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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적인 결실체
1971.09.01 (수), 한국 남산성지
[기 도]
사랑하는 아버님! 이 아침에 여기 모인 자녀들을 기억하시옵고, 전국에 널려 있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시옵소서.
오늘은 특히 8월을 보내고 새로이 9월을 맞는 첫 날이옵니다. 이 아침, 당신의 자비와 영광과 사랑이 늘 당신의 뜻과 더불어 염려하는 자녀들 위에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1971년 이해는 뜻을 중심삼고 중대한 해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해의 3분의 2를 보낸 지금까지의 8개월간 아버지께서는 어린 자녀들과 더불어 많은 일을 치러 나오셨습니다. 이제 남아진 이해의 3분의 1도 저희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라가는 노정에 있어서, 당신께서 저희들을 늘 가호로 같이하시면서 배가된 은사로써 인도하고 지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국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이 아침에 서울을 우러러보면서,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널려 있는 자녀들이 대한민국을 우러러보면서, 영계에 있는 수많은 영인들과 천천만 성도들은 이 땅을 우러러보면서 아버님의 사랑이 하늘로부터 세계로, 나라로, 저희 교회로, 저희 자체에게 머물기를 심히도 고대하고 있사오매, 저희 자신들이 아버님의 사랑을 받고, 저희 가정과 저희 나라와 이 세계가 아버님의 사랑권내에 처하지 않으면 저희들은 빚진 자가 되고 이 나라와 이 세계는 아버지의 뜻 앞에 설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먼저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서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권내에 서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수고의 노정을 바라보면서 끝까지 참고 거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기에, 지금까지 저희들은 당신의 수고의 노정을 따라가기 위해서 우리 교회 노정에 있어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면서 나왔사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 나오는 스스로의 모습들이 그때그때에 따라 아버님을 대하여 맹세했고, 아버님을 대하여 자각하였고, 아버님을 대하여 결심하였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상기할 때에 저희들은 전진해야 되겠고,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가일층 자진해서 책임질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되지 않고는 이 엄청난 복귀의 과업을 저희 일대에 있어서, 혹은 이 민족을 통하여 완수 할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시대의 섭리의 뜻을 대표해서 세운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 사람이로되 한 사람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대표하고, 시대를 대표하고, 더 나아가서는 미래와 영원을 대표한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사람이 책임을 못 한다면, 그것은 자기 일대의 책임 못 한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에 책임 못 한 오점이 남아진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비록 그 사람이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그 한 사람은 뭇 생명을 대신한 제물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아버님 앞에 분별된 생활을 해야 되겠사옵고, 아버님 앞에 언제나 바쳐지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이와 같이 모이게 되고 이와 같이 맺어진 인연을 통하여 아버님을 모시게 된 것은, 저희 자신들이 어떠한 공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선대(先代)로부터 선한 선조들이 이어 나온 선의 터전이 있었기 때문이옵니다. 그 터전 위에서 그 관계와 인연을 저희들을 통하여서 아버님과 더불어 일치화시키려 하시는 아버지의 뜻이 있기 때문이옵니다. 그러기에 비록 한 시대에 만난 것이로되 그는 역사적인 전체 시대를 대신한 것이요, 비록 부족한 한 사람이로되 그는 역사적 선조들을 대신한 것이기 때문에, 오늘날 저희 한 생명 자체가 아버님 앞에 부름받고 아버님 앞에 세움받은 바의 책임을 감당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문제는 자기 일대의 문제만이 아니요, 자기 일신의 문제만이 아니요, 자기 일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후 좌우 전체의 문제가 여기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항상 알고 있어야 되겠습니다.
