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회란 어떤 곳인가(마태복음 16:13-20)
오늘은 한빛교회를 시작한지 30년 되는 뜻 깊은 날입니다. 한빛교회는 1986년 1월 26일에 시작을 하였는데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교회를 하나님께서 30년 동안 인도해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며 미래에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미래에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고 귀한 빛과 진리와 생명의 교회가 되기를 우리 성도님들께서 간절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교회라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곳인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교회에 대해서 오해를 하거나 착각을 하고 다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무엇인가, 어떤 곳인가에 대해 정확히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빵을 사려면 빵집에 가야하고, 채소를 사려면 야채가게에 가야하고 운동을 하고 싶으면 체육관에 가야 하듯이, 교회도 가는 목적이 있습니다.
제가 서울 남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남산 밑에 서울 시내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집들과 건물들과 빌딩들이 보였습니다. 제가 그것을 바라보면서 저기에 건물들과 빌딩이 많은데 ‘저것들이 다 용도가 있을 것이다.’ 교회를 보면서 ‘저기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도 분명 용도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유명한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하면서 주님께서 네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고백하기를“예수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 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 위에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 고백을 반석이라 하는데,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교회가 어떤 곳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첫 번째로, 교회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16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하나님이 살아계시며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한국의 감리교와 장로교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온 해가 1885년 4월 5일입니다. 그날은 부활절이었습니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두 선교사는 제물포항에 도착해서 동시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후에 한국의 교회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습니다. 감리교회 중 제일 먼저 세워진 곳이 어디냐는 논쟁입니다. 대부분은 서울에 있는 정동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천에 내리교회가 있는데 어떤 분들은 내리교회가 최초의 감리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근거는 이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양에 가기 전에 인천 제물포 여관에서 3일을 머물렀는데 이 삼일동안 있으면서 내리교회를 개척했다는 것입니다.
이 논쟁을 종식시키려면 교회가 무엇이냐는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그 정의에 근거해서 이것이 교회의 시작인지 그렇지 못한지 판단을 해야 합니다. 교회가 시작되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성경의 바울을 보면 인자하고 선교를 위해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관대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는 죄인의 괴수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관대했던 바울도 딱 한 번 타인을 저주한 적이 있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인데 “하나님이 주신 복음이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의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위에 다른 고백을 전한다고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처럼 신앙적인 면에서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교회를 보면 너무 현대화 되어 있어서 어떤 교회는 십자가도 없고, 사도신경을 고백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예배를 볼 때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것은 우리의 분명한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때 사도신경에 대한 고백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신앙의 고백이 있어야 교회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가 부패한 원인은 세월이 점점 지날수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신앙이 아닌 것이 들어갔기 때문에 흔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입니다. 종교 개혁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유럽교회를 보면 교회가 텅텅 비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유럽교회가 세상문화, 쾌락주의, 자유주의에 젖어들어 신앙고백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교회가 비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신앙고백은 교회의 기초입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에서 반석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반석위에 내가 교회를 세우겠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들로 교회를 세우면 무너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18절을 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후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함부로 교회를 내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의미는 두 가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이 공생애 시절에 했던 일들을 계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때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교회 역시 그 예수님의 정신을 계승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두 번째 의미는 교회의 경영을 예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른 인간 단체와 달라서 예수님이 경영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경영한다는 것은 사람의 뜻대로 경영한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뜻대로 경영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생각과 뜻을 예수님께 맞추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내 뜻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내 뜻을 꺾어서 예수님 뜻에 맞춰야 합니다.
