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미쳤다. 갈수록 정신없이 빨리 간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자꾸 빨리 가는 걸까? 심리학자들의 대답은 아주 단순명료하다. 기억할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이 많으면 그 시기가 길게 느껴지고, 전혀 기억할 게 없으면 그 시기가 짧게 느껴진다. ‘회상효과’다.
인생에서 어느 시절이 가장 뚜렷하냐고 물으면 대부분 학창시절을 언급한다. 노인들도 학창시절의 기억은 아주 생생하게 언급한다. 노인들도 학창시절의 기억은 아주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가슴 설레는 기억이 많은 그 시절의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다. 모두가 새로운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시기부터 시간은 아주 미친 듯 날아가기 시작한다. 당연하다. 정신없이 바쁘기만 했지 기억할 만한 일들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죄다 반복적으로 어쩔 수 없이 처리해야 하는 일들뿐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올 한 해도 불 보듯 뻔하다. 일 년 뒤, 난 또다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미친 시간’에 한숨 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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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게 없다는 이야기는 내 삶에 전혀 의미 부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야기 한다. 죽기 직전 그 짧은 몇 초의 시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지며, 인생의 중요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짧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본능적 행위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수록 긴장해야 한다. 의미부여가 안 되니 쉽게 좌절하고, 자주 우울해지고, 사소한 일에 서운해진다. 이런 식이라면 ‘성격 고약한 노인네’가 되는 것은 아주 순식간이다. 삶의 속도와 기억에 관한 심리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이 ‘미친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억할 일들을 자꾸 만들면 된다. 평소에 빤하게 하던 반복되는 일들과는 다른 것들을 시도하라는 이야기다. 인생과 우주 전반에 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계획은 아무 도움 안 된다.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들을 시도해야 한다.
오늘도 술잔 앞에 두고 부하 직원들에게 한 이야기 하고 또 하지 말자는 거다. 이제 다 외울 지경인 윗사람 이야기 참고 또 들어줘야 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면서 도대체 왜들 그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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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의 창시자인 빌헬름 분트는 인간이 경험하는 ‘현재’의 길이를 측정했다. 약 5초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불과 5초만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과거나 미래를 사는 게 아니라. 오직 현재를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5초의 객관적 단위는 주관적 경험에 의해 얼마든지 팽창될 수 있다. 제발 현재를 구체적으로 느끼며 살자는 이야기다. 그래야 시간이 미치지 않는다.
(남자의 물건 : 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김정운 지음, 21세기북스,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