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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경외하라, 부족함이
Text Ps 34,1-10
(1)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2)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6)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1. 지난 11일 중앙일보의 인터넷판 중앙플러스에 한 유품정리사의 글이 실렸습니다. 초등생 때부터 대학 입학까지 꼬박 12년을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모범생으로 살았고, 학창 시절 내내 각종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서 표창장도 받았으며, 책장에 구매해서 읽은 ‘자기능력계발’ 서적이 빼곡이 꽂혀있는 한 20대 간호학과 여대생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현장을 수습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날 본 젊은이의 방에는 고인이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으로 보이는 소주 두 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매년 더 많은 청년들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명문대, 지방대, 여성, 남성의 구별도 없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젊은 청년은 한 명 한 명이 귀한데 점점 많은 청년들이 삶을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청의 '2020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20대 사망자 수 2,706명 중 고의적 자해로 인한 사망은 절반이 넘는다고 합니다. '청년 죽음'의 둘 중 하나(54.3%·1,471명)가 극단적 선택이라는 얘기입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성실하게 인생을 살던 청년이 수많은 지혜서를 탐독하면서도 끝내 살아야 할 이유와 방법을 찾지 못한 인생의 지혜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오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명인 다윗으로부터 인생 최고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의 표제에는 누가 이 시편을 썼으며 이것이 기록되었을 때의 경위가 어떠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 사울로부터 정적으로 찍힙니다. 갑자기 왕위를 위협하는 정적으로 내몰린 다윗은 살해 위협을 받습니다. 여러 차례의 살해 위기를 겪은 다윗은 하는 수 없이 블레셋 땅으로 피신을 합니다. 그곳에 갔더니 과거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물리친 전력을 말하며 죽이려 하는 시도를 봅니다. 다윗은 그 위기에서 미친 척을 하며 벗어납니다. 다윗으로서는 인생 최대의 굴욕이 아닐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정말 이렇게 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순간이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 절망의 때를 이겨냅니다.
그때의 심경과 절망을 이겨내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 것이 이 시 34편입니다. 우리는 이 시 34편에서 절망의 때를 이겨낼 수 있었던 다윗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가득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 해를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가 오늘 말씀에서 삶을 잘 살아낼 지혜를 배우는 은혜가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2. 첫째는 ‘간구’와 ‘부르짖음’입니다. 4절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와 6절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곤고한 지경에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환난 중에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말합니다. ‘곤고한’은 히브리어 ‘아니’로 ‘가난한’, ‘비천한’, ‘억압받는’ 등의 뜻입니다. 힘이 없어 억압받는 사람의 마음 상태이며 정상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있어서 힘들고 어려워하는 상태입니다. 또한 삶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말하며 영적으로도 지쳐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환난 중에 있었다는 것은 다윗에게 있어서는 많은 적수들이 자신의 생명을 노리고 따라다니고 있는 상황입니다.
곤고함을 느끼는지 환난 중에 있는지는 전혀 개인의 실존적 상황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다윗보다 더 큰 절망감을 느낄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그리 심하게 절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 견뎌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견디는 사람도 있습니다. 왕에게서 살해 위협을 받고 적진으로 피난을 가야 했으며 거기에서도 미친 척해야 했던 당시의 다윗은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정도의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고,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시 다윗의 그런 심경에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최고의 대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곤고한 중에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는 ‘곤고한’ 상황, 즉 ‘마음이 여유를 완전히 잃어버려 가난한 상황’, ‘한없이 초라하게 느끼는 비천한 상황’, ‘스트레스로 억압받는 상황에서 벗어나 평안과 기쁨과 여유로운 상태로 만들어 줍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벗어나게 해줍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비멜렉이 그랬듯이, 이삭에게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그랬듯이, 찾아와 스스로 머리를 숙이며 화평을 청하는 상황으로 역전시켰듯이 악한 방법으로 대처하지 않아도 생명을 노리던 많은 적수들이 스스로 궤멸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만들어 주십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모든 방안들은 그늘이라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을 사용하든, 무력을 사용하든, 권력을 사용하든, 꼭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 필요악처럼 따라옵니다.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할 일이 생깁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 되어진 일은 그야말로 완벽한 처치법입니다. 이 진리를 약1,16-17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16)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부르짖어 간구하는 기도는 상황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문제도 해결하여 더 높은 수준의 신앙으로 가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외부의 압박 때문인 줄 알았는데 외부의 압박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는다고 약1,14-15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내적 문제를 해결해야만 같은 종류와 같은 수준의 시험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는 안팎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는 최고의 해결책입니다.
