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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토종주 막걸리의 열풍이 뜨겁다. 그동안 맥주나 소주 등에 밀려나던 전통주 막걸리가 국민주로 재탄생한 것이다.
예전에는 ‘농부의 술’ ‘서민의 술’로 여겨 허름한 선술집이나 농촌에서만 마신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고급 양주와 와인이 연상되던 호텔에서도 막걸리를 볼 수 있고 각종 연회장 등에서도 맥주·소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한식의 세계화 바람과 함께 해외에서도 ‘코리아 와인’ ‘라이스 와인’ ‘맛코리’ 등으로 불리며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특히 일본에서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고 있다.
‘욘사마’ 배용준 씨가 운영하는 식당 ‘고수레(高失禮)’에서는 “피부미인(肌美人)이 되자”는 부제가 붙은 ‘맛코리(막걸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인기를 누린다.
맥이 끊길 위기에 처했던 막걸리는 과학과 만나면서 지난해부터 대반전을 연출해 냈다. 비결은 과학이 밝혀낸 막걸리의 숨겨진 영양적 가치. 서민의 대표적 술이라는 위치마저 빼앗길 뻔했던 막걸리가 웰빙주로 환골탈태하기까지의 과학적 기술을 살펴보자.
살균막걸리와 생막걸리는 효모의 유무 차이
술은 인간이 제일 먼저 만든 음료다. 오래 전 수렵생활을 하던 시절 인간은 과일이 떨어진 자리에서 즙이 자연적으로 발효돼 술이 된 것을 보았다. 그 맛을 본 이후 인위적으로 술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흥미롭게도 최초의 술을 빚은 동물은 사람이 아니고 원숭이다. 배부른 원숭이가 나중에 먹으려고 바위 틈새나 나무 구멍에 과일을 감춰 두었는데, 그 후 그만 그것을 어디에 저장해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바람에 시일이 지나 발효한 과일을 근처를 지나던 인간이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술은 원숭이술(猿酒)로 알려져 있다. 국내법이 규정한 술이란 알코올을 1% 이상 함유한 음료를 말한다. 시대별로 술의 변천을 살펴보면, 수렵과 채취시대의 술은 과실주였고 유목시대에는 가축의 젖으로 만든 젖술을 마셨다.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는 농경시대에 들어와서야 만들어졌고, 소주나 위스키 같은 증류주는 가장 늦게 제조된 술이다.
막걸리는 바쁜 농사에 매달려 하루를 보내야 하는 농민과 서민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유일한 즐거움이자 벗이었다. 막걸리라는 이름은 ‘막 걸렀다’ ‘함부로 걸렀다’는 뜻에서 유래했다. 빛깔이 맑지 않고 뜨물처럼 탁하다고 해서 ‘탁주(濁酒)’라고도 한다. 또 농사지을 때 주로 담갔다고 해서 농주(農酒)라고도 한다.
막걸리는 크게 살균막걸리와 생막걸리로 나뉘는데, 맛이 좋은 생막걸리가 더 인기다. 기존의 막걸리는 살균막걸리다. 살균막걸리는 술을 열처리해 효모 등 균을 모두 죽인 막걸리다. 막걸리에 들어 있는 균이 다 죽은 상태로 포장용기에 들어가므로 더 이상 발효하지 않아 맛이 균일하고 오래 보관할 수 있지만, 본래의 맛과 향을 잃는다는 단점이 생긴다.
살균막걸리의 유통기간은 6개월이 넘는다. 팩에 담으면 10개월도 간다. 반면 생막걸리는 효모 등 균을 죽이지 않는다. 그래서 생막걸리라고 부른다. 생막걸리는 살아 있는 효모를 그대로 포장하기 때문에 포장용기 안에서도 2~3일간 더 발효한다. 따라서 며칠 지나면 맛이 더 좋아진다.
