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4-12
여 지(餘地), 여 유(餘裕), 그 리 고 여 백(餘白)
박병민목사(새터공동체)
히브리 백성들은 여지(餘地)가 없는 사람들이다. 여지는 들어설 수 있거나 이용할 수 있는 땅, 공간이다. 히브리는 하삐루(떠돌이)에서 연유하였다고 한다. 본래 그들은 유목민(遊牧民)이어서도 그렇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주위의 등살에 못 이겨 정처(定處)를 둘 곳이 없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있다고 여겨지는 하늘을 선호(選好)하는 가운데에도 땅을 등한시(等閑視) 여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을 땅의 사람들(암 하레쯔)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자기의 고을을 벗어날지라도 마음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다니엘 6:10). 나를 둘 곳, 발 딛고 들어설 곳이 없이 떠돌 때의 서러움, 조금의 여지라도 있는 나에게는 모를 일이다.
도심지가 자그마한 자투리의 여백(餘白)도 허락하지 않듯이 그 땅을 딛고 선 이들에게도, 그들을 두르고 있는 빽빽함이 사람 속에 스며드는 듯, 시간 속을 바삐 헤집고 움직이는 인파(人波)의 넘실거림이 여지라는 틈바구니를 주지 않는다. 어느 때 그곳에 이르게되면 나도 그곳에서 저절로 함께 들뜨게 된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 김지하의 말대로 현대를 지칭하는 빠른 속도화 속에서 옛 우리네의 걸음걸이와 같이 여덟팔자의 걸음을 걷다가는 뒤의 물결에 떠밀려 앞으로 넘어질 것 만 같다.
물건의 개수를 세는데 서너 개, 대여섯 개, 예닐곱 개로 통용되었던 어른들의 한가로운 멋, 그리고 여유(餘裕). 그렇지만 요즈음 들어서 그것은 칼로 두부 모를 자르듯 하는 전자계산기, 컴퓨터의 거센 물결에 잠식(蠶食)되어간다. 자판에 손을 올려놓는 나를 내가 뻔히 쳐다볼 수밖에 없다. 오늘 하다가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가 아니라 속전속결(速戰速決)의 전쟁을 광불케 한다. 먹을 가지고 화선지(畵宣紙)에 그리는 한국화는 그려진 부분에 비하여 상하좌우의 여백이 많다. 색(色)이 발달하지 않았던 우리들에게는 여백의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그림을 돋보이게 하였다. 도화지에 가득 찬 서양화는 이를 따르지 못한다. 서양화의 화폭(畵幅)처럼 가득 메워지고, 채워지는 것만이 볼품 있어 보인다면 전체를 이루는 하나 하나의 개체(個體)는 무엇이란 말인가? 부속품(部屬品)으로 값이 먹여지는 사람들. 여백이 없는 사회에 나는 생성(生成)이 아닌 여백을 메우기 위한 대역(代役)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채워갈 때 내가 들어설 여지는 줄어간다. 반면에 채웠던 것을 거두어들일 때 다른 것을 채워갈 공(空)의 여백으로 남는다.
