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 사건 (至尊派 事件)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전남 영광군을 거점으로 6명으로 결성된 범죄 조직이 5명을 연쇄 살인하고 강도, 성폭행 등의 범행을 저지른 사건이다.
두목 김기환(당시 26), 강동은(21), 강문섭(20), 김현양(22), 문상록(23), 백병옥(20) 등 6명이 결성한 범죄조직은 엽기적인 살인행각을 이어가고도 사회 부조리가 자신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며 범행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들은 대학 입시 부정, 강남을 중심으로 한 땅 투기 급증 현상, 가진 자들의 횡포에 대한 대항이 범죄의 이유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피해자는 부유층이 아닌 평범한 서민들이어서 자신들의 모순을 스스로 드러냈다. 1994년 9월 검거된 이들은 1995년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고, 같은 해 11월2일 사형이 집행됐다.
양수리 부근에서 세 번째 희생자 이종원 씨와 드라이브를 하다 함께 납치된 카페 여종업원 이모 씨(당시 27세)의 극적인 탈출로 인해 지존파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씨는 납치되었을 당시 지존파의 아지트에 감금된 후 살려 달라고 애원해도 살려주지 않을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 잡혀왔을 때 김현양이 "당신이 이제부터 우리가 하라는 대로 따르면 우리는 당신을 살려줄 것이고 아니면 죽일 것이다."라 했을 때도, 이미 그녀는 자신들이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걸 눈치 채고 있었기에 어이가 없어서 픽 웃어버렸는데 이런 그녀의 반응에 김현양은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현양이 이 씨에게 연정을 품게 되어 이 씨를 죽이려는 조직원들을 설득시키면서 그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목숨은 부지하게 됐으나 입막음용으로 살인에 가담할 것을 강요받은 이 씨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인이었던 이종원 씨, 중소기업 사장 소윤오 부부를 죽이는 데에 동참하여 두 건의 살인 행위에 가담하게 된다.
두 차례의 범행 가담으로 문상록을 제외한 지존파 조직원들에게 신임을 얻었으나 그녀를 끝까지 믿지 못했던 문상록이 김현양과 심하게 갈등을 빚으며 언제든 지존파에게 희생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이 씨의 탈출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다이너마이트를 잘못 다뤄 손과 발에 부상을 입었던 김현양이 실밥을 풀고 상처 부위에 소독을 받는 날, 이 씨는 기회가 왔다 생각하고 김현양에게 병원에 동행하게 해 달라고 한다.
김현양은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고 이 씨는 그와 동행하는 데 성공한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중, 김현양은 현금 50만원이 든 지갑과 휴대폰을 이 씨에게 맡기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아래 링크 된 생존 피해자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김현양은 피해자를 일부러 살려 주려는 듯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조직원들이 걔는 왜 병원에 데리고 가느냐고 묻자, 자신이 책임진다고 했다. 또한 90년대 초반에 50만원이라는 돈은 병원에 갈 때 갖고 가기엔 큰 돈 이었으며, 휴대폰까지 챙겨갔다.
또한 병원에 도착해서는 이 씨에게 도망치고 싶죠? 탈출하고 싶죠?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도 돼요 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리고 인질로 붙잡힌 상대를 아무리 믿는다 한들, 거금의 돈이 든 지갑과 휴대폰을 둘 다 맡기고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인질범의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 씨는 예상보다 빨리 탈출의 기회가 주어지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인데 이왕 죽을 바에야 달아나서 이 사건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노력하여 피해자들에게 속죄하겠다는 심정으로 병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는다.
지존파의 행동반경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택시 기사에게 해남경찰서로 가 달라 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하차하고 포도밭 인근의 농가에 숨어든다. 비닐하우스 안 평상 밑에 몇 시간을 숨어있던 이 씨는 집주인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집주인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대전까지 이동한다.
그 뒤 대전 톨게이트에서 택시를 잡아 서울의 한 모텔에 도착한 뒤 자신이 일하던 카페에 연락을 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이 씨는 서초서에 카페 주인의 남동생과 동행하여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냈으나 경찰들은 관할이 아니라며 사건 담당을 거부한다.
분노와 공포가 극에 달한 이 씨를 보던 카페 주인의 남동생은 평소 카페를 즐겨찾던 고병천 반장(당시 서초경찰서 강력 반장)에게 연락한다.
강력반장이었던 고병천 반장조차 이 씨의 진술이 충격적이어서 처음엔 믿지 못하였으나 이 씨가 소윤오 부부 실종, 납치 사건에 대해 아는 듯 말을 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 씨가 지니고 있던 휴대폰이 이 씨가 진술한 지존파의 일원 강동은의 것으로 확인되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지존파 사형수 6명 눈물의 참회
오늘 저녁예배를 드리는 도중 저도 모르게 하염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동료들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참으로 혼났습니다. 천하에 제가 눈물을 흘리다니….
오는 28일이면 지존파가 검거된 지 만 1년이 된다. 그 1년 동안 지존파는 한 교회집사에게 1백 여통의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죄과를 참회한다는 것. 모든 책임을 [압구정동 야타족]에게 돌린 강동은, 인육을 먹은 김현양을 비롯, 고개를 빳빳이 들고 죄를 뉘우칠 줄 몰랐던 두목 김기환까지 1백80도 돌변한 모습이었다.
편지로나마 죽음을 앞둔 이들의 마음을 돌린 이는 서울 서초구 [사랑의 교회] 이재명집사(53). 이 집사는 지난해 지존파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이들이 감금돼 있는 서울 구치소에 꾸준히 영치금과 편지를 전달했다.
첫 답장이 온 것은 지난해 10월말. 김기환은 '제가 저지른 사건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잘못됐음을 선생님 앞에 처음으로 고백합니다.'라는 말로 참회를 시작했다. 김현양은 '지난날 사탄의 굴레에서 사회를 어지럽히던 김현양이 하나님의 종이되었다고 전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이 집사는 "처음엔 영치금과 편지에 대한 순간적인 감사의 표시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편지는 계속됐고, 교도관에게 전해 듣는 그들의 수형생활도 모범적으로 변해 갔다. 5월20일 6명 전원에 대한 사형이 확정되자 [감방전도사]로 돌변해 다른 사형수를 교화시키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강동은 은 최근 참회의 편지에서 '저 같은 죄인도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실까요?'라고 썼다. 이 집사는 '지존파 6명은 이제 예수님의 제자와 마찬가지'라고 답장했다.
서울 왕성교회(길자연 목사)서 전남 영광군의 80평 단독주택을 김 씨 누나로부터 2천만 원에 매입, 선교기념관을 겸한 교회를 세울 계획, 지난 94년 9월 나라 전체를 경악케 했던 사건, 95년 11월 2일 사형되기 전 유언, 이 집을 헌증해 교회를 세우고 싶다는 말을 누나를 통해 듣고 결정하다.
♡ 지존파 사형장 박효진 장로 간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