 놓았다. 떡 위에는 유향 두 그릇이 각각 놓여졌다. 이 떡은 안식일마다 바뀌어졌고 바뀐 떡은 제사장들이 먹었다. 떡상위에는 대접, 숟가락, 병, 유향잔등도 있었다.
1) 떡상의 의미는 이 세상에 생명의 떡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다(요 6:47-51). 이 떡은 에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구원받아 성결한 생활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성도는 영적인 양식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2) 떡상에 올라가는 떡은 고운 가루로 만든 진설병만이 올려 놓아야 한다. 진설병을 통해 주시는 말씀의 의미는 66권의 로고스의 말씀 중에서 내게 주시는 레마의 말씀으로 주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나누어 먹는 진설병은 교제의 말씀을 준다(행 2:46-47). 12개의 진설병은 온 세계를 향해 퍼져 나가는 선교의 의미이다. 다른 진설병은 올리지 못한 것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살아야 한다.
진설병은 기름으로 반죽하여 만들 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쓰여졌고,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읽고 들어야 한다(딤후 3:15-17). 불과 화로에 구운 진설병은 모든 고난을 이기는 힘을 주시는 말씀을 의미한다(욥 23:8-10). 또한 진설병은 말씀으로 성숙해지는 생활을 의미하고 악을 제거하는 말씀의 능력이다.
3) 진설병은 매 안식일마다 새롭게 올려지고 먹었다. 말씀을 공급받는 생활을 영위함으로 하나님 백성된 그리스도의 제자된 성숙한 생활을 해야 한다.
8. 분향단(출 30:1-10)
성소의 정면에 분향단이 있다. 이 분향단은 성도의 기도를 의미한다.
1) 분향단은 조각목을 금으로 싸서 만들었고 위 사방에는 뿔이 있다. 양편으로 2개씩 4개의 금고리를 만들어 조각목을 금으로 싸서 만든 금채를 끼어 운반하였다.
2)분향단은 기도를 의미한다(계 5:8, 8:3-5).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왕상 18:36-38, 41-46, 욘 2:1-10, 단 6:10-23, 왕상 3:4-15).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믿음의 기도(약 1:6-7, 막 11:22-24),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기도(약 4:2-3), 능력의 기도(막 9:23, 빌 4:13)로 분향단의 뿔은 권세를 의미한다.
주님의 이름을 구하는 기도(요 15:16), 성령을 의지하는 기도(롬 8:26, 유 1:20, 엡 6:18), 아침, 저녁으로 분향단에 향을 피우듯 매일의 기도(시 5:3, 92:1)여야 한다. 일년에 한번씩 우양의 피로 분향단의 뿔을 위해 속죄하듯 속죄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법궤앞에 분향단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의지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3) 분향단의 향은 불에 태워지므로 그 향을 발하듯이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분향단에 드리는 향은 향나무에서 나오는 소합향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향이다. 조개류의 껍질을 빻아서 만든 나감향처럼 자신을 쳐서 드리는 기도의 향이다. 다음은 고무나무에서 나오는 풍자향처럼 상처를 치유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기도이다.
악취를 제거하는 유향처럼 모든 악을 제거하는 기도의 향이다. 이 모든 향에는 소금을 놓어야 한다(출 30:34-38). 소금은 언약의 상징이다(레 2:13). 그러므로 모든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해야 한다. 소금된 생활이란 세상사람들에게 약속있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는 것이다.
4) 분향단의 불은 제단의 불로 분향한다(레 16:12). 이는 나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는 자신을 죽이는 기도가 되기 때문이다(레 10:1-2).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여야 한다.
9. 법궤(출 25:10-22)
성막에서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들어왔다. 이 곳은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번만 들어오던 거룩한 곳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로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듯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히 9:1-3). 지성소에는 오직 법궤만이 있다.
1) 법궤의 모양은 가로 2.5규빗, 세로 1.5규빗, 높이는 1.5규빗이다. 조각목을 금으로 쌌으며 위에는 금테가 둘러져 있으며 금고리가 넷있다. 법궤를 운반할 때는 조각목을 금으로 싼 금채를 이용하였다. 그 위에 속죄소가 있고 두 그룹이 양편에 있다.
그 안에는 십계명 두 돌비와 만나,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있다. 안팎이 금으로 싸인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고(요 13:31-32), 그 안의 조각목은 죄인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신 예표이다(롬 3:23-26). 법궤는 임마누엘로 오시는 에수 그리스도를 예시한다.
2) 법궤안에는 십계명 두 돌비와 만나,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다. 십게명 두 돌비는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여 모세에게 주신 것이다(출 31:18). 이것은 언약의 백성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와 주권을 의미한다.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만나는 한 오멜이 금항아리에 담겨 있다. 만나는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이다(요 6:49-51, 6:31-35, 47-57). 아론의 싹난 지팡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3) 법궤의 뚜껑과 두 그룹사이를 속죄소, 시은처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처이자 자비와 은총의 자리이며 만남의 거룩한 장소이다. 속죄소는 죄인을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의 그림자이다. 하나님 앞에 의인이기 때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허물이 덮어진 용서받은 자녀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는 것이다(히 9:1-15).
D. 성막이 주는 교훈
성막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성막은 하나님 계시의 완전성이 아니라 충만으로 나아가는 그림자요 모형이다. 그러므로 위험한 상상력에 의한 해석이 되지 않도록 성령의 조명을 받아야 한다.
성막은 천국의 그림자며, 성소는 지성소의 모형이며, 성막 뜰은 성소의 모형이며, 나아가 백성들의 장막은 간접적으로 성막의 모형이다.
1. 성막은 천국의 모형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지고하신 우주적 통치자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심을 알게 하신다(마 28:20, 고전 8:6, 벧전 3:14-17).
2. 온 천지가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보살핌이 매일의 삶속에 나타남을 보여 준다(마 6:11, 33).
3. 유일무이한 구조의 성막은 하나님의 백성의 유일무이한 특권을 가졌음을 알게해 준다(출 19:5-6, 신 7:7-8, 고전 3:16, 6:19, 롬 8:9-17). 그러므로 교만해지지 말고 세상과 다른 방식을 생활을 해야 한다(엡 2:1-10, 5:1-6:9, 요 15:19, 17:15-19, 벧전 1:13-3:12).
4. 성막은 에덴 동산을 상징하므로 이스라엘이 아담의 후손된 그들의 죄로 버림받고 소외되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회복되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5. 성막은 공동체로 하나님의 백성성을 상징한다. 이는 공동체 생활에서 미, 질서, 거룩, 순결을 구현하라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처소이므로 거룩해야 한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이고 그 분의 이름으로 봉사해야 한다.
6. 성막은 하나님의 백성 개개인을 상징한다. 성령이 거하시는 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전 6:18-20, 고후 7:1).
7. 성막은 장차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거하실 궁극적 처소인 새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계 21:3,22).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
8. 성막은 하나님 자신을 상징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성부께 순종하셨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계시된 유일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된다.
