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김재산(金在珊) - 민족의 제물이 되어
2.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1 세월이 흘러 20살이 되었다. 시집을 안 가겠다는 나에게 혼담이 오고 갔다. 상대는 한마을에 사는 면장, 군수까지 지낸 임병식 씨의 아들이었다. 나는 한사코 아무하고도 결혼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신랑 될 사람이 자살 소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2 얼마 후 상대가 집까지 와서 결혼 후에 평생소원대로 공부만 하게 하고, 부모 곁에서 효도하게 할 테니까 결혼 승낙만 하라는 것이었다. 서약서를 쓰고 도장까지 찍었다. 그 사람은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미남이었다. 부모들의 권유와 신랑 될 사람의 적극적인 자세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3 결혼 후 몇 달이 지나서야 나는 시댁으로 갔다. 집 안에 밥하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고작 아침저녁 문안이나 드리고 준비된 식사를 부모 앞에 들여놓는 것이 전부였다.
4 시댁은 신봉하는 종교가 없었고 신주단지나 터주항아리를 모시는 집안이었다. 그리고 그 집에는 도깨비 얘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한번은 부엌에서 불을 지피는데 담 밖의 고목나무 아래 하얀 물체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5 나는 이웃집의 흰 개가 앉아 있는 줄로 알고 있는데, 하루는 그것이 앉았다 일어섰다 하는 것이었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부지깽이를 던지고 모래와 구정물을 끼얹었다. 밤이면 불을 켜들고 장독대랑 고목나무 밑으로 뒤쫓아 가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너무나 이상스러운 현상이었다.
6 어느 날 밤이었다. 벼락치는 소리와 함께 ‘핑’ 하는 소리가 들려서 장독대로 올라가 보니 짚더미로 씌워놓은 터주항아리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걸 발로 걷어차 둘러엎고는 시어머니에게 장독대에 올라가 보시라고 했다.
7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전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지만 시어머니께서는 무서워하며 내려가자고 했다. 나는 그 길로 내 방으로 와서 문을 잠근 뒤 밥도 먹지 않고 밖에도 나오지 않았다. 친청 어머니, 할머니, 시어머니가 와서 문을 열기를 요구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8 나는 문을 열면서 집 안에 만들어 놓은 도깨비 집이며, 조상신주패, 다락에 있는 왕신단지 등을 없애라고 했다. 그러한 것들을 집안에 두고서 나는 살 수가 없으니 나를 친정으로 보내주든지 그런 것들을 때려 부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할 것을 말씀드려 달라고 했다. 시어머니께서는 결국 내 마음대로 하기로 허락하였지만 온 식구가 한동안 집을 나가버렸다.
9 나는 몸빼 바지를 입고 다락에 올라가서 왕신단지와 조상신주패 등을 부엌 아궁이에다 넣고 불을 태우고 구정물로 덮어씌우고, 도깨비집을 뜯어다가 쇠죽 끓이는 나무로 사용했다.
10 그렇게 야단을 벌이고 난 얼마 후 시부모님이 돌아오셨고 나는 서울에서 공부하는 신랑이 오라고 해서 상경하게 되었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아ㅡㅡ주ㅡㅡㅡ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