곡주(穀酒)인데도 섬세한 과일향이 난다. 단점은 살균막걸리에 비해 유통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냉장보관해도 열흘을 넘지 못한다. 생막걸리의 유통기간이 1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은 막걸리 속에 살아 있는 균이 대사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그 이상 보관하면 맛이 시어진다. 막걸리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탁주도 그 이상 보관하면 맛이 변해 제품으로서 가치를 잃는다. 나로 우주로켓으로 유명했던 전남 고흥지방에서는 유자즙을 첨가한 새콤달콤한 맛의 ‘유자 동동주’가 인기다. 하지만 고흥 이외의 지역에서는 먹기 어렵다. 그 이유 또한 유통기간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막걸리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로 좋은 물과 원료, 균주, 그리고 양조기술을 꼽는다.
물론 이들은 모두 막걸리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막걸리가 살아 있느냐 여부다. 막걸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멸균 처리하지 않아 술 속에 효모균이 살아 있다는 말이다. 살아 있는 막걸리는 맛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멸균 처리한 막걸리는 특유의 상큼한 맛이 사라져 텁텁한 맛으로 변한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막걸리 제조 과정과 원리를 알 필요가 있다. 술은 곰팡이만이 가진 독점기술로 만들어진다. 와인이나 맥주 같은 서양식 주류는 물론 막걸리·동동주·청주 등 전통 주류는 모두 곰팡이의 ‘발효’를 이용해 만든 음료다. 술에서 취기를 일으키는 물질인 알코올은 학문용어로 에탄올(ethanol)이라고 불린다.
에탄올은 포도당(glucose)이 분해돼 만들어진다. 막걸리를 만들 때는 서양식 주류에 비해 한 번 더 손이 간다. 막걸리를 제조하는 원료는 쌀과 누룩이다. 쌀에는 포도당의 원료인 전분(녹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곡류로 술을 만들려면 곡류에 있는 전분을 포도당으로 전환하는 당화 과정이 필수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흔히 막걸리를 빚을 때 탄수화물이 다량 들어 있는 쌀을 증기로 되게 찐 다음(술밥), 여기에 효모가 들어 있는 누룩을 첨가해 발효시킨다. 그러면 전분은 포도당으로 변하고, 포도당(탄수화물)은 다시 알코올로 바뀐다. 막걸리에서 발효를 일으키는 것은 효모다.
누룩 속의 효모는 녹말의 당을 에탄올로 발효시키는 역할을 한다. 전분질을 이루는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 포도당과 같은 작은 당분들은 사슬처럼 길게 엮여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이 사슬들이 끊어져야 전분질이 단당류로 분해되는 당화 과정이 이뤄진다. 이것을 누룩 속의 효모가 맡아 하는 것이다.
고두밥을 물에 푼 누룩과 함께 항아리에 담아 따뜻한 곳에 놓아두면 술이 익는다. 이때 항아리에서 가스인 이산화탄소가 계속 발생한다. 이는 전분이 분해돼 포도당이 되고 또 포도당이 발효돼 알코올로 변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청량음료가 시원한 맛을 내는 것은 탄산 때문이다. 사이다나 콜라 병을 따면 기포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압력을 높여 이산화탄소를 많이 녹여 두었던 것이 마개를 따는 순간 압력이 줄면서 기화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막걸리 또한 발효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이것이 물에 녹아 탄산이 되어 톡 쏘는 상큼한 맛을 낸다.
누룩의 효모가 발효를 시작한 지 7일 정도 지나면 유산균이 살아 있는 생막걸리로 탄생한다. 술이 완전히 익기 전에는 단맛이 상당히 난다. 이는 효모 등 여러 균주의 작용에 의해 전분이 포도당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포도당이 발효되어(알코올 발효) 다시 알코올로 전환되므로 단맛이 줄어들고 술맛이 강해진다.
