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환절기에 특히 조심해야 할 병은 감기다. 게다가 가을 가뭄으로 실내가 건조한 데다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덮고 있어 감기에 걸리기 쉬운 환경이다. 바깥 활동 자제에 따른 운동 부족으로 신체의 면역력(저항력)마저 크게 떨어진 상태다. 경기
침체란 스트레스도 감기에 취약하게 하는 요인이다.
감기 환자에게 뾰족한
특효약은 없다. 감기의 병원체가 항생제로는 죽일 수 없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기 치료법은 증상을 가볍게 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감기를 귀빈처럼 모셔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귀한 손님처럼 편히 쉬게 하고 따뜻한 차를 대접하며 충분히 수면을 취하게 하고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하는 것이 실제로 최선의 감기 대처법이다.
나라별로
마시는 음료도 각양각색
유럽에서는 감기 증세가 있으면 흔히 가새풀(에키나시아)이란 허브를 처방한다. 가새풀은 북미가 원산지로
국화과 식물의 일종이다. 감기 바이러스를 죽이지는 못하지만, 면역력을 높여서 감기 치료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별명이 ‘자연의 항생제’다.
호주에선 유칼립투스란 허브를 이용한다. 코알라의 주식인 유칼립투스의 잎에선 톡 쏘는 듯한 향기가 난다. 잎에서 채취한 오일은 감기 환자를 위한
향기요법(아로마테라피)에 사용된다. 유칼립투스의 잎을 뜨거운 수건으로 감싼 뒤 감기 환자의 위쪽 가슴을 마사지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감기 환자에게
추천하는 약차는 오미자차·생강차·진피차다. 이중 오미자는 약성이 따뜻하다. 6컵 분량의 물에 오미자 한줌을 넣고 색이 붉게 우러나올 때까지
끓이면 오미자차가 완성된다. 이 차는 건조해진 폐를 적셔 주고 폐 기운을 북돋워 감기 치료를 돕는다. 생강은 맛이 매워서 몸에 땀이 나게 하고
열을 내려준다. 생강차는 몸을 따뜻하게 해서 감기의 초기 증상을 완화한다. 매운 생강 약 10g을 잘 씻어서 강판에 간 뒤 이를 거즈에 싸서
생강즙을 낸다. 생강즙에 따뜻한 물 100㎖를 부으면 생강차가 완성된다. 진피는 귤껍질이다. 귤엔 비타민C와 비타민P가 풍부하다. 비타민C는
면역력을 높여줘 겨울철 감기 예방에 유용하고 비타민P는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도록 막아준다.
감기 환자에게 이로운 전통
음식은 배숙이다. 배숙은 배의 속을 긁어낸 뒤 꿀·대추·도라지·은행 등을 넣고 중탕한 것이다. 맛이 꿀물과 비슷해 어린이도 좋아한다.
기관지염·천식·기침에 효과가 있다.
프랑스인은 감기를
와인(포도주)으로 다스린다. 레드와인에 계피ㆍ오렌지 등을 넣어서 끓인 뱅쇼(vin chaud)를 감기약 대신 마신다. 포르투갈에선 뜨거운 우유에
브랜디를 넣어 마신다. 레몬즙·계피를 첨가한다는 점에서 뱅쇼와 닮았다. 일본인은 달걀술을 마신다. 뜨겁게 데운 정종에 날달걀을 푼 술이다.
스코틀랜드인은 위스키에 뜨거운 물·꿀·레몬 한 조각을 넣어 마신다. 술이 감기 치유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한방에선 술은
감기의 적으로 본다.
독감
예방접종 맞을까, 말까
감기에 이어 독감 시즌도 대기 중이다. 독감은 ‘독한 감기’가 아니다. 감기와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그 종류가 다르다. 감기는 라이노바이러스·코로나바이러스를 비롯해 100여 가지 바이러스와 세균 등 원인균이 다양하다. 이와는 달리 독감은 한
종류의 바이러스(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일으킨다. 독감 백신을 맞아도 감기에 걸리는 것은 그래서다. 감기에 걸리면 코막힘·인후통·기침·미열 등
증상이 나타나지만 대개 며칠 지나면 스스로 회복된다. 독감은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할 만큼 증상이 훨씬 혹독하다. 요즘도 독감으로 숨지는
노인들이 해마다 한둘이 아니다. 독감은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환인 만큼 예방이 최선이다. 일단 걸리면 대증(對症)치료 외엔 뾰족한 약이 없기
때문이다. 독감의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은 독감 백신(예방 주사)을 맞는 것이다. 가벼운 감기 증상이 있더라도 독감 백신을 맞는 것이 ‘남는
장사’다.
생후 6개월 이상 영유아와
임산부, 면역력이 약한 성인·고령자는 꼭 독감 백신을 맞아야 한다. 어린이·노인과 함께 지내는 사람도 가급적 백신 접종을 하는 것이 좋다.
지난해에 백신을 맞았거나 독감을 앓았다고 해도 올해 다시 독감 백신을 맞아야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지속적인 변이를 통해 계속 형태가
변하므로 매년 새로운 형태에 맞춰 개발된 백신을 접종 받아야 한다. 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해마다 2∼3종류가 유행해 한 가지에 걸렸다 치유돼
몸에 면역이 생겼어도 다른 바이러스에 걸릴 수 있다. 독감에서 회복된 사람에게 다시 독감 백신을 맞으라고 권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독감
백신은 접종 후 몸 안에 면역력이 형성되는 데 2주가 걸리고 효과가 6개월가량 지속되므로 11월 중순 이전에 맞는 것이 최선이다. 독감 예방
효과는 80% 정도로 완벽하진 않다. 독감 백신을 맞았더라도 손을 자주 씻는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독감의 계절은 겨울이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추위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influenza)란 병명은 이탈리아어 ‘influenza di
freddo(추위의 영향이란 뜻)’에서 유래됐다. 이탈리아어 ‘influenza’는 영어의 ‘influence(영향)’와 동의어다. 유행 시즌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북반구에선 11월∼이듬해 4월이다. 호주·브라질 등 남반구에서는 5∼9월이 절정이다. 반면 열대지방에선 독감 시즌이 특별히
없다.
날씨가 추워지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제 세상을 만나는 이유에 대해 다양한 가설이 제기돼 왔다. 기온이 떨어지면 사람들이 실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특히
학교·어린이집 등에서 서로 더 밀접하게 생활하는 어린이가 감염돼 가족들에게 퍼뜨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가설 중 하나고 사람들이 외출을 줄여서
햇빛 보는 시간이 크게 줄고 밤이 짧아지는 것도 관련 있다는 가설도 나왔다. 햇볕 쬐는 시간이 줄면 비타민D, 세로토닌, 멜라토닌이 적게
생성된다. 셋은 면역력을 높이는 데 유익한 물질로 알려져 있다.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겸임교수 / 한국교직원신문
1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