더우기 원리를 알고 있는 저희들로서는 3시대의 인연을 거쳐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당신의 뜻과 당신의 소망과 당신의 심정을 중심삼아 가지고 언제나 당신의 보호와 은사권내에서 양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실히 아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이 자리를 그리워하면서도 여기에 참석하지 못한 자녀들에게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기필코 가고야 말겠습니다. 저희들은 기필코 행하고야 말겠사오니, 아버지여, 부족함을 부족다 마시옵소서. 부족한 자신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당신 앞에 부족한 것을 스스로 깨달으면서 어떠한 수난의 길도 감수할 수 있고, 어떠한 어려운 자리도 감수할 수 있고, 내 생명이 다하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게 되옵니다. 하늘은 부족한 자를 통하여서, 지혜롭고 통달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는 말씀과 더불어 일치될 수 있는 결과의 자리를 기필코 차지하고야 말 것을 저희들은 믿고 알고 나왔사오니, 아버님이여, 길이길이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늘 부족한 저희들을 가리어서 완전한 세계로 이끌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수고가 얼마나 큰가를 잘 알면서도 저희는 언제나 빚진 자리에 있사옵니다. 빚진 자리에 있기 때문에 저희가 스스로 높다 하는 자리에 설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갚아야 되겠사옵고, 빚을 갚지 못하게 되면 내 일신을 제물로 바쳐서라도 이것을 탕감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에게는 절대 하나님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들은 늘 알고 있사오니, 친히 지도하여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은 9월 초하루이오매, 이 한 달을 아버지 앞에 봉헌하옵니다. 이해의 남은 3분의 1을 당신이 맡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의 생활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저희의 생애도 당신의 뜻과 더불어 엮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오니, 나머지 금년의 3분의 1,이 기간도 당신의 거룩하신 뜻 가운데서 보호하여 주시옵고, 늘 승리의 일로를 개척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앞서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보고 싶고 당신을 사모하고, 당신과 만나서 영원히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흠모의 심정과 사모의 심정이 다하는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땅을 바라보며, 세계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지으며 감사하는 생활이 저희들의 생애노정에서 떠나지 말게 하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가 비록 세상에서 어렵게 살더라도 하늘이 저희들과 더불어 같이하는 그 자리는 외로운 자리가 아니요 불쌍한 자리가 아닌 것을 알았사오니, 친히 친히 지도하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늘 저희들이 가는 길을 아버지께서 보호하고 안내하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니다.
이 한 달을 아버지께서 맡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더우기 해외에 널려 있는 자녀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외국에서 온 식구들과 어린 자녀들이 지금 한 곳에 모여서 수련을 받고 있사오니 그곳에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일선에 나가 있는 어린 딸들과 지금 어려운 자리에 있는 한 아들도, 아버지, 친히 기억하시어서 당신이 모든 것을 맡으시옵소서 .
모든 권한은 당신 앞에 있사오니 친히 맡으시어서 기쁘신 뜻대로 인도하여 주시옵고 처리하여 주시옵기를 재삼 부탁하면서, 모든 말씀 참부모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말 씀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역사적인 사명을 짊어진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기도하게 될 때 '우리는 역사적인 결실체' 라는 기도를 합니다.
금년 1971년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년과 다른 해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행사를 많이 해 왔습니다. 교수초청 통일원리 세미나라든가 혹은 목사 원리공청회를 개최하고, 더우기 일본에 있는 식구들 중에서 오래된 식구들을, 될 수 있으면 오래된 식구들을 중심삼아 가지고 금년에 전면적인 수련을 계획하고 지금 진행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바쁜 날들을 거쳐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1971년은 역사적인 결실의 해
