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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발의 아들인
고운(모용운)의 북연은 산서성 대동시 용성에서 풍발이 모용희를 죽이고 고운을 내세워
실크로드 하서주랑[오르도스]으로 옮겨 섬서성 서북 화현일대에서 공식 건국하고,
북위에 의해 산서성 대동시 용성(북위의 평성)으로 다시 보내진다.
후연은 모용황의 전연이 연경(북경)에서 전진의 부견에게 멸망당하자,
훗날 후연을 세우는 모용수가 부견의 수하장수로 들어갔다가 부견이 요장에게 죽자,
연경(북경)으로 들어가 후연을 세우고 북위를 침공하였다가 참합피 전투에서 패해
북위의 영향력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하북성 동남단 천진지방, 산동성 등주시 북부 중산으로 천도한다.
(북위와의 참합피 [參合陂-395년] 전투에서 패전-산서성 대동시 동북부 백등산 천지)
후연은 실크로드 문물에서 우선혜택을 받기위해
모용희때 하남성 서북부에 있었던 서연을 점령하고 살다가, 산서성 대동시 용성(평성) 멸망한 대나라에서
탁발규가 북위를 건국하고 하남성 낙양으로 남하하여 산서성 대동시 평성이 비게 되자,
후연의 모용희를 산서성 대동시 용성으로 보낸다.
고운의 북연은 산서성 대동시 평성으로 보내 부족한 원북위 인력을 보충하게 된다.
북위의 탄생지였기 때문에 부족한 인력을 북연, 서연, 후연인으로 채운다.
원래 북연이 위치해있던 섬서성 서북 화현일대는 감숙성 돈황지구에서 실크로드 문물이
섬서성 서안, 산서성 영제시, 운성시 등 하서주랑인 오르도스로 이어지는 길목을
북연이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곳은 돌궐이 궐한,궐연,궐강,궐저,궐용,궐농,궐융이 분화했던 곳 중에서 궐연이 살았던 곳이었다.
그래서 고구려의 장수왕과 북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풍홍이 형이었던 풍발의 두자식을 모두 죽이고 북연 황제에 오르게 되자
산서성 대동시 평성으로 보내 부족한 북위 인력을 채우면서도 원북위의 감시 하에
두려고 하였던 것이다.
즉, 북연 황제라고 자처하였기 때문에 장수왕의 공작으로 북위가 멸망시키고
풍홍의 북연은 고구려의 연나부로 5만명이 귀부하여 태원시,진중시 등에서
이들이 실크로드 물류도착지이며, 백제의 잔가지인 백잔이 진출하여 상업무역을 펼치고 있었던
제2의 하서시랑인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 백제의 북방을 괴롭힌다.
장치시 장사지방은 백제의 해외에 살고 있는 백잔이 진출하여
북월지와 실크로드/초원의 길 무역을 독점하고 있었다.
북월지는 가야, 왜로 분화하는 세력이다.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북월지[팔레스티나 갈대아 가나안>
이라크 남부 우르국(우륵국)에서 마지막으로 동방으로 돌아오는 우르가야, 일부 대가야, 왜 세력]는
감숙성 돈황지구를 장악한 고구려에 중원으로 들어가는 중간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신강성 서북부,감숙성 서북부,내몽골 자치구 서북부 사라선맹지구로 들어온 다음
서남부 파단(단파)길림사막지방 (사반지방)을 지나 섬서성 영하성 회족 자치구로 남하하여
영북지방, 영남지방으로 남하한 후 산서성 장치시로 들어가 백잔들과 실크로드 중계무역을 펼쳤다.
고구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자
광개토는 영하성 회족 자치구[영주]를 침공하여 고구려 영토로 편입하고
거란족을 내몽골 중동부로 밀어내 버리고 북월지(가야, 왜)를 추격한다.
북월지는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으로 달아났다가 백잔, 이잔과함께
황하강 때문에 하남성으로 남하하지 못하고 산서성 동남부와 동북부 지방으로 두패로 밀려난다.
백제와함께 반격하였으나 아신왕이 감숙성 평양시 평양성을 침공하러 가다가
산서성 서부 패수지방에서 패전하게 되고 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로 돌아간다.
이후 백잔, 이잔, 가야, 왜는 내몽골 중동부로 추격을 당한다.
