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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남편을 정신병자로 단정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불안감만큼은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중증으로 발전한 남편의 모습-초점 잃은 동공, 무표정한 얼굴, 느럭느럭한 걸음걸이,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는 발작, 운둔과 자폐, 폭식이나 거식-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아내가 또 원망스러웠다. 내가 정말 그 지경에 이른다면 김철기의 환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내도 우울증에 빠질지 모른다. 딸까지도.
비로소 아내한테 전화했다. 아내가 대뜸 양철 긋는 소리로 따져 물었다. 왜 핸드폰을 꺼 놓았느냐면서 언성을 높였다.
“연속 강의였어. 왜 전화했는데?”
“그걸 몰라서 물어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나는 아내의 말 뜻을 뻔히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 뻔뻔하게 대응했다.
나를 왜 걱정했다는 거야? 죽었을까 봐? 기가 막혀. 내 속을 홀랑 뒤집어 놓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정말, 대책 없는 양반이네. 저녁에 일찍 들어올 거지요? 지금으로서는 장담할 수 없어. 어이구, 애물단지! 오늘은 술 마시지 말아요. 알았지요?
아내가 그제서야 목소리를 부드럽게 바꿨다. 마음 속을 들여다 보지 않아도 남편을 병원으로 인도했던 자신의 성급한 판단을 후회했을 것 같았다.
밴댕이 소갈머리가 그렇지 뭐.
나는 일찍 귀가하라는 아내의 당부를 무시하고 김철기를 술집으로 유인했다. 부인을 염려해 일찍 귀가하겠다던 그의 결심이 식어버린 듯 주저하지 않고 따라붙었다.
우리는 수육 한 접시와 소주를 시켰다. 김철기 얼굴이 전보다는 평온해 보였다. 한숨도 자주 내뿜지 않았다. 이제는 웬만큼 면역이 된 게 아닐까 싶었다.
부인께서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지 않아? 요즘은 잠을 잘 자더라고. 약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그것만으로도 다행 아닌가?
나는 그를 위로하면서도 속으로는 사실 웃고 있었다. 갑자기 ‘거지가 도승지를 불쌍해한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만일 아내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면 비슷한 속담을 예로 들어 비아냥댔을 것 같았다. “꽃샘 바람이 겨울 바람한테 안 됐다고 한다더니, 딱 그 짝이군요.”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