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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4:1 그 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갈릴리 지역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는 매우 교활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 허세 부리며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쉽게 빼앗고, 또 자기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자기 동생의 아내를 빼앗는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그에 대하여 여우라고 말씀하셨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의 관심은 사람들을 관리하는 데 있었다. 정치가들은 민심을 먹고 사는 동물들이다. 민심을 움직이는 것이 언론이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언론을 두려워한다. 노무현 씨는 언론이 이 나라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마]14:2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
헤롯은 미신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억울하게 죽은 선지자의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어떤 사람에게 들어가서 활동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이 세상 사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관심이 별로 없다. 그저 어렴풋이 한 귀로 종교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아는체 할 뿐이다.
[마]14:3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헤로디아는 헤롯의 조카이자 헤롯의 동생의 아내였다. 헤롯 안티파스는 동생이 살아 있음에도 그녀를 자기 아내로 삼아버렸다.
세례자 요한이 갇힌 곳은 사해 동편 마케루스 요새이다. 지금도 성지 순례를 가면 그곳에 갈 수 있다고 한다.
[마]14:4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마]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
정치가들은 인기를 먹고 산다. 정적을 죽이고 싶어도 국민의 심판이 두렵다.
요한. 당대 최고의 선지자. 그가 죽은 이후로도 한 동안 그를 추종하는 교회가 지속되었다. 민란이 자주 발생하는 유대. 대다수의 유대인이 존경하는 사람이라서 왕이 마음대로 죽일 수 없었다.
[마]14:6 마침 헤롯의 생일이 되어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원래 살아 있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그리스나 이집트에서 왕이나 귀족의 생일 파티가 생겨났고, 성인 남자에 국한되었다. 어린 아이의 생일파티는 존재하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생일파티를 열지 않았다. 이 세상은 고통스러운 곳이고 사람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기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점차 생일파티가 보편화 되어 온 것이다.
헤로디아의 딸은 의붓딸이었다. 아내 헤로디아가 데리고 온 딸이었는데, 요세프스는 그녀의 이름을 살로메라고 말했다. 두 모녀는 다 악한 여자였다.
헤롯 왕가의 가계도는 난잡하기 이를 데 없다. 삼촌이 조카하고 결혼하고, 동생의 아내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고, 아내를 죽이고 장모도 죽이고 아들도 죽이는 일이 반복되었다. 권력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현대 예술, 미술과 음악에서 살로메가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이야기는 대단히 빈번히 소재로 활용되었다. 그녀가 춘 춤을 일곱 베일의 춤이라고 말하는 작가들이 있다. 아시리아나 바벨론에서 시작된 그 춤은 다산의 여신 이휴타르가 지옥에 있는 언니를 만나기 위해서 내려가는 길에 문지기로부터 일곱 문을 지나려면 문을 지날 때마다 옷을 하 개 씩 벗어야 된다고 해서 계속 벗다보니 언니를 만났을 때는 나체가 되어 있었다. 다시 지상으로 돌아올 때는 한 개 씩 다시 입는다는 이야기인데, 12세로 추정되는 한창의 여자 아이가 나체를 드러내고 춤을 춘다는 것은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마]14:7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고 약속하거늘
그런 정신적인 패닉 상태에서 헤롯은 후회할 약속을 했다. 약속이라는 것은 좋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 필요한 약속을 지키는 것은 좋은 것이고 꼭 지키는 것이 좋지만, 후회할 약속을 하고 억지로 지키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헤롯은 후회할 약속을 하고 자기의 위신을 위해서 허세를 부리며 당대 최고의 선지자 요한을 죽였다.
예수님도 결국 헤롯 안티파스와 빌라도의 모의에 의하여 죽임을 당했다.
[마]14: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나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라고 한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 후보자의 아내 김건희 씨가 모 기자와 통화한 내역이 방송된다고 한다. 그 내용 안에는 일반 국민은 바보라는 내용과 함께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라는 내용도 들어 가 있다고 한다. 남자들의 세상 같지만 남자들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마]14:9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
[마]14:10 사람을 보내어 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마]14:11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서 그 소녀에게 주니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가져가니라
일설에 의하며 헤로디아는 소반에 얹은 세례자 요한의 혀를 바늘로 콕콕 찌르면서 분풀이를 했다고 한다. 살로메는 얼음판 위를 걷다가 얼음이 깨져서 날카로운 얼음 조각에 목이 잘려 죽었다고 한다.
[마]14:12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아뢰니라
[마]14: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예수님은 자신이 정치가들의 표적이 된 것을 아셨다. 이 구절은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다고 표현되어 있는 1절과 이어져야 한다. 이때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약 1년 전의 일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이 병을 고쳐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셨었다. 소문이 나면 정치가들의 표적이 되어 이 땅에서 해야 하는 사역을 다 하지 못하시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열심히 예수님을 위험하게 했다.