성막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신성을 계시하시는 성부와 성령을 가리킨다(골 2:9). 모세의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놀라우신 하나님과 교통하고 그 분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그 분의 임재를 영원토록 누리게 하기 위한 것이다.
안산중앙병원 원목실-제공-
레위기의 5대 제사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체적인 힘이나 또는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에 의한 것이었다. 아브라함 언약에 의한 것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편에 조건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편에 조건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가나안 땅에 대한 권리도 주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가기까지의 모든 주도권도 애굽에서 건져내신 분에게 있다.
아브라함 언약으로 말미암아 애굽에서 건짐 받은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의 취지를 그대로 실행하는 나라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지신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됨에 대한 의미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것을 제대로 드러내게 될 때에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광야를 걷는 동안 원망과 반역의 연속이었다. 급기야는 애굽에서 자신들을 탈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광야 길을 인도하는 주도권을 금송아지로 인정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출애굽기에서 반역의 가장 결정적인 사건으로 금송아지 사건을 말씀한다. 그렇다고 해서 금송아지 사건이 이스라엘의 반역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졌지만 이스라엘이 지상에서 소멸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귀하거나 소멸시키기 아까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계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언약의 실체에 대한 의미를 확고히 하시는 사건으로 만드셨다. 즉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모세 언약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욱 분명히 밝히신 것이었다. 그 모세 언약 속에는 한 사람이 성막의 위치에 점하고 있는 것이 드러나고 있지만 출애굽기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출 40:34-38)
성막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막은 이스라엘에게 단순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계시가 주어지고 건립되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반역을 동반하고 있다. 따라서 동행이란 화목이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동행할 수 없다. 이 긴장을 해결하는 요소로 제사제도를 제시하고 있다. 거룩하지 못한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 됨에 대한 확인 작업이 제사 제도이다. 제사 안에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거룩하게 되었는가 하는 답을 담고 있다.
그래서 레위기의 시작은 이렇게 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레 1:1). 히브리어 성경의 책 제목이 ‘봐이크라’(그가 부르셨다)는 성막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에 근접할 수 없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것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라는 의미이다.
출애굽기 24:4-8에 보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작업을 보여 주고 있다. 애굽에서 꺼내서 이제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맺음으로 비로소 비거룩한 민족이 거룩한 민족으로 전환되는 것임을 보여 주신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거룩한 민족이 된 것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에 의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모세 언약임을 시내 산에서 피뿌림을 통해 보여 주신다. 누구든지 이 언약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생명을 상실할 것이라는 뜻이다. 생명을 상실한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의미보다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 공동체에서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제사 제도는 이렇게 제사를 잘 지내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구원을 받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제사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구원을 이루신 언약관계를 확인하라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제사를 오늘날의 예배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제사 제도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제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라기보다 하나님 편에서 제사를 통해 무엇을 나타내시려고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제사 제도 안에서 무엇을 확인하는가? 그것은 바로 어린 양의 희생이다. 즉 누군가 언약의 실체로 오셔서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어린 양의 피로 표현되는 것이다. 피를 뿌림으로써 희생을 보여 준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 쪽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다 이루신다. 언약 백성이란 하나님께서 다 이루신 약속들을 제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확인할 뿐만 아니라 보여주고 증거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 확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할 때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막연한 제사의 반복이 아니라 레위기 1:1에서 말씀하듯이 여호와께서 주신 계시대로 준행되어야 할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제사의 희생물은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라고 언급하고 있다(레 1:9,13,17, 2:2,10, 3:5,16). 이런 점에서 구원은 실로 여호와의 말씀에 의한 약속에 있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노아에게 방주에 대한 치수까지 정확하게 주셨듯이 제사 역시 인간이 임의로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된다. 결국 레위기는 아브라함 언약의 준수와 성취에 인간이 제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제사 안에 어린양의 희생을 담아 두시고 그것을 하나님 편에서 이루신다는 목표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약속된 후손이란 유월절 어린양의 모습과 같이 희생되어야 한다. 그 희생은 피로 표현되며 이스라엘에 있는 성막 안에서 매일 매일의 제사를 통해 비쳐진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물을 여호와 앞에 가지고 와서 제물의 머리에 안수를 함으로 곧 하나님 편에서 대신 죽음을 이루어 내시는 것을 번제단에서 희생되는 것으로 확인하는 것이었다.
제사는 이방인들에게도 있는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제사 제도를 말씀하심으로 하나님 자신의 언약을 나타내는 도구로 주셨던 것이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므로 제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야 했는데 이 제사 제도는 성전에서 제사장이 제사자가 가져온 제물을 제사로 바치는 것이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절기와 관련된 제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다섯 가지 요소가 필요하였다. 그러면 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신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하여 우선 몇가지 제사 제도에 관계된 용어들을 정리함으로 시작하자.
(1)거룩(히, 카도쉬 혹은 코데쉬)/속된 것
레위기 10;10에 보면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라고 하였다. 즉 성-속, 부정-정함을 구분하였다.
헬라어로 번역한 말이 ‘하기오스’인데 세속과 분리된 신적 영역에 속한 것으로 인간과 근원적 간격을 두시는 하나님의 속성의 본질이다. 따라서 거룩은 ‘분리’, ‘구별’, ‘온전함’, ‘무흠’의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과 죄된 인간의 속된 상태를 구분한 것이다.
(2)정(성)결/부정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분은 속된 것 안에서의 구분이다. 즉 죄악된 인간은 속된 상태에 있는데 그 속된 것 안에서 정한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을 알고 부정한 것을 통해 인간의 속된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한 구분으로 주신 것이다.
(3)제물
제물은 흠없는 것이어야 하며 대체로 수컷으로 하였다. 화목제의 제물과 비둘기 제물은 암수 구별이 없었는데 아마 비둘기는 암수 확인을 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물은 제사자가 잡는다.
(4) 화제(히, 이셰)
불이라는 히브리어 ‘에쉬’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헌물’, ‘음식 제물’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레위기 2:10, 6:17, 24:6-7,9에 보면 불에 태우지 않는 제물이나 술을 붓는 전제를 ‘이셰’라고 칭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민 15:10).
(5) 거제(히, 테루마)
문자적 의미는 ‘올려 바쳐진 것’으로 ‘성전에 바쳐진 제물’을 의미한다. “자원하여 가져온 것”(출 25:2), “봉헌물”(말 3:8)이 ‘테루마’이다.
(6) 요제(히, 테누파)
제단 앞에서 두 손으로 제물을 들어 올리는 동작을 가리키는 용어이다(참고 레 8:25-27, 출 29:22-24).
(7) 전제/관제(히, 네세크)
붓는 제사로 주로 포도주나 독주 혹은 기름을 제단에 부었다(출 29:40, 레 23:13, 민 28:7).
(8) 고르반(히, 코르반)
‘카라브’(가지고 오다)에서 파생된 명사로 ‘가져 온 것’, ‘바쳐진 것’이라는 뜻이다. 희생 제물 외에도 성전에 바쳐지는 모든 예물은 ‘코르반’이라 부른다. 제단 위에 올리는 것과 성전에 바치는 것으로 두 종류의 고르반이 있다.
