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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집합 A와 B(김기택 시인의 사물주의 시- 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 분석)
*사물주의 시에 대한 근원과 정의
‘물과 대화를 나누었더니 반응했다. 밥에게 미움을 주니 까맣게 썩고, 사랑을 주니 흰밥 그대로였다.’ 이런 파장 연구는 옛날 같으면 귀신 씻나락 까먹을 일인데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또한, 신이 창조한 생물 외에 물질도 기운과 정체성이 있다는 걸 중세 시인들의 시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인류에 기여한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려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주의]에 근거해야 한다. ‘본질주의는 이론적으로 하나의 인식 대상이 해당 종류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필히 부합해야 하는 일련의 성격(본질)을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철학적 논쟁에 중점을 둔 신념과 실천이다.’
사물에 관심이 커진 인문학자, 철학자, 시인들은 물질의 본질을 인정하고 물질이 인간에 귀결됨을 증명하기 위해 이론을 구축한다. ‘컴퓨터, 스마트 폰, 옷, 신발, 자동차 등. 사물과의 관계는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그 중요성을 통찰하고, 그것이 인간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주목한 것이 신유물론’인데, 그것은 인간과 밀접한 물질을 시의 소재로 쓴 현대시에서 알 수 있다.
*김기택 시인의 시 세계
김기택 시인은 현대 시인이며 대학에서 시론 강의에 열정을 다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 세계는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공손하며 반듯하다. 고지식한 교수는 늦깎이 작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감정에 솔직한 시인의 시작법이 제자들과 통했다고 할까. 현대 시는 장르를 뛰어넘어 초현실적이거나 감각적 언어가 주류를 이루어 주제 파악이 난해한데, 김기택 시인의 시는 인간과 사물의 공존을 친근하게 묘사해 주제 파악이 용이하다.
‘그의 시에서 사물은 일상 세계의 도처에서 출현하며 일상의 삶 자체를 개진한다. 사물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고 삶의 사태에 참여한다. 인간의 삶은 사물과 함께 사물 안에서 사물을 통하여 전개된다.’ 송승환-시인, 문학평론가
시인과 세대의 시작법은 반비례한다. 첨예하고 복잡한 시를 이해하는 것보다 김기택 시인의 삶을 엿보는 게 나에게 위로가 된다. 시인은 우월감에 도치되는 법이 없고, 문학과 사적인 일에 선을 긋고, 원칙을 고수하며 융통성이 없는 성품이어서 감각적 시보다는 사실적 시가 시인과 걸맞다. 계산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시인의 자필 시집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에서 열반의 정서를 보았다.
‘생명보험’-병원마다 장례식장마다 남아도는 죽음/밥 먹을 때마다 씹히고/이빨 사이에 고집스럽게 끼어 양치질해도 빠지지 않는 죽음이/오늘 밤은 형광등에 다투어 몰려들더니/바닥에 새카맣게 흩어져 있다 // 삶은 언제가 나에게도 죽음 하나를 주리라/무엇이든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내 두 손은/공짜이므로 넙죽 받을 것이다.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2015년 6월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 육필 시집은 민낯과 같다. 시집에서 시인은 고백한다. ‘나의 불구성을 상상력을 통해 견딜 만하고 놀만한 것으로 변형한 체험은 이후로도 계속 내 시에 남아, 내 더듬이로 하여금 내 생활이나 몸이나 주변 사람들이나 동물이나 사회제도 속에서 끊임없이 불구성을 찾아다니게 했던 것 같다.’
시인의 시 세계는 현실과 밀접하다. 세상에는 특별한 사람보다 평범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더 많다. ‘생명보험’에서 공짜라 남아도는 죽음조차 두 손으로 넙죽 받고 싶은 겸손함. 시인의 언어는 부르주아들의 언어보다 불우한 환경으로 고통스러워 방황하는 현대인에게 맞춤형이다. 이는 몸소 겪은 고통을 사물과 인간에게 동일한 눈높이로 시를 썼기 때문이다. 시인이 선택한 시구는 거저 만들어진 게 아니다. 시인의 눈물과 아픔으로 만든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업장을 시에서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다.