이에 비해 와인과 맥주의 재료인 각종 과일이나 엿기름(맥아)에는 포도당 성분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전통 주류에 비해 단번에 알코올 발효가 가능하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막걸리 속의 균주는 효모가 많지만 필수적으로 잡균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누룩에 효모를 위시한 여러 균주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잡균은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알코올 때문에 곧 죽게 되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알코올에도 견뎌낼 수 있는 초산균이다. 초산균은 술 등 발효식품을 시게 만드는 원인균으로, 시간이 너무 지나면 이 초산균의 초산발효에 의해 알코올이 다시 아세트산(식초)이 되므로 술이 시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생막걸리가 며칠 지나면 시큼한 맛이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주나 양주처럼 일정한 맛을 지니지 않고 시일이 지남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이 막걸리의 운명이다. 이는 또한 막걸리의 유통기한이 제약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잘 익은 막걸리를 가열해 멸균처리한 살균막걸리는 효모뿐 아니라 바로 이 초산균까지 죽게 했다는 말이다.
균이 하나도 없으므로 더 이상 발효하지 않아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도 오랜 기일이 지나면 외부에서 미생물이 혼입해 다시 발효가 일어나지만 일단 보존기간이 훨씬 길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멸균할 경우 발효가 일어나지 않으므로 당연히 이산화탄소도 발생하지 않아 톡 쏘는 맛이 없어져 맛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결국 보존기간을 늘리려다 보니 맛이 희생되는 것이다. 효모가 살아 있는 생막걸리의 맛이 훨씬 좋은 이유이기도 하다. 생막걸리는 포장용기 안에서도 발효가 일어나므로 톡 쏘는 맛이 그대로 남아있다.
생막걸리의 유통기한 늘려 세계화 물꼬 트다
그렇다면 초산균을 죽이지 않고 활동만 막는다면 막걸리를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은 통상 10일. 이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 전국적으로 유통할 수 없는 형편이다. 유통기한만 더 늘린다면 생막걸리는 충분히 세계인의 술도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8년 5월, ‘발효제어’라는 기술이 탄생했다.
이는 시중에 유통되는 병 안에서 원하는 정도만큼 발효한 뒤 발효를 중지시키는 기술로, 발효는 효모와 유산균 간의 세력싸움이라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제조사 측에 따르면, 발효제어기술과 밀폐마개를 사용해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발효 속도를 정밀하게 계산해 발효가 가장 늦게 진행되는 조건을 만들어낸다는 것.
이는 술을 담글 때부터 발효하는 쌀의 분량, 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산균의 양 등을 계산해 초산균이 천천히 자라도록 막는 방식이다. 다시 말하면 발효제어기술을 써서 막걸리 병 내부의 압력이 대기의 2.4배가 되면 발효를 멈추도록 한 것이다. 초산균이 천천히 자라게 하는 데는 완전 밀폐가 가능한 마개도 한몫 한다.
외부에서 산소가 유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두면 초산균이 숨을 쉬지 못해 산성화가 느려진다. 그렇다고 술병의 마개만 꽉 틀어막은 것은 아니다. 무조건 꽉 틀어막았다가는 효모의 발효 과정에서 나온 이산화탄소가 빠져 나가지 못해 용기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제조사만의 노하우가 숨어 있어 그 비법을 공개할 수 없다.
