積土成山(적토성산)
‘흙을 쌓아 산을 이룬다‘라는 뜻의 이 말은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編)에 나오는 말로
‘흙이 쌓여 산이 되면 저절로 그곳에서 풍우가 일어난다
(積土成山 風雨與焉/적토성산 풍우여언).
선을 쌓아 덕을 이루면 통찰력이 생기고 성스러운 마음도 갖추어진다’
라는 구절에서 유래한다.
또한 ‘이슬이 모여 바다를 이룬다’는 뜻의 노적성해(露積成海),
우리 말의 ‘티끌모아 태산’,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만든다는 적소성대(積小成大),
가벼운 새털도 가득 모으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다는 뜻의 적우침주(積羽沈舟),
모래를 모아 탑을 쌓는다는 취사성탑(聚沙成塔)
등의 말도 모두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다.
중국 북송(北宋)때 장괴애(張乖崖)라는 사람이 한 말이라고 전해지는
‘먹줄로 톱질을 해도 나무가 잘리고 물방울이 계속 떨어지면 바위도 뚫는다’는 뜻의
승거목단 수적천석(繩鋸木斷 水滴穿石)과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마부위침(磨斧爲針),
‘어리석은 노인이 삼태기로 흙을 담아 산을 옮긴다’는 뜻의 우공이산(愚公移山)
이라는 말들은 작은 노력이라도 꾸준히 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적토성산처럼 작은 것들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는 뜻과는 비슷하면서도
그 취지에 차이가 있다.
모든 사물들은 자연이든 인공이든 무수히 많은 아주 작은 소자(素子)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의 몸은 약 30조 개에 달하는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자동차나 비행기, 휴대전화기, 컴퓨터 등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부품이 들어있으며 이 작은 소자들이 정해진 역할을 충실히 해야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사람 역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소자로 구성된 복잡한 사물일수록
겉모습은 오히려 단순해 보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또한 한 사람의 의견이나 힘은 보잘것 없는 것 같지만 같은 뜻을 갖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큰 힘을 낼 수 있게 되어 사회나 국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적토성산과 궁극적으로 같은 원리이다.
최근 개발된 3차원 인쇄(3D- Printing)라는 첨단 기술은 아주 작은 양의 물질을 1밀리보다
작은 미세한 노즐로 분사하여 미리 설계된 구조대로 한층 한층 쌓음으로써(積層/적층)
아무리 복잡한 구조의 물체라도 크기에 관계없이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이다.
컴퓨터와 3D-프린터만 있으면 설계도면을 온라인으로 전송하여 세계
어느 곳에서 곧바로 만들 수 있으므로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생산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이 기술의 원리도 작은 것을 쌓아 큰 것을 만드는 적토성산에 해당하며
인류 최초의 인간 아담이 아주 작은 티끌 또는 먼지로 만들어졌다고
전하는 성경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이 기술은 의공학(醫工學)분야에서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한 예로,
유방암으로 고생하는 여성들이 유방 절제 수술을 받고 3D 인쇄기술을 이용하여
유두(乳頭)의 형태가 다시 자라날 수 있도록 생분해성 고분자 물질로 만든
비계(scaffold, 거푸집)를 시술받으면 이 주위에 세포가 자라고 그 형태를
자연스럽게 복원할 수 있게 된다
유방암 환자의 유두 복원을 위해 피부에 시술되는3-D 프린팅 기술로 구현된
피부조직 비계(scaffold) (메릴랜드대학 John Fisher 교수 연구실 제공)
적토성산이라는 말을 한 순자도
이 말이 첨단 기술의 원리로 이렇게 응용됨을 알면 무척 기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