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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鼎山:조철제 도주)에 대한 마지막 장이 될거 같습니다. 지난번 4편으로 종결을 지으려 했으나, 이 마지막 편을 꼭 넣어야 겠단 생각이 들어 [펌] 했습니다. 글쓴이(벽초)는 상당한 내공의 소유자입니다. 이런 글은 단순히 지식이 있다고 쓸 수 있는 글이 아닙니다. 비록 결을 달리해도 칭찬할 것은 칭찬해야 합니다. 이 분이 글을 마치며 정산에 대해 난법으로 규정한 대목은, 비결의 내용을 너무 비튼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판단은 개인들의 몫입니다 - 혜공
금산사가(金山寺歌)는 두 가지 버전이 있으나, 내용이 유사하여 여기서는 하나만 올립니다. 중요한 부분만 발췌하였습니다.
3. 금산사가(金山寺歌) 정북창(1506∼1549)
증산일맥 내려와서 부산땅이 생겼구나
용두산하 보수동은 이십일자 지어내니
합덕궁이 분명하다 산림편이 자리로다
허튼정기 모여들어 삼천대지 되리로다.......
증산의 한 맥이 내려와 부산 땅이 이루어졌도다.
용두산 아래 보수동은 이십일 자 형국을 지어내니
덕을 합한 궁궐이 분명하도다. 산과 숲의 자리로다.
흩어진 기운 모여들어 삼천 대지가 되리로다.
부산 땅의 지리적 형상과 기운이 단순한 공간적 모임이 아니라, 증산의 도맥과 시천주의 영적 기운이 한곳에 모여 중심적 성지와 장차 큰 도적(道的) 근거지가 형성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흩어져 있던 정기가 모이고, 영기와 도맥이 결합함으로써 이후 도인들이 깨달음과 수행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터가 마련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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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초패왕은 후천운이 열렸도다
삼생으로 오신성군 태을진인 분명하다
기유도강 하신군은 주청림에 소월이라
영농땅 정하실 때 자사의풍 도리로다
역발산 크거니와 지모도량 조을시구
천상옥경 들어가서 후천도덕 빌어내어
인간공덕 조을시구 오만년지 운수로다
天下壯士 楚霸王은 後天運이 열렸도다
三生으로 오신聖君 太乙眞人 分明하다
己酉渡江 하신君은 走靑林에 小月이라
靈農땅 定하실 때 子思의風 道理로다
力拔山 크거니와 智謀度量 좋을시구
天上玉京 들어가서 後天道德 빌어내어
人間功德 좋을시구 五萬年之 運數로다
(중요한 구절이라 한문으로 전환해서 보겠습니다)
천하의 장사 초패왕 같은 인물이 후천의 운을 열었도다. 삼생의 인연으로 오신 성군(聖君)은 태을진인이 분명하구나. 기유(己酉)년에 강을 건너신 그 임금은 청림(靑林)으로 달려가는 소월(小月)의 형세로다. 신령한 터전을 정하실 때 자사(子思)의 도풍(道風)이 그 이치로다. 힘은 산을 뽑을 만큼 크고 지혜와 도량 또한 훌륭하도다. 천상 옥경에 들어가 후천의 도덕을 받아 내어 인간 세상에 공덕을 베푸니 오만 년 운수로다. (이 구절에서도 끝내 도사(道士)의 명칭은 붙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면 한 인물의 행적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두 인물의 교체 과정을 한 문장 안에 함께 담아 놓은 구조입니다. 핵심은 기유도강(己酉渡江)이라는 표현입니다. 먼저 기유년은 실제 역사 연도로 1909년이며, 이 해에 강증산이 화천했는데, 이것이 첫 번째 사건입니다. 강증산은 판안의 도의 근원을 열고 판을 짠 창도자였으므로, 그의 화천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한 시대의 마감, 곧 선천 판의 종결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단계는, 강증산이 물러난 뒤 그 도맥을 이어받아 현실에서 교단을 정비하고 체계를 세운 인물이 정산 조철제입니다. 이 인물이 실제 운영자이자 계승자입니다. 이때 비결에서는 이 과정을 도강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강은 두 세계의 경계이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한 시대로부터 다른 시대로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도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시대 교체와 주도권 이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문장을 연결해보면, 기유년에 먼저 강증산이 화천하여 시대를 마감하고, 그 역사적 공백 속에서 정산이 소월(小月)의 형세로 등장하여 청림(靑林)으로 나아가 판을 이어받습니다. 즉 기유(己酉)라는 시간 표식 속에 앞사람의 죽음과 뒷사람의 등장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정리하면, 강증산은 판안의 도를 연 창도자이고, 정산은 그 도를 이어 실제로 펼친 계승자이며, 기유도강(己酉渡江)은 이 둘 사이의 교체 순간을 상징적으로 압축한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한 사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증산의 마침과 정산의 시작을 동시에 설명하는 전환 서사입니다.