(9) 안수(히, 사마크)
‘손으로 누르다’라는 표현인데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① 죄의 전가 : 안수하는 사람의 죄가 제물에게 전가된다는 주장
② 동일시 : 제물이 곧 제사자라는 주장
③ 대체 : 제물이 나를 대신한다는 주장
④ 소유권의 확인 : 많은 제물 중에서 자신의 것임을 확인한다는 주장
레위기 1:4에 의하면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라고 한 것을 보면 제사자와 제물은 연결되어 안수를 통해 제사자의 죄가 전가되어 제물로 대체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1.번제(히, 올라)
번제에 대해서는 레위기 1:1-17에서 제사의 절차를 기록한 다음 6:8-13에서 번제를 드리는 방법과 태우고 남은 재의 처리 등을 추가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동사 ‘알라’(올라가다)에서 온 제사 용어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번제는 제물이 제단 위에서 불에 타 연기가 되어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
9장에 보면 아론이 처음으로 제사를 행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제물에 불을 내리셨다. 그래서 이 불은 꺼지지 않도록 관리하여야 했다(6:12-13). 그런데 레위기 10:1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라고 하였는데 우리 성경에는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로 분향을 이미 한 것처럼 보이는데 히브리어 성경에 보면 ‘분향하려고 하였더니’라는 말이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레 9: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이스라엘이 번제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단에 피가 뿌려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편에서 언약에 의한 희생을 피로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온전한 헌신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 제물을 전체 다 태워드리는 제사라는 점 때문에 흔히 번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여 드린다는 기본 제사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번제단에서 제물을 태우는 불은 하나님의 불로 심판을 나타낸다. 제사자의 안수에 의해 대신 번제단에서 전체로 태워지는 제물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제물로 제물의 성격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즉 하나님 편에서 제물이 되어 죽임을 당하는 심판을 통해 이스라엘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제사였다. 이런 점에서 번제는 하나님 편에서 속죄를 이루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인 제사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번제를 드리는 것으로 자신들의 온전한 희생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약의 피가 뿌려지는 것을 통해 언약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실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희생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의 믿음이 우리 안에 들어온 것이며 그것은 곧 내가 주와 더불어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리신 그 죽음에 함께 죽은 자로 제사에 참여된 자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여기서 “영적 예배”란 형식적인 순서를 갖춘 예배가 아니라 요한복음 4:24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성령 안에서 진리에 의한 예배로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의미한다. 곧 번제란 자신을 온전히 십자가에 죽음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지는 성도의 삶이다.
2.소제(히, 민하)
레위기 2:1-16에 소제의 규정들이 기록되어 있고 제사장과 관련된 추가적 지침은 6:14-23에 주어진다. 피 없는 유일한 제사인데 곡식을 비롯한 농산물로 행하는 제사로 주로 번제나 화목제와 더불어 하는 감사의 제사라 할 수 있다. 속죄제에 가난한 자들을 위해 밀가루 제물이 있는 것을 보아 아무래도 농부나 동물을 준비하기 어려운 가난한 자들이 번제 대용으로 소제를 바쳤을 것이다.
소제는 따로 드리기도 하였지만 다른 동물 제사에 수반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특이한 것은 추수를 감사하기 위해(레 2:12,14) 칠칠절(오순절)에는 백성들이 새 소제, 즉 새로 거둔 첫 수확물을 소제로 바쳤다(레 23:16). 첫 수확물이란 단순히 시상적인 의미에서 처음 것이 아니라 맏물을 의미한다. 이는 애굽에서 건짐을 받았을 때 애굽의 모든 장자들이 죽임을 당할 때 이스라엘의 장자는 어린양의 피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 않은 은혜가 주어진 것에 근거한다. 그러기 때문에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은 장자는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든 처음 난 것(대표 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셨다. 이런 차원에서 하나님께서는 장자 대신 레위를 선택하셨다.
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3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민 3:12-13)
레위지파의 희생의 모습은 땅이 없는 것으로 표현된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시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나머지 다른 모든 지파의 사람들은 레위지파의 희생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표현이 바로 십일조를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레위지파도 완전한 제사장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레위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 즉 유다지파에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은 마치 멜기세덱이 나타나 아브람을 축복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즉 구약의 제사장은 레위라고 하는 혈통을 따라 제사장이 되었는데 멜기세덱은 레위 족속, 즉 레위 혈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으로 등장하고 있다. 왕직과 제사장직을 겸한 인물(제사장적 왕)로서, 레위의 혈통이 아니라 유다의 혈통을 따라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런 분이므로 하나님의 아들과 방불하다고 하였다. 더구나 예수님은 제사장직의 승계가 필요 없는 분이셨다. 예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시 110:4).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분명히 보여주시기 위하여 모든 소제물에 누룩을 금하며 기름을 붓고 유향을 더하되 반드시 소금을 치라고 말씀하셨다(에스겔 43:24을 통해 보건대 당시 제사에 바쳐지는 모든 동물에게도 소금을 쳤던 것으로 보인다). 소금은 정결, 거룩의 필수품이었고 이는 곧 영원한 언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민 18:19)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대하 13:5)
소금이 거룩하고 영원한 언약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거룩하시고 변함없이 영원하신 분은 누룩없는 떡이며 하나님께 향기로운 유향이신 오직 예수 그리스이시다. 실로 예수 그리스도는 소제에서 나타내주는 장자요 맏물로서 십자가에서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소제를 드리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소제의 제물이 맏물이 되실 메시아, 소금으로 보여주는 영원한 언약을 하나님 편에서 성취하실 메시아를 확인하고 기다리는 제사여야 했다.
3.화목제(히, 슐라밈)
화목제에 대해서는 레위기 3:1-17에 나와 있으며 7:11-36에서 화목제의 고기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상세한 규례가 주어진다. 히브리어 ‘슐라밈’은 ‘샬롬’(평화, 화목, 안전, 완전)에서 파생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복수로 표현되고 있는 이유는 감사제/찬양제(히, 토다), 서원제(히, 네데르), 낙헌제/자원제(히, 네다바)의 세 가지 제사가 있기 때문이다.
화목제는 제물의 일부만 하나님께 드리고 제사가가 제물을 먹을 수 있는 제사이다. 제물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화목되어 하나님의 식사에 참여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된 자는 자기 자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가 죽은 존재로 하나님 앞에 드려질 때에 하나님의 약속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제물에 안수함으로 표시한다.
자신의 희생 그것은 철저한 죄에 대한 대가이다. 그 대가는 죄의 권세에 매여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불가능하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통해 대신 희생제물이 되셔서 언약을 성취하시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언약 백성이란, 예수님께서 희생되신 십자가의 자리에 내가 희생되어 있음을 믿고 또한 그것을 날마다 보는 자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출애굽기 24장에 보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장면을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그 피의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뿌리며 “언약의 피”라고 하였다(출 24:8). 그리고 언약이 체결된 장면을 이렇게 그린다.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출 24:9-11)
15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 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15-20)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계 3:20-21)
출애굽기에서 보여준 언약 체결을 기름 부음 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실 것을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통해 보여주셨고 그 성취된 언약에 참여된 자를 “이기는 자”로 요한계시록에서 나타내고 있다.
