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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갑자
2079년
60년전 2019년
1719년 리히텐슈타인 공국이 신성 로마 제국 관할로 건국되었다.
숙종 말년에는 삼남지방에서 양전 사업이 완료되어 총 66만 7,800결을 얻고, 전국의 인구는 680만 명으로 늘어났다(1720년).
60년전 기해년
리처드 크롬웰이 영국 호국경을 사임하였다.이듬해 찰스 2세왕정복고
현종즉위
50년전 기유
에트나 화산이 폭발하여 근처 도시 시민 2만명이 사망하였다.
벵골 지방에서 기근이 발생하여 300만명이 사망하였다.
40년전 기미
영국에서 인신보호법을 공포하였다.
무굴제국 제 6대 황제 아우랑제브가 지즈야를 부활시켰다.
30년전 기사년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가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대거 실각하였다.
영국이 권리장전을 발표하였다
20년전 워싱턴주 태평양 연안의 캐스케디아 섭입대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10년후 기유 노스캐롤라이나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20년후 기미 건륭제의 명에 의해 흠정만주원류고가 간행되었다
30년후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의 오라토리오 솔로몬이 초연되다.
- 영국인들이 핼리팩스로 이주하기 시작
40년후 기묘년
7년 전쟁: 영불 양국이 캐나다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아브라함 평원 전투를 벌였고, 영국이 승리하여 퀘벡이 함락된다.
덴마크 령 인도 식민지가 영국에게 매각되었다
50년후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를 획득하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다.
프랑스 왕국이 코르시카를 점령하다
7년 전쟁의 후폭풍으로 프랑스가 인도에서 완전히 철수하였고, 동인도 회사가 파산하였다.
벵갈에서 대가뭄이 들어 1770년의 대기근으로 이어진다.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에 상륙하였다.
60년후 - 미국 독립 전쟁: 스페인이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다.
바이에른 왕위 계승 전쟁: 프랑스와 러시아의 중재로, 바이에른 왕국 /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사이의 강화조약이 체결되다.
1359년
홍건적이 고려에 침입하여 서경을 함락시키다.
왜구가 예성강에 침입히다.
에릭 마그누손이 아버지 마그누스 4세와 화해하여 공동으로 통치하며 스웨덴 왕국이 재통합 되었다.
베를린이 한자 동맹에 가담하였다
60년전 오스만 1세가 스스로를 룸 셀주크로부터 독립한 베이라고 칭하며 오스만 제국을 건국하였다.
제노바 공화국과 피사가 30년 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하며 상호 간의 적대 행위를 중단하였다
피렌체 공화국이 아라비아 숫자의 사용을 금지하고 로마 숫자만을 쓰도록 하였다. 아라비아 숫자 사용이 빈번해진 것의 증거.
50년전 기유 아비뇽 유수 : 교황권의 추락과 중세의 쇠퇴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5세가 그라나다 토후국으로부터 지브롤터를 함락하였다
40년전 기미
스웨덴이 3세의 마그누스 에릭손을 왕으로 모시며 양국간의 동군연합이 이루어졌다. 그의 모친 잉게보르그가 양국의 섭정이 되었다.
키오스 해전에서 로도스 기사단이 아이딘토후국의 해군을 격파하였다.
30년전 기사
펠레카논 전투 (말테페 전투)에서 오스만군대가 비잔틴 제국군을 격파하였다.
- 원명종이 암살되었다. (천력의 변)
원문종이 복위하였다.
20년전 기묘 라우펜 전투에서 베른 칸톤으로 쳐들어온 합스부르크 가문 (오스트리아) 군대, 부르고뉴 공국, 프라이부르크 군대를 스위스 연맹군이 격파하였다.
- 고무라카미 덴노가 일본 남조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모스크바의 크렘린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중세 유럽 도시로는 최초로 피렌체의 모든 도로가 포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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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 프랑스의 왕 샤를 5세가 영국과 프랑스간에 이루어진 휴전협정인 브레티니 조약을 깨고 영국에 전쟁을 선포하였다.
20년후 후안 1세가 카스티야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오스트리아 공작 알브레히트 3세와 그의 형제 레오폴트 3세 간 영토 문제로 노이베르크 협정이 체결되었다.