이잔은 백잔세력이 산서성 진성시 진평성과 제2 도시인 장치시 장사지방에서
실크로드 중계무역을 펼치다가 북월지와 혼혈로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실크로드 문물이 중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간 약탈 등 험난하고 위험했기 때문에
감숙성 돈황지구에서 중간 세금을 내거나 물류 운반권을 맡기고 세금을 내야만 하였다.
세금이 비싼 것은 울며 겨자먹기로 감숙성 돈황지구에서 팔아야만 하였던 것이다.
이 물류가 산서성 진성시 진평성으로 들어가 하남성 낙양, 정주시, 개봉시를 거쳐
산동성 제남시, 동영시, 하북성 연경으로 이어져 요녕성 조양, 심양까지 공급되는 북조 독점무역이었다.
초원의 길에서 오는 물류는 청해성 서령시 서경에서 중간 세금을 내야만 하였고
초원의 길 물류는 사천성 청두(성도)를 거쳐 귀주성, 광서성, 광동성, 호남성, 강서성, 절강성,
복건성, 강소성 등 남조로 들어간다.
장수왕은 풍홍이 형인 풍발(고려인 고운을 2년만에 죽이고 황제에 오름/407~409)의
두자식을 죽이고 북연 황제를 자처하여 괘씸하였고, 감숙성 평양시에서 산서성 진성시 진평성까지
실크로드 물류가 이동하는 하서주랑(오르도스) 구간 사이에 북연이 있었기 때문에
북연을 파내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북위를 이용하여 북연을 산서성 대동시 평성으로 보내버린다.
북위는 하남성 낙양으로 남하하여 대동시 평성 원북위가 비게 되자 후연, 북연을 보내
부족한 인력을 채우게 되며 북위, 고구려가 서로 윈윈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던 것이다.
광개토 때 중원으로 들어가는 중간 세금을 내지 않고 실크로드 무역 제2의 도시인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으로 들어온 북월지(가야, 왜)는 백잔, 이잔과함께 광개토에게 동만주로 추격을 당한다.
백잔, 이잔, 가야, 왜는 일부가 산서성 진성시 동남부 태항산맥이 끝나는 남쪽 끝지점인
요택 [황토고원이 소연산산맥을 따라 북경으로 시작됨]을 지나 하북성, 요녕성, 길림성으로 쫓기고,
일부는 내몽골 동부지방에 머물다가 지속된 추격으로 요녕성을 거쳐
길림성 집안시 통구현에 다달아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배수진을 친다.
가족들의 안전한 도강때문에 광개토군과 결전을 벌이게 되고 약 5만여 명이 희생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힌다.
압록강을 도강한 백잔, 이잔, 가야, 왜는 반도 중부, 동남부 지방으로 남하한다.
이 전투에서 광개토가 전사하게 되고 포로를 이용하여 고구려 무덤군 1만2천여 기가
만들어지게 되는 것이다.
원래의 전연 영토는 퇴항산맥 동부지방에서 북경을 거쳐 요녕성 서부지역까지였다.
요녕성 서부지방에 살던 계나라 망인, 전연 망인, 대련반도의 낙랑국, 남옥저, 말갈, 동예 연합군마저
광개토의 고구려군에게 반도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
(전연의 전신이 북경의 계나라/계, 품앗이, 상부상조 유래, 상여풍습 유래.거대 능문화, 순장제도를
전연이 이어받음.)
대련반도 북부 안산지방에 살던 북옥저도 연해주로 밀려난다.
이들은 모두 백제의 동맹군이었으며 산동성 제남시 발해만 등주시 위례, 관미성 전투에서
아신왕의 패배로 연합군이 동만주로 밀려나다 반도로 남하한다.
이들 포로를 이용하여 1만2천여 기의 고구려 무덤군이 조성되고 청해성 서령시 서경까지
광개토를 모시고 갈 수 없었기 때문에 길림성 집안시에서 광개토의 무덤을 세운다.
그 유명한 광개토 집안의 땅임을 상징하는 "집안(集安)"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태어난다.
또한 광개토가 죽어서 넋/혼백이 서령(서경)으로 돌아가셨다는 "서거/제거(逝去)"라는 유명한 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역시 제왕의 넋/혼백이 청해성 서령시 서경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이 제거(逝去)이다.
이것이 고구려 고분군에 삼국 고분 양식이 골고루 등장하는 이유이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 때 마한과는 동맹관계였다.