이와 같이 우리 뜻이 바쁜 반면에 우리 대한민국의 실정이라든가 국제정세는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볼 때, 더욱 긴박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역사의 흐름도 하나의 결실을 향해서 움직여 나가고 있는 것을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세가 복잡하다 하더라도 그 복잡한 정세를 통해서 하나의 어떠한 섭리적 결과를 맺을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섭리의 뜻을 대표한 우리 교회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걸어 나온 모든 길이 아무리 어렵고 아무리 곡절이 많았다하더라도 그 과정을 거쳐서 최후에는 뜻이 바라는 하나의 결실의 때, 혹은 그러한 자리를 향해서 나오고 있다고 보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1971년도는 어느 해보다도 하나의 결실을 할 수 있는 해로서 중요한 해인 것을 여러분도 역시 잘 아는 바입니다. 더우기 9월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결실의 달입니다. 결실이 잘 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결실이 잘 되기 위해서는 결실될 수 있는 터전이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터전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그 터전 위에 심는 씨 자체가 완전한 씨로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씨가 주인의 보호를 받고 자연의 환경적 요건을 잘 갖춘 자리에서 어느 기간을 거쳐 가지고야 비로소 결실하는 것입니다. 섭리의 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뜻이 시작되었으면 어떠한 어려움을 거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생활이나 역사적인 문화세계를 보더라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의 현대문명은 온 대권 문명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온대권 문명은 향기 나는 봄절기와 같은 문명이 아닙니다. 여름을 향해서 점점점 모든 것이 발전하는 문명권이 아니고 포화선에 이르렀다가 내려 가는, 가을절기와 같은 문명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개 고대 문명은 열대 문명권에 속해 있었지만, 지금 이 시대는 온대권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가을절기 문명과 같은 이런 시대가 되어 옴으로 말미암아 겨울절기와 마찬가지의 문명권인 소련 공산세계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 전체를 보더라도 지금 때는 가을절기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완전한 결실을 맺으려면
이런 때에 있어서 하나의 결실된 생명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시장철 어려운 고비를 넘어갈 수 있는 생명력이 있어야 됩니다. 여름에 아무리 비가 많이 내리고 장마가 진다 하더라도 그런 환경적 여건에서 자기 자체가 밀려나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것을 넘어야 됩니다. 가을절기가 되었더라도 결실할 때까지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이 있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내야 됩니다. 그것을 극복한 후에야 비로소 하나의 참다운 결실로서 거두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역사적인 섭리, 흑은 세상에서 되어지는 모든 문명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춘하추동을 중심삼고 하나의 결실을 갖추게 될 때, 그 결실은 겨울절기를 넘어설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만 그것이 새로운 봄절기를 맞아 가지고 새로운 씨로 출발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는 바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명권 사조도 여름절기로부터 가을절기, 겨울절기에 부딪치는, 서로서로 교차되는 때에 있어서 환경의 어려움에 밀려날 수 있는 문명의 내용을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것을 넘어서야 됩니다. 이것을 반드시 극복해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섭리사적인 문명권을 지녀 가지고서 겨울을 넘어가서 봄을 맞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 인류가 바라는 새로운 희망의 봄절기와 같은 문명권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9월은 모든 것이 결실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결실된 그 자체를 중심삼고 보면 그것이 지금까지 거쳐온 환경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주인을 만났다든가, 혹은 심어진 땅이 옥토였다든가, 혹은 그 씨가 완전했다든가 하는 그러한 사실이 과정에서보다도 반드시 가을에 가서 결실되 었을 때 그 열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무리 수난의 노정을 거쳐왔다 하더라도 어느 한때 결실할 수 있는 때를 향하여 나가는 것은 틀림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과연 여러분 자신들이 가을날을 맞이한 9월과 마찬가지로 신앙노정에 있어서, 하나의 완전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본연의 신앙 노정을 걸어가고 있느냐?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경적 여건도 잘 갖추고, 또 안팎의 모든 내용도 잘 갖추어 가지고 환경에 밀려가든가 혹은 안팎에 밀려나든가 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거기에서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자주력(自主力)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새로운 결실의 실체로 거두어질 수 있고, 미래의 희망의 씨로 남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이 9월과 더불어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을 다시 한 번 회고해 보면서, 결실의 한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여러분 자신들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되는 것입니다.