[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갈릴리 지역에 어떻게 그렇게 큰 무리가 예수님께 올 수 있었는가? 일단 세례 요한이 죽고 나서 마음의 정처를 잃어버린 군중들이었기 때문에 요한을 향한 마음을 예수님께 돌이킨 것으로 보이고, 유월절이 가까웠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러 성전으로 가는 무리들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몰려 올 수 있었던 것이다. 19절에 잔디 위에 앉게 하셨다는 말이 나오는데, 잔디는 유월절 직전에만 돋아난다. 계절적 시기는 2, 3월 정도였다는 것이다. 유월절은 4월이었다.
[마]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현실적이고 무책임한 제자들, 긍휼이 없는 제자들이었다.
[마]14: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도시락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할 정도로 자기를 잘 추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방인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비슷한 기적을 행하신 부분을 보면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마]15:32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종교이고 신앙이고 믿음이고 진리이고 은혜이고 하나님의 말씀이고 구원이다. 이것을 유교에서는 측은지심이라고 한다. 맹자는 측은지심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말했다.
[마]14: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
[마]14: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마]14: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떡을 불리는 기도가 아니다. 다만 평소대로 간단히 식사기도를 하신 것이다. 우리도 밥먹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하는 기도가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찬양합시다. 그분의 것으로 우리가 먹고 그분의 것으로 우리가 삽니다.”
[마]14: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마]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유대인은 남자만 숫자를 센다. 여자와 어린이까지 합치면 오천 명 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군중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거기에 모인 갈릴리 지역의 군중들은 열심당의 성향이 있었다. 민족주의가 강했고, 유대인들이 독립해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는 유대인을 독립시켜 줄 정치적 메시야였다. 요한복음 6:15은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고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마]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예수님은 자신의 정치가들의 표적이 되었고 군중들의 오해로 더욱 위험하게 된 것을 아시고 그 집회를 서둘러 폐하셨다. 재촉이라는 말이 그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람들로부터 분리시키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로부터도 분리시키셨다. 유대인 군중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오병이어으이 기적을 일으키셨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더 위험해졌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은 기도가 필요하셨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동안 항상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셨다.
[마]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
다른 성경에는 십 여리라고 되어 있다. 5, 6km 정도면 갈릴리 호수 한 가운데서 풍랑을 만난 것이다. 갈릴리 호수는 평소에는 바람이 없다. 그러나 산 위에서 한 번 바람이 내려오면 큰 파도가 일어나는 위험한 호수이다.
[마]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유대인들은 밤의 시간을 네 개로 쪼개었다. 일경, 이경, 삼경, 사경. 저녁 6시부터 9시가지는 일경, 아홉시부터 자정까지는 이경, 자정부터 새벽 3시까지는 삼경, 새벽 3시부터 6시까지는 사경이다. 제자들은 아침이 다 되도록 배가 깨질 듯한 위험 속에서 밤새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 유령이 배 옆을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다른 성경에 보니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서 지나가고 계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마]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마]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예수님은 그들에게 'I am' 이라고 하셨다. ‘나는 나다’이다. 이것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의 여호와와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호수 위를 걸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나이기 때문에 호수 위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33절에 보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과 같다라는 뜻이다.
[마]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깨질 듯한 배 위가 안전지대인가, 아니면 예수님이 계신 곳이 물 위라도 거기가 안전지대인가? 안전지대란 안전한 곳이라는 뜻이다. 도로 위에도 안전지대가 있다. 어떤 긴박한 일이 생기거든 안전지대로 대피하라고 만들어 놓은 곳이다. 이 세상의 안전지대는 어디인가?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돈이 안전지대인가? 아니면 풍랑이 일고 있는 물 위처럼 위험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 안전지대인가?
[마]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예수님이 오라는 말씀을 하셔야 예수님께로 갈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말하고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하면서 바다위로 뛰어 내렸다가 망하고 만다. 먼저 예수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보다 앞서 가려고 하다가 망하는 것이다.
[마]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마]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예수님이 큰 믿음이라고 말씀해 주신 사람이 두 명 나온다. 수로보니게 이방인 여인과 이방인 로마 군대 백부장이었다. 베드로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그 믿음의 뿌리는 깊지 못했다. 그래서 큰 믿음과 비교되어 믿음이 작은 자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마]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마]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14:34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마]14:35 그 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마]14:36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
예수님의 복장은 유대인의 복장이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단번에 유대인으로 알아본 이유가 거기에 있다. 유대인들은 양미간에 성경 구절을 담은 상자를 달고 손목에도 그것을 달고, 겉옷 자락에 네 개의 술을 달았다. 율법에 그것이 규정되어 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는 표시를 하고 다녀야 한다. 예수님의 뒤에서 옷자락을 만진 여자는 예수님의 겉옷 자락에 있는 옷 술을 만진 것이다. 유대인들이 신념 속에는 경건한 사람의 옷 술을 만지면 그 경건히 만진 사람에게 옮겨간다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옷자락 즉 옷 술에 손을 대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옷 술에 손을 댄 사람들은 병이 다 나았다는 것도 신비한 일이다. 유대인 남자의 옷 술을 만진다는 것은 대단히 큰일이었고, 옷 술 중 하나만 떨어져도 옷 술 네 개를 다 갈아야 할 만큼 옷 술은 유대인 남자들의 자존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