30년후 코소보 전투에서 무라드 1세가 지휘한 오스만 제국군이 라자르 공의 세르비아 군을 격파하였다. 다만 양측 지휘관이 모두 전사한 피로스의 승리였다
이성계에 의해서 창왕이 폐위되고 공양왕이 왕위에 올랐다.
40년후 - 정종이 조선의 수도를 개성으로 천도하였다.
건문제가 즉위한 그해 연왕 주체가 반란을 일으켜, 정난의 변이 일어났다.
50년후 피사 공의회가 열렸고 여기서 교황 그레고리오 12세와 아비뇽의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의 폐위가 결정되었다.
- 라이프치히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권근사망
60년후 조선의 대마도 원정군, 거제도로 철수
- 후스 전쟁 발발
고려목종 999년부터 1009년 퇴위할 때까지 김치양(金致陽)이 실권을 맡았다. 이에 정치에 흥미를 잃었고 이후, 유행간과 동성애를 즐겼다고 한다.999년에 고려는 송나라와의 관계를 회복시켰다. 요나라를 견제할 목적이었던 것이다
고려와 유럽에 말세론이 퍼지다.
카라한 왕조가 이란계사만 왕조를 멸망시켰다.
폴란드 왕국의 볼레스와프 1세가 실레시아 (슐레지엔)을 정복하였다.
아이슬란드에 기독교를 전파되었다.
페로 제도에 기독교가 소개되었다.
노르만 인이 남부 이탈리아에 도착하였다
60년전 응오꾸옌의 남한군 격퇴로 말미암아 베트남 지역이 중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이후 응오꾸옌이 왕위에 오르면서 최초의 베트남 왕조인 응오 왕조가 성립되었다.
독일왕 오토 1세가 자신의 지배 체제에 들고일어난 반란군들을 진압하였다.
- 에드먼드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50년전 정종죽고 광종즉위
40년전 에드거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7세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사망
30년전 니케포루스 2세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사망.
20년전 후우마이야 왕조, 레온 왕국 침공하여 수도 레온 포위
10년후 강조의 정변이 발발하여 목종(고려)이 폐위되고 현종(고려)이 즉위하였다.
베트남 리 왕조가 수립되었다
20년후 - 북인도의 프라티하라 왕조가 가즈니 제국에게 공격받아 멸망하였다.
모로코의 네코르 왕국이 멸망하였다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30년후 발해의 황족인 대연림이 발해 부흥 운동의 일환으로 흥요국을 건국하였다.
40년후 - 독일왕 하인리히 3세가 이탈리아와 부르군디의 왕이 되었다.
보헤미아 왕국의 브레티슬라브 1세가 폴란드를 공격하여 슐레지엔을 점령하고 그니에즈노에 있던 성 보이테흐의 유골을 프라하로 옮겼다.
50년후 비잔틴 제국과 셀주크 제국이 휴전에 합의하였다.
파티마 왕조가 힐랄 부족을 마그레브로 파견, 이집트에 대한 종주권을 저버린 지리 왕조를 응징케 하였다
60년후 로베르 기스카르와 교황 니콜라오 2세간의 멜피 조약이 맺어져, 노르만의 남부 이탈리아 정복이 인정되고 시칠리아의 정복을 권장되었다.
- 이사키오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위에서 퇴위하였다.
백제 무왕시절 미륵사, 639년 백제 왕후가 창건 가장 오래된 석탑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 건립
1만 8천의 아랍 - 이슬람 군대가 반 호수 인근의 아르메니아 마을들을 약탈하고 돌아갔다.
망월사가 창건되었다.
다고베르트 1세 : 통일 프랑크 왕 죽고 클로비스 2세 즉위하면서 프랑크권력은 지역귀족에게 와해되면서 피핀이 부상.
60년전 호르즈미드 4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50년전 수나라가 진(육조)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면서 남북조시대가 끝났다.
40년전 금산사가 창건되었다.
신라의 고승 원광이 흥국사를 창건하였다.
백제계왕죽고 법왕즉위
30년전 양쯔강과 황하를 잇는 수양제의 대운하가 완성되었다.
판테온이 교황 보니파시오 4세에 의해 기독교 교회가 되었다.
