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무 데이 동동숲 나들이
2026년 3월 21일 토요일
경남 고성 대가면 무량산 자락의 방화골 '동시동화 나무의 숲'(동동숲) 마을을 찾아갔다. 11월에 제자 헌무가 모는 차를 타고 남편과 함께 와봤던 곳이다. 그때는 낙엽이 숲의 바닥에 융단을 깔아 놓아 걸을 때마다 미끄러워질까 봐 조심스러운 산길이었다.
산속 깊은 곳에 동동숲이 있는 기원은, 50년간 아동문학 외길을 걸어온 배익천 선생님이 2004년부터 넓은 터에 나무를 심어 가꾸어 온 것이 그 시작이라한다. 이동문학을 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숲의 정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 듯 하셨다. '열린아동문학관'은 2010년에 개관하였다는데 내가 ‘열린아동문학’지에 글이 실렸을 때는 2009년 겨울호에서 였다. 그때 원고료 대신 참기름과 깨랑 먹거리를 우편으로 보내온 잡지로만 알고 잊고 지냈다.
그런데, 2024년에 배익천 선생님이 대구아동문학회에 강의하러오셨을 때 같은 교대 7회 선배님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지만 나서서 인사드리지 못했다. 나는 8회에서 동아리 ‘일요 문예’ 회원으로 활동했지만, 서로가 한 번도 얼굴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 일년에 한 번씩 시화전을 해도 자기 작품만 허겁지겁 와서 걸어놓고 가곤 하던 동아리였던 것 같다. 내 신간 동화책 2권을 열린문학지에 보내면서 선배님께 제가 후배였다고 편지를 썼다. 선배님은 2011년에 한국아동문학인 협회 심사 위원으로 내 작품을 보고 선정했는데, 그때 내 이름을 보고 남자인 줄 알았단다. 어쨌든, 2025년 가을호에 내 작품이 실린 것이 인연이 되어, 11월에 제자랑 보리암 여행 가는 길에 잠시 들러서 ‘제가 일요 문예 회원이었어요.’ 하며 인사를 했다.
그때도 선배님이 2만 6천 평, 산에 나무를 심어 한국 아동문학의 아카이브 기록으로 전설이 되게 살아오신 삶을 유추해보았을 때, 선배님은 하늘 그릇이요. 내 삶은 옹달샘 그릇이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남편과 우리는 2014년에 고령에서 668평 시골집에 <베나의 집>이라는 택호를 달고 십 년간 학교 문학회 강의를 들으러 오는 아이들, 굿네이버스 아이들, 동네 어른신들과 지인들을 초대해서 리마인드 웨딩 놀이, 출판기념회, 각종 기념일 축하 놀이에 혼이 빠져 노는 동안 1237명의 방명록을 남긴 게 전부인데, 선배님은 1만 6천 평, 산에 나무를 가꾸고 아동문학을 하는 작가들을 키워오신 큰 산, 큰 어른이셨다. 그때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다녀갔지만, 이번 ‘내 나무 데이’에 참여한 작가들을 데리고 숲을 오르며 숲 해설을 할때마다 휴대폰 녹음 장치를 켜놓고 하나하나 녹음하며 들었다. 그 정신, 그 마음은 유명 위인전 주인공의 마음과 정신이었다.
그리고 이 숲을 함께 돌보는 분들을 만났다. 부산 방파제횟집의 대표이자 아동문학의 헌신적 후원자인 홍종관 발행인 선생님, 그리고 그의 배우자인 예원 박미숙 선생님을 뵙자마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돌에 작가들의 이름을 새겨주신 이영원 선생님도 뵈었다.
“아이고 선생님, 돌에 이름을 새겨주시느라 병도 얻으셨다면서요? 그 헌신과 노력이 참 대단하셔요.”
“허허, 뭘요. 제가 재미있어서 하는 건데…….”
활짝 웃으면서 새김 돌에 글자를 새기시는 선생님 등 뒤에 천사 날개가 돋아나있었다. 하긴 천사의 마음으로 즐기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겠다. 이젠 새김 돌의 노고에서 조금만 더 편해지도록 동판에 이름을 새겨 돌에 박아넣는 방법을 시도한다고 했던가? 그 방법으로라도 동동숲을 자기 몸보다 더 애정을 가지고 아끼는 그 봉사, 헌신 정신에, 스스로 지키지 못한 몸의 건강을 함께 지켜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긴 세월 동안 헌신해신 동동숲 가꿈이 선생님들께 엎드려 큰 절 한번 하고싶었다.