발효제어기술은 외부 공기의 유입 차단과 효모의 활성화를 조절해 오래도록 맛과 신선함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기술을 적용해 생막걸리의 유통기한을 통상 10일에서 1개월로 확대한 생막걸리가 탄생한 것은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지난해 5월이다. 초산균을 살려둔 채 생막걸리의 기한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깨고 기존 유통기한을 3배 이상 늘린 것이다. 획기적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이 생막걸리는 나온 지 100일 만에 100만 병이 팔렸을 정도다. 수출량도 지난해 40%나 증가했다. 소주의 생산량도 눌렀다. 그야말로 생막걸리가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국 유통뿐 아니라 수출길이 열렸음도 당연하다. 생막걸리 발효제어기술이 막걸리 세계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또한 냉장유통을 실현해 만들 때의 신선함을 음용할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게끔 했다. 막걸리가 공장에서 나와 소비자에게 유통되는 전 과정에서 냉장 상태로 유지가 가능하다. 이에 따라 막걸리는 이마트 등 유통업체 진열장 주류코너에서 냉장코너로 옮겨져 팔린다. 우유를 사는 주부가 바로 옆에서 막걸리를 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막걸리의 과학화는 용기에서 시작
막걸리의 맛이 균질해진 것은 생산의 자동화, 즉 제조 공정의 과학화 덕분이다. 막걸리 제조법은 예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제조 방식은 현대화됐다. 전통 방식은 통밀을 갈아 물과 섞은 뒤 15~20일간 자연발효시킨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한다. 지금은 쌀에 균을 넣어 배양한 것을 사용한다.
누룩은 그 향과 맛을 느낄 수 있을 만큼(전체 원료의 2.3%)만 넣는다. 현대식으로 개량한 것이다. 과거에는 막걸리 제조 공정 모두에 사람이 관여했다. 그래서 균 배양자가 누구냐에 따라 술맛이 들쑥날쑥했다. 그러나 지금은 통제실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제어한다. 온도·수분 등을 입력한 프로그램에 따라 자동으로 돌아간다.
현대적 설비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품질관리를 하니 품질이 균일할 수밖에 없다. 막걸리 관련 기술 개발은 용기의 변천사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발효제어기술은 유통기한(10일 이내)을 세 배나 늘린 생막걸리를 출시하게 한 한편, 저온살균기술은 유효기한을 1년까지 연장시킨 살균막걸리를 등장시켰다.
막걸리의 최대 단점인 짧은 유통기한을 증류주인 소주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캔·유리병·종이팩 등 다양한 포장용기 개발로 가능하게 되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막걸리를 담아 팔던 용기는 20ℓ들이 통이었다.
흔히 말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양조장에서 직접 2000ℓ짜리 탱크로리를 탑재한 삼륜차에 실어 한 말(20ℓ)들이 통에 담아 시중 가게에 공급하면, 가게에서는 손님들이 가져온 양은주전자에 대충 부어 팔았다. 그러다 1970년대 후반 1ℓ들이 폴리에틸렌(나중에 페트병으로 발전)병이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이 용기는 문제가 컸다. 마개에 숨 쉴 만한 미세한 구멍조차 없어 용기 안에서 술이 자연발효하면서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갈 곳을 찾지 못해 압력이 계속 증가해 폭발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 임시방편으로 마개에 바늘로 구멍을 뚫어 유통하는 유통업자도 많았다.
이 문제는 1980년대 중반 페트병에 부직포를 댄 마개를 개발하면서 해결됐다. 부직포 마개는 술이 새지 않으면서도 용기 안에서 생성되는 가스만 빠지게 했다. 이로써 소비자들이 막걸리를 집 안의 냉장고에 보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페트병은 특성상 뚜껑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 산소가 들어갈 수 있다.
이는 유통과정에서 쉽게 발효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특히 효모가 살아 있는 생막걸리의 경우 제품으로 출하한 뒤에도 계속 발효하므로 더욱 변질할 수 있는 조건이다. 이를 보완한 것이 효모를 죽인 막걸리다. 캔·유리병·종이팩 등에 담아 판매하는 막걸리 대부분이 살균막걸리다.
즉, 페트병 막걸리와 캔막걸리의 차이는 효모의 유무다. 캔 용기는 막걸리 맛을 내기 위해 탄산을 넣는 실험을 하다 만들어진 것으로, 1990년대 초의 일이다. 일반에서는 캔막걸리가 최근에 개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놀랍게도 벌써 13년 전에 개발된 제품이다. 캔막걸리는 탄산과 막걸리의 절묘한 만남으로 탄생한 신세대 및 수출용 막걸리다.
