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를 통해 미니카(1편은 여기:http://goo.gl/2ZvQ41)의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나의 처절한(?) 미니카 세계 입성기를 기억하시는지. 우연히 웹서핑을 하다가 눈에 띈 미니카를 조립하고, 마흔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검은색 비닐봉지에 급하게 조립한 미니카를 들고 트랙을 찾아 나섰다. 무림을 꽉 잡고 있는 초등학생과의 배틀까지… 결과는 비참했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낀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그 이후, 시간이 날 때 마다 용산에 위치한 트랙을 찾아갔다. 무림의 고수들과 수없이 많은 배틀을 했지만, 승리는 딱 한 번 뿐이었다. 내가 이긴 상대는 자본력으로 무장한 키덜트… 그것도 트랙에 처음 나온 신규 키덜트가 나의 먹잇감이 되었다. 슬프게도 대한민국 초등학생은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더라.
그렇다. 너무 빨리 무림으로 나간 것 같다. 트랙이 위치한 용산은 회사나 집에서 먼 거리는 아니지만, 더운 여름에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게다가 번번히 패배의 아픔을 다스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 정답은 나왔다. 직접 트랙을 구하자!!! 우리 회사 옥상은 넓고 좋으니 그곳에서 맘껏 연마하여 무림의 고수로 거듭나야겠다.
어른의 경제력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당장 트랙을 지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가격. 내 머신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트랙의 가격은 25만원이었다. 나 혼자 트랙을 구입하면… 다른 직원들도 사용할텐데… 사용료를 받을까? 잠깐, 어차피 다들 쓸 거라면 같이 사면 되잖아? 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트랙 공동구매를 추진했다. 귀가 얇은 기어박스 동료들을 설득하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다만, 트랙 재고가 없어서 기다렸을 뿐… 트랙이 생각보다 많이 팔린다는 소리에 미니카 마니아들이 정말 많다고 느꼈다. 나도 질 수 없지.
트랙이 완성되자, 다들 일이고 뭐고 뒷전이다. 이미 흥분 상태. 다들 자신들의 머신을 들고 트랙 앞에 나섰다. 표정들도 매우 비장하다. 표정만 보면 F1 선수 뺨치는 긴장감이 느껴진다. 트랙 위에 머신을 올려놓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일 정도.
오늘 나의 작전은 이렇다. 내기를 해서 트랙 구입을 위해 지출된 돈 이상을 충당하자는 작전. 동료들은 각자의 머신이 모두 동일한 사양이라고 알고 있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튜닝 모터다. 물론 끝까지 비밀로 해야겠지. “아…내가 질 것 같은데…”라는 멘트를 주술사가 주문을 외우 듯 반복하며 그들을 안심시켰다.
치밀하게 머리를 굴렸다. 점심을 먹고 난 직후라서 내기 대상은 아이스크림으로 정했다. 물론 여기서는 내가 질 계획이다. 배터리도 약한놈으로 사용하고, 모터도 일반 모터를 사용해야겠지. 5명 아이스크림 가격이라고 해봤자 5000원 미만. 편의점에 2+1 이벤트를 이용하면 4개 가격에 6개의 아이스크림이 생긴다. 큰 건을 위해 작은 건은 버리는 전략이다.
결과는 나의 패배. 이렇게 기쁠수가? 나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아이스크림 사오라며 난리다. 분하다는 느낌을 팍팍 심어주며 아이스크림을 사왔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아쉬움을 계속 내비치며 2차 내기 배틀을 얻어내야 한다. “날도 더운데 치맥하고 싶다” 라고 혼잣말을 하니, 미니카 배틀로 치맥 내기를 하자는 말이 들려왔다. '걸려 들어쓰!!!'
2차전은 치맥(치킨+맥주) 내기다. 5명의 치맥 가격은 적은 금액이 아니다. 나의 한창 때 별명은 ‘보리’란 말이다. 귀엽지만 무서운 뜻을 품고 있지. 난 맥주를 엄청 마셔댄다. 호프는 안쳐주고 병맥주만 마신다. 나머지 인원들도 AMG 엔진을 만들 듯 ‘1인 1치킨’을 외치는 인원들. 배틀에 패배한 동료만 죽어나는 데스 매치! 이것이 바로 내가 튜닝 모터를 감출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지금 이 기사가 공개되면 배틀에 패배한 동료들이 뭐라고 하겠지만 상관없다. 목적은 이미 달성했으니.