고구려는 마한반도를 고구려간(干)이라고 명명한다.
[干(방패간, 줄기간)-고구려땅 마지막 한켠에 있는 줄기라는 뜻으로 미래를 위한 헛간 정도로 보았다는 뜻임]
북연의 풍홍은 장수왕에게 북연 황제 대우를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유유의 남송(강소성 남경/난징/유송)으로 망명하려다 발각되어 황족10여 명과함께
모두 참살당하고 만다.
풍홍의 손녀 딸이 북위로 탈출하여 북위 황제의 황비가 되어 장수왕을 외교적으로 괴롭혔다.
장수왕은 북위, 남송 양다리 줄타기 외교로 1년에 2회씩 조공하여
외교적으로 살아남게 되고 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에 있던 개로왕을 죽인 일로 굴욕감을 맞보며
외교적 고립을 당한다.
개로왕은 백잔, 이잔, 가야, 왜를이용하여 광개토/장수왕 때부터 협공하여 고구려를 없애버리고
실크로드 무역을 장악하려다가 장수왕의 남침으로 전사하고 만다.
아신왕은 산동성 제남시 위례백제의 성주로 있다가 왕이 되어, 발해만 낙랑국과 고국원왕 때
대련반도 조양, 심양으로 밀려났던 낙랑국을 점령한 고구려 광개토군을 치기 위해
대련반도 동부로 밀려나 살고 있었던 낙랑인, 계나라 망인, 전연 망인,
후동진, 남옥저, 말갈, 동부여, 동명부여, 동명백제, 동예연합군과 협공하였으나 패전하여
반도로 밀려나는 역사였던 것이다.
p/s
원래 고대당시부터 상업무역은 천한 직종으로 여겨 역사에도 오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역사 기록에서 제외되어 수많은 역사학자들 마저 경제부문을 무시하게 된다.
고대 현대 경제개념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고대 역사를 논한다는 자체야 말로 넌센스다.^^
중세, 고대시대 당시 역사를 기록하는 사가들에게도 경제 문제는 아주 어려운 부분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모든 역사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종합하여 풀어 놓으면 그 역사서에서 고대의 경제학이 나온다.
장수왕 때 충주에 세우는 중원 고구려비는 말그대로 중원 감숙, 청해, 섬서 북부, 산서 서부에서 출병하여
반도 충주로 들어와 평정하고 세우는 비석이다.
충주는 중원이 아니라 국원성, 국원경이었다.
나중에 고구려인이 유입되고 나서야 중원경으로 대체되어 불리운다.
북경(베이징)의 계나라를 무너뜨리는 모용황의 전연은 전진의 부견(청해 동부, 감숙성)에게
멸망당한 이후, 특정의 나라가 북경 전지역을 독식한 지역이 아니다.
북위가 다시 북경을 점령하지만 모두 장악한 것이 아니라, 동서로 나뉘어져 있었다.
중원으로 들어가는 실크로드 요충지 돈황지구를 장악한 전진의 부견이 서역을 평정하고 돌아와
불교 전파를 위해 각국에 사신을 보냈으나 고려 [감숙성 평양시 고원과 고구원, 청해성 서령시 서경]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자 중원 천하통일한다며 북조의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고
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에서 사마 [실크로드 무역 운반로를 관리하는 짐꾼 및 마차 관리책임자]로
성장하여 서진을 세운 사마염이 산서성 진성시 진평 2군 [하서시랑]을 장악하여 서진을 세우고
조나라의 후예 위나라왕 조환을 진성시로 내보내 진왕으로 떨어뜨린 후 하남성 낙양으로 남하하여
도읍으로 정한다.
전진의 부견이 마지막으로 하서시랑을 장악한 서진의 사마염을 낙양에서 살해하자,
사마염의 동생 사마예가 서진인을 이끌고 강소성 남경[난징]으로 들어가 동진을 건국한다.