4.속죄제(히, 하타트)
레위기 4:1-5:13에 규정되어 있다. 속죄제는 부지불식 간에 행한 죄나 실제 말씀을 어긴 것에 대한 구체적인 죄를 위해 언제든지 행해지는 제사였다. 또한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임직이나 나실인의 서원 같은 몇 가지 특별한 예식이나 절기 때마다 행해졌다.
이 제사의 특이점은 제사장이 제물의 피를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리고 분향단 뿔에 바른 후 나머지는 번제단 밑에 쏟는다. 성소에 피가 뿌려지는 것은 인간의 죄가 성소를 날마다 더럽히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기름과 내장은 번제단에 태우고 제물의 나머지 모든 것은 진영 바깥 재 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불사르게 되어 있다(레 4:1-12). 이 말씀의 성취를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렇게 밝힌다.
11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히 13:11-13)
히브리서 기록자가 밝히고 있는 것은 대속의 죽음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성전이 있고 그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며 율법을 고수하려는 자리가 아니라 종교기득권자들에 의해 밀쳐냄을 당하신 십자가의 자리라는 의미이다. 그곳이 바로 영문 밖이다. 이런 점에서 영문 밖이란 마태의 입장에서는 당시 유대인들 입장에서 이방 땅과 같이 여기는 갈릴리로 이미 밝혔었다.
12 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마 4:12-16)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열한 제자들을 다시 만나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 이미 성취되었고 그 말씀이 이제 제자들을 통해 흑암의 백성,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이방을 비추는 빛(눅 2:32)으로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참고 사 9:1-2, 49:6, 행 13:47).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여기서 화목 제물은 헬라어로 ‘힐라스모스’인데 간단하게 표현하면 ‘화해의 제물’로 속죄 제물이라고 할 수 있다.
5.속건제(히, 아샴)
속건제에 대해서는 레위기 5:14-6:7에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어 ‘아샴’이 동사로 쓰일 때는 ‘죄책을 깨닫다’, ‘최책을 지다’라는 뜻이지만 명사로는 ‘죄 또는 죄에 대한 책임과 배상’을 뜻한다. 우리 성경의 번역에서 ‘속건’이라고 할 때에 ‘건’(愆)은 허물로 벗겨내는 과실을 의미한다. 속건제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힌 죄를 염두에 둔 제사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재산과 사람의 재산을 나누어 배상하지만 모든 죄가 궁극적으로 여호와 앞에 저지른 죄로 표현된다. 그러기 때문에 속건제는 죄인의 자백이 요구된다.
15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하여 부지중에 범죄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네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숫양을 양 떼 중에서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서 16 성물에 대한 잘못을 보상하되 그것에 오분의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숫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17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18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레 5:15-18)
그러므로 우리가 이 제사를 통해 이해해야 하는 것은 속죄제는 원죄와 관련되어 있고 속건제는 우리의 일상적 생활 속에서 범하는 자범죄와 관련되어 있다고 착각하기 쉬운데 문제는 성경이 말씀하는 죄라고 하는 개념은 하나의 개념이지 결코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냥 죄에 대한 대속의 개념이 아니라 그 죄가 내 속에서 말씀에 의해 확연히 드러나는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 느끼고 그것을 자책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 자책을 벌물로 대체하지만 언약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 벌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해소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죄인 중의 괴수라는 죄의 자책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휼을 선포하였다.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딤전 1:14-16)
6.피와 기름
레위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제사 제물은 제사장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있고 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소제물의 남은 가루는 제사장의 몫이다(레 2:10). 또 소제물로 드려지는 곡식 가루도 남는 것은 제사장이 먹는다(레 5:13, 6:18). 그리고 피와 분리되지 않은 채 바쳐지는 동물성 속죄 제물도 제사장이 먹을 수 있다(레 6:2,6,20). 그리고 속건제에서 내장을 제외한 모든 고기도 역시 제사장의 몫이다(레 7:6). 또 화목제의 고기도 제사장의 영원한 소득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레 7:34,36).
그런데 제사장도 먹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피와 기름과 내장과 그리고 피와 분리된 고기와 번제에 쓰인 제물은 제사장도 먹지 못하게 되어 있다(레 1:9, 3:17, 4:12 등). 기름은 하늘로 올라가는 향기로서 오직 하나님만이 맡을 수 있는 요소이다(레 3:3-5, 4:26 등). 또한 제물의 피는 제단에 뿌려질 뿐만 아니라 제단과 성막을 거룩하게 하는 데 쓰인다(출 29:10-21, 30:10).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볼 때에 제물은 대체로 피, 기름, 내장과 근육질 고기가 분리되어 다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분리된 고기가 제사장의 식사로 제공되어 생존에 도움이 된다. 제사장들이 이 땅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 안에 거룩이 유지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피를 철저하게 분리함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은 생명이다. 생명이 피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은 이미 애굽에서 죽은 존재나 다름없는 자들이기에 그들에게 계속해서 생명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길은 피를 따로 분리해서 다루게 하는 것이었다.
10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0-11)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는 피가 제단에서 소멸됨으로 그 피(생명) 때문에 거룩이 제공되는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에게 제공되는 거룩이란 희생 제물의 생명 위에 근거한 것으로서 그 희생 제물의 죽음에 참여한 자에게는 공동의 거룩과 의를 누리게 된다. 마치 처음 유월절 때에 고기를 집 안에 모여 있는 자들이 나누어 먹음으로써 양의 죽음과 장자의 죽음이 일치된 것으로 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초태생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말씀하셨다(출 13:2). 애굽에서 죽지 않고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살게 된 자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전체가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은 모든 장자를 대표하여 레위인을 선택하셨다. 이렇게 장자를 대표하는 자들이 바로 제사장들이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서 어떻게 계속 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하신다.
그렇다면 기름을 구분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일까? 창세기 4:4에 보면 아벨의 제사를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양의 첫 새끼란 아벨의 생업에서 나온 소산물이다. 그러나 아벨이 기름을 따로 구분하여 드렸다는 것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이것을 히브리서 11:4에서는 믿음으로 드린 제사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벨의 믿음이란 앞으로 오게 될 여자의 후손이 기름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아벨의 믿음의 증거로 하나님께서 그의 제물을 눈여겨 보셨던 것이다.
따라서 기름은 오직 하늘로부터 가치가 제공된 것에만 부어지게 된다. 땅의 것이 아닌 하늘의 것이라 여겨질 때 기름을 발라 거기에 상응한 고백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야곱이 사닥다리의 꿈을 꾸고 난 뒤 자기가 베었던 돌을 취하여 기름을 부은 행위는 그 자리를 거룩한 자리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창 28:18). 제사장에게 기름을 바르라는 하나님의 지시는 바로 이런 점에 근거하고 있다.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거룩하게 하고 그들이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고(출 30:30)
따라서 제사장에게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이다. 땅에 있지만 하늘의 것으로 거룩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소유를 인간이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제물의 기름을 따로 구분하여 연기가 되어 하늘로 향하게 한다. 그것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것이다. 피는 생명이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피가 다 영원한 생명으로 효용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기름이 하늘로 상달되는 제물의 피만이 대속의 가치가 있는 생명이다.
