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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기도법(제2장)생활속의 기도법/ 일타 큰스님: (1)잠자기전에 기도를(2)108배기도
제 2장 생활속의 기도법
제 1장 <기도 성취의 지름길>에서는 요행수를 바라지 말고 '간절 절(切)'로 기도할 것과 기도를 하여 얻게 되는 불보살의 삼종가피(삼종가피)에 대해 이야기 하였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도법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잠자기 전에 기도를
1) 임종 전과 잠들기 직전이 중요하다
사람의 한 평생 가운데 제일 중요한 순간이 언제인가? 죽기 직전이 가장 중요하다. 죽기 직전에 어떤 마음을 품고 죽느냐에 따라 내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임종에 다다랐을 때 "내생에는 참선 정진하며 살아야지!"하는 원력을 강하게 세우면, 그 다음 생까지 그 힘이 그대로 전달되어 일평생 도를 닦는 일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나무아미타불'을 일념으로 외우면 그 사람의 마음이 무량한 빛, 무량한 수명의 아미타불과 함께 하여 극락왕생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강한 원한을 품고 죽으면 한을 품은 떠돌이 귀신이 되거나, 다음 생 전체를 복수를 위하여 소모해 버리는 허망한 일생을 보내고 마는 것이다.
그 러므로 나이가 들면 자기가 지나온 생애를 되돌아보면서 내생의 행복을 위해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부족했던 점이나 못 다한 것이 있으면 원을 세우고 기도하면서 다음 생을 준비할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원을 세우면 영혼이 몸을 떠날 때 그 원의 싹이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택하여 태어나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원력이 새로운 삶의 기둥이 되어 주는 것이다.
그럼 하루 중에는 언제가 가장 중요한 시간인가? 잠들기 직전의 5분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왜 잠들기 직전의 3분이 가장 중요한가?
깨 어 있는 동안 우리는 의식의 세계에서 활동한다. 그러나 잠이 들면 잠재의식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지극히 고요한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우리의 모든 의식적 활동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의 조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의 세계를 보다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잘 개발해야 한다.
만약 잠자기 5분전부터 아주 나쁜 생각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면, 그는 악몽에 시달리게 되고 깨어나서도 매우 좋지 않은 기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대로 잠들기 5분전에 관세음보살을 일념으로 부르고 자면 편안한 수면을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깨어나서도 곧바로 '관세음보살'을 찾는 맑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참선을 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잠들기 전에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또렷이 잡고 잠들면 깨어날 때까지 화두가 그대로 살아있게 된다.
곧 관세음보살이나 화두가 수면과 함께 의식에서 잠재의식-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갔다가, 잠이 깰 때 무의식-잠재의식-의식의 세계로 다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잠자기 전의 5분 집중은 3시간, 5시간, 7시간의 집중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 원리를 기도 법에 적용시키면 매우 큰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므로, 나는 이 기도 법을 우리 불자들에게 즐겨 권하고 있다.
2) 수험생과의 대화
그럼 잠들기 전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인가? 그 비결은 집중과 간절함에 있다.
나는 종종 대학 시험 준비를 하는 학생들과 기도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요즘 시험 공부하느라고 힘들지? 공부는 잘 되느냐?"
"스트레스만 쌓일 뿐 공부가 잘되지 않습니다."
"내가 공부 잘되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
"예!"
"잠들기 전에 '내일 새벽 몇 시에 일어나서 공부해야지' 하고 잠들어서 그 시간에 눈이 번쩍 떠지는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느냐?"
"예, 자주 있습니다."
" 바로 그와 같은 방법을 쓰면 된다. 잠들기 직전에 '관세음보살'을 부르되, 먼저 허리를 쭉 펴고 심호흡을 세 번 이상해라. 그리고 숨을 깊이 들이킨 다음 침을 꿀꺽 삼켜, 그래서 숨을 막아. 그럼 당연히 숨이 꽉 찼지? 꽉 찬 숨을 아껴서 한 번의 숨을 다 내쉬는 동안 관세음보살을 108번 부른다.