부견은 사마예의 동진을 침공하였다가 강소성 북부 안휘성 동남부에 살았던 양하사씨 사안, 사현장군에게
비수대전(안휘성 합비동부 비수 수춘(수현-기자조선 탄생지/실크로드 소비 종착지)패배로
요장에게 죽자,
부견의 수하 장수로있다 후연을 세우는 모용수가 장악하였다가 북위에 산서성 대동시 인근
참합피 전투 패배로 밀려나자 ,하북 동남부 천진 산동성 등주시 북부 중산지방에 천도하고
북위와 북경을 동서로 나눠 양분하다가, 모용희 때 실크로드 문물에서 우선 혜택을 받기 위해
하남성 서북으로 옮겨 서연을 점령하고 살다가, 산서성 대동시 평성 멸망한 대나라에서
북위를 건국한 탁발규의 북위가 강성해져 하남성 낙양으로 남하하자
힘이 약해진 모용희의 후연을 산서성 대동시 용성으로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후 북위는 산서성 대동시 평성의 원북위를 내세워 북경 중서부 지역을 차지하고
고구려는 동부지역을 양분하게 되는 곳이다.
북위는 후연, 서연, 북연인을 내세워 하북성과 북경 중서부 지방을 차지하게 한다.
후연의 모용수 때는 산동성 등주시 보하이만(발해만) 관미성 북쪽 대릉하를 사이에 두고
광개토와 영토를 구분하였다.
고구려는 하북성 서부지역과 북경 서부지역을 북위가 내세운 후연에 빼앗기자 전략을 바꿔,
발해만 대릉하 낙랑국에서 북발해만 요녕성 조양, 심양으로 고구려에 밀려난 낙랑국으로 들어가
장악하고 있다가 낙랑국을 기반으로 북경 동부지방 [해서지방]까지 차지하고,
후연의 모용희가 하남성 서북 서연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모용수가 차지하였던 하북성 동남단 천진 중산지방을 접수한다.
그후 광개토때 산동반도 동영시의 동부여, 제남시/등주시의 관미성 등 위례백제 아신왕을 침공한다.
개로왕은 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에서 장수왕과 싸우다가 전사하며 패하게 되는 것이고,
아신왕은 산동성 제남시 위례백제에서 성주로있다가 백제왕으로 올라 북발해만을 점령한
광개토 군에게 등주시 발해만 앞 관미성 전투와 오리평야 전투에서 고구려 기마군 2만에
아신왕의 3만 보병군이 패하여 요녕성 개주시 안시성(후일 안시성)으로 끌려가 고구려인이 된다.
동영시의 동부여인도 끌려가서 훗날 동명부여, 동명백제가 태어나게 되고
반도로 탈출해 들어와서 부여 사비인이 된다.
한번 붙잡혀 갔다가 돌아가면 세작으로 의심을 받거나 천대를 받았기 때문에 동영시의 동부여,
등주시 관미성 등 제남시의 위례백제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련반도 동부에서 동명부여,
동명백제를 세우고 살다가 고구려에 밀려 반도로 탈출해 들어온다.
그래서 성왕이 국호를 남부여로 고치고 빼앗긴 충북 개별가야(전기가야)지방 회복 전쟁에 돌입하는 계기가 된다.
산동성 동영시의 동부여 왕가는 광개토에게 하북성 서남부 북평지방인 연나부로 끌려갔다가
문자명왕 때 연나왕을 폐지하고 고구려 연나부로 귀속된다.
북경 중동부 지방에는 아직도 고려영, 고려각 등 고려성들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이 고려는 왕건 고려가 아니라 광개토 때 차지한 고려이다.
광개토 대왕 때까지는 국명이 고려였고 산서성 진성시 진평 2군에 있었던 동이 구려국을 장악하고
장수왕 때 비로서 고구려가 탄생한다.
원래 산서성 대동시 용성은 사마선비족 사마의(삼국정립시대 종결), 사마염, 사마예의 선조가 살았던 서진[西秦]이 있었고,
감숙성 실크로드 요충지 돈황지구 [하서회랑]를 장악한 전진의 부견에게 멸망당하자,
기원전 북흉노 [돈황지구 두만, 모돈, 노상선우계]에게 내몽고 동부 선비산과
오환산[오손, 오게, 정령, 오환]으로 쫓겨 들어갔던 선비족 [단선비, 탁발선비, 우문선비, 걸복선비,
모용선비, 고선비(고구려), 사마선비(서진, 동진)]중 탁발선비족 탁발십익건이 세력이 불어나자
내몽고 중부 포두시 파언탑랍 지방으로 서진하여 세력이 불어난다.