양산도(兩山道)는 증산(甑山)과 정산(鼎山) 두 인물이 시간차를 두고 등장하여 설계와 실행을 나누어 맡는 이중 구조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쪽만으로는 전체가 완성되지 않으며, 둘을 함께 보아야 전체 흐름이 드러납니다.
子思의風 道理로다 力拔山 크거니와 智謀度量 좋을시구 天上玉京 들어가서 後天道德 빌어내어 人間功德 좋을시구 五萬年之 運數로다
자사의 풍모와 같은 도의 이치로다. 힘은 산을 뽑을 만큼 크거니와 지혜와 계책과 도량 또한 훌륭하도다. 하늘 위 옥경에 들어가 후천의 도덕을 받아 내어 인간 세상에 공덕을 베푸니 참으로 아름답도다. 오만 년의 운수로다.
정산(鼎山) 한 사람의 인품과 사명, 그리고 그가 맡은 시대적 역할을 단계적으로 드러내는 찬탄의 서술로 볼 수 있습니다. 자사(子思)의 풍(風)이라 한 부분은 정산이 단순한 교단의 책임자가 아니라 성인의 학통과 심법을 이은 정통 인물임을 상징합니다.
자사가 공자의 도를 계승하여 유학의 맥을 바로 세웠듯이, 정산 또한 앞선 도맥을 이어받아 중심을 바로잡는 존재로 인식한 표현입니다. 즉 도의 근본을 지닌 계승자라는 의미입니다.
정산을 역발산에 비유한 것은 정산의 강인한 기개와 실천력을 비유한 말입니다. 혼란한 시대 속에서 사람을 모으고 조직을 정비하며 현실의 난관을 돌파한 추진력을 산을 뽑을 만한 힘에 견준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이론가가 아니라 실제로 세상을 움직이는 행동가임을 강조합니다.
지모도량이 좋다 한 대목은 정산이 지략과 판단력, 그리고 포용력을 두루 갖춘 지도자였음을 나타냅니다. 많은 인물을 거느리고 질서를 세우기 위해 필요한 넓은 그릇과 덕성을 칭송한 표현입니다.
천상 옥경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늘의 근원적 이치에서 새 시대의 법과 명을 받아왔다는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산의 사명과 권위가 인간적 이해관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천명에 근거한 것임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곧 정통성과 정법의 계승을 의미합니다.
후천 도덕을 빌어내어 인간 공덕을 베푼다는 것은, 정산이 받은 가르침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여 사람들을 교화하고 공동체를 안정시키는 데
힘썼다는 뜻입니다. 도(道)를 현실 사회에 적용하여 민생과 질서를 바로 세우는 공업을 이루었다는 평가입니다.