*김기택의 사물주의의 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 1
꽁치구이/김기택(사실적)
젓가락을 대보기도 전에 불길이 먼저
부드러운 혀로 구석구석 꽁치 맛을 본다.
꽁치는 불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위협적으로 입을 벌려 보지만
불은 아랑곳하지 않고 눈과 입까지 핥는다.
간지러운 듯 지느러미를 가늘게 떨고
배를 조금씩 들썩거릴 뿐
꽁치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
붉은 혀에서 침이 흘러나와
꽁치에 번들번들 윤기가 흐른다.
게걸스럽게 끓는 침이 사방으로 튄다.
불길이 다 먹고 남은 꽁치
혓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꽁치를
젓가락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낫/김기택(감각적)
안쪽으로
날이 휘어지고 있다
찌르지 못하는
뭉툭한 등을 너에게 보이면서
심장이 있는
안쪽으로 구부러지고 있다
팔처럼
날은 뭔가를 껴안으려는 것 같다
푸르고 둥근 줄기
핏줄 다발이 올라가는 목이
그 앞에 있다
뜨겁고
물렁한 것이 와락 안겨올 것 같아
날은 몸을 둥글게 말아
웅크리고 있다
김기택 시인은 사물주의 시인이다. 사물주의 시의 특징은 사물과의 관계에서 정체성을 밝혀내어 반향을 일으키고, 사물과의 인과 관계를 통해 정서를 함양한다. 시인은 사물을 분석하여 구체적이고 치밀한 문체를 구성했다. 위의 사물주의 시 두 편을 서술적, 감각적 시로 나누고 평론해 보았다.
꽁치구이- 연탄불에 구워지는 꽁치의 적나라한 모습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한 시다. 동대문 시장 골목에 가면 생선구이 집이 즐비하다. 가게에서 나오는 고소한 생선 냄새를 맡고 지나칠 수는 없다. 만만한 꽁치가 뽑혀 기름기 돌고 윤기 있는 자태를 자랑한다. 연탄불에 구운 꽁치를 입에 넣기까지 꽁치의 상태를 묘사한 리얼리즘 시다. 석쇠 위로 연탄불이 올라오자, 몸을 꼬기 시작하는 꽁치와 인간의 젓가락질은 인과 관계인 수직적 관계다. 꽁치는 인간에게 수동적이며 살신성인을 보이지만 인간은 꽁치를 먹겠다는 식탐으로 가득하다.
‘혓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꽁치를 젓가락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기다리고 있다.’ 미식가가 아니어도 맛을 본 자는 인내심에 한계가 있어, 꽁치를 노려보며 젓가락에 각을 세우게 된다. 이런 인간의 욕망은 세상 어디서든 다양한 형태로 알 수 있다.
낫-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쓴 시다. 낫으로 인간의 심리를 묘사했다. 사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신은 상관관계다. 처음부터 믿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인간이 예수를 배신했듯, 낫의 의인화에 의미가 있다. 사람은 한 치의 혀로 서로 찌를 수 있고, 껴안을 수 있다. 낫의 실체는 편리한 연장이지만 위협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낫이라는 칼’이 시사하는 것은 인간이 폭력의 주체라는 점이다.
모든 관계는 상대적이다.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은 화해다. ‘뭉툭한 등을 너에게 보이면서, 팔처럼 껴안으려는, 안겨올 것 같아’는 반목이 아닌 끌어안기다. 인간과 사물, 인간과 인간은 함께 할 때 존재가 성립된다. 인간의 등 돌리기는 결핍에서 온다. 인간은 신의 관계처럼 믿음을 갖고, 상처로 인해 칼을 품지 않는다면 낫처럼 유용하다. 낫과 인간의 관계라면 상생의 관계가 될 수 있다.