왜 한 숨에 108번을 부르라는 것인가? 천천히 부르면 잡념이 많이 생기지만, 한 숨에 아주 빨리 108번을 부르면 집중이 잘되고, 간절한 마음이 우러나기 때문이다.
처 음에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면서 천천히 시작하여 서너번 지나면 점점 빨리 불러. 그래서 마침내는 한 번 한 번 부르는 '관세음보살'소리가 앞 뒤 간격이 없을 만큼 빠르게 불러야 한다. 너는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지만, 옆에서 듣는 사람은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빨리!
이렇게 빨리 부르면 능히 한숨에 108번을 부를 수 있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30번, 40번밖에 부를 수 없을 거야. 그렇지만 능력껏 부르고 숨을 깊이 들이키면서 속으로 기원해라.
'관세음보살님!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공부가 잘 됩니다. 이번 시험은 틀림없이 붙었습니다(3번)'
그 리고 다시 앞의 요령대로 관세음보살을 108번 부르고 기원, 또 108번 부르고 기원..... 이와같이 세 차례 또는 일곱 차례 반복하면 자기 암시가 되어 공부도 잘되고,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입어 능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시간은 5분 또는 10분 정도 걸리지. 한 번 해 보겠느냐?"
"예."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매일 잠자기 전에 꼭 하고 자야 한다. 혹 여행 또는 다른 집에 가거나 하여 할 장소가 마땅치 않을 때도 있을거야. 그럴 때는 변소나 목욕탕에 들어가서 해도 괜찮고 이불 속에 들어가서 해도 괜찮아.
방에서 할 때는 바닥에 또는 책상 의자에 앉아서 하고 잠자리에 들어가도 속으로 기원을 해라. 그래야 잠드는 순간과 접속이 되어 잠재의식 속으로 짝 붙게 되니까....
나는 아직까지 이 기도 법을 실천한 학생들 중에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였다. 하루 5분, 10분의 잠자기 전 기도가 예상 밖의 좋은 결과를 나타낸 것이다.
3) 가족과 중생을 위한 기도
나는 학생들에게 권하는 이 기도 법을 재자불자들에게 즐겨 일러주고 있다. 곧 가족을 위한 기도를 집에서 매일 하라는 것이다. 그때도 요령은 마찬가지이다. 잠자기 직전, 한숨에 108번의 염불과 기원....
다른 점이라면, 앞의 수험생 경우는 자기 기도를 자기가 하는 것이지만, 가족을 위한 기도는 남의 기도를 대신해 준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신해 주는 기도라 하여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신해 주는 기도의 원리는 햇빛을 거울로 받아 어두운 방을 비춰 줌으로써 그 방을 환하게 밝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내가 가족 중 한 사람을 생각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의 밝은 가피가 그에게로 향한다. 남편이나 자식이 직접 기도를 하지는 않지만, 내가 기도하는 힘으로 모두 잘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가족끼리는 뇌파작용, 뇌전파작용이 어느 누구보다도 강하다. 기도하면서 이 텔레파시를 보내면 불보살의 밝은 광명이 그 가족에게 전달되고, 그 가족이 밝은 광명을 받게 되면 어둡던 장애가 사라져서 뜻과 같이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의 대상으로는 가족을 중심에 두되, 친가 사람, 시가 사람, 외가 사람을 막론하고 마음이 가는 사람 모두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좋다. 결코 편협한 마음으로 기도 대상에서 제외한다거나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된다.
한 번은 지족암에서 법문을 하면서 "식구들마다 기도해주라"고 했더니만, 법회가 끝난 뒤 노보살 한 분이 따로 찾아왔다.
"스님, 우리 큰사위는 기도를 안해줄랍니다."
"왜 그러십니까?"
" 우리 큰사위가 부산에서 판사 노릇을 하는데, 하루는 딸네 집에 찾아갔더니 참외를 깎아 줍디다. 그런데 깎은 참외를 칼로 푹 찍어서 '어머니, 잡수소!'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부랑 무식한 놈이 어디 있습니까? 꼴도 보기 싫은데, 어찌 기도가 되겠습니까?"