10년전 다고베르트 1세 프랑크 재통일
이복동생 카리베르트2세 초대 아키텐왕이 됨.
1년전 이연이 황제로 즉위하며 당나라가 건국되었다
10년후 당고종이 당나라 3대 황제가 되었다.당태종사망
신라에서 당나라의 제도를 따라 관복을 만들었다.
압둘라 이븐 사드가 이끄는 이슬람군이 키프로스를 점령하였다.
20년후 백제 - 왕도 서남쪽의 사비하에서 큰 물고기가 나와 죽다. 길이가 3장에 달하다.
여자 시체가 떠내려 왔는데 그 길이가 무려 18척이었다.
30년후 순다 왕국이 건국되었다
40년후 다고베르트 2세가 피핀에 암살당하고 테우데리히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면서 프랑크왕 유명무실
50년후 네덜란드 지방이 다시 프랑스의 땅이 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불가르족을 격퇴하고 테살로니카를 되찾았다.
측천무후가 측천문자를 창제, 반포하였다
60년후 699년, 티벳토번의 치둑송첸은 다른 귀족들과 연합해 가르(喝爾) 가문에 대한 전면적 숙청을 단행하였다. 가르친링이 바깥에 있을 때 사냥을 빌미로 군사를 모은 다음 가르친링의 수하 2000여 명을 죽이고 가르친링 등을 소환. 자살케함
279년 곽마가 일으킨 반란의 불길이 동오 전역으로 번지자 독발선비를 진압하느라 지쳐있는 상태였지만, 무제 사마염은 동오를 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여기고 서기 279년 음력 8월, 가충을 대도독으로 임명하고 수십명의 쟁쟁한 장수들과 20만의 대군을 동원하여 동오에 대한 대대적인 침공을 단행한다.
1년후 독발수기능의 난이 진압되자 오멸망 삼국통일.중천왕사망.
70년전 고구려 환도성을 쌓은 10년 뒤인 209년에는 환도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위촉오다투는 시기로 강성한 낙랑으로 인해 고구려가 상당히 북쪽에 있을 가능성.
60년전 고구려일식 마지막기록
산상왕 말기
50년전 손권이 스스로를 오나라의 황제로 칭하고 건업에 도읍을 정하였다.
말갈인들이 백제의 우곡 지역에 침입하여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고, 이에 백제 구수왕이 300명의 군대를 보내었으나 패하였다.
촉나라의 제갈량이 위나라에 대한 3차 북벌을 전개하였다
40년전 조방이 위나라 제3대 황제가 되었다
30년전 고평릉 사변 : 사마의가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있던 자신의 정적인 조상과 그 일당을 처형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위나라 집권 세력은 조씨 정권에서 사마씨 정권이 된다.
로마 제국의 황제 필리푸스 아라부스가 데키우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후 데키우스가 직접 로마 황제에 올랐다.
20년전 갈리아에서 포스투무스가 로마 제국을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밀라노에서 갈리에누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게르만족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259년 위나라 장수 울지해(尉遲楷)가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 오자 왕이 기병 5천 명을 이끌고 태자하(太子河) 상류로 추정되는 양맥(梁貊)에서 싸워서 이들을 무찌르고 8천여 명을 목베었다.
10년전 게르만족 군대가 보스포루스 해협 근방에 있는 로마의 도시를 공격하여 로마 제국의 황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게르만족 침략군을 무찔렀다.
팔미라 제국의 제노비아 여왕이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이집트 지방을 정복하였다
10년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이끄는 로마군이 사르마티아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제위 찬탈자인 카라우시우스에게 점령당한 브리타니아 지방을 수복하기 위해 브리타니아 지방을 공격하였으나 궂은 날씨로 인해 실패하였고, 이후 평화 조약이 둘 사이에 맺어졌다
20년후
로마 제국이 사산조 페르시아와 40년간의 평화 조약을 맺었다.
30년후 로마 제국에 전염병이 퍼져 많은 제국의 시민들이 사망하였다.