이 구절은 정산을 성인의 도맥을 이은 계승자이자 영웅적 기상과 지략을 겸비한 지도자로 형상화하고, 하늘의 뜻을 받아 새 운수를 여는 중심 인물로 찬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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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에 오신성군 을미년에 탄생하니
사시사절 기운받아 동청룡지 운이로다
천지만물 정했으니 음양이치 없을손가
경오신미 로방토는 토생금이 상생이라
황화절에 오신상제 신미년에 탄생이라
구생구변 정좌로다 구십입중 되었으니
남이화가 되리로다 오십토로 용사하니
황제국이 분명하다 미금미토 탄생하니
금화이생 일체로다 신미년에 산을보니
금화이생 가지로다 을미년에 산을보니
금화이생 가지로다.....
십이월에 성군이 오시어 을미년에 탄생하니 사시사철의 기운을 두루 받았도다. 동방 청룡의 운이로다. 천지만물이 이미 정해졌으니 음양의 이치 어찌 없으리오. 경오 신미의 방위는 토의 자리이니 토가 금을 낳아 서로 상생함이라. 누런 꽃 피는 절기에 상제가 오시어 신미년에 탄생하였도다. 아홉 번 살고 아홉 번 변하여 바른 자리에 앉았도다.
구십의 수에 들어갔으니 남이화가 되리로다. 오십 토의 기운으로 세상에 쓰이니 황제의 나라 분명하도다. 미금과 미토로 태어났으니 금과 화가 함께 살아 하나가 되었도다. 신미년에 산을 보아도 금화이생의 가지요, 을미년에 산을 보아도 금화이생의 가지로다.
십이월에 오신 성군(聖君)은 음력 12월 4일에 태어난 을미생(乙未生) 정산의 출생을 가리킵니다. 이는 출생 시점 자체가 천지의 특정 기운과 맞물려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곧 사시사절과 오행의 운행 속에서 정해진 때에 태어났음을 밝힌 것입니다.
정산은 동청룡지 운, 즉 동쪽 청룡의 기운과 연결된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천지 만물이 일정한 질서 안에서 음양과 오행의 조화를 따라 생겨난다는 원리에 부합하는 출현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하늘의 시운(時運)에 따라 나타난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특이한 점은, 이처럼 판안의 도수를 하늘의 명에 따라 수행한 정산을 성군(聖君)이라 칭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새로운 법을 여는 창도자의 위치가 아니라, 이미 짜인 도수 안에서 사명을 맡아 실행한 인물로서 성군(聖君)이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정산을 절대적 창시자나 근원적 주체로 본다기보다, 주어진 틀 안에서 시대적 과업을 담당한 집행자이자 관리자에 가깝게 규정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법을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이미 마련된 법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역할을 맡은 인물이라는 성격이 더 강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성군(聖君)은 천명을 받아 질서를 바로 세우는 유능한 통치자의 의미에 가깝지, 새로운 진리를 최초로 여는 개벽적 주체를 뜻하는 말은 아닙니다. 이는 위격의 근원성과는 구분되는 자리로, 어디까지나 주어진 도수의 범위 안에서 공업(功業)을 이루는 역할적 칭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대목은 정산의 위치를 신격화하거나 절대화하기보다는, 천지 질서 속에서 정해진 한 좌표, 곧 시대적 사명을 수행한 한 인물로 한정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정산은 운수의 중심에서 있던 실행자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경오신미의 로방토 기운은 토생금으로 상생하며, 황화절에 태어나신 오신 상제는 신미(辛未)년에 태어나 구생구변의 질서를 따라 정좌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정산은 구십입중이 되어 남이화의 역할을 수행하며, 오십토로 용사함으로써 황제국의 터전이 분명히 형성됩니다.