"해주고 안 해주고는 보살 마음이지만, '미운 사람일수록 극락왕생토록 기도해주라'는 옛 스님 말씀도 있지요."
이렇게 대화를 마친 뒤 잊고 있었는데, 그 노보살이 다음 달 법회에 참석하여 말하였다.
" 지날 달 법회한 날부터 스님 말씀대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기도를 하였는데, 미운 큰사위 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일 뒤 큰사위가 교통사고를 만났지 뭡니까? 차는 많이 부서졌지만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슴이 철렁 내려 앉습디다. '저 사위 죽으면 내 딸은 어떻게 될꼬?' 그래서 그날부터 큰사위를 위한 기도도 해주고 있습니다."
약간은 우스운 이야기지만, 좋고 싫은 것이 많은 우리로서는 한 번쯤 되새겨 봄직한 이야기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 가족을 위한 기도에 대해 조금 더 구체화시켜 보자.
예를 들어 '나'의 가족이 아이들의 할아버니, 할머니, 아버지와 큰아들, 작은아들, 딸로 구성되어 있고, 어머니인 '나'가 기도를 한다고 하자. 이 경우 할아버지, 할머니의 건강과 장수를 시작으로 가장인 남편(아버지)을 위해 축원하고, 그 다음으로 큰아들, 작은아들, 딸, 친정 부모님이나 형제자매를 위한 기원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당사자인 '나(어머니)'에 대한 기원을 하면 된다.
기원문은 사람의 형편에 따라 적절히 정하되, 한 사람에 대하여 108번 '관세음보살'과 세 번의 축원을 잊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그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간절히 관세음보살을 외운 다음, "잘 되게 해주십시오. 잘 되게 해주십시오. 잘 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세 번 기원을 하면 된다.
만약 가족 구성원 중 특별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서는 더 많이 기원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작은아들이 큰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그 아들을 위해서는 108염불을 세 차례 정도하고 "꼭 시험에 붙게 해주십시오," 하면서 기원하는 것이 좋다. 내가 기도를 해서 우리 가족 모두가 잘된다면 얼마나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겠는가? 만약 우리 불자들 중에서 아직까지 이와 같은 기도를 하지 않고 지낸 분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30분 정도 줄이고, 꼭 기도를 하고 자는 습관을 들이기를 간곡히 당부 드린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도를 할 때 꼭 권하고 싶은 것은, '한번의 108염불'을 더하여 중생을 위해 축원하라는 것이다.
"모든 중생이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모든 중생이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모든 중생이 행복하게 해주십시오."
가 족과 나의 이익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중생을 위한 기도! 이것이 세상을 밝히고 아름답게 만든다. 이것이 나의 불성(佛性)을 깨어나게 만든다. 남을 이롭게 하는 한마디의 축원이 '나'를 참된 보살(菩薩)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꼭 중생 축원의 기도를 곁들이기 바란다.
(2)108배 기도
1) 왜 절을 하라고 하는가?
잠자기 전의 기도 외에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훌륭한 기도 법으로는 절을 하는 방법이 있다.
왜 우리 불교에서는 절할 것을 권하는 것일까?
첫째는 절을 통하여 아상(我相)을 꺾고 복밭(福田)을 이루기 위함이다.
인간의 모든 그릇된 업은 아상에서 비롯된다. '나다', '내가 제일이다.'하는 교만심을 일으켜 제 잘난 맛으로 살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비롯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자기가 제일'이라고 하면서 남을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 자기만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한 나라 전체를 통치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이러한 생각에 빠져 출마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은 대통령 감이 될 수 없다. 나만이 대통령 감이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이 나라가 바로 서리!"
이렇게 망자 존대(妄自尊大)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다면 그 나라의 꼴은 어떻게 되겠는가? 실로 우리 주위에는 자신을 높이고 '제 잘난 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먼저 '나'의 육체를 관찰해보라. 이 몸뚱이는 물질에 불과하다. 물질이 차츰 낡아서 부서지듯이, 몸뚱이가 아무리 잘생기고 튼튼하더라도 별 수가 없는 것이다.