샤푸르 2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40년후 미천왕은 칼끝을 요동으로 돌리지만, 요동은 지리적 요충지라 요동을 노리는 세력이 고구려뿐은 아니었다. 그 중 모용선비가 가장 강해 보였기에 319년 진나라 평주 자사 최비의 아이디어로 우문선비, 단선비와 짜고 모용선비를 분할 점령하는 작전에 고구려군도 참가하게 된다. 작전은 실행에 옮겨저 고구려군은 모용선비의 수도인 극성을 포위했으나 모용선비의 군주 모용외의 계략에 걸려들어 물말아먹고 끝났다. 고구려가 요동 진출을 100년 앞서 실현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이 작전이 실패한 덕분에 모용선비는 전연을 건국해 요동은 물론 화북까지 석권하는 강대국이 되어 이후로도 고구려를 괴롭혔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노예를 불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사마보가 동진의 황제인 사마예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진왕이라 칭하였다.
50년후 후조의 공격으로 전조가 멸망하고, 황제 유희와 고관들이 모두 처형당하였다.
60년후 339년, 고국원왕은 전연과 직접 붙기보다는 일단은 동맹을 맺고 340년 태자를 전연에 보내 조회하도록 했다
bc82년
술라, 콜리네 문 전투에서 승리하여 로마의 내전을 종식
고구려족, 임둔군과 진번군을 축출
로마 기원전 442년 일어난 대지진의 영향으로 일부가 파괴됨
황제를 모시는 최초의 제사는 기원전 442년, 탕왕(湯王) 9년에 이루어졌으며, 그 이후 이곳에서 역대 왕조가 제사를 지냈다
기원전 802년 아람인들의 왕국이 무너졌다
기원전 802년(기해) 주나라 선왕 26년, 진나라 목후 희불생이 천묘(千畝)를 공격했다
상원갑자
1899년1월 23일 - 필리핀, 말로로스 헌법을 제정하며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인 필리핀 공화국을 선포.
9월 11일 - 대한제국과 청나라, 통상조약 체결.
9월 18일 - 한국 최초의 철도 노선인 경인선이 노량진 ~ 제물포 (33.2km)간 개통.
10월 11일 - 2차 보어 전쟁 발발.
60년전1839년 2차 이집트-오스만 전쟁이 발발해 이집트가 허무하게 패배 후 시리아 영유권 파기되고 지속적인 열강의 간섭을 받게 됨.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밀약도 파기됨. 그 후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는데 크림 반도 주변에서 전쟁이 일어나 크림 전쟁이라고 불린다
50년전 1848년 혁명으로 독일에서 수립된 프랑크푸르트 의회가 프로이센 왕국의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독일의 황제로 추대하다
40년전 오스트리아 제국과 사르데냐 왕국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다.
수에즈 운하가 착공되다.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발발
캐링턴 슈퍼플레어(캐링턴 사건)라고 일컬어지는 엄청난 양의 흑점과 태양플레어가 관측되었다. 단순한 백야현상 뿐만 아니라 마치 낮과 같은 오로라가 관측되었고, 유럽과 북아메리카 전역의 전화 시스템이 마비되었고, 전력선이 단선되는 등 전기적 시스템들이 전방위적으로 교란당했다
30년전 도쿠가와 막부의 잔존 세력인 에조 공화국의 항복으로 무진전쟁이 종전되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
30년후 미국에서 대공황이 터지면서 20년대의 호황이 끝나고 다음 10년간의 전세계적 정치, 경제적 위기가 시작된다.
40년후 대규모 전면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결국 발발하였다
50년후 국공내전이 종결되면서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국민정부는 대만만 겨우 건져 이때부터 양안간의 대치는 2019-03-13 09:02:52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1539년 탄생자
조선의 문신 류성룡의 친형 원주목사 겸암 류운룡이 태어남.
정확한 일자는 미상. 조선시대의 명의 허준이 태어남.
1월 15일 일본 센고쿠 시대의 무장 마에다 도시이에가 태어남.
조선시대의 천재시인 이달이 태어남
60년전 코펜하겐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탄생;줄리아노 데 메디치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
- 후아나 : 카스티야 연합 왕국과 아라곤 연합왕국의 여왕의 딸 탄생
50년전
29년전 카를은 모친 후아나와 아버지인 미남왕 필리프 대공이 부르고뉴 공국을 다스고 있던 시절인 1500년 부르고뉴 공국의 영지인 플랑드르의 헨트(겐트, Ghent)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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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후 필립2세의 부인 메리1세사망으로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엘리자베스 1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30년후 허균탄생
40년후 네덜란드의 북부 7주가 위트레흐트 동맹을 맺었다.