화장실에 잠시 갔다온다고 말한 후, 건전지와 모터를 교체. 이깟 미니카 내기가 뭐라고 건전지와 모터 교체하는데 손이 떨리냔 말이다. 범죄자들은 정말 발 뻗고 못 자겠군.
경마장을 한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자신이 베팅한 말을 응원하는 기분이 이런거구나 느껴지는 순간이다. 자 마음껏 달려보거라! "빅토리! 빅토리! VICT…그 다음 뭐지.. 아 몰라ㅋㅋ" 트랙 연결면이 고르지 못해 나의 머신이 튕겨져 코스를 이탈할 뻔 했지만 다행히 자세 제어장치가 가동해 겨우 완주할 수 있었다. 꽤 위험했던 순간이다. 2차전까지 질뻔했다. 후후… 나의 머신은 당당히 2위를 기록했다. 동료들은 아까랑 머신의 속도가 다르다며 옥상 서킷 공식 레프리 사장님께 공식 이의를 제기했고 나는 건전지만 바꾼건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즉각 대응하여, 최종 2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상한 점은 어찌 모터를 교체했는데도 순정 머신한테 지는거지? 1위는 여직원중 한 명이었다. 아직도 그녀의 승리는 내 가슴 속 미스테리.
뭔가 잘못됐다. 모터도 바꿨는데, 왜 순정 머신한테 지냔 말이다. 정신을 차리니, 퇴근 후의 나는 이미 타미야 매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또 수 많은 파츠들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2만원만 쓰자’ 제일 강력해 보이는 놈으로 하나 골랐다. 내 머신이 만원인데 모터가 4680원이다.
모터를 구입하고 매장을 나가려는 찰나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매장에서 미니카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계속 들리길래 트랙도 없는 곳에서 시동(?)을 거나 했더니만… 스피드 체커!!! 미니카의 속도를 알 수 있는 기계였다. 고수들은 정말 달랐다. 모터를 몇 개씩 갖고 다니면서 일일이 속도를 체크하고 세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내 머신의 속도가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 머신 속도를 어깨 넘어로보니 45km/h 나오는 머신도 있었고 22km/h가 나오는 머신도 있었다. 난 내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내 머신의 속도는 몇일까? 40? 50? 설마 60??’ 기다리는 동안 초등학생 한 명도 속도를 체크 하려는지 기웃거리며 머신을 만지작거렸다.
드디어 머신을 기계에 올렸다. 힘차게 4바퀴를 굴리는 나의 머신은 속도 측정을 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굉음을 내며 주변 사람들을 쳐다보게끔 했다. ‘후후… 잘들 봐라 너희들은 곧 비싼 모터를 사야만 할거야’. 기계에 올린 후 영광을 순간을 기념하고자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려는데 휴대폰 카메라 안에 나타난 머신의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7km/h??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초등학생은 들고 있던 머신의 시동을 걸면서 빨리 쓰레기 치우라며 내게 무언의 압박을 가해왔고, 내 얼굴은 시동도 걸지 않았는데 엔진 과열로 인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 “아… 건전지 충전” 이라는 짧은 독백을 남기며 모든 것을 건전지 탓으로 돌리고 매장을 빠져 나왔다. 사실 완충한 건전지였는데 말이다.
지금껏 트랙에 머신을 테스트 하면서 엄청난 코너링과 함께 직선 주로에서 모터가 터질 듯이 돌던 내 머신의 속도가 고작 17km/h였단다. 지금까지 트랙에서 배틀을 하던 사람들 모두 도토리 키재기였다는 소리다. 이대론 안된다. 일단 매장밖에서 나의 머신을 쓰레기 취급하던 초등학생이 나간 걸 확인 한 후, 다시 매장에 들어섰다. 올해 돼지갈비, 곱창, 치맥 다 못먹어도 좋다. 빠른 머신을 만들려면 그 정도 고통은 참아야 한다.