기름이 태워져 그것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냄새가 된다면 피는 소모되어 심판의 의미를 드러낸다. 그러기 때문에 기름과 피는 제사 제도에 있어서 거룩을 확증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되기 위해 기름과 피는 함께 발라지고 또 함께 쓰인다(레 14:17). 성막을 거룩하게 하는 데에도 기름이 동원된다(민 7:1). 어느 누구도 기름과 피는 먹지 못한다(레 3:17).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록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소개하면서 이렇게 선언한다.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주께 부어 주를 동류들보다 뛰어나게 하셨도다(히 1: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름 부음을 받은 분으로서 피를 흘리시는 대속의 죽음을 이루셨다면 그것은 완전한 대속이다. 더 이상 다른 속죄자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제사 제도를 반복하는 것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믿는 것을 통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양의 희생에 동참하게 되는 것은 제사장을 통해서였다면 오늘날 우리는 대제사장으로서 친히 완전한 속죄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이다. 희생 제물의 죽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자신들이 같은 희생 제물과의 일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 것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이 말씀은 이스라엘을 향해서나 오늘날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살라고 요구하는 말씀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표현된 언약이다. 하나님의 언약이라면 하나님 편에서 이루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구원하신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게 만드신다는 약속이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거룩하신 하나님께 속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기름 부음이 성도 안에 거한다고 선언하면서 성령께서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려주시고 가르쳐주시기 때문에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적그리스도를 경계할 것을 전하였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1-22)
이를 바울 사도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자는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그것은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 장로만 기름 부음 받은 자로 말하는 자들이 있는데 아마도 이들에게만 안수로 교회의 직분에 세워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러나 실상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져 연합된 자는 십자가 죽음에 동참되어진 자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기름 부음 받은 자, 즉 성령을 받은 자가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기름 부음을 받아 성령받은 자 성도는 비록 이 땅의 역사 속에 살지만 본질은 하늘에 속한 자로 묵시를 살아가는 자이다(강론/김영대).✞
20190825 레위기의 5대 제사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pdf
레위기의 5대 제사와 영적의미!
◐ 레위기의 5대 제사 ◑
레위기는 여호와께 드려야 할 5 대 제사의 규례로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러한 레위기의 시작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왜냐하면 건축된 성막의(출40:17) 주된 목적이 제사였고, 따라서 성막이 완성된 지금 그곳에서 드려질 제사의 규례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한 논리요 순서이기 때문이다.
제사의 종류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5 대 제사로 분류하기도 하고 6 대 제사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제사장의 위임식 때 거행하는 위임제를 여기에 포함시키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른 차이인데, 여기서는 5 대 제사만을 거론할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제사장의 위임식 때 행해진 위임제는 모든 이스라엘에게 관련된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위임에만 관련된 것으로 보고, 모든 이스라엘이 행해야 할 나머지 5 대 제사, 즉 '번제와 소제', '화목제와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에 대해서만 살펴보기로 한다.
1. 번제(Burnt Offering)
1) 어의
번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올라'( )는 '올라가다', '실어 올리다', '높이다'라는 뜻의 '아라'( )에서 파생된 것으로서 '위로 드려지는 제사', '위로 올라가는 제사'를 뜻한다. 이러한 단어의 의미는 불에 태워진 희생 제물의 향기가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2) 제물의 종류
번제에 사용된 제물은 수송아지, 수양, 수염소, 혹은 비둘기인데, 이 모든 제물은 반드시 흠없고 일년 된 수컷임을 그 특징으로 하였으나 비둘기에 대해서만은 수컷이나 암컷 중 어느 것을 드리라는 특별한 지시가 없다.
3) 번제의 방법
① 헌제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나아온다.
② 헌제자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한다.
③ 헌제자가 제물을 잡아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
에 뿌린다.
④ 헌제자가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각을 뜬다.
⑤ 제사장은 그 뜬 각과 머리와 기름, 그리고 물로 씻은 내장과 정강이를 단 위
에서 불 사른다.
이러한 방법은 양과 염소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으나 비둘기의 경우는 달라서 제사장 혼자서 머리를 비틀어 끊고 단 위에 불사르며 피는 단 곁에 흘리고 멱통과 창자 등은 재 버리는 곳에 버리고 몸은 쪼개어 단 위에서 불살랐다.
4) 번제의 목적
번제의 목적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 첫번째는 '속죄를 위한 것'(레1:4,16:24)인데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속죄제와 속건제가 죄를 속하기 위해 드려지는 제사라는 점을 들어 이 목적을 등한시 여기거나 그냥 지나쳐 버리려 하지만 번제의 주된 목적은 성경이 밝히 말해 주고 있는 대로 '속죄를 위한 것'이다. 번제의 두번째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헌신에 대한 표현'이다. 이러한 목적은 창2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순종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는 자신의 순종과 믿음의 증명을 위해 자신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려 하였고, 그러한 믿음과 순종을 인정하신 여호와께서는 그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으신 양을 제물로 삼아 번제를 드리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의 헌신과 믿음을 인정하셨다.
5) 번제의 영적 의미
번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원의 희생을 상징'함과 동시에 그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그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번제의 영적 의미는 한마디로 '그리스도의 희생과 성도들의 헌신'이라고 할 수 있다.
2. 소제(Meat Offering)
1) 어의
소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민하'( )는 '분배하다', '수여하다'라는 의미의 어근 '마나'( )에서 유래한 것으로 '헌물', '조공', '희생 제물'을 뜻하는데 특별히 '피 없는 곡물 제사'에 사용되어 말 그대로 '소제', 또는 '피 없는 곡물 제사'를 뜻한다.
2) 제물의 종류
소제에 드려진 제물의 종류는 모두 네 가지였다. 그 첫째는 '고운 가루'로서 여기에는 '기름'과 '유향'이 첨가된다. 둘째는 누룩을 넣지 않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으로서 무교병을 만드는 방법은 '화덕에 구운 것'(레2:4)과 '번철에 부친 것'(레2:5), 그리고 '솥에 삶은 것'(레2:7)의 세 가지였다. 소제물의 세번째는 '처음 익은 곡식'이었으며, 네번째는 '첫이삭'이었는데 특별히 첫이삭을 소제물로 드릴 때는 볶아 찧은 것에다 기름과 유향을 드려야 했다.
3) 소제의 방법
소제를 드리는 방법은 제물을 제단으로 가져오기 전에 집에서 제물을 준비하는 것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데 그것은 제물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소제를 드리는 방법에 속하기 때문이다.
첫째, 고운 가루의 소제물일 경우에는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놓은 후 제사장에게로 가져오는데 제사장은 고운 가루 한 줌과 모든 유향을 취하여 기념물로 제단 위에 불사른 후 나머지는 자신의 음식으로 취한다.