- 악바르 대제가 지즈야를 폐지하였다
50년후 프랑스 왕국의 국왕. 발루아-앙굴렘 왕조의 마지막 왕 앙리3세사망
후사가 없었고 그의 뒤를 이어 매부였던 앙리 드 부르봉이 즉위해서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되었다
1179년 고려에서, 정권을 잡고 있던 정중부에 대해 경대승이 정변을 일으켜 정중부와 그 아들 정균 등을 처형하고 정권을 탈취했다.
헤이안 말기로 헤이시 정권 지쇼 3년의 정변(1179년)을 시초
에릭 마그누손이 아버지 마그누스 4세와 화해하여 공동으로 통치하며 스웨덴 왕국이 재통합 되었다.
- 에릭 마그누손이 사망하여 마그누스 4세가 스웨덴의 단독 지배자가 되었다
60년전 -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2세의 십자군 부대가 안티오크로 쳐들어온 알레포의 일가지 부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 노르망디의 베르뮬레 전투에서 헨리 1세의 잉글랜드군이 루이 6세의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잉글랜드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
50년전 금릉 함락 이후 북송의 신하 장방창이 금나라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어 괴뢰 국가인 초나라가 세워졌으나 그가 곧 남송으로 도망쳐 폐지되었다. 여담으로 그는 강제로나마 칭제한 죄로 처형되었다..
고려 인종이 금나라 조정에 (영토 할사에 대한 감사) 서표를 올려 보주성이 고려 영토로 인정받게
10년전 잉글랜드의 노르만 군대가 렌스터 백작의 요청으로 아일랜드에 상륙하였다. 잉글랜드의 아일랜드 침공의 시작.
잉글랜드 국왕 헨리 2세와 프랑스 국왕 루이 7세가 평화에 합의하며 12세의 리처드와 9세인 벡셍 여백작이자 루이의 딸인 앨리스를 약혼시켰다.
- 시칠리아에서 지진이 일어나 약 1만 5천명이 사망하였다.
다음해 무신정변
10년후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1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그는 살라딘을 상대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 니에 책에서 후지와라노 야스히라가 살해되며 미나모토 요리토모의 전국 통일이 완수되었다.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군이 십자군 성채인 케라크와 몽 레알을 함락였다.
30년후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잉글랜드의 존 왕을 파문하였다.
천산 위구르 왕국이 몽골 제국에 스스로 복속하였다.
더블린으로 이주한 브리스톨 출신의 5백여명의 잉글랜드 인들이 아일랜드 인들에게 학살되는 암흑의 월요일 사건이 일어났다.
조지아 왕국의 군대가 이란 북부 일대를 습격하였다
-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40년후 가마쿠라 막부의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가마쿠라 한복판에서 조카 구교에게 살해되며 겐지 가문의 적통이 끊겼고, 막부의 쇼군 직이 공석이 되었다. (~1226년)
강동성 전투에서 고려, 몽골, 동진의 연합군이 거란족을 항복시켰다. (대요수국의 멸망)
몽골 제국의 호라즘 왕조 침공이 시작되었다.
호조 가문이 가마쿠라 막부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칭기즈칸이 장춘진인을 초대하여 조언을 들었다
신라헌덕왕 819년 7월에는 당의 이사도(李師道)가 반란을 일으키면서, 병마를 징병하는 헌종 조칙에 응해 장군 김웅원(金雄元) 등 3만의 군사를 파견해, 당나라를 지원하였다.신라가 당을 구할 정도라면 한반도구석에 신라가 있엇나?
당 헌종은 안록산의 난 이래 당 왕조에 반항적이던 번진인 하삭 삼진(河朔三鎭)도 당 왕조에 충성을 맹세하여, 쇠퇴하던 당은 일시적으로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것을 역사에서는 원화중흥(元和中興)이라 부른다.
60년전 화암사가 창건되었다.
50년전 경주에서 규모 7.0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났다.