만리장성을 쌓은 진시황도 한줌 흙으로 바뀌었고, 그 잘났던 김일성도 마침내 죽어 염라대왕 앞으로 가 버렸다. 오래되면 물질은 사라지기 마련인 것이다.
' 나'의 정신 또한 다를 바가 없다. 아무리 정신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변천하는 생각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한 생각이 일어나서는 잠시 머물다가 달라지고 사라져가는 생주이멸(生住異滅)의 흐름이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된 '나'! 그 '나'는 끊임없이 변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무상하고 허망하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그런데 이 무상한 '나'를 대단한 것인 양 내세우고 있으면 고통만 따를 뿐, 멋있고 자유로운 삶이나 공부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말 잘살고자 하는 사람은 아상부터 없애야 한다.
아상을 없애는 공부! 그것이 바로 절이다.
"저의 가장 높은 머리를 불보살님의 가장 낮은 발아래 바치고 절하옵니다."
"저의 가장 귀중한 목숨을 바쳐 절하옵니다(歸命頂禮)."
만 약 '나'를 높이는 아상을 버리고 절을 하여 하심(下心)을 할수 있는 사람이라면 진실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을 낼 수 있게 되고, 참된 봉사를 하면 내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지며, 내 마음이 편안해지면 나를 대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도 편안해질 수가 있다. 이렇게 하여 일체 사람을 편안한 세계로 인도하면 대복전(大福田), 곧 큰 복밭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업장소멸(業障消滅), 곧 절을 많이 하여 속에 쌓은 업을 비워 내고자 함이다.
옛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은 돌아다니는 변소요, 구정 물통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실로 그러하다. 아무리 얼굴을 예쁘게 꾸미고 화장을 했다고 해도 알고 보면 추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 우리의 몸뚱아리이다. 가죽피대 속에는 피와 고름과 때와 똥오줌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뿐인가? 제 마음에 맞으면 탐욕심을 내고 제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성을 내며, 탐하고 성내다 보니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여 시기, 질투, 아만, 방일 등 수많은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다. 나아가 살생, 도둑질, 음행, 거짓말까지 곁들이고 있으니....
이러다 보니 우리의 마음 그릇은 완전히 구정 물통이 되고 말았다. 본래 깨끗하고 천진했던 항아리에 쓰레기 찌꺼기도 담고 쉰 밥도 담고 고기 뼈다귀도 담고.... 온갖 찌꺼기들을 자꾸 담다 보니 구정 물통이 되어 버린 것이다.
북적북적 속이 끓는 탁하디 탁한 구정 물통! 흉칙한 망상이 항상 출렁이는 구정 물통! 그 구정 물통이 꽉 차서 콸콸 넘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마음 그릇 구정 물통을 맑혀야 한다.
그 러나 넘치는 구정 물통에 맑은 물 한 사발을 붓는다 하여도 별 소용이 없다. 맑히려면 구정 물통을 넘어뜨려 쏟아 버려야 한다. 그렇지만 배가 크고 모가지가 작아 넘어뜨려 쏟아 봐도 속의 것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제 별 도리가 없다. 오직 한 바가지 맑은 물을 붓고 흔들면서 냅다 쏟고, 한 바가지 물을 붓고 냅다 쏟고...... 오로지 거듭거듭 반복할 수밖에 없다.
바로 이와 같은 반복 작업이 절이다.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을 간절히 찾는 것은 맑은 물을 붓는 것이고, 절하며 엎어지는 것은 구정 물통을 흔들면서 찌꺼기는 쏟아 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몇 번의 절로써는 속의 묵은 찌꺼기를 다 비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듭거듭 절할 것을 옛 스님들은 강조하셨다. 적어도 108배, 1천배, 3천배, 5천배, 1만배의 절을 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렇게 거듭거듭 절하다 보면 업장이 소멸될 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의 그릇이 청정해지고 내 몸뚱이 그릇이 청정해지면서 몽중가피(夢中加被)도 나타나고 현증가피(顯證加被)도 나타나고 명훈가피(冥熏加被)도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곧, '중생심의 물이 청정해지면 보살의 달 그림자가 거기에 나타난다(衆生心水淨 菩薩月影顯).'가 되는 것이다.