둘째는, 무교병을 소제물로 삼을 경우인데 이 때는 화덕에 구운 것과 솥에 삶은 것은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들고, 번철에 구울 경우에는 고운 가루를 누룩 없이 기름과 섞어 구운 후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붓는다. 이러한 무교병의 소제물 역시 제사장에게로 가져가면 제사장은 그것 중 기념할 만큼만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고 나머지는 자신의 음식으로 취하였다.
셋째는, 첫이삭을 드릴 경우인데 이 때는 반드시 그 곡식을 볶아야 하며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유향을 더한 후 제사장에게로 가져가야 하며 제사장은 그중 얼마와 모든 유향을 취하여 여호와께 화제로 드린 후 나머지는 자신의 음식으로 취하였다(이때의 나머지에 대해 성경의 특별한 언급이 없지만 소제물이 제사장의 음식으로 주어졌다는 일반적인 규례를 따를 때 첫이삭의 소제물 역시 제사장의 음식으로 주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이러한 모든 소제물에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모든 소제물에는 누룩과 꿀을 넣지 말고 반드시 소금을 치라는 것이었다.(레2:11,13)
4) 소제의 목적
소제의 목적 역시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우리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물질을 공급하여 주시고 보호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며 경배 돌리기 위함이며,
둘째는 자신의 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음식을 제공하여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5) 소제의 영적 의미
소제의 영적 의미는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영적 양식의 공급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자신 스스로 생명의 떡이 됨을 상징하는 동시에(요6:32-35), 이러한 영적 양식과 일용할 육적 양식까지도 공급받는 성도들이 드려야 할 감사의 의무를 상징한다. 한편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는 명령은 '영원한 계약'을 상징하는 '소금'(민18:19,대하13:5)을 통해 제사 드리는 자가 하나님과의 영원한 계약 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제사 드리는 자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과 제사 드리는 자는 그 계약법을 지켜야 할 영원한 의무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과의 영원한 계약 관계에 있는 자는 죄악과 세상의 유혹에서 떠나야 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죄악을 상징하는 '누룩'과 달콤한 세상의 유혹을 상징하는 '꿀'을 모든 소제물에서 제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하신 명령으로 주어졌다.
3. 화목제(Peace Offering)
1)어의
화목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제바흐 쉐라밈'( )은 '동물을 살육하다', '죽이다', '제사 드리다'라는 뜻의 '자바흐'( )에서 파생된 '도륙', '희생물'을 뜻하는 '제바흐' )와 '완전한', '정다운', '공평한', '평화로운'을 뜻하는 '솨렘' )에서 파생된 '쉐라밈'( )의 합성어로서 그 의미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 또는 '평화로운 관계를 얻고자 하는 희생 제물'이라는 의미이다.
2) 제물의 종류
⑴ 소와 염소 : 흠 없는 것으로서 암컷,수컷 구별 없이 어느 것이든 가능하다. 그러나 전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 그리고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⑵ 양 : 소와 마찬가지로 흠 없는 것으로 하되 암,수 어느 것이든 가능하였고, 어린 양을 드릴 수도 있었다. 양의 경우 역시 양의 기름만을 드리되 미려골(등심뼈 또는 척추)에서 베어 낸 기름진 꼬리와 내장에 덮인 것과 모든 기름진 두 콩팥과 간에 덮인 기름과 꺼풀만을 콩팥과 함께 드릴 수 있었다.
3) 화목제의 방법
화목제를 드리는 방법은 번제의 방법과 거의 유사한데 그 순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헌제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끌고 여호와 앞으로 나아온다.
② 헌제자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한다.
③ 헌제자가 제물을 잡아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번제단 사면에 뿌린다.
④ 헌제자가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그 속의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콩팥과 그 위의 기름과 허리 근방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것을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것들을 받아 제단에서 불사른다.
⑤ 제물의 가슴은 '요제'로 제물의 우편 뒷다리는'거제'로 흔들어 제사장의 음식으로주어지는데 제사장과 가족들은 그것을 그날에 다 먹어야 하며 남은 것은 불에 태워야 했다.
4) 화목제의 특색
화목제는 다른 제사와는 달리 두 가지의 특색이 있었다. 그것은 첫째로, 의무적인 제사가 아닌 '선택적인 제사'로서 '자원함으로나'(레7:16), '서원함으로'(레7:16,삼상1;21이하), 그리고 '감사함으로'(레7:15)드리는 제사였으며, 둘째로, 화목 제물의 고기를 헌제자도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축제 형식의 제사였다는 점이다(레7:15-21)
5) 화목제의 영적 의미
화목제의 영적 의미는 화목제의 성격이 드러내는 바 그대로 하나님과 죄인을 화목케 하는 '화목 제물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과(롬3:25,엡2:13,골1:20),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을 누리는 성도들의 친교인 '성만찬에 대한 예표'이다(고전10:16)
4. 속죄제(Sin Offering)
1) 어의
속죄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하타트'( )는 '과녁에서 벗어나다', '죄를 짓다', '속죄물을 드리다', '속죄하다'를 뜻하는 '하타'( )에서 파생된 것으로 '하나님의 법에서 벗어난 죄로부터 청결과 속죄함을 얻기 위하여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2) 제물의 종류
속죄제의 제물은 범죄자의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달랐다.
① 제사장 -- 흠 없는 수송아지를 드림(레4:3)
② 온 회중 -- 수송아지를 드림(레4:13)
③ 족장 -- 흠 없는 수염소를 드림(레4:23)
④ 평민 -- 흠 없는 암양이나 암염소를 드림(레4:28)
이 외에도 가난한 자는 산비둘기나 집비둘기를 제물로 드릴 수 있었으며(레5:7), 이보다 더 가난한 자는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제물로 드릴 수 있었다(레5:11)
3) 속죄제의 방법
① 헌제자가 제물이 될 짐승을 회막문 여호와 앞으로 가져온다.
② 헌제자의 손을 제물의 머리 위에 얹고 안수한다.
③ 헌제자가 제물을 잡아 피를 제사장에게 주면 제사장은 그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 성소 앞에 일곱 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른 후 회막 앞과 번제단 밑에 전부 쏟는다.
④ 희생 제물의 모든 기름과 콩팥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른 후 그 나머지 부분은 진 바깥 재 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나무 위에 놓고 불사른다. 그러나 아론과 그 아들들을 위한 속죄제는 진 밖에서 불사르지 않고 다리와 고기를 회막 뜰에서 구워 먹도록 하였다(레6:24-27)
4) 속죄제와 속건제의 차이
속죄제의 목적은 '범죄에 대한 용서'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목적은 속건제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둘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는, 범죄의 성격적 차이로서 속죄제가 하나님께 범죄한 자, 즉 '율법을 범한 죄'를 위한 제사였던 반면에, 속건제는 인간에게 범죄한 죄, 즉 '도덕적인 범죄의 대속을 위한' 제사였다.
둘째는, 속죄제는 속건제와는 달리 '범죄한 일을 배상할 수 없는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제사였던 반면, 속건제는 '배상이 가능한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제사였다는 점이다.