더우기 이 1971년도는 예년과 다른 해라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연초에 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 1971년도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기간은 역사적 전환시기를 향해서 넘어가는 때입니다. 더우기 요 8월은 포화선을 넘어가는 때가 아니냐? 지금부터 명년 4월, 5월까지, 더 나아가서 8월까지 한 고비가 되지 않겠느냐? 이런 것을 보게 될 때, 72년도까지를 우리가 뜻을 중심삼아 가지고 결정적인 하나의 해결을 봐야 할 시기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세계정세의 변수는 전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을이 되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지금까지 인연되었던 것이, 혹은 아무리 그 땅이 옥토라고 하더라도 그 땅과 격리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자란 나무라 하더라도 잎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또 그 진액의 공급도 중단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느 포화상태를 거쳐 가지고 그것이 그냥 그대로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간다 이거예요. 넘어갈 수 있는 절기를 맞게 될 때는 가을로 접어드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거예요.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뜻을 중심삼고 볼 때, 1971년도하고 1972년도는 전환점을 넘어가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70년도, 1971년도, 1972년도, 이 3년간은 우리 교회에 있어서는 축복받은 가정이 총동원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아녀자들이 선두에 서 있는 것을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완전한 결실체로 남아지자
복귀섭리를 보게 되면, 개인적으로 여자들이 먼저 개척해야 되고, 그 다음에는 교회를 대표한 가정의 여자들이 일선에 나가서 사탄과 싸워야 되고, 그 다음에는 민족을 대표한 여자들이 선두에 서 가지고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가정이면 가정도 한번 격리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이 갈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때가 가까와 오면, 그것이 합해 가지고 전체가 엉겨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분립된 형상을 거쳐 가지고 가을절기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의 정세를 보면, 아시아를 중심삼고 전세계의 정세가 맞부딪치고 있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소련과 중공과 북괴가 지금까지는 한 노선을 취해 나왔지만 중공이 저렇게 나옴으로 말미암아 북괴와 중공이 분립되는 것입니다. 또, 중공과 소련까지도 분립되는 것입니다. 또, 미국과 일본과 한국, 민주세계의 대표적인 국가를 섭리적으로 볼 때, 일본이 저렇게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미국과 분립되는 것입니다. 또, 미국이 저렇게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사이가 서로 뗄 수 없는 사이인 것 같지만 분립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립되어 가지고는 어떻게 될 것이냐? 전부가 이렇게 분립되는 정세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분립되는 때에 있어서, 여기에서 전체가 분립되는 환경이나 사정에 이끌려 넘어가지 않고 그 자체를 완전히 확보해 가지고 미래의 소망의 터전을 이어받을 수 있는 하나의 결실, 즉 섭리적인 어떤 국가면 국가, 단체면 단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 단체는 아무리 갈라지기 쉬운, 아무리 분립되기 쉬운 겨울이 오더라도 자기가 지니고 있는 생명 자체는 완전한 결실체로 남아 가지고 봄을 맞아 새로운 씨로 심어질 수 있는, 새로운 출발의 동기를 갖추어야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완전한 수확의 물건으로서 하늘 앞에 거두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서 볼 때, 우리 통일교회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분립되는것 같지만 우리는 내적인 입장에서 쇠퇴하고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공고화되고 다짐되어서 생명력을 집합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동기로서 흡수할 수 있는 이런 입장에 서게 되면, 반드시 봄을 맞을 수 있는 참다운 씨와 같이 되지 않느냐, 이렇게 보는 거예요.
여러분은 이 가을을 맞아 섭리노정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반성하면서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있어서는 1970년도부터 1971년, 1972년도까지, 이 3년기간을 중심삼아 가지고 넘어간다 이거예요. 넘어갈 때는 정상을 두고 보면 요 3점이 연결되는 이러한 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요 1971년은 가장 중요한 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도 교회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기에는 여러가지 국가적인 문제라든가, 대 사회 문제라든가, 혹은 대 정세 문제와 결부될 수 있는 인연이 우리의 목전에 다가온 것을 보게 될 때, 그야말로 지금 국가 민족과 우리 교회가 새로운 결실을 다짐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을 우리가 엿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환경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 교회가 그런 자리에 서면 설수록, 혹은 세계가 그런 자리에 서면 설수록 여러분 자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체가 가을절기를 맞은 생명의 실체를 갖추어야 환경에 아무리 격리가 벌어지고, 환경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그 어려운 모든 것이 나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의 결실을 마감할 수있는 동기가 되고 환경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여러분이 알고, 가을절기와 더불어 뜻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를 바라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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