부견이 전파하려했던 불교를 받아들이지 않은 서진을 멸망시키고 돌아간 틈을 이용하여
탁발십익건/탁발의로 등이 대동시 용성으로 들어가 서진을 점령하자, 전진의 부견이
다시 서진을 침공하여 탁발선비족이 세운 대나라를 멸망시킨다.
서진인들이 연이어 두번의 부견침공에 이어 탁발선비족 탁발십익건으로부터 침공을 당하자,
산서성 장치시 장사지방, 사탁지방, 점탁지방으로 남하하였다가
사마염 때 서진[西晉]을 건국하였다.
고대부터 산서성 진성시 마한>진한땅이었기 때문에 서진[西晉]이라고 짓는 것이다.
산서성 대동시 용성지구는 내몽고 서부 시라선맹 [사라선맹, 아라선맹, 아랍답맹, 오라선맹]지구와함께
돈황지구 [하서회랑]를 장악한 북흉노 [기원전 318년~200년대 모돈선우, 100~기원전후까지
서흉노 vs 동흉노, 북흉노 vs 남흉노가 서로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임,
기원후 100년대 북흉노에게 내몽고 동부 선비산으로 쫓겨 들어갔던 단선비[단석괴]가 서진하여
북흉노를 역노예로 떨어뜨리고 돈황지구를 장악함],
그 후 전진의 부견이 죽자, 고(구)려 광개토, 장수왕 때 하서회랑, 하서주랑, 하서시랑을 장악하고
마지막으로 북위가 하서시랑을 장악한 후 동위>서위>북제(탁발선비)>북주(우문선비)>수>당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광개토에게 중원으로 들어가는 중간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하서회랑을
장악한 세력을 피해 중원으로 돌아 들어가는 실크로드 번외 거래 지구였다.
부견이 죽고 부견의 수하장수로 있다가 5호20국 시대가 펼쳐지자 감숙성 원천[완천]으로 돌아가서
서진[西秦]을 세우는 걸복국인의 나라와 구분하여야 한다.
석탈해는 용성국 출신이며 그의 선조가 최초 살았던 곳이 산서성 대동시 용성에 있던 용성국이었고
석탈해 무리는 단파국으로 옮겨가는데 이곳이 내몽고 서부 이기산 남부 단파[파단]길림 사막지방이었다.
사로국은 이곳을 말한다.(단파/ 파단 길림 사막지방을 사반(沙泮)지방이라고도 함)
석탈해 무리는 섬서성 보계시 계림지구로 이주하여 나라 이름을 계림이라고 지었다가
감숙성 경양시로 북월지[가야,왜]에 밀려나 나라 이름을 시림이라고 하다가 감남지방을 거쳐
안휘성 남부 강소성 북부 사수지방, 회수지방인 강회신라 [서불한우로국]로 들어가서
강회신라[서불한우로국]를 점령하고 이사금시대를 이어가다가
훗날 기원후 383년 전진의 부견이 일으킨 남조 천하통일전쟁인 안휘성의 성도 합비 동부
비수대전 [비수 근처에 수현(수춘)에서 비수대전을 치룸, 수현 동부 서화지방은 기자조선 탄생지이며
몽성에 기자 묘가 위치/서불한우로국을 말하며 훗날 서국[徐國]이 들어선다/실크로드 소비종착지]에서
부견의 90만 대군과 사안, 사현형제 [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에서 안휘성 남부, 강소성 서북부로
부견에 밀려 하남성 낙양에서 사마예와함께 달아나 생성되는 사씨 가문인 양하사씨와
비수대전을 벌임]
부견의 남북조 천하통일전쟁 때 강회신라[기자조선 후신 문명인 서불한우로국>서국]가
한반도로 피신해 들어온다.
[서불한우로국중 우국[호남성 무한시/우한시], 로국[호남성 광주시로 밀려남].
석탈해 무리는 강회신라를 점령하고 이사금 시대를 이어가다가 부견의 전진군과
사현의 8만 기마 동진군이 기자조선 탄생지인 수현에서 비수대전을 벌이자
한반도로 피해 들어왔다가 반도 서남단 지방에서 서국이 들어선 후
마립간인들이 신라를 차지하고 이어가게 되는 것이다.
