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隨筆)
影園 김인희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달력을 바라본다. 올해의 마지막 한 장 남아있는 달력을 보면서 소설 마지막 잎새의 존시를 생각하고 위대한 화가 베어먼을 떠올렸다.
소설 <마지막 잎새>는 폐렴으로 투병 중인 존시가 생존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판단에 병실 맞은편 담장에 있는 담쟁이덩굴 잎을 보면서 그 잎이 모두 떨어진다면 자신도 죽을 것이라고 예감한다. 원로 화가 베어먼은 언젠가는 걸작을 그리겠다고 장담하면서도 술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비바람이 지난 후 아침에 마지막 한 장 남은 담쟁이덩굴 잎을 보았다. 그다음 날 밤에도 심한 비바람이 몰아쳤으나 마지막 한 장 담쟁이 잎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마지막 잎새는 베어먼이 담장에 붓으로 정밀하게 그린 작품이었다. 존시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사다리에 올라 차가운 비바람을 맞으면서 밤새 벽에 그림을 그린 베어먼은 이틀 만에 폐렴으로 죽었다. 이 사실을 안 존시의 동료 수는 ‘마지막 잎새’가 베어먼이 살아있을 때 언젠가 그리겠다고 다짐했던 걸작이라고 평가했다는 내용이다.
오산화성교육지원청 행사 1부 : 사회, 2부 : 시낭송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려낸 마지막 잎새처럼 살고 싶다. 밤하늘 유영하는 별처럼 누군가에게 꿈이 되고 빛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아버지께서는 시골 마을에 버스가 들어올 수 있도록 당신의 땅을 버스정류장으로 내어 주었다. 그리고 우리 남매들에게 ‘자식들 잘 살라고 적덕(積德)했느니라. 서로 의좋게 지내라.’라고 하셨다. 우리 남매들은 부모님 기일에 한자리에 모여서 자랑스러운 부모님을 추억하면서 의좋게 지내고 있다.
지천명을 넘기면서 삶의 좌표를 정하기 위한 기준점을 아버지의 삶에서 찾고 있었다. 내가 남에게 덕을 베풀 수 있을까. 무엇으로 덕을 쌓을 수 있을까. 천착하면서 수없이 작은 손을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여러 문학회에서 맡은 직책을 수행해내고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을 한 가지씩 해내면서 적덕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것 같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학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으로 덕을 쌓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덕향문학 9호 출판기념 시낭송 <나는 아직도 모릅니다>
내 이름에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시낭송가 등 따라붙는 수식어가 생겼다. 그 수식어를 붙들고 스스로 전율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작 노트를 들고 잔디밭에 앉아서 네 잎 클로버를 찾던 계집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 소녀가 되어 성장통을 앓았다. 꽃다운 스무 살 시절에 책과 열애에 빠졌다. 그런 내가 시인이 되고 수필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롯이 문학을 향한 열정으로 꽃을 피웠던 노력에 대한 결실이었기에 당당하다. 시인, 수필가, 칼럼니스트, 시낭송가 김인희로 불리는 것에 자신만만하다.
하오나 스스로 만족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무대에서 시낭송을 한 후 수없이 자책하고 반성하고 있다. 한 편의 시와 수필과 칼럼을 쓰고 나목이 되어 부끄러움에 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토록 힘든 길을 자처하고 걷고 있는지 묻는다면 내 답은 사랑이다. 지독한 사랑이다. 오롯이 문학을 향한 일편단심이 그 여정에서 가없는 자맥질을 멈추지 못하게 하고 있다.
사비문학 제35호 출판기념식 사회
별이 된 시인을 사랑하고 詩를 사랑해서 읊조리기 시작한 시 암송은 시 낭송 교육을 통하여 시낭송가로 거듭나게 했다. 내가 무대에서 시 낭송을 한 후 울컥했다는 평을 듣고 또 어떤 관객은 울었다고 했을 때 만족했다. 내 목소리로 한 편의 시를 낭송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필링콘서트 시낭송 <나는 아직도 모릅니다>
학창 시절부터 많이 들었던 칭찬 중 하나는 목소리가 예쁘다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할 때 경리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거래처와 전화 업무는 기본이었다. 그때도 거래처 사장님들께 목소리 예쁘다는 말을 듣는 건 다반사였다. 지금까지 지내면서 막연하게나마 내 목소리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여겼었다.
최근에 행사에 초대되어 무대에서 시 낭송하는 장면이 몇 편의 유튜브로 제작되었다. 유튜브를 접한 사람들이 목소리가 예쁜 시 낭송가라고 일컫는다고 한다. 나와 함께 합송시를 낭송했던 지부장님께서 칭찬이 자자하다는 말을 전해 주었을 때 나르시시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이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덕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이 날아갈 듯 기뻤다.
합송시 낭송 <연서>, <사랑하는 까닭>
시인으로서 삼라만상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이다. 깊은 산 바위틈에 핀 작은 들꽃의 노래를 듣고 시로 쓸 것이다. 한여름 일주일 동안 생애를 자지러지게 울다가 아스팔트 위에서 꺼져가는 호흡을 고르던 매미의 몸부림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며 철저한 자아 성찰을 통한 깨달음을 수필로 승화시킬 것이다. 예리한 붓으로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로서 손색없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충남신문 칼럼니스트
말과 글은 그 사람의 품격(品格)이다! 언젠가 칼럼으로 썼던 내 글의 제목이다. 누군가의 말과 글은 누군가의 품격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역설한다. 내가 직접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한 문자를 받았을 때 아연실색하고 그를 반면교사로 삼아 내린 결론이었다. 하여 나는 언행뿐 아니라 스마트폰의 문자나 카톡에 쓰는 글조차 살얼음판을 걷듯이 삼가고 있다.
가장 따뜻하고 착한 글을 쓰는 시인으로 살고 싶다. 누군가 길을 물을 때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여류 작가가 되고 싶다. 내가 쓴 칼럼을 읽고 야무지게 잘 썼다고 말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향하여 주마가편(走馬加鞭)을 멈추지 않으리라. 오늘도 나는 詩를 낭송한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끝-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