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방合房
제12회 작품상
이지원
함函이 들어섰다. 입관을 끝낸 어머님 곁에 조심스레 놓인 함 속에는 아버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 상주들은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으로 망연히 서 있는데, 큰 아들인 남편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어무이요. 오늘 하룻밤 아부지하고 같이 지내시이소.”
88세를 일기로 어머님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님은 오년 가까이 요양병원에 계셨다. 그 사이 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다. 대신할 수 없는 고통을 지켜보는 자식들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으나 맏이인 남편은 각별했다. 대개 요양병원에 모셔 놓고 육 개월만 지나면 자식들의 방문이 점점 뜸해진다고 한다.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어머님에게 지극정성이었다. 그것은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홀로 되신 어머님에 대한 애잔한 연민이었을 것이다.
살아생전 어머님은, 당신이 겪어낸 세월은 책 몇 권으로도 모자랄 것이라고 했다. 이제 어머님은 하늘 길에 오를 절차를 밝고 있는 중이다. 지금, 그 곁에 36세 청년으로 처자식과 사별한 아버님이 누워 계신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생전에 십이 년을 살았고 죽어 반백년 만에 만났다. 어머님은 삼십대 초반에 청상이 되어 오남매를 키워냈다. 막내 시동생을 낳고 육 개월 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육십을 바라보는 시동생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이렇게 마주하게 되었고 며느리인 나도 아버님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하게 되었다.
맏며느리인 나는 아버님 제사를 모실 때마다 어머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었다. 당신이 돌아가시면 산에 있는 아버님을 일으켜 세우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었다. 어머님은 사후에 화장火葬을 원하셨고 그렇게 하자면 아버님도 함께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사진으로 밖에 뵌 적 없는 아버님은 인물도 키도 훤칠했다. 집안의 중매로 부부의 연을 맺은 어머님은 아버님과 무덤덤하게 사셨다지만 짧은 세월 정 들일 시간조차 부족했을 것이다. 미운 정 고운 정 들일 틈도 없이 불쑥 찾아든 이별이었다. 겨우 십 년을 넘겨 산 세월, 좋은 기억일랑은 힘겨운 세월에 묻혀 박제 되고 말았다.
결혼 후, 삼십 년 넘는 세월을 보내며 어머님과 고부간의 역사를 지었다. 그 세월 속에서 어머님과의 갈등은 크게 없었으나 가끔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있었다. 가령 담배를 피신다거나 스스럼없이 거친 말을 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었다. 세월이 지나자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평탄치 못한 세월의 강을 건너느라 속을 다스려야 할 일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담배로 그 속을 달랬다는 것을. 젊은 과수댁에게 집적거리는 남정네들을 쫓아버리기 위해 거칠게 욕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지아비 없이 오남매를 끌어안고 살아온 어머님의 세월을 나는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살면서 짐작할 뿐이었다. 자식 중에서 아버님에 대한 기억이 가장 많은 사람이 장남인 남편이고 어머님의 서러운 삶을 잘 아는 사람도 남편이었다. 비록 요양병원에 계셨지만 어머님은 남편에게 평생 받지 못한 사랑을 말년에 아들에게서 듬뿍 받고 가셨다. 담당 주치의도 남편에게 진정한 효도가 무엇인지 많이 배웠다고 말할 정도였다.
세상사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것 잘 알지만, 때로는 조금만 기다려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간의 정성을 봐서라도 기다려 줄 법한데 그조차도 허락 되지는 않았다. 병원 문턱이 닿도록 다니며 그렇게 정성껏 어머님을 보살폈는데도 남편은 어머님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급한 일로 서울에 갔다가 다음 날 어머님을 뵈러 가기로 돼 있었는데 하행선 열차에서 임종 소식을 접했다.
평소 어머님의 뜻대로 아버님 이장 문제를 형제들과 의논하고 일을 맡길 업자를 만났다. 묘를 열었을 때, 유골이 유실 되었을 수도 있고 삭아서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오십 년이 넘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미리 고지했다. 수술을 하기 전에 보호자에게 최악의 경우까지 설명하는 의사처럼, 그것은 업자들 탓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뜻밖에도 아버님의 유골은 온전한 상태였다. 젊어 돌아가셨기에 그렇다고 했다. 아버님은 서른여섯의 젊은이로 지하에서도 늙지 않았던 것이다. 더 늙어 버린 자식둘이 아버지와 마주했다. 남편과 시동생들의 마음이 어떤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멈춰 버린 과거와 흘러간 현재와의 만남은 기묘한 슬픔으로 다가왔다.
어머님과 함께 화장을 하려니 까다로운 절차와 서류가 필요했다. 일을 보러간 시동생이 동사무소에 있는 서류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아버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 쓴 서고書庫에서 찾아내느라 시간이 걸렸다. 곡절 끝에 발인을 끝내고 화장터에 도착하는 시간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화장터에서도 복잡한 절차가 있었지만 다행히 잘 마칠 수 있었다.
한 생이 끝난 뒤, 정리하는 시간은 무겁고 느린 듯 했지만 한편으론 일사분란하게 돌아갔다. 슬플 겨를도 주지 않았다. 절차와 법에는 애틋한 감정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래서 회한에 찬 슬픔은 두고두고 우리 곁을 맴도는지도 모른다.
88세의 어머님과 36세의 아버님은 작지만 오붓하게 지낼 수 있는 방 한 칸을 빌어 하늘마루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육肉은 사리지고 영靈만 남았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부부싸움에 여념이 없을 것 같다. 남겨졌던 어머님의 서러움과 급작스레 떠났던 아버님의 미안함을 해소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새롭게 꾸민 신방에서 이승에서 못 다 나눈 사랑 가이없이 나누면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