- 당덕종이 당나라 제 9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베르무도 1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30년전 바이킹이 프랑스 서부의 루아르 강 하류에 당도, 누아르뮤티에와 낭트 시를 습격하였다
20년전 알아민이 아바스 왕조의 제 6대 칼리프가 되었다.
- 크룸이 이끄는 불가르족이 세르디카를 점령하였다
10년후 김우징이 기존의 신라 왕이었던 민애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올라 신라 제 45대 왕인 신무왕이 되었다.
20년후 오스티아 해전에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연합 함대가 사라센족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후 바이킹이 이베리아 북부 해안을 약탈하고 나바라 왕국의 국왕을 사로잡은 후 몸값을 요구하였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오르도뇨 1세가 피레네 산맥 중서부에서 무사 이븐 무사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군대를 무찔렀다. (알벨다 전투)
40년후 궁예탄생
50년후 루이2세사망.3세즉위
60년후사벌주(지금의 상주시)에서 정부의 과도한 세금 독촉으로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일어난 반란인 원종과 애노의 난이 발발하였다.
야소바르만 1세가 크메르 제국의 왕이 되었다
459년 신라 자비마립간 459년 음력 4월 왜인들이 병선 백여 척으로 습격하고 월성을 에워쌌다. 신라군은 마립간의 지휘에 따라 성에서 지키다가 적이 퇴각하는 것을 기다려 추격, 바다 어귀로 몰아 물에 빠져 죽게 한 적병이 절반이 넘었다
비잔티움 제국이 동고트 왕국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페로즈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프랑크족이 트리어를 점령하였다
60년전 남량의 군주 독발오고가 남량의 수도를 낙도로 옮겼다.
야즈데게르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인 바흐람 4세를 암살하고 사산조 페르시아의 새 샤가 되었다.
이듬해 신라위기
50년전 북위의 초대 황제 탁발규가 그의 아들 탁발소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후 장남 탁발사가 북위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사마덕문이 동진 15대 황제가 되었다
30년전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공격하였다.
20년전 반달족이 카르타고를 점령한 뒤 이곳을 수도로 삼고 반달 왕국을 건국하였다.
북위가 화북 지방을 통일하였다
10년후 백제 개로왕은 신라의 지원군을 빌릴 수 있다는 상황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469년에는 고구려를 공격했는데 이는 광개토대왕 이후 처음으로 백제가 고구려를 공격한 사건이다.
30년후 489년 9월 고구려가 또다시 신라 북쪽을 공격해 호산성을 빼앗는다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동고트군을 이끌고 북부 이탈리아를 공격하여 이곳을 방어하던 게피드족 군대를 판노니아에서 섬멸하였고, 파비아와 밀라노를 정령하였다.
40년후 선무제가 북위 8대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신라에서 서라벌의 상설 시장 동시를 관리하기 위한 관청인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99년 반초가 서역원정을 거의 마무리
90년전 토이토부르크 전투: 아르미니우스가 이끄는 게르만족 군대가 푸블리우스 퀸틸리우스 바루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대승
60년전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스스로가 신임을 자처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조각상을 놓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조각상을 놓는 임무를 맡은 시리아 총독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는 유대인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필론이 알렉산드리아에서의 유대인 박해 문제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 로마로 유대인 대표단을 이끌고 갔다.
50년전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하였다.
10년전 백제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외몽골 항가이 산 부근에서 후한과 흉노군이 북흉노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10년후 로마의 공중 목욕탕인 Thermae Traiani가 완공되었다.
로마 제국의 도로인 Via Traiana가 황제 트라야누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20년후 캐롤은 서기 129년 크리스마스때 로마 총독 '델레스 포러스'가 그 당시 교회에 모인 사람들에게 <존귀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세> 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다.
bc262년 안티고노스는 기원전 265년 코린토 부근에서 스파르타 왕을 패배시키고 이어서 아테네를 포위공격했다. 아테네는 기원전 263년~기원전 262년 조건부로 항복했다. 아테네의 관리들은 안티고노스가 임명한 사람들로 교체되었고, 아테네는 마케도니아의 한 지방도시로 격하되었다.
기원전 622년, 진 나라와 초 나라의 대전 끝에 초군이 크게 져서 진 나라가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bc1197~982년 소옹(?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