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10장 가정은 행복의 터전이다
문선명은 평생에 걸쳐 순결과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혼은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며, 사랑을 하는 길, 생명을 창조하는 길, 남자와 여자의 생명이 일체가 되는 길이 바로 결혼이라고 가르쳤다. 결혼을 통해 역사가 생겨나고, 나라가 생겨나고, 이상 세계가 시작된다. 결혼과 가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완성되어야 하는지를 합동 축복결혼식의 역사와 의미를 통해 살펴본다.
1. 길고 긴 합동결혼식의 역사
통일교에서 결혼과 가정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제1의 덕목이며, 삶 전반에 걸쳐 순결을 강조한다. 통일교의 정식 명칭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보듯 가정은 문선명이 평생에 걸쳐 강조했던 인간의 근본 도덕이다. 문선명은 2005년 9월에 한국을 출발해 넉 달 동안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순회강연을 펼쳤다. 그때 '하나님의 이상가정과 평화 이상세계 왕국'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이상가정을 이루어 순수하고 참된 씨를 받는 최선의 길은 축복결혼입니다. 인종, 문화, 국경,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하나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을 만드는 대역사입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피부색이 없으며 종교와 문화의 벽도 보이지 않습니다. 원수 집안과 결혼을 통해 한 가족이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양가의 자식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을 저주할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백인과 흑인이, 동양과 서양이, 유대교와 이슬람이, 더 나아가 오색인종이 한 가족이 되어 살 수 있는 길이 축복결혼 외에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부모와 자식은 사랑과 존경으로, 부부는 믿음과 사랑을 바탕으로, 형제자매는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곳이 바로 이상가정입니다."
또한 1994년 5월, 통일교회 창립 40주년을 맞이하면서 세계평화가정연합(Family Federation for World Peace:FFWP)을 선포했다. 이때 신도들이 암송하는 신앙고백인 '나의 맹세'를 '가정맹세'로 바꿨다. 통일교 축복가정들은 늘 '가정맹세'를 암송한 뒤 하루를 출발한다. 가정맹세가 가르쳐주는 교훈은 천주주의이다. 개인주의가 아니다. 그러기에 통일교에서는 가정의 소중함을 늘 강조한다.
통일교 축복결혼식의 역사는 2015년을 기준으로 55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 4월 11일 오전 10시 용산구 청파동 1가 71의 3, 전 본부교회에서 700여 명의 통일교 신도들이 참석한 가운데 문선명과 한학자 여사가 성혼식을 올림으로써 시작되었다. 성혼식은 제1차 의식인 '탕감복귀 부모의 식'과 제2차 의식인 '영광의 부모의 식'으로 나뉘어 거행되었다. 이후 세 가정 성혼식을 출발로 2015년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한국과 세계 여러 곳에서 축복식이 열렸다. 세상에서는 통칭 '합동결혼식'이라 한다.
세 가정 성혼식은 1960년 4월 16일 오전 10시, 청파동 교회에서 문선명/한학자의 주례와 인도로 김원필/정달옥, 유효원/사길자, 김영휘/정대화가 축복 결혼식을 했다. 36가정 성혼식은 1961년 5월 15일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약 13시간 동안 청파동 교회에서 7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는 전년도에 축복받은 세 가정과 합하여 36가정이라 일컬어지다. 72가정 성혼식은 1962년 6월 4일 11시간에 걸쳐 청파동 교회에서 열렸다. 72쌍은 36쌍의 배수로서 종족 범위를 탕감하는 의미를 갖는 축복으로 36가정에 대한 자녀격 위치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합동결혼위원회가 결성되어 축복식의 모든 것을 준비하고 진행하였으며, 합동결혼식에 대한 취지서가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124가정 성혼식은 1963년 7월 24일 오전 10시 20분~12시 30분까지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3,500명의 축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성혼식에는 정부 관계자들이 축하화환을 보냈고 축복식 후 신랑신부들은 각각 1쌍씩 150대의 '새나라' 자동차에 분승하고 서울 시내를 누비는 카퍼레이드를 했으며 저녁에는 공개적인 축하의 밤 행사도 처음으로 가졌다.
430가정 성혼식은 1968년 2월 22일 서울시민회관에서 3,000여 명의 하객이 참석해 열렸으며 일본 통일교회 협회장이 외국 가정으로는 처음으로 참여하여 축복을 받았다. 각계각층에서 축전과 화환이 쇄도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합동결혼식이 되었다. 25대의 관광버스와 수십 대의 자동차로 서울 시내 커퍼레이드를 벌였다. 777가정 국제합동결혼식은 1970년 10월 21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장충체육관에서 1만5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축복을 받은 실제 가정의 수는 한국 539쌍, 일본 235쌍, 구미 16쌍으로 도합 790쌍이지만 통상적으로 777가정이라 불린다. 최초로 거행된 국제합동결혼식으로 세계로 영역을 넓혀나간 축복이었다. 축복식 후에 열린 카퍼레이드는 앞뒤에서 해군 군악대가 연주를 했고 버스 42대를 포함한 50대의 자동차가 참가하여 카퍼레이드를 벌였다. 저녁에는 1만 5천여 명이 모여 장충체육관에서 다채로운 축하 행사가 열렸다.