5) 속죄제의 영적 의미
속죄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한다. 그리스도는 실로 속죄 희생의 어린 양이 되셔서(벧전1:19) 모든 인류의 대속물이 되셨는데, 그의 죽음의 장소는 속죄제 희생 제물이 진 바깥 정결한 곳에서 불살라진 것처럼 예루살렘 성 바깥의 골고다 산상의 고통스런 십자가였다.
5. 속건제(Tresspass Offering)
1) 어의
속건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아솸'( )은 '죄'(Sin)가 아닌 '범죄'(Guilt),'범법'(Tresspass), '손해'(Damage)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회적인 죄', 또는 '도덕적인 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2) 속건제의 제물
속건제의 제물은 범죄의 형태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 이러한 제물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너무나도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그러므로 각각의 범죄에 대한 속건 제물에 대해서는 레5:14, 6:7, 7:1-10, 14:1, 15:2을 참고하도록 하되 이러한 여러 가지 제물을 요약하면 '흠 없는 일년된 수양', '범죄물과 그 범죄물의 오분의 일을 더하여 본인에게 주는 일', '산비둘기나 집비둘기 둘'이나,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삼'과 '기름 한 록' 등이다.
3) 속건제의 영적 의미
속건제는 성도가 신앙생활 가운데서 범하기 쉬운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로서 그러한 범죄는 진리를 배반하거나 하나님을 배반하는 죄,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거나 성령의 사역을 거스리는 죄가 아닌 '실수와 실족의 범죄'를 뜻한다.
그러므로 속건제는 구원에 관련된 원죄에 대한 회개나 기도가 아닌 날마다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짓게 되는 육적인 죄, 즉 '자범죄에 대한 회개와 기도에 대한 상징'이다.
요제(Wave Offering, ;'테누파')
농산물을 제물로 드릴 때 사용하는 제사 방법이다. 히브리어 '테누파'는 "앞뒤로 움직이다", "흔들다"는 뜻의 히브리어 동사 '노프'( )의 힢일형에서 유래된 말이다. 탈굼에서는 이 단어를 "일어서다", "들어 올리다"는 동작을 나타내는 의미로 해석하였다. 마쏘라 사본에서는 이 동사의 힢일형이 "들어 올리다"는 의미와(사10:15) "흔들다"는 의미로(사19:16) 모두 사용되었다.
제물을 드리는 방법에는 화제, 거제, 요제, 전제가 있었는데, 요제는 그 중 하나였다(제사의 종류는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가 있었다).
요제로 드려진 제물들은 다음과 같다. 곧 화목 제물로 드려진 동물의 가슴 부분(레7:30,9:21,10:14-15,민6:20,18:18), 성막 장식용으로 바쳐진 보석류(출35:22,38:24), 위임식 수양의 가슴과 넓적다리 부분(29:22-26,레8:25-29), 칠칠절에 드린 누룩 넣은 빵과 곡식의 첫 열매와 어린 양 두마리(23:11-14,17,20), 문둥병의 정결예식에 사용된 어린 수양과 감람유(14:12,24)등이다.
여러 종류의 제물들을 한꺼번에 요제로 드린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출29:22-24,레8:25-27). 또한 요제는 '순결을 판단하기 위한 소제' 때에도 사용되었다(민5:25).
민수기 8:11,15,21절에서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요제'로 레위인을 여호와께 드렸다고 나타나 있다. 요제는 하나의 의식 행위였으며, 요제로 인하여 제물들이 여호와께 헌납되었다. 그러나 요제의 정확한 의미와 성격은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다. 아마도 요제를 드릴 때는, 먼저 제사장이 봉헌자의 손바닥 위에 요제물을 얹어 놓은 다시 봉헌자의 손에서 제사장의 손으로 옮겨 놓고 제사장이 앞뒤로 흔드는 절기를 따랐던 것 같다(민6:19-20). 제사장이 자신의 예물을 요제로 드릴 때는 요제물을 처음부터 자기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흔들었을 것이다.
요제물을 앞으로 내미는 행동은 여호와께서 제물을 다시 제사장에게 주는 것을 의미한다.
거제(擧祭,Offering)
제물을 들어서 제사 드림. 제물을 번제단 위에 높이 들어올렸다가 아래에 내려놓는 제사로, 하나님께 바쳤다가 제사장이 다시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을 의미하는 데서 생겨났다(레7:14,민15:19,신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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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7대 절기
이스라엘의 절기 중에서 아래 링커된 블로거에 자세한 설명이 있으나 유월절에 대해선 자세하게 설명이 없어서 따로 정리를 하고 나머지 절기는 이스라엘의 7대 절기와 의미를 설명한 블로거로 이동하셔서 보시기 바랍니다.
유월절 (Passover) 1
요약 가장 의미 있는 유대인의 명절 중 하나이다. 유월절 축제 음식으로는 파슬리(parseley)나 셀러리(celery) 혹은 양상추 등의 야채, 무교병(matzo), 양고추냉이(horseradish), 과일과 땅콩을 섞은 반죽인 하로셋(Harosheth), 삶은 계란이 있다.
유월절
ⓒ Eczebulun | CC-BY-SA
만약 누군가에게 “왜 오늘밤은 다른 날과는 다른 걸까?”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유월절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유월절 밤 축제의 만찬이 벌어지는 유월절 첫날 밤은 전 세계 유대인들이 매우 신성하게 여기는 시간이다. 부활절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명절 가운데 하나인 것과 마찬가지로 유월절은 유대교에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명절이다.
유월절은 구약성경의 출애굽기에 나오듯이 이집트로부터 유대인 민족 대탈출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 간략하게 말한 것이다. 유월절에 대한 완벽한 이야기는 나일 강 삼각주 유역 동부 지역인, 이집트 동쪽 고센지방에 히브리 인이 정착하게 된 오랜 역사, 잔인한 파라오에 의한 노예생활, 모세의 출생과 이집트에서의 득세, 지도자 모세와 함께 이집트를 대탈출한 유대인의 이야기 전부를 다루어야 한다.
유월절이 오기 전 유대인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효모와 관련된 것을 모두 없앤다. 이는 그들의 조상들이 이집트를 탈출하는 오랜 기간 내내 유일하게 먹었던 음식인 딱딱하고 효모가 들어가지 않은 빵을 먹으며 그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무교병은 유월절 기간에 빵 대신에 먹는, 크래커 같이 생긴 효모가 없는 빵이다. 하지만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도 이 무교병을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1년 중 다른 기간에도 가끔씩 무교병을 먹는다.
조상들이 노예생활을 하면서 당한 고난을 기리기 위해 유월절의 첫째 날과 둘째 날 밤에는 유월절 밤 축제(seder)를 연다. ‘세데르(seder)’는 ‘순서’라는 뜻으로서 유월절에 일어난 사건의 순서를 의미한다. 각각의 단계를 위한 음식이 따로 정해져 있는데, 사과, 꿀, 견과류로 만든 과일절임 반죽인 하로셋은 이집트 정착 초기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먹는 것이며, 쓴 나물 양고추냉이는 노예시절을 상징한다. 이 의식은 종종 유대인 가정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소유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하가다(Haggada)’라고 하는 책에 잘 나와 있다.