위의 시는 평범한 소재가 묘미이고, 서민적이고 희화적인 시구에서 인간애를 찾아볼 수 있다. 기득권층과 서민층이 양극화된 현대사회는 휴머니즘은 사라지고 물질만능이 우상화되고 있다. 평탄했든 굴곡졌든 살아온 삶의 여정에 감사하고 ‘이순에는 귀가 편해져야 한다.’는 공자의 말씀을 새기며 꽁치처럼 친근하게, 농부의 낫처럼 구순하게 살려는 연습이 필요하다.
*김기택의 사물주의의 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 2
구석/김기택(사실적)
다 열려 있지만 손과 발이 닿지 않는 곳
비와 걸레가 닿지 않는 곳
벽과 바닥 사이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곳
하루 종일 있지만 하루 종일 없는 곳
한낮에도 보이지 않는 곳
흐르지 않는 공기가 모서리 세워 박힌 곳
오는 듯 마는 듯 날개 달린 먼지가 온다
많은 다리를 데리고 벌레들이 온다
바람과 빛이 통하지 않는 습기와 냄새가 온다
숨어 있던 곰팡이들이 벽을 뚫고 돋아난다
아기 손가락이, 어느 날, 만져본다
문이 없어도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곳
후벼본다 긁어본다 빨아본다
엄마가 없어도 튼튼하고 안전한 곳
머리를 넣어본다 누워본다 뒹굴어본다
손가락으로도 꽉 차지만 온몸이 들어가도 넉넉한 곳
눈먼 사람/김기택(감각적)
똑똑 눈이 땅바닥을 두드린다
팔에서 길게 뻗어 나온 눈이 땅을 두드린다
땅속에 누가 있느냐고 묻는 듯이
곧 문을 활짝 열고 누가 뛰어나올 것만 같다는 듯이
눈은 공손하게 기다린다
땅이 열어준 길에서 한 걸음이 생겨날 때까지
팔과 손가락과 지팡이에서 돋아난 눈이 걷는다
한 걸음 나아가기 전까지는
거대한 어둠덩어리이고 높은 벽이고 아득한 낭떠러지다가
눈이 닿는 순간
단 한 발자국만 열리는 길을 걷는다
더듬이처럼 돋아난 눈은 멀리 바라보지 않는다
하늘을 허공을 올려다보지 않는다
나아갈 방향 말고는 어느 곳도 곁눈질하지 않는다
눈에 닿은 자리, 오직 눈이 만진 자리만을 본다
어쩌다 지나가는 다리를 건드리거나
벽이나 전봇대와 닿으면
가늘고 말랑말랑한 더듬이 눈은 급히 움츠려든다
눈이 두드린 길이 몸속으로 들어온다
온몸이 눈이 되고 길이 된다
허리가 잔뜩 줄어들었다가 쭉 펴지며 늘어난다
몸 안으로 들어온 길만큼
한 평생의 체중이 실린 또 한 걸음이 나아간다
[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2]에서 시인의 자각이 확장되고 있다. 시인의 내면과 주제를 파악하려면 시인의 환경과 심경을 미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의 이해는 시인의 삶을 알아가는 수순에 있다.
인간의 미완, 미생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구석]과 [눈먼 사람]은 교집합이라는 사물주의의 카테고리에 사실적 시 A와 감각적 시 B로 세분화했다. [구석]과 [눈먼 사람]의 시 속에서 숨어 있는 화자를 찾아내야 한다.
오규원의 [현대시 작법]을 참고 분석해 보면 ‘a와 b, 즉 화자는 숨고, 대상의 지배적인 인상을 묘사한 감각적 지각을 바탕으로 한 형태이다.’에서 [구석]은 고정 시점에 의한 객관적 묘사이고, [눈먼 사람]은 주관적 묘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세영의 [21세기 한국 시 연구] ‘휴머니즘론’에서 백철 탐구론을 참조하면 ‘백철은 인간 묘사 혹은 인간형 창조라는 말을 병행하고 있는데 문학의 목적은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에 있으며 실현의 방법은 리얼리즘에 있다는 말로 설명될 수 있다.'
