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은 그 모든 죄악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
나로 어리석은 자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시편 39:8]
시편 39편은 '용서를 비는 기도'라는 제목이 붙었다.
표제에 나오는 여두둔은 다윗이 임명한 사람으로 성막 예배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사람이다.
시인은 악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입에 재갈을 물리고 침묵한다.
하지만, 악한 자들은 승승장구하고, 자신의 삶은 점점 쪼그라드는 것만 같다. 그래서 몸도 약해지고, 울홧병 같은 것이 생겨 마음에서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악한 자들과 논쟁을 해보았자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악한 자들을 눌러버릴 수 있으면 그냥 눌러버리면 좋겠는데 악한 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오직 그것만이 그들의 살 길이기에 파렴치한 행동도 기꺼이 열심히 한다. 열심히 악을 행하는 자를 선한 사람들이 막을 수 없는 것 같은 현실을 목도한다. 그런 자들과 논쟁을 할수록 오히려 그들의 존재성만 드러난다. 말도 안되는 비상식과 불의 앞에서 차라리 침묵해 버린다. 그러니 마음에 분노가 일고 울홧병이 도진다.
여기에서 멈추면 걸림돌에 넘어지고, 불의한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현실을 보면서 냉소주의에 빠져들 수 있다.
아마도 다윗이 기도하는 시점은 이 지점일 것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해 고독하고, 거짓된 현실로 인해 분개하는 마음이 폭발하려는 그 순간, 그 걸림돌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자 그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인생의 덧 없음과 자신의 죄가 보인다. 그리고 자기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것이 보인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마음의 눈을 뜬 것이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전에는 홧병에 걸려 걱정 근심이 깊어만 갔는데(2), 기도한 후에는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게다가, 악한 자들이 지금 승승장구하는 것 같지만, 모두가 다 허무한 것임도 알게 된다.
지금도 여전히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따라 사는 자들을 조롱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허무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믿고, 분노와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고 본향을 바라보고 나아가자. 우리는 모두 주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손과 나그네다. 그들은 본향을 향하여 간다.
시편 39편의 기도를 나의 기도로 드린 적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기도를 드린다. 거기에 더해 그들의 몰락을 위해 기도한다.악한 자들의 몰락, 궂이 내가 돌을 들어 그들을 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실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치기 위하여 돌을 들라고 하면 나는 기꺼이 돌을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