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3.
신규 유•초등 임용 교사 및 특수 교사를 위한 연수가 오늘 종일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 고사를 1~2년 준비해서 합격한 사람들이어서 대부분 20대이다. 내가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들이어서 어제 밤에 은근 걱정이 됐다. 모둠 토론에서는 활발히 얘길 잘하지만 전체 수업에서는 대체로 조용하니 말이다.
강연 시작 30분전에 도착해서 먼저 온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역시 개별적인 인사는 사람을 무장 해제 시키는 면이 있다. 처음 보는 나에게 그들은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고 우리는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강연이 시작된 후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간혹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적극적인 소통은 역시나 거의 없었다. 익히 예상하고 있었기에 당황하지 않았고 나는 무사히 한 시간 반동안 강연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나만 즐거우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으로 선생님들의 반응을 얼른 엿보고 싶었다.
강연 초반에 안내했듯이 나머지 한시간 반 동안 모둠 토론으로 진행했다. 나는 선생님들의 원탁 테이블을 하나씩 찾아가서 강연 내용이 어렵거나 지루하진 않았는지, 도움이 조금이나마 되었는지 등을 질문했다.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시험을 치른 후 성적표를 받는 학생처럼 속으로는 무척 긴장이 됐다.
모두가 한결같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너무 좋았다고 말하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도 좋았으면 강연 중에 반응을 좀 보여주지 그랬냐고 부드럽게 물으니 모두가 까르륵 웃었다. 1 대 전체의 관계보다 1 대 소수의 관계가 한층 마음의 거리를 좁혀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있는 그대로 존중 받는 우리 아이: 사회문화관점의 렌즈' 오늘 강연 제목이다. 예상대로 선생님들은 사회문화관점을 교육대학교 다닐 때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관점으로 수업하는 교육학자가 왜 없었겠나. 그들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교대 수업에서 그 분들의 수업이 관심을 받지 못했을 따름이리라. 사범대에서 내가 만난 학생들도 매학기마다 동일한 반응을 보여서 사실 놀랍지는 않았다.
다음 주부터 담임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신규 초등 교사들은 설렘 반, 걱정 반이라고 했다. 가르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는데 학급 운영을 어찌해야 할지,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모둠 토론 시간에 이에 대한 질문이 나에게 가장 많기도 했다.
오늘 강연을 통해 사회문화관점을 알게 되었는데 집에 가서 고민을 많이 해보고 싶다는 선생님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강연이 끝남과 동시에 더이상 생각을 하지 않고 교재도 두번 다시 펼쳐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민의 시작을 기꺼이 하겠다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특수 교사 한 분도 특수 교육을 전공해서인지 사회 약자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회문화관점에 상당히 공감이 간다고 나에게 말했다. 점심 시간에 다시한번 나에게 유익한 내용이었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는 말로 공감을 표해서 고마웠다.
모둠 토론 시간에 마지막으로 들린 테이블에서 한 분이 학생을 상담할 때 감정코치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질문을 했다. 나는 미소를 띄며 이렇게 말했다.
"감정코치법을 저는 모릅니다. 대신, 제 학부와 대학원 수업 사례를 잠시 공유할게요. 상담 교사나 상담 전공 학부생들이 제 수업에서 사회문화관점을 배우고나서 후련하다는 말을 하더군요. 상담은 심리학이 이론적 기초인데 심리학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답답했다고 해요 그런 상황에서 권력의 불평등에 초점을 두는 사회문화관점을 배우고 나니 점과 점 사이의 공백이 채워지는 느낌이라고 비유하더라구요. 검사 도구와 수치만으로 내담자를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말이죠."
이 말을 다 듣고 나더니 질문을 한 선생님은 나를 보며 "우와~ 마치 인생 상담을 받은 기분이예요."라고 말했고 그 테이블에 앉은 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3시간 강연으로 사회문화관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강연을 흔쾌히 수락한 이유는 단 한명이라도 이 관점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는 신규 초등 교사가 있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내 바람보다 훨씬 많은 신임 교사들이 사회문회관점에 관심을 보여 기분이 좋다.
지난 달에 만난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오늘 만난 신규 선생님들을 보며 나는 교육에 희망을 갖는다. '교사가 달라지면 수업이 달라지고 학생이 달라진다' 오늘 강연의 마지막 슬라이드 문구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몸은 천근만근 피곤하지만 마음은 너무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