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09. 26
"이 소리는 어디서 나는 건가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중계 도중 중계팀끼리 서로 묻는다. 하늘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이상했던 모양이다. 아나운서는 입심 좋게 "초(超)자연적인 소리"라며 맞받는다. 구글 검색을 해보면 바다와 하늘, 땅속에서 나는 정체불명 소리에 대한 갖가지 정보가 가득하다. 유명 가수 음반 속에 '악마의 소리'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도 심심찮게 나돈다. 음반을 거꾸로 돌려보면 엉뚱한 가사가 들어 있다는 식이다.
▶ 엊그제 청와대 게시판에 '남북 정상회담 도중 "XX하네"라고 욕설한 카메라기자를 엄벌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게시 나흘 만에 8만5000명이 참여하고, 연휴 내내 인터넷 뉴스를 뜨겁게 달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 도착해 김정은 위원장과 얘기를 나누는 도중 이런 욕설이 포함된 화면이 방송됐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정황을 파악 중"이라고 한다.
▶ '범인'으로 지목된 카메라기자는 물론 방송사도 펄쩍 뛴다. 정상회담 주관 방송사인 KBS는 23일 시청자상담실 홈페이지를 통해 "(백화원 내부 영상은) 청와대 전속 촬영담당자와 북측 인사 등만 동석한 상황에서 촬영이 진행됐다"며 "KBS 중계 스태프는 백화원 입구 현관까지만 촬영했다"고 밝혔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도 "카메라 기자가 비속어를 말했다는 소문이 확산된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다"며 당국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 비속어가 포함됐다는 영상을 보면 누군가 "XX하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분명하진 않다. 남북 촬영진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다 누군가 욕설을 내뱉은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 소리가 현장에서 녹음된 건지, 편집 과정에서 들어간 건지도 모호하다. 화면을 천천히 돌려봐야 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사람 목소리가 아니라 기계음이라는 둥 귀신 소리라는 둥 별별 얘기가 떠돈다.
▶ 대통령 있는 곳에서 속삭이듯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면 도덕적 책임을 물으면 그만이다. 사실 관계도 아직 불분명한데 범인을 색출하라며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 만약 북측 관계자가 '범인'으로 밝혀지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통령 '업적'에 흠집이 생길까 안달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민감할 필요가 있을까. 없는 데서는 나라님 욕도 한다고 했다.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니다. 우리가 북한 주민도 아닌데, 왜 이런 '범인 찾기' 소동을 겪어야 하나.
김기철 논설위원 kichul@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