미국 남부 텍사스는 인종차별이 심했습니다. 최근까지 인종차별을 철폐하지 않은 곳이 미국 남부입니다. 예전에는 ‘짐 크러우’제도가 있어서 흑인들은 공공화장실에도 못 들어갔습니다. 텍사스에 백인 교회가 있었는데 흑인은 한명도 못 들어가게 했습니다. 동네에 살던 어느 흑인이 먼 흑인 교회를 가다 어느 날은 너무 늦어서 그 백인 교회에 갔는데 난리가 났습니다. 결국 쫓겨나서 교회 본당 밖 계단에 앉아 혼자 예배를 드리다 피곤해서 잠이 들었습니다. 잠에서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어떤 분이 교회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막 끌어내는 것입니다. 결국 못 들어가서 흑인 옆에 왔습니다. “당신도 못 들어갔나요?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흑인이 그에게 물어보니 “나는 예수그리스도입니다”그렇게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교회는 예수님이 임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하나님께서 영적인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파워를 누려야 합니다. 오늘 말씀 18절에 보면, “내가 이 반석위에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합니다. 음부의 세력이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의 영적인 파워가 있기 때문에 이기지 못합니다. 음부의 권세는 무엇입니까? 마귀의 권세, 지옥의 권세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이 지옥의 권세를 ‘세상과 공중에 권세 잡은 자’라고 합니다. 어떤 신학자가 교회를 표현하기를‘교회는 철커덩 철커덩 쇳소리가 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어떤 것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욕망에, 어떤 사람은 돈에, 어떤 사람은 강박관념에 그것을 떨쳐버리려고 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마약하는 사람도 있고, 술에 중독된 사람도 있고, 중독되어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속박당하고 있기에 그런 사람들이 교회에 오면 교회에 권세를 주었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 충만함을 받고 감싸고 있는 죄의 쇠사슬이 덜커덩하고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힘으로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계속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습니까? 교회 와서 예배드릴 때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이 물러갑니다. 교회에 그런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제가 예전에 본 영화중에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1994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존 내쉬라는 경제학자, 수학자에 대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천재인데 일생동안 망상에 시달렸습니다. 항상 자기 곁에 세 사람이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안 보려고 해도 진짜가 아니고 가짜인데 보이는 것입니다. 부인하고 같이 다니는데 어떤 이가 교수님을 만나려고 다가왔는데, 교수가 부인에게 보고 “이 사람이 진짜 사람이 맞냐?”물어보고 진짜면 얘기를 하고 그랬습니다. 그 사람은 망상 속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 사람 옆에 살았으면 교회에 가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교회 나왔으면 벌써 예수님 십자가 힘으로 그 망상이 쇠사슬이 덜커덩 끊어졌을 것입니다. 일평생 그 구속에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우리 중에 마음에 그런 구속을 받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교회 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면 그런 마음이 덜커덩 내려갑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짐과 속박과 그런 모든 것들이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깨끗이 물러가야 합니다.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신자들이 교회에 열심히 출석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음부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서입니다.
네 번째로, 교회에 하늘 문을 여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19절을 보면,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라.” 이 말씀은 천국 열쇠를 교회에 준다는 말씀입니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매면 영원토록 안 풀립니다. 그러나 문제를 풀면 풀립니다. 그것을 교회에 주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런 천국 열쇠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를 누가 해결해야 합니까? 결국 하늘의 열쇠를 쥐고 있는 교회가 해결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천국 열쇠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문제는 여기 교회에 오셔야 영적인 문제는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은 두드려야 열리게 됩니다. 그 문은 교회만이 열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과 영생의 문제는 천국열쇠로 열려지는 것입니다.
열쇠가 무엇입니까? 문을 여는 도구입니다. 문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문은 항상 경계 선상에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얘기하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문입니다.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문입니다. 세상공간에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공간입구가 바로 교회입니다. 죽음의 공간에서 영생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교회입니다.
창세기 보면 야곱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곱이 형에서의 장자권을 뺏고 도망가다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하늘 사닥다리가 내려와서 자기 머리맡에 섰더니 천사가 사닥다리로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야곱이 꿈에서 하나님과 대화를 합니다. 그래서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잠에서 깼습니다. 깨자마자 야곱이 뭐라고 고백합니까? “이곳이 하늘의 문이로다.” 하나님을 만난 곳이 하늘의 입구라는 고백입니다. 지금 우리는 천국의 입구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열쇠를 교회에 주었습니다. 그런 찬양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 주 앞에 나와 무릎 꿇고 ~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 이 땅 가득 내리도록’하늘 문이 열리고 은혜의 빛줄기가 이 교회에 위에 내린다는 것입니다.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 한빛교회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벌릴 때 하늘 문이 열려서 여러분에게 은혜의 빛줄기가 쏟아지는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이 주도하시고 축복받는 30년이 되었는데 또 미래의 30년을 바라보며 오늘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세워진 교회의 모습이 우리 교회에 그대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천국의 문으로!
Amen.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