살균막걸리지만 저온에서 완전 숙성시킨 후 최첨단 설비로 완전 멸균처리해 천연 탄산을 첨가했기 때문에 생막걸리처럼 톡 쏘는 신선함과 상큼한 맛이 특징이다. 캔 용기를 사용한 제품은 1년간 장기보존이 가능해 가정뿐 아니라 휴대가 용이해 등산·낚시·MT 등 야외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막걸리의 종류도 다양하다. 지금까지 막걸리의 변신이 ‘막사(막걸리+사이다)’나 ‘맥탁(맥주+탁주)’ 정도였다면, 최근에는 각종 지역 특산물을 첨가한 막걸리부터 과일막걸리·막걸리칵테일·막걸리셔벗(sherbet)·막걸리아이스크림까지 등장했다.
오곡·수삼·더덕·대추·메밀·밤·고구마·검은깨에 이르기까지 첨가물이 다양해졌고, 제철과일과 막걸리를 섞어 빨강·노랑·초록 등 천연색 칵테일로 탈바꿈해 막걸리의 변신은 무궁무진하다.
알코올만 빼면 영양제 먹는 것과 같아
막걸리는 독특한 술이다. 막걸리만 제대로 만들 줄 알면 대부분의 전통주는 이를 응용해 만들 수 있다. 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위에 맑게 고인 액체를 뜬 것이 청주(약주)다. 밑에 가라앉은 밥풀을 체를 이용해 걸러내면 막걸리다. 막걸리를 증류하면 소주(서양에서는 위스키)가 되고, 소주에 과실을 넣으면 과실주가 된다.
막걸리는 술이라는 것만 빼면 단백질·탄수화물·칼슘·인·칼륨 등의 무기질과 비타민B가 풍부해 ‘좋은 음식’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과하지 않게만 마신다면 어떤 술보다 건강에 이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살아 있는 효모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살균막걸리나 생막걸리나 영양성분은 거의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 연구진은 막걸리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세밀히 연구해 ‘알코올 성분만 제외하면 영양제를 먹는 것과 다름없을 정도’로 영양 덩어리임을 밝혀냈다. 그 구성 성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물이 80%고, 나머지 10%는 알코올 6~7%, 단백질 2%, 탄수화물 0.8%, 지방 0.1%며, 또 나머지 10%는 식이섬유·비타민B·비타민C와 유산균·효모 등이 혼합된 물질로 영양의 보고다.
와인이 알코올·물(95~99%)을 제외하면 1~5%만이 몸에 좋은 무기질인 것에 비해 막걸리를 구성하는 영양성분은 양적으로도 훨씬 우위에 있다. 막걸리는 몸에 유익한 유산균 덩어리다. 국내 연구진에 따르면 막걸리 속 유산균은 1㎖당 수십만~수천만 마리 존재한다. 일반 막걸리 페트병이 700~800㎖인 것을 고려하면 막걸리 한 병에는 700억~800억 마리의 유산균이 들어 있는 셈이다.
일반 요구르트 65㎖(1㎖당 약 107만 마리 유산균 함유)짜리 100~120병 정도와 맞먹는 것이다. 유산균은 장에서 일어나는 염증이나 암을 일으키는 유해세균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며,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막걸리를 통해 살아 있는 효모를 흡수하면 장내 유해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하는 정장제를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소화가 잘 안 될 때 막걸리를 마시면 괜찮아졌다고 하던 것이 나름대로 근거 있는 말이었던 셈이다. 막걸리는 식이섬유 덩어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막걸리 성분 중에서 물(80%) 다음으로 많은 것이 식이섬유(10% 안팎)다. 식이섬유는 대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변비를 예방하는 것은 물론 심혈관질환 예방 효과도 있다.