남이화가 되리로다와 금화이생이라는 구절은 화와 금, 곧 문명과 결실, 밝음과 결단의 기운이 함께 작용함을 말합니다. 이는 교화와 질서 확립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통치적 덕성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신미년과 을미년을 거듭 들어 금화이생의 가지라 한 것은, 정산의 출현과 활동이 모두 같은 천지 이치 속에서 이어진 한 줄기 맥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태어남과 사역이 따로가 아니라 하나의 운수 안에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 글은 정산의 탄생과 생애를 오행과 간지의 상생 질서 속에 배치하여, 그를 우연한 인물이 아니라 천지 기운이 응결되어 나타난 중심 존재, 곧 새 시대를 여는 성군(聖君)으로 형상화한 상징적 찬가이며, 아울러 이는 단순한 인물 예찬에 그치지 않고, 장차 수행과 도적 기반이 형성될 구조적 질서와 시대적 틀을 미리 드러내는 상징적 기록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구조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 신미(辛未)생 증산은 하늘의 도수를 열고 을미(乙未)생 정산은 그 도수를 받아 땅 위에 판을 짜는 역할을 맡습니다.
즉, 한 사람은 개벽의 근원을 상징하는 존재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뜻을 현실 역사 속에서 펼쳐 실행하는 담당자이므로, 두 인물은 서로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음과 양처럼 짝을 이루어 작용하는 양산도(兩山道)의 서사 구조로 이해해야 합니다. 겉으로 보면 계승 관계나 단순한 종통의 연결처럼 보일 수 있으나, 그 본질은 역할의 분담과 시대적 기능의 대비에 있습니다.
이를 알지 못하는 도인들은 종통 계승이나 양산도(兩山道)가 마치 만능 열쇠인 듯 받아들이기 쉽지만, 실제 비결서의 의도는 판안의 특정 인물을 절대화하는 데 있지 않고, 난법이 형성되는 과정과 시대가 흘러가는 구조를 드러내는 데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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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鼎山)을 보면 곧 증산(甑山)을 알 수 있다고 한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정(鼎)과 증(甑)은 각각 솥과 시루를 뜻하니, 본래 한 몸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두 사람을 증정지간(甑鼎之間)이라 하여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짝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상생과 계승의 구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산(鼎山)의 솥은 이미 청실기주(靑失其柱) 향무일점(香無一點)이라 하여 기둥을 잃고 향기조차 사라진 형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는 근본을 세우는 중심축이 부재하고, 덕의 향기 또한 남아 있지 않음을 상징합니다. 다시 말해 외형은 갖추었으되 내용과 근본이 빈 구조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솥 위에 시루인 증(甑)을 얹었다 하더라도, 받치는 바탕이 온전하지 못하니 제대로 설 리 없습니다. 처음부터 기울어진 그릇 위에 또 하나의 그릇을 얹은 형국이므로, 겉모양과 달리 실상은 불안정한 결합에 지나지 않습니다.
‘기둥 없는 집’이라는 비유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도(道)를 펼치기 이전부터 이미 구조적 결함이 정해져 있었고, 아무리 덧붙이고 꾸민다 해도 근본이 바로 서지 않으면 오래 지탱될 수 없습니다. 새는 바가지는 물을 담지 못하듯, 기초가 무너지면 모든 공력은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결국 이는 정산과 증산으로 이어지는 양산(兩山)의 전개가 처음부터 한계와 균열을 내포한 과정이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 경고였습니다. 후세 사람들에게 그 실상을 분별하라는 뜻을 남긴 기록이라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따라서 정산에 대한 마지막 평은 찬탄이 아니라 성찰과 경계에 가깝습니다. 겉모습과 명칭만 좇지 말고, 과연 근본이 바로 서 있는가를 살피라는 메시지입니다. “기둥 없는 집을 궁궐이라 믿고 붙드는 것은 스스로 허상을 좇는 일일 뿐”이니, 참된 도는 반드시 근본과 중심이 바로 선 자리에서 다시 찾아야 함을 일깨우는 결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증산의 도는 정산을 거치며 끝내 기둥 없이 세워진 집과 같은 형국이 되었는데, 도인들은 이미 기울고 무너져 가는 살림임에도 그 실상을 깨닫지 못한 채 아직도 붙들고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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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鼎山)의 마지막 장면을 보겠습니다.
