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라는 이름은 그가 창안한 정신분석학과 함께 한때 저주받은 20세기 산물이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과 개업의였던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가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 썼을 때, 사람들은 그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렸다. 인간의 의식 깊숙한 곳에 가라앉아 있는 무의식이 인간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고 주장한 프로이디즘은 비슷한 연대에 마르크시즘이 던져준 현실적 개안 못지않게 인류의 역사를 뒤흔들었다.
1세기도 훌쩍 넘어 프로이트와 그의 정신분석학은 복권의 차원을 넘어 나날의 삶에 범람하는 일상어가 됐다. 인문·정신과학에 끼친 방대하면서도 근본적인 영향력을 접더라도 자아와 초자아, 성적 본능(리비도)과 죽음의 본능(타나토스), 구강기와 항문기 같은 낱말은 더는 학술용어가 아니다. 1997년에 완간된 전 20권의 <프로이트 전집>은 어느새 우리 일상을 점령한 프로이디즘의 알맹이를 뒤늦게나마, 우리말로 되새김질해보자는 도서출판 열린책들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독일의 피셔 출판사가 펴낸 <지그문트 프로이트 전집>과, 프로이트 전집으로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제임스 스트라치와 안나 프로이트가 엮은 <표준판 프로이트 전집>을 기준으로 삼아 신경정신과 전문의와 전문 번역가 18명이 번역자로 참여했다.
1~3권은 프로이트의 저술이 심오한 암호나 아득한 신화가 아니라 인간에 관한 이야기, 다시 말해 ‘문학’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정장진 옮김)은 짧은 글 9편으로 이뤄진 산문집이자 문학비평서라 할 수 있다. 헤세나 릴케 같은 시인들이 그의 글에서 시를 읽었듯이 ‘유머’나 ‘덧없음’ 같은 산문은 빛나는 통찰력을 발휘하는 문장가 프로이트를 보여주며, 괴테와 도스토옙스키 등의 작품을 분석한 글들은 예리한 문학비평가로서의 프로이트를 떠올리게 한다. <늑대인간>(김명희 옮김)은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통해 치료한 환자들의 사례를 들어 자신의 이론을 밝힌 기록집이다. 여자 동성애, 강박증(쥐인간), 유아기 노이로제(늑대인간), 편집증이 실제 면담 내용과 함께 소설처럼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1932년에 나온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임홍빈·홍혜경 옮김)는 1917년 출간된 <정신분석 강의>보다 한층 원숙해진 프로이트 말년의 사상을 집약한 강의록이다. ‘꿈 이론의 수정’ ‘꿈과 심령학’ ‘불안과 본능적 삶’ 등 7개의 연속 강의를 모은 이 책을 프로이트는 ‘세계관에 대하여’라는 글로 끝을 맺고 있다. 서문에서 “마음의 활동에 관한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불확실하고 완성되지 않은 내용을 그대로 수용해야만 할 것”이라고 말문을 연 그는 “과학적인 사고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직도 너무 젊다. 풀 수 없는 커다란 문제들이 아직도 많다”고 여운을 남겼다.
인간의 불합리하고 어두운 충동들에서 좀 더 근본적인 인간학의 동기를 발견한 프로이트는 의학과 심리학과 철학과 문화이론을 아우르는 방대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의 정신분석학이 당대의 개인주의와 부르주아 사회와 맺은 강한 친화력,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나친 결정론과 비합리성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20세기 지성사에 남긴 큰 발걸음은 이 우리말본 전집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