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긴장했던 시간, 월요일 오전에 수유너머에서 공부하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은유 선생님의 글쓰기 특강을 들었다.
첫 인상. 우선 선생님은 젊다. 그러니까 나보다 많이 젊다. 처음 자리의 긴장을 미소로 지우면서 강의 시작을 기다린다. 그 모습을 봤다.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다. 이렇게 말하면 실수. 화장을 했는데 요란하지 않다고 해야 맞다. 화장한 얼굴인데 안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으니…, 수수하다. 머리를 뒤로 묶고 이마를 훤하게 모두 보여준다. 성격이 소탈할 것 같다. 별로 감출 것이 없겠다. 그러나 얘기를 들어보니 모든 여성이 가지는 까탈스러움은 있었다. 밥하는 것, 아이 낳는 일을 여성이면 해야 할 것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사회가 많이 원망스럽다. 순간 나는 남자로 태어난 게 이런 일로 전투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귀찮은 일이고 고통이고 아프다는 것을. 그러나 직접 당하지 않는 것이라 그 이상을 모른다. 나는 이렇게 어정쩡하다. 강의를 시작하려 일어설 때 치마바지인지 치마인지 검정색스타킹을 신은 다리가 보인다. ‘외모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1주일 살아보기’라는 글감을 말할 때도 나는 다리를 봤다. 남자의 눈은 이렇게 성스러운 말 앞에서도 구제불능이다. 이상은 글쓰기와 관계없는 사적이고 객쩍은 얘기다.
바로 글쓰기 강의로 들어갔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면 노래를 잘 부르게 되고,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면 그림을 잘 그리게 되고, 운동하기를 좋아하면 운동을 잘한다고 했다. 그런데 유독 글쓰기는 좋아해도 잘 하지 못한다.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고 했다. 거기서 말을 풀어갔다. 내 경험으로 글쓰기는 무조건 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지금 강의 후기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강의의 핵심은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였다. 좋은 글을 쓰려고 애쓰면 글을 잘 쓸 수 있게 된다. 첫째, 사람이 보이는 글이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 솔직해지고, 투명(?), 정확하게 쓰려고 하면 친절하고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다. 아! 투명하면 글에서 사람이 보인다고 했다. 솔직, 투명, 정확한 글이 사람이 보이는 글이고 좋은 글이다. 둘째, 질문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남들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데 나는 불편하다. 거기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려면 약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인간의 존엄성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통념(관습)에 저항하는 글쓰기라고 했다. 보통 소 잃고 외양간 고치면 소용없다고 한다. 그래서 세월호를 보고 빨리 잊으라고 한다. 그러나 소 잃어본 자가 외양간 고친다는 말로 접근해보자고 했다. 지금 누가 외양간을 고칠까? 그 질문은 시간이 흘러간 세월호 사건에 대해 통념에 저항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여성들이 애를 낳는 것, 밥하는 것을 성스럽다고 치켜세우는 것으로 끝나면 관습적 해석이다. 세상에는 여성이 짊어진 두 가지를 누군가에게 떠넘길 수 있는 여성이 있고, 애써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 남성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가사 노동을 해야 하는 약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것이 관습에 저항하는 방법이다.
마지막에 재미없는 글이 되는 이유를 말했다. ‘지당한 말씀 주의보’라고 강조했다. 잘 나가다가 논설위원을 등장시켜서 글을 망치는 것을 자주 봤다고 했다. 사람이 보이는 글, 질문이 있는 글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말라는 주문이다.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때는 충분한 근거로 대체해야 한다고 했다. 에피소드를 글로 보여주면 독자들이 그것으로 느끼고 판단한다. 지당한 말씀 주의보가 내릴 때가 바로 인내심이 필요한 순간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하면 재미없는 글이 된다. 한 가지 더. 너무 쉽게 써진 것은 내께 아니라고 했다. 자꾸 고쳐 써야하겠고, 여러 목소리가 섞이지 않게 통일 된 톤으로 글을 써야 한다.
끝까지 잘 들었다. 질척거리지 않고 얼른 집으로 왔다. 글쓰기가 갑자기 하고 싶어졌다. 지난 일요일 저녁 ‘복면 가왕’에 연예인 판정단으로 나온 홍기(?)라는 아이돌 가수의 소감이 멋있었다. “빨리 연습장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2015년 11월 24일
첫댓글 솔직하고 인상적인 강의후기~잘 봤습니다^^
다른일이 있어서 강의에 참석 못했는데 어떤 강의였는지 약간이나마 짐작됩니다. 고맙습니다^^
편안한 강의였습니다~~
요약 잘 하셨네요.
감사합니다.
독서관련 정보 소개합니다.
[팟빵]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http://m.podbbang.com/ch/1749
감사합니다. 어제 한번 들었는데 좋았습니다~~
"통념(관습)에 저항하는 글쓰기, 사람이 보이는 글, 질문이 있는 글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말라..".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