군대 PX를 처음 이용할 때에도 이렇게 많은 제품을 장바구니에 넣지는 않았었다. 계산을 하려는데 제품이 얼마나 많은지 직원은 바코드 스캔용 총(?)을 기관총 쏘듯이 한 동안 쏘고 있었다. “이번 대회 참가하시죠?” 그 말이 나한테 하는 말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에 나는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는걸 확인 한 후, 나에게 물어본 거란걸 알았다. 아무렇지않게 “네 그럼요” 라는 대답을 한 후 매장을 나왔다. 물론 스피드 체커까지 구매한 채.
대회를 위해선 많은 준비를 해야겠지. 완전 새로운 머신을 또 한대 구매했다. 라페라리를 닮은 외모에 E63 AMG에서 볼법한 멋드러진 블랙 휠. 온갖 벌들이 달라 붙을 만한 화사하고 아름다운 옐로우 컬러까지. 데칼? 나에겐 사치다. 경량화를 위하여 데칼은 과감히 생략. 이토록 아름다운 머신은 처음이다. 더군다나 미드쉽 머신! 엔진(모터)이 차체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환상적인 코너링을 선보인다는 바로 그 미드쉽이다.
순정모터는 과감히 버리자. ‘아토믹 튠 모터’로 바꾸기로 했다. 이 모터는 황동 피니언 기어를 기본 장착하여 동력을 확실하게 전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휠과 타이어까지 교체! 속도 테스트를 해볼까나?
24km/h!! 나의 머신이 드디어 24km/h의 속도를 낸다.
옥상 서킷이 완공 된 후, 지인이 머신을 들고 찾아왔었다. 지인은 머신을 두고 가면서 연습하라고 했다. 오로지 그 머신을 따라잡을 수 있는 머신을 만드는게 목표다. 이 머신의 속도는 무려 40km/h가 넘는다. 어린이 보호구역의 제한속도보다 빠른 속도다.
나의 머신과 지인의 머신을 트랙에 올려놓으면 어김없이 똥침을 선사한다. 차이가 심하게 난다. 아무래도 롤러 부분을 교체해줘야 될듯 하다.
드디어 모터와, 휠, 그리고 롤러등을 교체한 첫 번째 작품이 완성됐다. 트랙을 열심히 달리면서 부족한 부분을 계속 보완해 나가야한다. 동료와의 배틀을 해보니 모두에게 너무나 쉽게 똥침을 놔버린다. 나에게도 이런날이 오다니.
큰일이다. 바퀴를 바꿨는데 뚜껑이 닫히질 않는다. 생각보다 엄청 큰 바퀴인듯 하다. 뚜껑을 잘라 내던지, 아니면 바퀴를 순정으로 바꾸던지 해야하는데… 뭐 이런 건 기쁘다. 하나 하나 맞춰나가면서 조금 더 빨라지는 모습이 즐거우니까.
미니카 대회? 못 할 것도 없지. 40년 가까이 꾹꾹 누르며 살아왔던 승부사의 본능이 꿈틀거리는게 느껴진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 폭풍 검색으로 미니카 대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다. 이거 1등하면 일본에서 열리는 세계대회 한국 대표로 참가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경비도 주최측에서 내준다. 운전 면허 따자마자 F1 대회 우승 하는 꿈을 꾸고 있군. 당분간 치맥은 힘들겠군. 튜닝이나 하러 가야지.
기어박스 최재형 기자님의 글입니다.
all about gear 기어박스 (www.gearbax.com)
첫댓글 ㅋㅋ 요즘 과학상자 만지는 아들과 제 어릴적모습이 함께 생각나네요^^
저는 딸이 있어...쉽지 않앗고 대신 조카와 가끔 했었네용...ㅋㅋ 확실이 딸과 아들은 다르긴 하더군요...ㅋㅋ
한참때도 비싸다고 생각해서 하지 못했는데, 저도 이제 한번 입문(?)해 볼까요~? ㅎㅎ 인터넷에서 조카를 위해 하드보드지를 가지고 트랙을 만들었다던 삼촌 글이 생각 나는군요~
같이 한번 해 볼까요? 공동 트랙 만들어 놓고....나중에 내기판 벌려 신문에 나는 거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