다이어트에도 좋고, 특히 미용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어 젊은 여성들의 소비가 늘어나는 추세다. 또 막걸리의 식이섬유와 단백질 성분에는 항암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도 나와 있다. 2008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이 농축한 막걸리를 유방암·간암·대장암·피부암세포에 주입한 결과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막걸리에는 비타민B도 풍부하다. 고려대 부설 한국영양문제연구소 주진순 박사의 논문 ‘막걸리 섭취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막걸리 200㎖(4분의 3사발)에는 비타민B2(리보플라빈)가 약 68㎍, 콜린(비타민B군복합체)이 약 44㎍, 나이아신(비타민B3)이 50㎍ 들어 있다. 비타민B군은 특히 중년남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소로 피로 완화와 피부 재생, 시력 증진에 효과를 나타낸다.
막걸리는 이외에도 영양성분이 많다. 특히 막걸리 속 곡물 찌꺼기에는 각종 영양성분이 집약돼 있어 흔들어 마시는 것이 좋다. 그러나 막걸리도 분명 술이기 때문에 과음은 알코올성 지방간, 알코올중독 등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단 따뜻하게 데워 알코올을 없앤 후 식사 때 한두 잔 정도 곁들이면 영양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뒤끝이 좋지 않은 이유
우리나라 주당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양주는 많이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은데 막걸리나 청주를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비싼 양주나 외국산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몸에 좋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절반의 맞는 말은 무엇일까? 막걸리의 알코올 도수는 6~8도로 맥주와 비슷하다.
도수가 약하고 맛깔스럽다고 취하는 줄 모르고 무턱대고 마셔대면 다음날 십중팔구 숙취로 고생한다. 막걸리는 발효주이므로 발효 과정에서 알코올 외에 아세트알데히드 같은 다른 부산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흔히 숙취라고 하는 음주 후 두통의 원인물질이 바로 아세트알데히드다. 모든 발효주에는 아세트알데히드가 들어 있기 때문에 술을 마신 후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절반의 틀린 이유도 알아보자. 일반적인 발효법으로는 8∼16% 농도의 에틸알코올만 얻을 수 있다. 에틸알코올의 농도가 증가하면 효모균 스스로 자신이 만든 알코올에 중독되어 발효활동을 정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걸리나 청주 등 우리나라 술을 마셨기 때문에 숙취가 있고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니다.
아무리 비싼 프랑스산 포도주라도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픈 것은 당연하다. 인간들은 이 골치 아픈 아세트알데히드를 제거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다. 그것이 바로 증류주(소주)다. 발효주보다 좀 더 높은 농도를 가진 주류를 만들려면 일반 발효로 만든 알코올 용액을 증류하면 된다. 그 증류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가 사라지고 알코올 농도가 증가한다.
위스키·코냑·아르마냑 등 거의 모든 양주가 증류 방식을 거쳐 만든 것이다. 그런데 같은 막걸리를 마셨어도 유독 숙취가 심할 때가 있다. 이 경우는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불량품일 가능성이 크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따뜻해야 술이 잘 고아진다”고 해서 발효 적정온도를 섭씨 36도로 잡았다.
그러나 온도가 높으면 효모균이 약해지는 대신 초산균이 세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메탄올·프로파놀·이소부틸 알코올 등이 5~35%가량 많이 나와 숙취가 심해진다. 요즘은 대부분 25℃ 또는 그 이하의 온도에서 발효시킨다. 현재의 25~26℃로 낮추기까지는 약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저온발효시키면 술맛이 좋다.
또 숙성기간을 잘 맞춘 막걸리가 숙취 현상도 적게 나타난다. 적정 숙성기간은 8~10일. 높은 온도에서 이보다 짧게 발효한 제품은 우리의 뱃속에서 이산화탄소를 많이 만든다. 이것이 뇌로 올라가 두통을 일으키고 입에서는 트림이 난다. 과거에는 생산가를 낮추려고 ‘카바이드’를 섞은 탓에 숙취가 생겼다.