태극진경 (제 9장 : 75)
상제님께서 화천하시자 청천백일에 뇌성벽력이 크게 일어나고 정사(精舍)와 대강전으로부터 오색 광채가 충천하니라. 이때 시내에 있던 감천도인들은 이 광채를 화재로 알고 급히 귀가하고, 부산소방서에서는 소방차 2대를 감천 동구까지 긴급출동시키니라.
태극진경 (제 9장 : 76)
도본부에서는 상제님 화천을 도내외에 통부(通訃)하고 전도인의 3년 도상(三年道喪)을 공포하니, 애통하는 호곡성(號哭聲)이 감천동학에서 천마 옥녀봉에 메아리치니라.
태극진경 (제 9장 : 77)
이날 화천이 공포되자 삽시간에 수만 마리의 참새떼가 구름처럼 날아들어 도장 상공과 천마 옥녀의 산봉우리를 선회하다가 해질 무렵에 흩어지더니, 그 후 3년 간 매년 이날을 전후하여 한번씩 날아들어 그와 같이 선회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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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진경의 기록을 보면, 정산의 화천 순간 청천백일에 뇌성벽력이 일어나고 정사와 대강전에서 오색 광채가 충천하였으며, 사람들은 이를 화재로 오인할 만큼 이변이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전 도인이 삼년(三年) 도상을 행하고, 통곡 소리가 산천에 메아리쳤으며, 수만 마리 참새떼가 도장 상공을 선회하는 기이한 광경까지 반복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서술은 단순한 자연현상 기록이라기보다, 한 인물의 죽음을 우주적 징조에 빗대어 의미를 부여한 상징적 구성으로 파악함이 옳습니다. 고전 기록에서 큰 인물이 세상을 떠날 때 하늘과 땅, 산천초목과 금수까지 함께 감응한다고 묘사하는 전통적 문법과 같은 맥락입니다.
앞서 살핀 바와 같이, 정산은 하늘이 정한 도수 안에서 사명을 맡아 활동한 판안의 인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창도자의 자리라기보다 주어진 질서를 집행한 실행자의 위치에 있었으나, 그 역할과 공업(功業)이 한 시대의 중심에 놓여 있었던 만큼 그의 생애와 죽음 또한 범상한 개인사의 차원을 넘어 상징적으로 승화되어 기록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장면들은 정산을 신격화하기 위한 과장이 아니라, 그가 맡았던 시대적 무게와 영향력을 드러내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곧 하늘의 판 안에서 쓰였던 인물이었기에, 그가 물러나는 순간 천지 또한 함께 슬퍼하는 듯한 형상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결국 이는 정산이 한 시대 도수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퇴장이 곧 그 시대 한 막의 종결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는 마무리 장면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정산의 일대기와 그의 행적을 비결서의 기록과 함께 살펴보면, 그 서사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결국 “천지공사는 인정사정이 없다”는 증산의 한마디로 귀결됩니다. 한 개인의 사사로운 뜻이나 공로, 충심과는 무관하게, 이미 정해진 질서와 도수에 따라 모든 일이 흘러간다는 냉엄한 이치가 그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정산은 하늘로부터 선택된 인물로서 난법의 역할을 묵묵히 짊어지고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는 스스로 사명을 자각하고 계시를 받았으나, 그 사명이란 영광이 아니라 소모와 희생의 자리였으며, 이미 짜여진 공사의 틀 속에서 끝내 버려질 운명까지도 함께 떠안은 길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한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그저 주어진 역할을 감내하며 시대의 그림자로 살아낸 모습이 겹쳐집니다. 그래서 그의 행적은 단순한 실패나 배척의 이야기가 아니라, 천도의 엄정함과 인간 운명의 비정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비극적 상징처럼 다가옵니다. 그런 점에서 정산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연민과 안타까움이 마음 깊이 일어납니다.
