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 나면서 부터
사냥을 좋아 했던 모양이다
중세 유럽이나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아도
개체 보존을 위한 본성에 가까운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나무실 아재가 총을 가저와
덕촌 박포수와 같이 노루도 잡고 꿩도 잡고 날라가는 청둥오리를 한방에 두마리나 잡았다는등
같이 가서 잡고 도와주고 싶 었지만
아아들은 가라
좋다고 먹어보라기에 저짝집에서 잡은노루 피 를 빨아 먹어 본 기억은 있다.
썩피리에서 수루탄 같은 것을 던저 물기둥이 올라가고 고기들이 떠서
얕은쪽으로 나오면 뛰어 다니며 쪽대로 떠서 잡던 기억이 새롭다
썩피리 하면 생각 나는 또 다른 이야기는
위호주머니에 십원 짜리 지전을 넣고 열심히 뛰어들어가 멱감고 집에오다가 생각나
몇번을 오며가며 보았지만 결국은 찾지 못해 오십년 가까이 내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삼촌들은 닭서리 수박서리도 했다는데
나는 수박밭 멀리 따라가고 무서워 근처에도 못갔다
저녁 묵고 마실 나오면
숲마당 이나 빽꽃동은 어른들 차지고
우리들은 도밭띠 사랑이나 민수네 상촌띠 사랑 인수네사랑 동섭이네사랑방 등을 다니며
바람이 휙 불며 산신령이 나타나 삼증승 육판서 메자리로세 로 시작 하는 동영이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민수 동생 삼수가 피리나 퉁소를 만들어 불면 신기해 했고
나도 대를 베어서 해보니 잘 안되더라
한번은 재우가 연을 잘 만들기에
사랑 뒷방에 있는 문종이중 새것 빼고 글씨가 써저 있는 헌한지을 같다주고
나에게는 참연을 하나 만들어 주고
지는 가오리 연을 만들었는데
숲넘어 메뜽에서 날리니 아주 잘 날아 기분이 참 좋았는데
할아버지께서 보시고
모다래 여덝마지기 논문서라고
나를 잡아 팰려고 하는데
아래집 할매 뒤에 숨어서 맞지는 않았지만
오줌이 찔금찔금 나오더라
초저녁 사랑방을 전전하다 몇몇이 마음이 맞으면 감서리를 가는데
달밤에 감같아서 살며시 잡아보면 잎파리고, 잎파리고
하여튼 난닌구 속이 가득해 못넣을 정도로 따오는 창덕이 주야에 비해
나느 몇개 밖에 따지못했지만
쓰릴 넘치는 동행이었다.
그래도 우리 삼촌들께서 게시니 우리는 괜히 어깨가 어슥하고,
진주에 유학하며 고등학교 하숙하는 아재들이 무슨 돈이 있었던지
집에서 멀리멀리 바라보다가
아재들이 안산꼬랑데이나 모다래(못아럐)서 살짝 보이기만 하면 죽어라 뛰어서 내려간다
잘 다녀 오심니꺼? 하고 큰절을 하면 미국 과자를 주신다
색색깔인 무지개 과자 비가 아마다마 이 얼마나 맜있는 미국과자인지 생각만해도 침이 돈다
아래 광소 제이 형은 아마다마 50개 묵기 내기를 해서 49개를 먹으니 잎에 피가 출출 나서 못멋었다는 얘기
그 맛난 짜장면을 한젓가락에 먹었다는애기
덕수 집에 있던 풀빵 털을 가저와 종갭이 삼촌과 태무이 아재하고 인수형하고 빵구우묵던 시절...
요새처럼 봄볕이 길어지면
학교에 갈때는 줄을 맞추어 무찌르자 어랑케 메팔만이냐 대한 ~ ~ ~
학교 가서는 우리 연동구역에서
토털방구
땅따묵기
○
○
○
건너가고 잡기
마떼
기둥잡기
이름도 모르는 지금 생각하면 일본식 인듯한 장나을 치다가
다들 일원씩 모아
17원주고 고무공을 사서 몇십명이 우루루 몰려 단미며 차는데, 국도란 놈이 공을 뺏아 가버리면 누가 달라고 말도 못하고...
집에 오면 뒤메에서 마떼하고, 나는 경수형님 보다 판덕이나 용덕이가 더 잘하는 것이 있구나,
공부는 동수보다도 더잘해 제일인데...
별일 없으면 냇가에 고기 잡으러 간다
작은 개울에서 가재나 찡게미를 잡고,
가을 벼가 누렇게 익어가면 미꼬레이도 잡지만
제일 재미있고 신나는 것은
태무이아재 경수형 강수등과 에워서 잡는다
썩피리 밑에 미끄럼틀도 이쪽 저쪽 막아 잡지만
아재하고 같이 갈떼면 큰구찌, 사저미 돌모쏘 위에 이쪽 저쪽 막아 잡는다
어떨 때는 은어도 있고
뗑가리
망태
모래무지
피리, 보리피리,버들피리
○피리(먹찌 혹은 먹피피-기억이 가물가물)
뱀제이
메기등이 물을 푸면 꾸중물 속에서 헤염처 나오면 서로 잡으라 쿠다가 떨쿠모 참 많이 아까와 한다.
물이 깊어 진주 남강까지 닿았다는 돌모쏘도 탱탱이를 이용해 퍼는 것을 보았고
우리들은 저 깊은 곳에 물을 다퍼면 고기가 얼마나 많을까 흥분해 상상 하곤 했다
대경이 못은 결국 다 못 퍼고 말았고
정각쏘나 수박도쏘등에 약풀고 고기 잡고 오다가
형님이 퉁점 물래 방아를 돌려 방아 주인이 잡으러 끝까지 따라와
대경이 고개에서
형님 강수 나뚜고 얼른 오이소
집에 와서도 무서버 아랬집 헛간 다락에 숨어 있었던 생각이 난다
그중에도
삼촌과 경수형 강수하고 고기잡고 오다가
사저미 밑에 있는 중 부도를 넘겨 보니
아무것도 없어 그냥 올려다가
내가 지렛대로 부도 밑을 툭툭치니 속이 빈소리가 나
쎄기 치니 안에 다 삭은 천으로 싼
사리함을 발견하고,
삼촌은 천년 이상된 보물을 찾았으니
연락을 하면 우리를 모시러 올것이고
이보물을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올 것이다 라는 말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첫댓글 둘째 외사촌 동생 정성수군이 쓴 글인데 너무 재미있고 옛날 생각이 절절하기에 옮겨봅니다. 고등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녔는데 그의 나이 56살 임에도 경남 합천군 가회면 토종 사투리로 글을 쓰니 잘 못알아보는 이도 있을듯 하네요.
고향말이 참 어우러져 재밌고 추억속에서 감도는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 드립니다