오늘 동동숲에 모인 선생님들께도 뷔페 차를 불러 무료 저녁 식사 대접을 해주셨다. 밤에 주무시고 가는 선생님들께는 내일까지 잠자리며 밥이며 모두를 무료로 제공해주신단다. 상업적 이익은 한치도 없고, 오직 베풀고 나눔만 있는 이곳 동동숲! 나는 십 년간 1,273명에게만 밥 나눔을 했는데도 이젠 손목 아프고, 다리 아프고 허리 아파서 슬슬 손님 초대를 피하고 싶어 뒤로 내앉는 느낌인데, 이 동동숲을 가꾸는 선생님들은 같이 늙어가시면서도 몸을 도사리지 않고 숲 가꾸기, 나눔에 헌신해 오시니 사람의 살아가는 향기가 진동하는 숲이다.
이 숲에 오기 전에 경남 창녕에 사는 서울대 교육행정 연수반 101기 김덕인 국장님께 경남 고성군에 있는 동동숲에 갈 거라고 했을 때, 국장님도 운전병으로 따라오시겠다고 했다. 한현정 선생님과 둘이만 오기로 했는데, 한 선생님 부군도 운전병으로 따라오고 싶어 해서 네 명 여행단이 구성됐다. 1시에 숲 해석이 있고, 2시에 법인 관련 총회가 있으니, 우리는 총회 때 빠져나와 통영을 돌자고 약속하고 왔다. 배익천 선생님께도 손님을 모셔 왔으니 그렇게 가겠다고 사전에 말씀드렸다. 그런데 선배님은 우리가 마음대로 가긴 해도 마음대로 나오지 못하도록 일정을 변경해 버렸다. 총회를 앞쪽으로 당겨한 뒤에 숲 해설에 나서셨다. 그리고 행사 끝에 ‘박경선 새김 돌’ 헌판식도 일정에 넣어두었다고 여러 선생님에게 공고해두셨다.(헐, 꼼짝 못하게 잡아두시네 싶었다) 그 바람에 우리는 통영행 여행을 포기하고 숲 해설에 따라다녔다. 나는 손전화기에 선배님의 숲 해설 이야기를 녹음하며 따라다녔는데 한참 따라다니다 보니 같이 온 일행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도서관 앞으로 돌아오니 세 사람이 거기에 퍼질러 앉아 있었다. 아까 우리는 <고성 본토대가> 식당에 모여서 점심 먹고 12시 30분에 동동숲에 도착해서 모두 박경선 나무 이름 새김 돌을 찾느라 산을 좀 올라갔던 터라, 지금은 지친 기색이었다. 일행은 그래도 4시 30분이고 뷔페 밥차가 와 있으니 여기서 한술 얻어먹고 가자고 했다. ‘우리 통영 가서 회 먹어야지요? 오늘 회 사드릴게요.’ 하며 큰소리쳤지만 그 약속마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선배님이 숲 해설을 마치고 와서 널브러져 있는 우리를 보고 ‘여기 앉아 있으면 어쩌노? 아까 박 선생 돌에 현판식 한다고 했는데 왜 안 따라왔어요?’ 했다. 나는 비겁하게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변명했다.
“이 사람들이 갑자기 없어져서 찾으러 왔더니 여기 앉아 있었어요.”
유치원생처럼 일러바치는 유치한 변명에 ‘그럼 같이 따라온 필요가 없지.’ 한마디하시며 밥 먹으러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신다. 참 부끄러운 꼴이 되어서 그래도 음식에 숟가락을 얹으려고 도서관으로 따라 들어갔다. 우리는 회 대신 푸짐하게 차려진 뷔페음식(밥, 호박죽, 국수, 다과. 오뎅 등)을 염치없이 냠냠 배불리 먹고 일어섰다. 선배님과 숲 가꾸는 홍대표 님과 예원 선생님께 ‘오늘 너무 감사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드리고 부끄러운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왔다. (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