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선(禪) 시리즈 5부작 ①
선(禪)이란 무엇인가?
권 현 수
“참선이 뭡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부제가 붙은 책 “만행”으로 유명한 현각玄覺스님(미국명 Paul Muenzen) 밑에서 참선한답시고 화계사 국제선원을 드나드는 필자를 아는 지인의 질문이다. 그 물음에는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움직이지도 않고 오랜 시간을 앉아 있는 이유를 궁금해하는 솔직함도 있고, 동안거 하안거 석달을 그 자세로 앉아 있는 수행승에 대한 동경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시대 우리 눈으로 확인한 성자이신 성철스님이 8년을 장좌불와, 즉 눕지 않고 그 자세로 앉아 ‘참선’ 하였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필자가 수행하는 스님이나 법을 설하는 법사가 아닌 것을 잘 아는 분이니 당연히 큰 의미는 없다 하겠지만 호기심 넘치는 진솔한 그 물음에 끌려 나도 진심을 다해 답해 주려고 노력하곤 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온 정신이 온통 밖으로 밖으로 쏠릴 수밖에 없는 이 불안한 세계에서 한순간만이라도 안으로 눈을 돌려 ‘나’ 라는 이 흔들리는 존재, 나아가 삶과 죽음 그리고 궁극적인 진리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이 그저 대견하고 고마워서일 것이다.
“수박이라는 과일을 그것을 모르는, 본 적도 없고 먹어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알려 주어야 할 때를 생각해보자”
수박의 참 모습을 알려주기 위해 혹자는 말로 손짓발짓하며 둥글고 초록색 줄무늬가 있으며. ... 등등 할 것이고, 혹자는 그림을 그리거나 보여주면서 한여름 밭에서 자라 더위를 식혀주는 최고의 먹거리가 되는 그것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아무리 그런다고 해도 수박이 무엇인지 정말로 알게 될까? 잘 익어서 달콤한 즙이 뚝뚝 떨어지는 수박 한 쪽의 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을까?
그 때 눈 밝은 스승이 있어 한 통의 수박을 들고 와 “자 여기 수박이 있다”라고 한다면, 칼로 툭 잘라 제자의 입속으로 넣어 주었다고 한다면 어떨까. 그저 먹어보라고. 얼마나 향기롭고 달콤하고 시원한 맛이 나는지 직접 맛보라고 말이다.
그것이 선이다.
잘 익은 수박을 한 조각 입에 넣고 맛보는 것. 수많은 말, 말들이 필요 없다. 그 많은 말들이 팔만대장경이고 한 입 맛보는 그 과정이 선이다.
그래서 불립문자(不立文字)이고 교외별전(敎外別傳)이고 직지인심(直旨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인류의 참스승인 붓다마저 말을 끊고 한 송이 꽃을 들어 보이지 않았는가?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 하나는 수박이라는 맛있는 먹거리를 알고 싶고 먹어보고 싶은 사람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두에 필자에게 질문을 하던 그 호기심 많은 지인처럼 호모 사피엔스의 후예로서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저 하루하루의 삶이 전부인 양 묵묵히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도 어느 한순간 나라는 낯선 ‘행인’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지 내가/ 이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게 하려고 왔는지//왜 나는 원치도 않으면서 움직이고/왜 나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지?.....”(질문의 책 The Book of Questions)라면서 그러한 평범한 질문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출판하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시인들이야말로 수행자인지도 모른다. 비록 그 지향하는 바는 많이 다르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만해스님도 말씀하셨다.
“선은 누구든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요, 따라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필요한 일이다. 선은 신앙도 아니요, 학문적 연구도 아니며, 고원한 명상도 아니고, 침적한 회심도 아니다. 선은 전 인격의 범주가 되는 동시에 최고의 취미요, 지상의 예술이다. 선은 마음을 닦는 정신수양의 대명사이다.”(<불교> 92호 1932. 2.)
현대선시의 효시라고 일컬어지는 [님의 침묵]의 시인이자 행동하는 선사이신 만해 한용운 스님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누구든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선은 붓다 이전에도 있었고 이후에도 있었다. 그 가르침의 발자취를 따라 면면히 이어오면서 오늘날 현대 문명의 중심지라는 뉴욕의 맨하턴 시끄러운 상가의 한구석에도 숨쉬고 있는것이다. 금으로 보석으로 장식되어 사원의 중앙에 정중하게 모셔진 붓다의 상을 생각해 보라. 전 세계 어느 불교 사원에 가도 만날 수 있는 붓다를 형상화 한 그 모습, 두 눈을 지긋이 내려 뜨고 가부좌로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지극한 그 모습이 바로 선禪 하는 자세이다.