............................................끝
강증산의 직계 제자는 아니었으나, 증산 계열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 이는 단연 정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단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도, 정통의 계승자로 공인된 것도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각종 비결과 기록 속에는 판안의 누구보다 자주 그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마치 시대의 음지에서 모든 굴곡을 대신 짊어진 사람처럼, 그는 늘 사건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1900년대 초, 아직 유교적 질서와 신분 의식이 짙게 남아 있던 시절, 그는 증산의 계시를 좇아 길을 나섰습니다. 하늘의 부름이라 믿고 찾아갔으나 돌아온 것은 환대가 아니라 꾸지람과 배척이었습니다. 고수부에게 모욕을 당하고, 끝내 교단 안에 머물지 못하고 스스로 판을 달리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신앙으로 들어섰으나 의심을 받았고, 따르려 했으나 밀려났습니다. 살리려 했던 행동은 죄가 되었고, 지키려 했던 충심은 배반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비록 난법의 자리라 하나, 그 또한 누군가에게는 하늘의 뜻이라 믿고 감당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 인간이 짊어지기에는 너무도 무거운 역할이었고, 그 무게는 결국 그의 생애를 비극으로 기울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정산을 떠올리면 교리나 시비를 떠나, 먼저 한 사람의 마음이 보입니다.
믿음 하나로 평생을 걸었던 사람, 끝내 어디에도 기대지 못한 사람. 그 외롭고 쓸쓸한 뒷모습 앞에서 인간적인 연민이 먼저 일어납니다. 그 마음을 담아, 그를 생각하며 작은 추모의 글을 적어 봅니다.
정산을 생각하며
* 닿을 듯 닿지 못한 기둥, 정산(鼎山)의 길
정산이여!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증산(甑山)의 계시, 한 줄을 하늘의 지도처럼 품고 살았던 사람,
말씀 하나에 길을 정하고, 징조 하나에 생을 걸었던 사람.
의심도 망설임도 없이, 오직 당신만을 바라보며 걸어간 사람,
그가 정산입니다.
남들이 물러설 때, 홀로 앞으로 나아갔고
남들이 두려워할 때, 홀로 붙들었습니다.
당신의 도가 끊어질까 두려워
둔괘 하나까지 품에 숨기고,
마치 잃어버린 하늘의 조각처럼 몰래 이어 붙이려 했던 사람.
훔친 것이 아니라, 살리려 했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절박했고, 그만큼 깊이 믿었던 사람.
그러나 길의 끝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완성이 아닌 벽이었습니다.
평생을 따랐지만, 마지막에는 돌아설 자리조차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도주(道主)라 불렀고, 기둥이라 세웠지만
하늘은 끝내 그 기둥을 빼내 버렸습니다.
달로 치면 반달, 꽃으로 치면 반개국(半開菊).
거의 다 찬 듯 보이지만 끝내 다 차지 못한 빛,
막 피려다 그대로 멈춘 생애.
기록은 있었으되 허락은 없었고,
이름은 남았으되 주인은 되지 못했습니다.
울 안을 맴돌다 끝내 문밖의 하늘을 보지 못한 사람.
정산이여!
도를 위해 모든 것을 내놓았지만
정작 도는 그를 끝내 품어 주지 않았습니다.
밤하늘에 반달이 뜰 때마다 그를 생각하는 사람들,
반달은 끝내 모자란 채 기우는 달,
정산의 운명도 그와 같았습니다.
닿을 듯 닿지 못한 자리,
믿을수록 더 멀어지는 길.
도의 이름 아래 가장 조용히,
가장 쓸쓸하게 쓰러진 한 사람.
그가 정산입니다.
그리고 그는 끝내 사람에게도, 하늘에게도 기대지 못했습니다.