공동체 이야기
월 영 산 에 (月影山) 오 르 며
같은 군내의 목회자(牧會者)들이 총회로 모였다. 그리고 계속이어 산에 오르기로 하였는데 그 산은 전에 희망의 언덕 장애인모임에서 다녀왔던 월영산(月影山)산이라는 산이었다. 그 때에는 유유한 산길을 승합차가 다다르는 곳까지 가서, 그리 멀지 않은 넓은 길을 장애인들이 서로 도우며 함께 오르니 그곳에 약수터가 있었다. 나는 계획에도 없었던 산행 길이었기에, 산에게 무례하게도 발에는 슬리퍼를 신고있었으나 그리 어렵지 않게 산허리 아래의 약수터에 다녀올 수 있었다. 그 월영산을 오늘도 간다는 말에 나는 그 산을 동네의 뒷산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산에 오르니 그렇지가 않았다. 전에 만났던 그 약수터는 나오지 않고 다른 엉뚱한 길로 나는 인도(引導)되어 가게되었다. 그리고 산에는 길이 나있어서 그렇게 험하지는 않았으나, 매우 경사가지고 가파른 길이었다. 이따금씩 바위를 오르는 길도 있었다. 나는 뒤에서 도움을 주시는 어느 전도사님의 곁부축을 받다시피 하며 오르고, 또 올랐다. 운동화는 벗겨지고, 뒷장단지가 당겨왔다. 산길은 매우 멀게 여겨졌다. 뒤따르는 이들을 배려해서, 먼저 가고 계신 분들이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비교적 편평한 기슭에서 여유로써 잠시라도 한가하게 앉아서 계신다. 그곳에 이르러 함께 이야기를 하는 중에, 산 아래의 길을 가리키며 저 곳은 어느 방향이고, 그리고 다른 반대쪽은 어느 방향이라고 말들을 서로 나눈다. 그 분들의 말씀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 아래의 길이, 혹간 어느 그림이나 사진의 작품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후미에서 힘을 다하여 더 오르다보니, 중도에 포기하고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게되었다. 오르는 동안 산 정상이 눈앞에 보이는 듯 싶더니 그곳은 나의 발걸음 속에는 다다르기 어려운 저 고지(高地)처럼 멀게만 여겨지곤 한다. 그 어려움을 여러 차래 거듭한 후 산 정상에 겨우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작고 정갈한 돌비석이 서있었는데, 그 말이 너무 쉬웠다. “月影山 507M” 왜냐하면 그 산이 나에게는 태산(泰山)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겨우 500여 미터 남짓밖에 아니 되는 산이라니? 그러면서도 산에 오르니 고생스러움은 언제였든 듯 우쭐해하며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바로 양사언(楊士彦)의 시조였다 “태산(泰山)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등산(登山)이 어려웠듯이, 하산(下山)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다. 오를 때와 다른 길이어서 쉬우리라고 기대를 하였으나 그렇지가 않았다. 급경사의 비탈길을 전도사님의 도움을 받으며, 발은 땅을 제대로 밟지 안은 상태로 엉덩이로 미끄러져 가며 산을 타고 내려왔다. 그러면서 전도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있다. 산에 오르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산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함께 한다. 이것이 잠시 동안이지만 서로 한 몸이 되는 공동체라면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공 동 체 소 식
.
☻ 새터 공동체 가족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박정숙
박종만
박병민.진선미.한솔.진솔
* 희망의 언덕에서는(회장:유상현) 금산밀알의집, 새터공동체 그리고 이웃 장애인 분들과 함께 갖는 목요일 모임을 11월 18일에는 제원주유소에서, 11월 25일은 유 선생님 댁에서, 12월 2일도 유선생님 댁에서, 12월 9일도 유선생님 댁에서 각각 모임을 가졌습니다. 군북교회(한성국 목사님. 박형순 전도사님)에서 새터공동체 식구들을 위하여 매주 차량운행으로 같이하여주셨습니다.
* 11월 30일에 새터공동체 80평의 건물을 신축하게 되는, 같은 집 안의 신평리 116-1번지에서 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하나님께 건축 착공예배를 드렸습니다. 건축은 (주)한승건설산업(대표:김연찬 집사님)에서 맡아주시기로 하였습니다.
* 04년 12월 7일에 금산읍교회 김철우 목사님의 도움으로 금산에서 새터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목욕을 하고 점심식사를 하였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주식회사EG(이광형).김기홍.정무래.최영애.라홍채.대전제일교회.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7인).진명구.채윤기(박현실).영광교회6여전도회(김영모).세광교회.분평청북교회.박종만.기물리교회.대전노회.대덕교회.복수면여성자원봉사단체(태봉지구대1인).추부면바르게살기운동(채광순.박주용).향림원(2인).사랑방교회(권은혁).그리스도의집.추부면새마을부녀회(차길중).추부교회(임영호외3인)옥천동부교회.김철우.추부제일교회.군북교회(박형순).대덕교회(이중삼외2인)신건태.동춘교회4남선교회.김남완.군포교회11여전도회(김중권.김금숙).대전제일교회.성남교회.찬미교회.대전일보(김세원외2인).최선희.곽길동(유영수).낭월교회사랑회(김일균외5인).사랑방교회여전도회(진삼섭외3인).남상륜(김성숙).신평교회여전도회(구자영외3인).선한사마리아회(4인).임장혁.최선희.오정교회3여전도회(남현숙)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