우리를 맑히고 우리를 큰 복밭으로 만들어 주는 절. 이제 우리가 성의만 있으면 평소 능히 할 수 있는 108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2) 108번뇌와 108배
불교의 절하는 숫자에 대한 근거는 뚜렷하다.
3 배를 드리는 것은 삼보(三寶)에 귀의하여 탐심, 진심, 치심의 삼독심(三毒心)을 끊고 삼학(三學, 戒, 定, 慧)을 닦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고, 53배는 참회 53불(佛)에 대한 경배, 1천배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겁(賢劫)의 1천 부처님께 1배씩 절을 올리는 것이며, 3천배는 과거, 현재, 미래의 3대겁에 출현하는 3천 부처님께 1배씩의 절을 올리는 예법이다.
그렇다면 108배는 무엇인가? 바로 이 절이 108번뇌의 소멸과 관련되어 있음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108이라는 숫자가 108번뇌를 뜻한다는 것은 쉽게 파악하면서도, 어떻게 해서 중생의 번뇌를 108이라는 숫자로 분류하였는지를 분명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108번뇌는 중생의 근본 번뇌이다. 이 108번뇌는 육근(六根)과 육진(六塵: 六境이라고도 함)이 서로 만날 때 생겨난다.
눈 [眼],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意]의 육근이 색깔[色], 소리[聲], 향기[香], 맛[味], 감촉[觸], 법[法]의 6진을 상대할 때 먼저 좋다[好], 나쁘다[惡], 좋지도 싫지도 않다[平等]는 세 가지 인식 작용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시 좋은 것은 즐겁게 받아들이고[樂受], 나쁜 것은 괴롭게 받아들이며[苦受],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에 대하여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게 방치하는[捨受] 것이다.
곧 6근과 6진의 하나 하나가 부딪칠 때 좋고[好], 나쁘고[惡], 평등하고[平等], 괴롭고[苦], 즐겁고[樂], 버리는[捨] 여섯 가지 감각이 나타나기 때문에, 6*6=36, 즉 서른여섯가지의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이 36번뇌를 중생은 과거에도 했었고, 현재에도 하고 있고 미래에도 할 것이기 때문에, 6*6=36에 과거, 현재, 미래의 3을 곱하여 108번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六 根 六 塵
눈[眼] 색깔[色]
귀[耳] 소리[聲]
코[鼻] 향기[香]
혀[舌] 맛[味]
몸[身] 감촉[觸]
뜻[意] 법[法]
好, 惡, 平等, 苦, 樂, 捨 (6 X 6 = 36)
X
과거, 현재, 미래 (36 X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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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번뇌
이와 같은 108번뇌가 벌어지고 또 벌어져서 팔만 사천 번뇌 망상을 이루게 되고, 그 번뇌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무수히 왔다갔다하면서 마음을 흐트려놓기 때문에 중생은 번뇌로 인해 시달리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108 번뇌! 이것은 우리의 흩어진 마음을 뜻한다. 하나로 모아진 마음이 아니라 바깥으로 흩어진 마음, 근원을 돌아보는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흘러 내려가는 유전(流轉)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108번뇌와 깊이 결속되어 있는 삶이 중생의 삶인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108번뇌는 108번의 절을 하는 동안 스스로 순화되어 삼매의 힘으로 변화된다.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일심의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환멸(還滅)의 시간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 리의 마음이 무한한 능력, 영원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번뇌를 따라 밖으로 밖으로 뿔뿔이 흩어질 때는 무능에 빠지고 끝없는 생사의 유전 속으로 전락하고 만다. 하지만 번뇌 속으로 끊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삼매의 힘은 다시 되살아나고, 원래의 무한 능력이 우리에게서 한 번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108배로써 108번뇌를 끊는다."
