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의 정의 30
溥根 / 최기복
불에 덴 손등이
물고기의 부레가 되어 부풀어 오르면
화끈거리는 열패감 때문에
심장이 달아오르고
머큐롬으로 소독하는 순간
흉터를 걱정한다
바셀린이 발리고 반창고는
십자군의 휘장처럼 붙여진다
산다는 이유로 하여
잊힌 손등의 화재
한가로워지면 보이는 손등
사랑은 불에 덴 손등이다
탈지면으로 닦아내는 추억
화끈거리던 열패감은 낭패감으로 남아
지는 태양
저무는 들녘에 서서
아물어 가는 손등을 본다
사랑은 참 거시기한 것인가 보다.
2. 사랑의 정의 31
溥根 / 최기복
작정 없이 떠난 길에서
우연이 만난 우연이
필연이 되어
길을 잃어버렸다
절망은 희망보다 한 수 위라는데
정수리에 와 박힌 햇살이
이토록 무거울 줄이야
흔적 없는 역사가
외로움일 줄이야
사랑을 사랑이라 말할 수 없는
벙어리 되어
침묵을 배운다.
사랑을 팔아 사랑을 사는
사랑의 걸인(乞人)이 되어
돌아갈 수 없는 길 언저리에 앉아
그림자를 뒤돌아본다
필연이 되어 버린 우연을 본다
사랑은 우연도 필연도 아니다
거기, 그 자리
떼어 낼 수 없는
껌딱지다
3. 사랑의 정의 33 –늪지에서-
溥根 / 최기복
탄생의 비밀을 누설하고 싶어
찾아온 늪지
자궁의 하품에
달뜬 음성으로 흥얼거리는 허밍
욕망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노을은 붉게 타는데
식욕은 눅진거리고
눈빛은 사위어 간다
유린당한 유체는
소지(燒紙)의 재(滓)로 남고
그리움으로 새겨진 욕망의 잔해는 꺼질 줄을 모른다.
향수로 얼룩진 늪지에
성긴 갈대가 원인 모르는 신열을 앓고 있다
치유가 불가능한 질환이다
지긋지긋한 열병이다
카페 게시글
덕향문학 15호 원고방
덕향문학 15호 최기복 시인 원고 / 사랑의 정의 4편
영원 김인희
추천 0
조회 19
24.10.17 10:18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