곤고한 중에 계신 분이 계십니까? 환난을 당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살 이유를 찾을 수 없는 분이 계십니까? 힘든 노력을 계속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우울하십니까? 창피하여 얼굴을 들고 다닐 용기가 없는 일이 생겼습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만났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십시오. “(17)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시34,17-19)라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3. 절망감, 피로감, 현실의 곤란한 역경을 이길 수 있는 대책에는 부르짖어 간구하는 것과 함께 주님을 앙망하는, 즉 ‘찾고 바라며 그에게 피하는 것’이 있습니다. 5절,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8절,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0절,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등의 말씀이 이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앙망한다는 말은 우러러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이는 단순히 시선을 보낸다는 뜻이 아니고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찾는 것은 그에게 피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우러러 찾으며 하나님께로 피하고자 하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늘 사랑을 충만하게 받아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살게 됩니다.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어 만족하며 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여호와를 앙망하는 것은 최고의 처세술이 분명합니다.
다윗뿐만 아니라 ‘한나’도 이를 입증한 사람입니다. 삼상1,18을 보면 한나는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일어난 일, 신앙 밖에서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에 절망하였지만 하나님을 앙망하였더니,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하였더니, 당혹할 수밖에 없고 어쩔 줄을 몰라 했던 상황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인도하시는 빛과 기쁨의 빛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은 후, 이전에 알 수 없었던 높은 차원의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유쾌한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이 은혜와 비밀을 깨달은 다윗은 일신의 평안을 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바라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명예를 얻고자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살려고 발버둥을 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깨달은 비밀은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해 주시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삼하8,6&14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다윗은 하나님을 앙망하고 그에게 피하기만을 힘썼을 뿐인데 하나님은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왕이라는 영예를 지금까지도 얻게 되었습니다. 왕으로서 국가의 최고 전성기를 구가하며 주변국들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영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실을 보면서도 이 비결 외에 다른 처세술을 찾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 비밀을 깨달은 사람들이 더 이상 세상의 것들을 구하고 찾지 않는데도 그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신3,26) 사도 바울은 모든 것을 가졌고 풍부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그가 세계 최고의 갑부나 권력자가 되어서가 아니라 자족하였기 때문이라고 빌4,11과 18절은 가르쳐줍니다. 만사에 충분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 가는 자들은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방법으로, 자기 스스로를 신뢰하고 자기 자신의 손의 힘으로 만족을 추구하는 이들은 그 기세와 지혜가 젊은 사자 같더라도 도무지 만족을 모르는 궁핍과 주림에 시달리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하였으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사람이 넉넉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마5,5-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공정과 원칙으로는 빵이 항상 지혜로운 자에게만 돌아가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게걸스레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잡아먹던 자들이 도리어 궁핍을 당하는 것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갈며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니 이는 주께서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시고 비웃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시37,12-15 말씀입니다.
믿으시고 주님을 찾고 주님께 피하여 주님의 방법으로 싸워 이기는 지혜로 무장하시면 어떤 세상이 되든 든든한 반석처럼 사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4. 다윗이 곤경을 통하여 배운 또 하나의 지혜는 7절과 9절에 있습니다. ”(7)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9)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둘러 진 치고 건지시기 때문이며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외한다는 말은 영어로는 ’fear’(두려워하다)입니다. 하지만 그냥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하여 두려워한다는 뜻입니다. 무서워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히 여기고 경애, 즉 존경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두려운 분이시기도 합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고(잠14,2),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전12,13),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대하는 것(시119,10)이라 하겠습니다.
어쩌면 이 얘기, 즉 ’여호와를 경외하라‘는 말은 너무 뻔한 듯 보여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신앙의 기초이기도 하며 또한 최고 단계의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면 이 빈약한 세상에서조차 생명을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받을 것이며, 아버지로서 저들을 풍부한 음식으로 먹여 주시고, 저 다른 세계에서도 그들은 영적 생명을 지탱하기에 충분한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고후12,9 시84,11) 진실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진을 쳐 보호하시고 건지시기 때문에 세상의 풍파 속에서도 얼마든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막4,35ff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한 배를 타시고 갈릴리 바다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는 도중에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도 주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무서워 떨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느냐고 말했습니다. 깨신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어찌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하시면서 덧붙인 말씀이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4,40)였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데 그 배가 잘못될 리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무서워할 이를 옆에 두고서 엉뚱한 것을 무서워하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을 공경하여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그렇게 경외하면 어떤 길을 가고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만사형통할 것입니다. 부디 이 지식과 지혜가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