선禪은 서구에서는 일반적으로 명상(meditation)이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캐톨릭 신자들의 묵상도 명상이라고 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지난 2003년 ‘명상meditation’이란 제목의 커버스토리에서 “1천만 명의 미국인이 명상을 즐기고 있으며, 이것은 10년 사이에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런 추세는 2000년대 후반에도 계속돼 현재 미국의 명상 인구는 약 15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보았다. 200년도 사반세기가 지나간 지금은 더욱 일반화되었다.
필자가 미국에 머물고 있던 1999년 8월 뉴욕의 중심지 센트럴 파크에서 있었던 티벳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의 강연에 4만 여명의 청중이 모여들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불교에 대한 서구인들의 호기심을 넘는 이러한 진지한 관심은 이제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한국의 KBS TV 다큐멘터리 ‘만행’에 출연하여 많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모았던 현각스님의 예를 보더라도 예일과 하버드에서 세계의 많은 종교와 철학을 섭렵한 후에도 진리를 향한 그의 목마름은 풀리지 않았는데 스승이 건네준 한 권의 불교책에 이끌려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하버드대학 강당에서 법을 설하는 숭산스님의 가르침에 이끌려 참선을 시작하였고 한국의 선禪불교에 귀의, 승려가 되었다는 것이다. 현각스님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는 지금 줄리아 로버츠, 해리슨 포드 등 낯익은 배우들을 위시한 학자, 지식인등 불교 신자가 500여만 명에 이르며 그들의 신행 생활은 아주 진지해서 농구의 영웅 마이클 조던만 하더라도 하루 1시간의 명상이 일상화 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와서는 스티븐 잡스의 명상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일반화 되었다는 것이다. 현각 스님도 미국에 있을때에 1년 50회 이상의 설법을 하기도 하는데 그 장소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당이 되기도 하며 신부나 목사들도 진지하게 참여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명상은 특정 종교나 지역에 국한된 수행법이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대학에서 ‘행복학’이라는 명상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의 심리학자 벤 사하르(Tal Ben-Shahar) 박사가 개설한 ‘행복학’ 강의에 학부 학생의 20%가 몰려들어 화제가 되면서부터이다. 최근에는 조지아대학에서 신입생 30명이 이웃 도시인 애틀란타 ‘붓다나라’ 주지인 한국 스님 선각 스님을 초청, 파운더메모리얼 가든에서 참선 체험실습을 진행하였다는 소식도 있다. 미국 대학생들이 한국스님을 초청해 참선 체험 수업을 진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번 실습은 이향순 조지아대 비교문학과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한국불교의 전통수행법인 참선을 체험해 보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마련되었다고 한다.
선각 스님은 이날 참선수업에 앞서 호흡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특히 스님은 “현대인들이 겪는 고통의 대부분은 스스로 마음을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며 “참선을 통해 일상에서 스스로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날 참선 체험 이후 학생들은 티베트 불교와 한국 선불교의 차이에 대해 질의를 하는 등 한국불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데 2003년부터 서울 중앙대학교에서는 교양과목으로 명상을 도입하였는데 ‘1초 마감’ 강의라 하여 수강 신청이 시작되면 1초가 지나기 전에 마감이 된다고 신문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1주일 1회 3학점짜리 강좌인 “내 마음 바로 보기” 강의는 “<좌선의>에서 자비심이 밑바탕이 되어야 보리의 싹이 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자비는 모든 수행의 기초가 되며 공부의 끝에는 보살행”이라고 말하는 강사 마가스님을 해마다 ‘최우수 강사’로 선정되게 하는 명강사의 반열에 올려놓는 이변을 낳기도 하였다. 지금은 유럽으로 건너가서 독일과 그리스 등에서 한국의 선을 지도하고 있는 현각스님도 한국에 있을 때 서울 서강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참선 실수를 지도한 적도 있었다.
선이 꼭 불교도만의 전유물은 아니라 하더라도 1500여년 한국 불교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대 사찰의 선방에는 해마다 동안거 3개월 하안거 3개월의 참선 수행에 참가하는 승려의 수가 2000명이 넘고 있다. 또한 법정스님이 주석하시던 길상사나 ‘강남 스타일’이라는 세계적인 유행을 낳은 서울 강남의 한복판에 있는 봉은사에는 1년 내내 ‘시민 선방’이 열려 있어 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요람이 되고 있다. 매주 매달마다 또는 주기적으로 선방을 열어 참선을 지도하는 사찰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상가나 주택가의 곳곳에서 눈만 크게 뜨고 찾아보면 선방이 있고 명상센타가 있다. 그것이 바로 만해스님이 갈파하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하고 필요한’ 선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2003년 『불교문예』 등단
시집 『시간을 너머 여기가 거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