서국[徐國]은 중동남단에서 부터 서도국으로 분화하기 시작하여 일본 북구주[기타큐슈]로 들어가서
서도국으로 분화하고 이잔과 융합하여 이도국으로 분화한 후, 대판[오사카]으로 들어가
가야인의 대량 유입으로 대화국[야마토]이 되었다가, 중부의 나라현으로 들어가
백제인의 대량 유입으로 나라[내량/나랑]백제가 탄생한다.
[반도 서남단에는 bc212년 진시황 시대 때 불로초를 구해온다는 핑계를 대고
서복,후생,노공,한종등이 로국, 로자국[기자조선의 후예 우국[호남성 우한시/무한시/광주 이주],
로국[노국]/ 로자국[호남성 광주시 /광주, 광산 이주],
유응국 [하남성 희수강에서 초나라에 밀려 호남성으로 남하한 후 반도 이주./곰토템국/황제 헌원 후예국],
강나라, 민월 [민융] 등 호남성 낙수인 등과함께 한반도 진주 등 낙동강 유역으로 탈출해 들어오고
서불한인 일부는 기원후 비수대전 때 집단 이주한다.
서국[반도 서남단], 불국[창녕/비화가야], 한국[감국/함국/김천]인은 반도 남단에 거주하다가
김춘추가 국경강화와 나당연합군을 지원하기 위해 거열주[거창], 선산, 김천이북 조령지방으로
집단 강제이주시킨다.
진시황 때 한반도로 탈출한 서복은 한종과 경쟁에서 이겨 반도 서남단을 차지하게 되자,
한종이 반도 동남단으로 밀려났다가 대마도를 거쳐 일본 북구주[기타큐슈]로 이주하여
구야 한국의 일원으로 구주 한국을 이끌어간다.
서국[徐國]이란 말은 최초 여기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기원전 200년대 진시황 때 이주해온 세력과 기원후 383년 비수대전을 피해 이주해온
기자조선 세력[서불한우로국]인은 이렇게 반도에서 다시 만난다.
김춘추는 죽기직전 서국[徐國]의 예에 따라 화장하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실크로드 요충지인 돈황지구[하서회랑]를 장악한 전진의 부견에게 중원으로 들어가는
중간 세금을 내지 않고 신강성 서북부, 감숙성 서북부, 내몽고 자치구 서북부를 거쳐 사라선맹 지구와
산서성 대동시 용성지구에서 실크로드 번외 거래 무역을 서진이 북월지 [가야,왜]와 독점하자
전진의 부견이 침공하여 멸망시키는 것이며 탁발선비족 탁발십익건, 탁발의로 등이
이틈을 이용하여 내몽고 포두시에서 산서성 대동시 용성으로 들어가 서진을 멸망시키고
대나라를 건국하자 부견이 다시 거병하여 대나라를 멸망시킨다.
부견은 이미 서진 제1차 침공 때 과거 선비산에서 북경으로 들어가 동이족 계나라를 점령하고 세운
모용황의 전연[산서성 동부 퇴항산맥~하북성 전지역, 북경, 요녕성 서부장악/모용 선비족]등
한차례 북조의 모든 나라를 멸망시키고 돌아갔다.
서진인들이 산서성 장치시, 백제하/제수인 장사지방,
사탁지방 [후만서고], 점탁지방으로 남하하였다가 서진을 재건하고 진성시 진평 2군 하서시랑을 차지하며,
진성시를 장악한 조나라의 후예 위나라왕 조환을 제후 진왕으로 내려 앉히고 하남성 낙양에서 서진을 공식 건국하자
부견에게 다시 제3차 침공을 당해 낙양에서 사마염이 죽고 동생 사마예가 강소성 남경으로 달아나
동진을 건국하고 비수대전에서 승리하여 5호20국 시대가 개막하며 군웅할거시대가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 한반도로 멸망한 왕가들이 대거 이주한다.
동진 사마씨 황제 일행도 왕돈, 소준, 소외의 난 등으로 혼란해지고 북위 출신 유유가 동진 황제가 되어
남송을 건국하자, 사천성 초국[예촉]의 환온/환현 일파와함께 대련반도 옛 낙랑국[요녕성 조양, 심양]으로
달아나 후동진을 세웠다가 동수 때 고구려에 밀려 반도 해주로 들어와 고국원왕의 남진으로
안악에서 안악궁을 건설하자, 근초고왕과 근구수 태자의 도움을 받고 동수가 백제 제후로 떨어지자,
익산 금마 연립마한(하한) 금성[알야산성]의 금성라씨와 나주지방으로 이주하여 예장라씨,
나주라씨 등으로 분화하게되고,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 사안, 사현가문의 사마씨, 사탁씨, 사택씨,
사타씨는 안휘 동남부, 강소 서북부로 옮겨가 사수지방(회수지방)으로 불리우며
양하사씨로 이어지다가 한반도 익산 연립 마한국(하한)으로 들어간다.