이 108배속에는 번뇌를 쫓아 흘러 내려가는 삶을 일심의 원천으로 돌리겠다는 의지가 숨겨져 있다. 유전이 아니라 환멸의 삶, 번뇌 이전의 영원 생명으로 돌아가 부처님과 하나가 되는 삶, 곧 성불(成佛)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 러나 번뇌는 끊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 번뇌는 저절로 사라진다. 108배의 절은 번뇌를 끊는 의식이 아니라 깊은 삼매(三昧)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방편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108배의 정진을 통하여 삼매 속으로 몰입할 때 우리의 모든 번뇌는 차츰 사라지게 된다.
삼매와 환멸과 성불! 이것이 우리가 108배를 하는 까닭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아침에는 108배, 자기 전엔 염불
이제 108번뇌와 108배의 참 의미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08염주를 지니는 까닭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 리 불자들 중에는 108염주를 매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이 108염주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108번의 염불과 108배를 통하여 108번뇌로써 지은 죄업들을 참회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부처님 앞에 한 번 절하고 한 개 돌리기를 108번하면서 108번뇌를 끊어 나가라고 108염주를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108번뇌가 완전히 소멸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최종 목적인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매일 108배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다.
아 침에 일어나서는 108배, 저녁에 자기 전에는 108염불! 이것을 생활화하면 마음이 점차 모이고 맑아져서 언젠가는 삼매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불보살의 은근한 가피, 곧 명훈가피를 얻어 재난은 스스로 피해 가고 가정은 두루 편안해지며, 기쁨과 행복이 충만해지게 되는 것이다.
만일 집에서 108배를 할 여건이 되지 않은 경우라면 절을 찾을 때만이라도 꼭 108배를 하도록 하자. "절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찰을 절이라고 부른다."는 속설이 있듯이, 좋은 도량을 찾았을 때만이라도 법당의 부처님께 지극 정성 108배를 올리는 신심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제 아침 108배, 저녁 잠들기 전의 기도를 통하여 소원을 이룬 세 고시생의 이야기를 하면서 제 2장의 '생활 속의 기도법'에 대한 글은 매듭짓고자 한다.
약 10여 년 전의 일이다.
지 금은 재가 불자의 참선 수련 도량으로 바뀌었지만 당시 해인사 원당암은 고시생들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원당암에서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10여 년 동안 50명도 넘었기 때문이다. 자연 방을 얻으려는 경쟁이 치열해지자, "돈을 2배, 3배 주겠으니 있게 해 달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원당암 스님들이 누구인가? 오히려 네 가지 규칙을 정하여 그 규칙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만 받아들였다.
첫째, 새벽 예불에 참석해야 한다.
둘째, 술과 담배를 먹지 못한다.
셋째, 여자 친구의 방문은 사절한다.
넷째, 주지 스님 허락 없이는 바깥출입을 금한다.
처음 이렇게 다짐하고 원당암에 있게 된 고시생 중, 3명의 학생이 몰래 해인사 관광촌으로 내려가서 한잔 먹다가 주지 스님께 들키고 말았다.
"이놈들! 당장 원당암에서 나가거라."
책보따리를 절 마당에 들어내 놓고 몽둥이를 잡은 채 호령하는 주지 스님의 서슬에 놀라 그들은 암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세 사람은 궁리 끝에 나를 찾아왔다.
"저 위의 지족암 큰스님께 찾아가 보자. 혹시 거지 있으라고 할지도 모르잖아."
그러나 방이 없는 지족암에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 나는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희들, 사법고시에 꼭 합격하고 싶지?"
"예!"
"그런데 공부는 잘 되지 않고?"
"예, 공부하기가 통 싫습니다."
"내가 공부하고 싶도록 해줄까? 공부 잘 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어떻게요?"
"너희 마음대로 안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처님의 법 아닌가! 내가 시키는 방법대로 해볼테냐?"