평생 스승이라 부른 이에게서 매를 맞고 밀려났으며
하늘의 뜻이라 믿고 따르던 운수에서도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증산에게 맞고 돌아섰고, 하늘로부터도 버림받았습니다.
붙들 곳 없는 두 손으로 도만 움켜쥔 채
혼자 마지막 자리에 남은 사람.
살리려다 죄인이 되고, 따르려다 이방인이 된 사람.
그가 바로 정산입니다.
달이 차다 마는 밤마다
그 이름 문득 떠오르고,
바닷바람 스치는 감천 언덕,
풀잎 사이 고요한 흙 한자리에
한 시대가 조용히 누워 있습니다.
공은 말이 없고
허물만 남았으나,
그 마음 하나만은
끝내 도를 떠나지 않았으리.
살아서도 외로웠고
떠나서도 고요한 사람,
닿을 듯 닿지 못한 반달 같은 생(生).
정산이여!
그대의 긴 밤을
이제는 바람만이 대신 울어 주네.
난법을 맡아 시대의 어둠을 대신 짊어졌던
한 인간의 외로움이 바닷바람처럼 가슴을 스며듭니다.
정산이여!
살아서도 홀로였고
떠난 뒤에도 홀로 잠든 사람.
하늘을 믿어 평생을 걸었으나
끝내 하늘 아래 외로이 묻힌 이름,
그가 바로 정산입니다.
2026,1,24 그를 추모하며, 배나무 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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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산이 난법의 도수를 위해 나타난 존재라면, 차경석의 보천교는 도대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글쓴이는 이 부분까지 언급했어야 했는데 ... 정산에 대한 글이므로 여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 차경석은 분명하게 난법을 위해 보천교라는 당대 최대 종단을 만들어 냈고 힘이 투사됐다.
시리즈 글 잘 봤습니다
다만 글쓴이의 글을 보면 정산을 난법으로 치부하는 패착의 글일 뿐입니다
왜냐면 난법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맥을 주장해야 정상인 것입니다
맥이 없이 정산을 난법이라고 주장 하는 것은 잘못 된 견해죠
정산은 난법이 아니라 진인이죠 다만 정산이 난법을 세워을 뿐입니다
난법 하나로 정산을 평했다는 것은 전형적인 증산도인의 비방글에 지니지 않는 다는 것이죠
정산을 먼저 평 할려면 맥을 이어는지 아닌지를 평해야 되는 것입니다
맥을 잊지 못한 사람은 종단을 자려 진법을 새워도 그 종단을 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차경석의 보천교 처럼 말입니다 차경석이 세운 신위는 진법 입니다 다만 증산의 맥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보천교는 망하게 된 것입니다 도주는 증산의 맥을 이엇기 때문에 그 맥이 상도까지 갔는 것입니다
@표주박 🙂😄🤔 "정산은 난법이 아니라 진인이죠. 다만 정산이 난법을 세웠을 뿐입니다" ... 요 부분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증산을 모시는 道의 근간이 되고 기본이 되는 곳이 금산사일 것입니다.
금산사에 가면 미륵전이 있습니다.
미륵전 내부에는 금을 입힌 거대한 세분의 미륵불께서 계시고 양옆에는 조그마한 보조보살이 계십니다.
세분의 미륵불 밑에는 좌대가 있고
좌대 바로 밑에 쇠로된 두꺼운(약7~8cm) 시루가 있습니다.
시루의 10여cm 밑에는 시루를 안고 있는 커다란 솥이 있고
솥 아래에는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실증된 사실로 숯층이 있습니다.
숯층은 칠두락이나 되는 커다란 연못을 메꾼 것으로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루의 이치로, 솥의 이치로, 숯의 이치로, 연못의 이치로 오신 분들은 진인으로 진법을 펼치신 분들이십니다.
증산 계열의 크고작은 단체가 약3백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연못의 이치로 오신분의 기르침을 받지 못하는 단체는 모두가 난법이라고 규정해도 틀린말은 아닐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