백제(동성왕, 위덕왕), 신라군(진흥왕, 진지왕)의 침공으로 일부가 나주 이남의 남마한 침미다례국인
여수, 사천으로 옮겨가 사탁씨, 사택씨, 사타씨, 사씨로 이어진다.
사마씨 황제 가문(사마혁, 사마덕종, 마지막 황제 사마덕문)은 일본으로까지 도해하여
성씨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근초고왕도 동진연호였던 태화를 4년간 사용(동진을 눌렀다는 의미)하고
사탁부계 신라 진평왕도 김춘추의 조부 진지왕(전진 연합군의 후예)을 3년만에 폐위시키고
진평의딸 선덕여왕(동진연합군의 후예)도 동진연호였던 태화를 다시 사용함.
태종 무열왕계는 김헌창의난 이후에 왕계보에서 완전히 사라짐.
남송을 세운 유유는 남경(난징)에서 안휘성 서화(구 하남성 상구현)
옛 기자조선(실크로드 문물 소비 종착지)으로 다시 천도한다) .
진흥왕의 팽창정책으로 침미다례국[나주~여수,사천]이 신라 영토로 들어가자,
사탁부 [여수, 사천]에서 진평왕계가 신라 금성으로 들어가고 진지왕이 익산 금마 연립 마한국을
침공하게 되자, 김춘추의 조부 진지왕을 4년이 되기 전에 폐위시키고 사탁부[사택부]계 진평[백정]이
진평왕 [선화공주의 부친]에 오르게 되며,익산 금마 연립마한국(하한)을 백제 위덕왕에게 돌려준다.
[진평왕계는 산서성 대동시 용성에서 밀려나 남하하여 장치시 사탁지방에서 세력을 키우고
하남성 낙양으로 남하하는 서진계이며 동진을 거쳐 들어오는 세력으로 흉노계가 아님].
전진의 부견이 전파하려했던 불교 전파는 침공을 하기 위한 사전 명분이었고,
근본적인 문제는 돈황지구 하서회랑을 피하여 세금을 내지 않고 실크로드 번외 거래를
펼치려 하였던 북월지(우르가야, 대가야, 왜)와 서진간의 번외 문물 교류를 차단시키고
내몽고 서부 사라선맹 지구, 산서성 대동시 용성지구, 하북성 북경지구를 침공하여
중원으로 들어가는 실크로드 무역을 독점하려고 남조 강소성 남경으로 달아나 동진을 세운
사마예 가문을 제거하여 명실공히 실크로드 상업무역을 독점하기 위하여
천하통일 전쟁(영가의난)을 일으킨 것이었다.
남조 독점 무역로인 청해성 서령시(시닝시) 초원의 길을 장악하고 고려 광개토가 점령했던
하서시랑 [산서성 진성시 진평 2군 (진평성, 고평시의 고평성)]의 동이 구려국은
장치시 장사지방, 사탁(사택)지방, 점탁지방의 백잔, 이잔, 북월지[가야,왜] 동이 구려세력이
재산 때문에 달아나지 못한 세력이었으며 장수왕 때 비로소 고구려가 탄생하게 된다.
[장수왕 때 승려 도림은 백제 개로왕이 바둑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여
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사성)에서 숭산(하남성 정주시 숭산)까지 성곽을 쌓게 하여
국고를 축내게 하고 475년(장수왕 63년) 고구려로 탈출하자, 장수왕이 남침하여
정주시 한성백제 한성이 점령당하고 개로왕이 죽임을 당하고 만다.]
>백제 관료인 재증걸루, 고이만년이 부패문제로 처벌을 받자 고구려로 탈출하여
고구려군의 길라잡이로 들어와 아차산에서 침을 세번뱉고 개로왕을 참수함.
>산동성 제남시 위례백제로 밀려남.>반도 출생인 동성왕 때
하남성 정주시 한성백제와 산서성 장치시 사탁지방의 사성을 다시 회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