카바이드는 석유와 비슷한 성분의 화학물질로, 막걸리를 인위적으로 빠르게 발효시키기 위해 쓰였다. 하지만 현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카바이드 사용을 금지해 쓰지 않는다.
막걸리에는 특유의 맛이 존재한다. 발효하고 남은 당분에 의한 달콤함과, 아미노산이나 식이섬유에 의한 텁텁함, 발효하면서 같이 생산되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톡 쏘는 맛, 초산균이나 유산균 등 각종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유기산에 의한 새콤함 등이다. 이러한 감칠맛과 시원한 맛 때문에 예부터 땀 흘리고 일한 농부들의 갈증을 덜어주는 농주로 애용돼 왔다.
막걸리 없는 삼합은 무용지물
그런데 모든 술은 어울리는 안주와 함께할 때 더욱 맛이 좋아진다. 프랑스에서는 와인과 안주의 궁합을 뜻하는 말로 ‘마리아주(mariage)’라는 용어를 쓴다. 막걸리에도 마리아주가 있다. 막걸리도 곁들여 먹는 음식에 따라 맛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이를테면 잘 익은 막걸리가 없으면 삼합도 무용지물이다.
막걸리에 들어 있는 유기산이 홍어의 톡 쏘는 맛을 중화하기 때문이다. 또 홍어의 찬 성질과 막걸리의 따뜻한 성질이 어울려 맛의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이 둘을 ‘홍탁(洪濁)’이라고 부르지 않던가? 막걸리와 같은 발효주에는 시큼한 맛이 나는 유기산이 포함돼 있다. 이 유기산이 장을 자극하기 때문에 장을 위협하지 않는 음식과 함께 먹으면 ‘궁합’이 잘 맞는다.
이를테면 단맛이 강한 막걸리는 고소한 맛이 나는 빈대떡이나 삶은 돼지고기, 양념을 덜 쓴 도토리묵이 제격이다. 짠맛이 나는 안주도 막걸리의 단맛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반면 쑥갓에 고추 등 다양한 양념을 넣어 버무린 자극적인 도토리묵이나 매운 낙지볶음 종류는 막걸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안주가 지나치게 맛있거나 강하면 막걸리의 맛을 해칠 수 있어 제대로 술맛을 느낄 수 없다.
술맛을 상하지 않게 하는 음식이 좋은 막걸리 안주다. 또 막걸리는 도수가 낮기 때문에 수분이 적은 음식이 안주로 적당하다. 수분이 많으면 막걸리가 싱거워져 제대로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따라서 막걸리의 부가가치를 세계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안주를 찾는 작업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술을 마실 때는 안주로 가급적 과일을 먹는 것이 좋다. 탄수화물이 몸에 들어오면 핏속에 있는 당의 비율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췌장이 인슐린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힘든 간의 일을 이런 음식이 대신해 주니, 간으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어떤 술을 마시든 술 마시기 전에 출출하다면 우유를 한 잔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술을 마시기 전 배를 채워야 한다며 기름진 음식이나 밥을 든든히 먹는다면 다음날 틀림없이 두툼해진 뱃살을 보게 될 것이다. 비만의학자들은 최악의 안주로 삼겹살을 꼽는다. 소주의 알코올은 지방을 합성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장단에 맞춰 삼겹살은 바로 지방으로 쌓이기 때문이다.
이제 막걸리는 한국의 대표 아이콘으로 우뚝 섰다. 과학적 발효 관리를 통해 다양한 영양성분과 효능을 가진 생막걸리와 살균막걸리가 전 세계로 쭉쭉 뻗어나가며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런 열풍이 대중문화의 한 속성으로서 일시적 쏠림현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영양 덩어리인 막걸리는 웰빙 콘텐츠로서 매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 과학적 매력을 십분 발휘해 막걸리 르네상스라는 말답게 세계인이 사랑하는 글로벌 술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