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기 대학생활(2)
나의 늦깎기 대학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행사를 꼽으라면
고연전이다. 사학의 쌍벽임을 자부하는 고려대와 연세대가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매년 9월 하순에 당시에는 동대문 운동장을 중심으로 야구, 농구, 빙구, 럭비 그리고 축구 등 5개종목의 자웅을 가리는
스포츠 제전이다. 공식 명칭은 주최학교와
함께 매년 고연전 연고전으로 바뀌지만 고대는 고연전 연대는 연고전이라 부른다. 3월 개강을 하고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이면 신입생들에게 교가, 응원가와 교호등을 가르치고 응원 연습에 분위기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하고
9월 개강을 하면 학교는 온통 정기정을 위한 준비로 운동장이 떠들석하다. 편입생중의
한명인 나도 짬을 내서 신입생과 함께 어울려 응원연습에 참여해야만 했다.
드디어 D day가 왔다.
이른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동대문 야구장 약속 장소에 CCC 동아리들이 모였다.
당시의 고대 CCC 대표는 77학번의 박동한
형제(후에 내가 교회를 개척했을때 와이프를 대동하고 동역하였으며 집사안수도 받았고 지금은 목사님으로써 아이티에서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였다. 박동한 대표 형제의 리드에 따라
우리 동아리들은 그룹을 이루어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응원석의 한구석을 차지하였다.
삼군사관학교 체전이 질서 정연하고 구격적이고 각도있는 응원전이라고
하면 고연전은 무질서하고 자유분방한듯 하면서도 부드럽고 웅장함이 표출되는 그야말로 젊음을 마음껏 발산하는 응원전으로 대비될 수 있다.
천고마비의 계절. 청명한 하늘아래 태양은 동대문 야구장에만 비치는 듯했다.
목청껏 노래하고 춤을 추며 응원을 하는 중에 개회식이 시작된다. 양교의 학생 대표가
보무 당당하게 행진해서 운동장 한가운데 만나서 우정을 다짐하며 경기 시작의 악수를 교환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있다. 당시 학생대표가 우리 정외과 73학번 한창희 학형(전
민선 충주 시장 역임)이었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듯 하다.
야구 경기가 한창일 무렵 일부 학생들은 장충체육관 농구장과
신설동 아이스하키장으로 자리를 옮겨 응원전을 펼쳤으나 우리는 그냥 야구장에 남아 첫날의 경기를 마쳤다. 둘째
날은 축구장에서 럭비 경기에 이어 축구경기가 진행되었다. 스코어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종합성적은
5전 2승 3패로 아쉽게 패배한듯 하다.
축구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모교 응원석 앞에 도열하고 교가를 합창하고 폐회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당시 김상협 총장님의 훈시는 평생을 두고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우리가 오늘은 비록 패배했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습니다. 또 내일이 있고 또 그내일이 있습니다….”
폐회식을 마치고 우리 동아리는 대열을 갖추어 전 학생들과 함께
을지로를 달렸다. “고대 이겼다. 고대이겼다”를 외치며...
종로 길을 달려온 연대 CCC 형제들과 사전 약속된 명동에서 만났다.
같이 얼싸 안고 노래하고 상대의 교호를 제창해주며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영원한 맞수의 우정을 나누며…
78년의 고연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고연전의 유일한 추억이
될줄을 몰랐다. 79년 부마항쟁 그리고 10.26이 있을 줄을 어찌
알았으랴!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시 13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