구석- 구석과 인간의 관계에서 구석을 ‘외로움’이란 상징어로 삼아 본다. ‘닿지 않는 곳’ ‘나오지 않는 곳’ ‘종일 없는 곳’ ‘보이지 않는 곳’ ‘세워 박힌 곳’ 구석에 박혀있는 인간의 리얼한 모습을 구체화한 것은 ‘새로운 인간형의 창조’로 볼 수 있고, ‘실현의 방법’은 구석에 있는 인간에게 손을 뻗어 관심을 두는 건데 이것을 ‘휴머니즘’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사물을 백철의 ‘탐구론’에 적용해 본 경우다. (1연)
‘먼지가 온다’ ‘벌레가 온다’ ‘냄새가 온다’ ‘돋아난다’는 원하지 않는 ‘슬픔’을 상징어로 떠올려 본다. 먼지, 벌레, 습기, 냄새, 곰팡이는 피하고 싶은 사물이다. 거부하고 싶은데, 곁에 있다. 이들과 함께하는 게 세상 이치다. 뿌리치고 엮이고 싶지 않은데 피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며 순리다. (2연)
‘만져 본다’ ‘후벼 본다’ ‘긁어 본다’ ‘빨아 본다’ ‘넣어 본다’ ‘누워 본다’ ‘뒹굴어 본다’ 아기는 손가락으로, 머리로, 몸으로 구석을 찾아 확인해 본다. 엄마가 없지만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구석은 숨기 좋고 편안한 곳이다. 현대인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구석에 ‘평안’이라는 상징어를 부여한다. (3연)
눈먼 사람- 볼 수 없는 눈이 세상을 향해 두드린다. 배려할 입장이 아닌데 주눅 든 인생이 쓸데없이 조심스럽다. 눈먼 사람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되레 공손하다. 팔다리 세포의 촉이 눈이 되어 거대한 어둠 덩어리와 높은 벽을 만나고, 낭떠러지 같은 착시를 반어가 아닌 직언으로 미래의 발자국을 뗀다. (1, 2, 3연)
올려다보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남의 삶을 넘보지 않는다. 일관되게 겸손하고 피해의식을 갖지 않고, 꼬이지 않은 순한 삶이다. 인간 사회의 모순인데, 피해는 언제나 눈먼 약자의 몫이다. (4, 5연)
자신의, 자신에 의한, 자신을 위한 삶의 방어 자세다. 멀쩡한 것 같지만 넘어질 듯, 쓰러질 듯 살아온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구다. 눈먼 사람은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았기에 고자세보다 융통성이 있다. (6연)
[눈먼 사람]은 장애자에 국한된 게 아닌 똑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을 말한다. 수십조의 세포가 있어도 사고와 감성이 죽은 사람들 말이다. 안타깝게도 특별한 삶은 한정되어 있다. 팔다리가 고생하는 사람들에게는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줄 신. 인간. 사물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석]에 있거나 [눈먼 사람]들도 지팡이 또는 안내견의 도움을 받기 전에 자신의 의지로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김기택 시인은 사물과 하나다. 시인이 사물이고, 사물이 인간이다. 사물에 감정을 이입한 건 당신의 운명이며, 우리들의 필연이다. 사물을 통해 화자의 귀함을 깨닫고 사물과 함께함으로써 존재를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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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덕향님 김기택 시인의 사물주의 시-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 분석-평론, 수작입니다.
맛깔나는 김 시인의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있고 덕향님의 평론은 더욱 감칠맛이 압권입니다.
고맙습니다. 평온한 주말되세요.
지루한 평론의 댓글, 감사합니다.
[사실적 시와 감각적 시] 분석은 자발적 공부인데
사실, 소설 평론이 편하긴 합니다.
요즘은, 작품 발표를 아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