"예, 공부만 잘 된다면 하지요."
" 첫째, 너희들이 절에 와 있으니까 부처님께 절을 해야 한다. 새벽 예불 목탁 소리가 나거든 무조건 법당으로 달려가서 절 108배를 해라. 108배를 하면 아침에 국민 체조를 하는 것보다 더 좋다. 몸이 아주 건강해진다. 손가락 발가락까지도 운동이 다 되고 목운동 허리 운동 발목 운동 온 전신운동이 다 되는 것이니까. 운동 가운데 절하는 운동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다. 할 수 있겠느냐?"
"예."
"이렇게 부처님께 108배를 드리면서 '부처님, 공부 재미있게 해주십시오. 공부 재미있게 해주십시오. 시험에 꼭 붙게 해주십시오.....' 하면서 간절히 기원해야 한다."
" 두 번째 잠들기 직전에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자는 것이다. 먼저 코로 심호흡을 세 번 또는 일곱 번하고, 관세음보살을 아주 빨리, 108번을 불러라. 처음에는 3-40번밖에 못 부를 것이지만 일단 한숨 동안 부르고 나서 '관세음보살님! 꼭 시험에 되게 해주십시오. 공부 잘 됩니다.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3번 기원을 해라. 그렇게 한숨에 염불을 세 번 또는 일곱 번 정도 하여야 한다."
"스님, 왜 관세음보살을 그렇게 빨리 불러야 합니까?"
"관세음보살을 천천히 부르면 생각이 서울 갔다가 대전 갔다가 부산 갔다가, 왔다갔다하게 된다. 그럼 효과가 없어. 관세음보살을 아주 빨리 부르면, 부르기 급한데 어디 갈 여가가 있나? 생각이 도망칠 틈이 없게 되고 마음이 하나로 모이니까 틀림없이 힘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가 정신이 흐릿해지거나 마음이 풀어질 때에도 이렇게 관세음보살을 불러 보아라.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학생들은 아주 좋아하면서 꼭 실천하겠다고 다짐하였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원당암으로 가서 주지 스님에게 부탁하였다.
"학생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하니 한 번만 용서하시오."
그 날부터 시험 치기 전까지 약 100일 동안 세 학생은 기도와 공부를 부지런히 하였고, 마침내 세 사람 모두 사법고시에 합격하였다. 기쁨에 넘친 그들은 법관 교육을 받기 위해 사법연수원으로 가기 직전, 커다란 케익을 사 들고 나에게로 찾아왔다. 그리고 시험장에서 있었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스님, 시험장에 앉아 주위를 돌아보니 모두가 백짓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을 가진 사람은 저희들뿐인 듯했습니다. 저희들은 시험지가 나오기까지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님, 막상 시험문제를 받고 보니 거기에 기적이 있었습니다. 원당암 앞길을 산책하다가 갑자기, '아차! 그 문제 한 번 더 보아야겠다.'고하여 꼼꼼히 살펴본 문제, 부처님께 절하다가 생각이 나서 한 번 더 찾아본 문제 등, 일부러 기억하고 거듭거듭 따져 봤던 문제들만 출제되어 있었습니다. 어찌 저희들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스님, 감사합니다. 모두가 스님 덕입니다."
"나도 너희들 덕에 법문할 이야깃거리가 하나 더 생겼구나. 나도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웃음꽃을 피웠다.
이 산승은 간곡히 당부 드린다. 지금 현재 앞에서 이야기한 일상의 기도를 하지 않고 있는 불자라면 이 기회에 꼭 실천해 보라는 것을!
기 한은 스스로의 형편에 맞게 정하라. 백일을 하나의 기한으로 삼아도 좋고, 40일을 기한으로 삼아도 좋다. 그것도 어렵다면 삼칠일[21일], 21일도 어렵다면 일주일, 아니 단 3일이라도 좋다. 꼭 한 번 해보자. 틀림없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건강도 좋아질 것이며, 소원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뒷날로 미루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서 한마음으로 염불하며, 신심(信心)을 이루고 뜻을 성취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