1,800가정 국제합동결혼식은 1975년 2월 8일 장충체육관에서 1만 3천여 명이 참석하여 열렸다. 본격적으로 국제적 축복의 역사가 시작 되었는데 한국 892쌍 (재일교포 18쌍 포함), 일본 811쌍, 구미 111쌍, 자유중국 2쌍이 축복을 받았는데 국제적으로 맺어진 신랑신부는 한국/일본이 18쌍, 한국/미국 7쌍, 한국/오스트리아 1쌍, 구미가 49쌍이다. 참가국은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호주, 아일랜드, 트리니다드 20개국이었다.
6,000(실제는 5, 837)쌍 국제합동결혼식은 1982년 10월 14일 서울 잠실종합실내체육관에서 85개국이 참가했고 하객은 15,000여 명이었다. 이는 그때까지 통일교 축복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6,500가정 국제합동결혼식은 1988년 용인의 일화연수원에서 17개국에서 온 6,516쌍의 신랑신부와 30쌍의 들러리 그리고 소수의 축복 선배가정 대표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한국과 일본의 국제결혼이 그 주류를 이루었는데 한국신랑/일본신부가 1, 435쌍, 한국신부/일본 신랑이 973쌍, 일본신랑/일본신부가 3,660쌍, 한국신랑/한국신부가 10쌍이었으며 미국, 호주, 독일, 프랑스, 아르헨티나, 가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대만, 홍콩, 스리랑카 등 15개국에서 100여쌍이 참석했다.
3만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은 1992년 8월 25일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에서 6만여 명의 하객들이 모여 열렸다. 이 축복식은 제1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일환으로 축복의 세계화를 여는 첫 번째 축복행사였다. 내한하지 못한 6개국은 MBC 미디어텍의 협조로 세계 최초 위성중계 결혼식을 올렸다.
36만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은 1995년 8월 25일 인공위성을 통한 직/간접 동시 중계를 통해 서울 올림픽경기장을 비롯한 전 세계 160개국 553곳에서 열렸다. 제2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일환으로 진행된 축복행사는 축복의 세계화 시대를 여는 두 번째 축복이었으며, 8월 23일에는 영인축복식도 열렸다. 4천만쌍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은 1997년 11월 29일 미국 워싱턴 DC의 RFK스타디움에서 전 세계를 인공위성으로 연결하는 가운데 360만쌍과 3,600만 쌍을 합한 3,960만 쌍이 참여해 거행되었다. 제3회 세계문화체육대전의 일환으로 'BLESSING97'의 이름으로 열렸으며 32억 명의 영인 축복도 함께 있었다. 이 축복식에서는 처음으로 힌두교회를 시작으로 러시아정교회, 불교, 네이션오브이슬람(NOI), 시크교, 로마카톨릭 등 세계 6대 종교 대표자들이 각자의 종교의식으로 축하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3억 6천만 쌍 제1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은 1998년 6월 13일 뉴욕 메디슨퀘어가든에서 열렸다. 195개국에 인공위성을 통해 중계된 축복결혼식은 1억 2천만 쌍이 직/간접적으로 참석한 가운데 'BLESSING98'의 이름으로 개최되었다. 제2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은 1999년 2월 7일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193개국에 직/간접적 위성과 인터넷 중계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축복식 전에는 지금까지 영인 축복을 받았던 240억 명 중에서 200억 명이 자신들의 상대를 데려와 부부로 축복을 받았고, 160억 명의 영인이 새롭게 영인 축복을 받았다.
4억 쌍 제1차 국제합동축복결혼식은 2000년 2월13일 서울 올림픽경기장에서 193개국에 직/간접 위성중계를 통하여 열렸다. 제2차는 2001년 1월 27일, 미국 뉴욕의 UN본부에서 세계 135개국 210쌍과 전 세계 193개국에서 수천쌍이 성혼식을 맺었다. 제3차는 2002년 2월 16일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미국, 이란 등 186개국 주요 도시에 인공위성과 인터넷을 통해 중계된 가운데 거행되었다. 제4차는 2003년 7월 13일에, 5차는 2004년 7월 26일에, 6차는 2005년 8월 1일에 열렸다.
이어 세계평화국제합동교차축복식이 2005년 12월 29일에, 평화세계 실현을 위한 태평성대 평화 교차ㅡ교체 축복결혼식(1차)이 2007년 2월 22일에, 2차는 7월 5일에 열렸고, 태평성대 신문명 평화축복 결혼식(1차)은 2008년 7월 6일에, 2차는 10월 12일에 열렸으며, 참부모님 구순기념 2009 태평성대 신문명 평화축복결혼식은 1월 31일에, 참부모님 천주축복식은 10월 14일에, 천지인참부모 정착완료 축복식은 10월 14일에, 천지인참부모 승리해방완성개문시대 축복식은 2012년 3월 24일에, 천지인 참부모 천주축복식은 2013년 2월 17일과 2014년 2월 12일에 열렸다.
이토록 55년에 걸쳐 많은 합동결혼식을 올린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통일교 신도들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왜 합동으로 모여 '축복식'을 받을까? 그 이유를 각 축복식을 통해 살펴보자.
첫댓글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