이집트로부터 유대인들이 대탈출을 감행한 시기가 봄이기 때문에 유월절 축제도 항상 봄에 진행된다. 이 축제는 8일 동안 지내는 게 보통이지만, 간혹 개혁파 유대교도들은 7일 동안 지내기도 한다. 유월절의 시작은 기간이 언제인지에 상관없이 항상 유대 달력으로 니산(Nisan) 달 제 14일이다.
유월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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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逾越節) 또는 과월절(過越節), 페사흐(히브리어: פסח), 파스카(고대 그리스어: πασχα)는 유대인들이 이집트 신왕국의 노예 생활로부터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로, 유대교의 3절기 중 봄에 지내는 절기이다. 때문에 '하그 에 아비브'(봄축제)라고도 하며 노예 생활로부터의 탈출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즈만 헤루테누'(자유의 때)라고도 한다. 날짜는 유대력 니산월(1월) 14일 저녁이다.(레위기 23:5). 한국의 역사에 비교하여 설명하면 유대인들의 광복절과 같은 날이다. 2015년에는 4월 22일이었다.(반면 2016년의 부활절은 3월 27일이었다.)
개요[편집]
유월절을 가리키는 여러가지 단어들은 '넘어간다'(passover)라는 의미다가 이것은 출애굽기 12장에 그 유래와 기념 방법이 제시되어 있는 유대교의 대표적인 절기로서, 이집트에 내려진 10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인 '장자들의 죽음'으로부터 넘어갔다는 것을 지칭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에서 구원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유대교의 대표적인 축제이자 종교적 절기로 자리 잡았다. 출애굽기에 제시된 유월절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먼저 흠 없는 수컷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뒤 그 양을 살과 내장을 모두 굽고,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은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는다. 이 때 마치 바로 이집트를 떠날 채비를 하듯, 신을 신고 허리띠를 두른 뒤 지팡이를 잡고 식사를 하며 식사 후 아침이 될 때까지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이후, 유대인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오게되면서 이 축제는 이집트의 학정에서 구원하고 백성들을 재앙으로부터 넘겨주신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처음 유월절을 지내던 모습을 재현하는 장이 되었다.
이에 따라 유대교에서는 '하가다'라고 불리는 율법에 따라 결정된 예식 규범 및 결정에 따라 엄격히 시행한다. 니산월 10일부터 식사 때 먹을 어린양을 골라 '세데르'라 불리는 위에서 나타난 유월절 식사를 니산월 14일 밤마다 먹는다. 이 '세데르' 식사 자리에서 유대인 가정의 아들(보통은 막내) 한 명이 지명을 받아 어른들에게 '왜 오늘 밤은 다른 밤과 구별되는가'에 대해 질문을 하며 이집트에서 해방된 이야기와 로마 지배에서 해방되어야 함을 기도형식으로 대답하고, 식사를 끝낼 때 모인 사람들은 '내년은 예루살렘에서'라고 말한다. 이는 곧 유월절이 이집트에서의 해방이라는 과거를 기념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도래할 메시아에 대한 희망을 품은 성격이 있음을 의미한다.
유월절이 끝난 후 15일부터 7일 동안 무교절로 지내며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으며 첫 날과 7째 날에 성회를 가진다. 원래 이 두 축제는 별개의 축제로 취급되었으나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 노예 생활에 대한 기억이며 죄악으로부터 정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다, 실질적으로 무교절에 쓸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월절 전부터 준비해야 했으므로 점차 하나의 절기로 여겨졌다.
유월절 다음 첫 안식일 다음날(주일)은 초실절(오메르)이다.
기독교에서의 변화[편집]
기독교에서도 유월절은 유대교처럼 교회에서 공식적인 전례로 기념하진 않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구약의 절기로 여긴다. 흠 없는 양을 잡아 그 피로 재앙으로부터 구원받고 노예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러 온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예표로 상징되었으며 유월절을 전후로의 기간 즉,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말하는 파스카 성삼일 기간은 유월절 어린 양인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교회력의 핵심적인 절기로 자리 잡았다.
유월절은 성경에서도 명확하게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언제 있었는지를 이야기해주는 지침이 되는 날이었으며, 동시에 이 날은 저녁식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와 12사도들이 모임으로써(이른바 '최후의 만찬') 성체성사(혹은 성만찬)를 제정한 날이었다. 성체의 의미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위해 흘릴 몸과 피는 유월절 어린 양과 결합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참된 유월절의 흠 없는 양이라는 것이 신학적으로 명확해진 것이었다. 이 날은 교회 전례력에서 '성 대 목요일'(성체성사 제정 기념일/주님 만찬 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참된 유월절 어린 양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유월절을 전후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구원의 예표인 유월절 기간은 점차 진정한 구원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간으로 바뀌어 갔다. 2세기부터 3세기까지 동방교회 특히 성 사도 요한과 필립보의 전통을 따르는 폴리카르포, 사르디스의 멜리토 등의 교부들은 유대적 전통과 신학적 예표 의미가 강한 유월절의 날짜인 니산월 14일을 그대로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삼자고 주장했으나, 서방교회는 부활이 일어난, 니산월 14일 후 바로 돌아오는 일요일에 지내는 것을 주장했다. 부활절 논쟁이라 불리는 이 논쟁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서방교회의 주장이 받아들여짐으로써 마무리되었다.(춘분 후 첫 보름달이 지난 주일)[1
이스라엘의 7대 절기와 의미
이렇게 길게 성막으로 부터 제사의 영적인 의미를 설명한 두편의 글과 그리고 이스라엘의 7대 절기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성막과 제사와 관련된 좋은 책도 있습니다. 검색하셔서 보시면서 레위기에 대한 이해를 넓히시기 바랍니다.
레위기를 올바로 이해를 해야 예수님에 대한 이해도 늘고 그리고 레위기의 율법이 이 시대에도 세상의 불의를 고치기 위해서 크리스천이면 반드시 실천을 해야되는 부분이 너무나 많으니 반드시 사명감을 가지고 성도이면 잘 배우고 실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기본 의무입니다. 저도 고시공부를 하고 신학을 하고 성막에 대해서 배울 때 레위기는 가까이 가기도 이해도 어려웠지만 어려운 세상에서 지금의 세상의 법들이 별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함을 보고, 그리고 너무나 어려워지는 세상살이에 지쳐 주님을 볼 때 레위기는 빛으로, 시원한 생명의 샘물로 다가오고 이렇게 모든 분과 같이 배우고 있으니,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흥미와 열정을 주심으로 이렇게 집중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을 고백하며 이런 은혜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앞서서 배운 분들의 글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이분들의 노력으로 저는 별로 고생하지 않고 레위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모든 분께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기 바라며 감사를 드립니다.
이곳에 오셔서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께 부탁을 드립니다. 저를 위해서 잘 배울 수 있게 겸손한 마음과 지혜와 건강과 형편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시길 기도해 주시길 부탁을 드립니다. 저도 모든 분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